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시를 쓰게 하는가?
─『나날의 그물을 꿰매다』(천년의시작, 2010)
박소영
‘무엇이 시를 쓰게 하는가?’ 는 ‘무엇이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가?’ 순진하고 아름다운 어린 시절의 기반 위에서 진행되어진 아픔과 슬픔 그리고 기쁨으로 점철된 사랑이 사람을 살아가게 하며 시를 쓰게 한다. 그리고 기억할 수 없는 유아기 때의 일들도 무의식 속에 잠재하고 있어서 작용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제에서 오늘로 이어지는 모든 것이 살아가게 하며 시를 쓰게 하는 동력이 된다.
우리 인간은 더불어 살아가는 대상에게서 사랑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하루하루로 이어진다. 그것은 시집 제목처럼 ‘나날의 그물을 꿰매고 살아간다.’ 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서로 만나서 살아가는 가운데 겪는 일들은 기쁨과 환희가 있기도 하지만 아픔과 고통 속에서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는 아득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지난 1월 6일 중국 성도에 다녀왔다. 한국시학회 한·중동계국제학술(韓·中冬季國際學術) 콜로키움 일정에서 두보와 설도 그리고 소동파가 남긴 흔적들을 돌아보고 왔다. 그 중에서 당나라 제일의 규수 시인이요 기녀인 설도가 내 마음 깊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설도의 시와 그림, 그리고 그녀가 만든 붉은 종이를 보면서 그녀의 생애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무엇이 그녀를 시를 쓰게 했고 그림을 그리게 했으며 붉은 종이를 만들어 사랑하는 이에게 시를 써서 보내게 했는가? 그녀는 사랑을 하지 않았어야 할 사람을 사랑했기에 오늘의 설도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곡으로 불러지는 「동심초」는 그녀의 시 「춘망사」의 3번 째 수를 콘테츠로 하여 만든 것이다. 김억이 번역한 시에 김안서가 쓴 노랫말이다. 여기서 나는 그녀가 타고난 재주도 있지만 함께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들이 시와 그림 그리고 붉은 종이를 만드는 동력이 되었음을 알게 했다.
나의 시에서도 내가 만난 인연들이 동력이 되어 시를 쓰게 되었다. 이번 시집 『나날의 그물을 꿰매다』에서는 무의식에 잠재된 것들과 함께 유년의 시절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들이 담겨져 있다. 또한 직간접적으로 만나게 된 인연들을 아우르며 시를 썼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고마움을 그리고 인간들이 만들어낸 고통을 간과하지 않고 잠을 자면서도 그것들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기를 했다. 또한 어디선가 소외되어 아파하는 이들을 생각했고 전쟁과 자본의 이기로 무너지는 평화와 파렴치한 세태에 대해서 시를 쓰고자 했다. 그리고 사랑과 이별의 서정을, 그로 인한 그리움을 담아 시로 나타내려고 했다.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한 것이 아파서 「달에게 부치는 편지」를 썼다. 돌아가시고 난 후 후회하면서 쓴 시다. 다음 시는 부녀의 인연이 사랑과 고통으로 점철된 원망을 후회와 화해로 이끌어내는 것을 시로 드러낸 것이다.
화선지에 번져드는 먹물인 당신의 달빛 마음을 불러봅니다
칼날보다 날카롭게, 얼음보다 더 차게 모질었던 딸이
눈물을 바다로 흘러들이게 하며 편지를 씁니다
우표를 부치지 않아도 밤이 배달하는 편지를 달에게 부칩니다
―「달에게 부치는 편지」 부분
아들과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 어머니.
불타는 얼음을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어머니는, 끝이 나지 않는 전장의 시간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사월에 온 소식」 부분
위의 시는 아프카니스탄 전장에서 죽은 미국병사에 대한 이야기시다. 그 병사의 죽음은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을 아프게 했다. 전쟁과 죽음에 대해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어머니와 인간의 고통에 대해 쓴 것이다. 그 병사는 우리 모두의 아들이다.
신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 진액으로 번들거린다
가을바람이 지나간 자리
하늘을 우러르며 허공에 기댄 몸
마른 우물로 패어 있는 상처마다
십이월 햇빛에 몸을 말리고 있다
이미 세상 것이 아닌듯
곰삭은 몸뚱이에서
진한 단내가 난다
―「모과」 부분
위의 시는 모과를 객관적 상관물로 하여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한 시이다. 인간이 죄의 고통을 짊어진 채 살아가는 가운데 신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 신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의 연결고리가 오늘을 지탱하고 내일을 열어갈 것이다. 그러므로 존재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나날의 그물이 꿰매어진다.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시로 씌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만난 인연들이 동력이 되어 쓴 시라고 할 수 있다.
혼자서 있는 시간이면 생각은 어느 결에 깜깜한 겨울밤 밭둑에 서 있는 옥수수대와 잎과 열매를 다 내어준 과수원의 나무에게로 달려간다. 그것들이 내어준 희생의 제물을 먹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세상은 자본주의 이기로 가득 차 있다. 이 시대에 발을 묻고 하루를 살아가는 나를 돌아다보며 나날의 그물을 꿰매며 살아가는 일상에서 씌어진 시집을 들여다보았다.
박소영
전북 진안 출생. 2008년 『시로여는세상』로 등단. 시집 『나날의 그물을 꿰매다』.
―『시에』2011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