‘음량이 작다’는 이유로 이미 오래 전 우리 곁에서 사라졌지만, 오히려 21세기 지금 이 시대라면 대단한 환호를 받지 않을까 생각되는 악기가 있다.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다.
아마도 스페인 발렌시아 출신의 보르자(Borgia) 가문에 의해 유럽 문화의 ‘메인 스테이지’인 이탈리아로 전래된 듯 하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로드리고 보르자)와 그의 아들 체사레 보르자 등 이 집안 남자들은 온갖 권모술수와 음습한 악행을 끝도 없이 저질렀다. 조금의 가책도 없고, 일말의 고민도 없었다는 점에서 더욱 악명이 높다. 안타까운 건 교황의 딸인 루크레지아 보르자인데, 아버지와 오빠의 악행이 워낙에 유명했기에 사실은 가문의 희생양이었던 그녀도 세기의 악녀 내지 팜므파탈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빅토르 위고가 쓴 희곡에도, 도니제티의 오페라에도 그녀가 등장하는데, 둘 다 역사적 사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내용이다. 어쨌든 이 집안이 비올라 다 감바를 로마로 가져왔다. 그것만은 참 다행이다.
비올라 다 감바는 무엇보다도 음색이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약간의 비음이 뒤섞여 있다. 달달한 듯 하지만 너무 달지 않고, 조용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무겁거나 쉽게 내면으로 침잠하지도 않는다. 은은하고 고풍스러워서 심심한 기분도 들지만, 오히려 이것 때문에 더욱 마음이 끌리는 악기이다.
음량이 작고 표현력이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18세기를 끝으로 점차 음악 연주의 주 무대에서 사라져 갔지만, 오히려 세계가 복잡해지고 온갖 인공 소음과 기계적 증폭음으로 가득 찬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이런 악기가 더욱 그리워진다. 아마 ‘핸드폰 벨소리’와는 가장 먼 세계에 있는 악기일 것이다.
비올라 다 감바의 전성 시대는 프랑스에서 열린다. 최고의 대가 마랭 마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초야의 거장 생트 콜롱브에게 이 악기를 배운 것으로 전해진다.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을 영화화한 <세상의 모든 아침>에서 그들 사제(師弟)간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지켜볼 수 있었다.
(마랭 마레 ‘생트 콜롱브를 위한 애가(Tombeau pour Monsieur De Sainte-Colombe)’, 조르디 사발의 비올라 다 감바 연주)
프랑스 절대 왕정의 궁실에서는 그 찬란하고 화려했던 로코코 문화를 지탱해주던 악기였지만, 영화 속에서 마랭 마레가 스승을 위해 연주한 애도의 곡은 나지막한 탄식이 섞인 짧은 기도문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무심한 듯 애절한 그 음악을 들으며, 분주하기만 한 우리의 일상에도 작은 고요의 쉼표를 찍어보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