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그러니까,지난 목요일(3.23)아침 9시30분경 전화가 왔다.우민호였다.
내가 풀무원 식품에서 지방 사업부장으로 근무하던
1988년 만나고 30여년만애 처음 통화한 것이다.물론 가끔 간접적으로 소식은 들었지만,
민호는 내가 고금 국민학교 4학년때 목포에서 전학와서 5~6학년 2년을 같이 다녔고,중학교 때는
다시 목포로 가서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그런그가 다시 완도 수산고등학교에 입학했고
나는 광주일고에 입학했다.
우리는 가끔 방학때 만나기도 했다..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군산수산전문하교 항해과에 입학했고,
나는 고려대학교에 입학했다.대학 재학시절 그때만 해도 전화가 없었기 때문에 편지로 소식을 전했다.
그가 재학중 군대에 가기전 한 여학생을 소개해주었다.하루꼬라는 착한 학생이었다.한국명 김춘자.
민호와 나는 그가 군복무시절에도 자주 편지를 왕래랬고,하루꼬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민호는 군복무시 상사에 대한 많은 갈등을 나한테 여러번 토로했다.나는 막연히 참으라고만 했다.
그는 군복무를 마친후 1등 항해사로 배를 탔다.그는 더없이 성실했다.3년 정도 배를 타면
1975~6년 당시 1,0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얻었다고 했다.
귀국해서는 부산에 살면서 서면에 50평,장전동에 100평 그리고 외지에는 몇천평을 샀다.
그러기를 10여년동안 그는꾸준히 투자했다.
내가 풀무원식품 지방사업부장으로 부산에 근무하던 1978~9년 당시 오랜만에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이미 거부가 되어 있었다.
그는 나의 회사 부근 장전동에서 저녁으로 회겸 술한잔을 하고 다시 자리를 옮겨 그가 살던 광안리 해수욕장
부근에 있는 룸살롱으로 가서 아주 거나하게 한잔 샀다.그리고 그날 그의 아파트에서 자고 나는 서울로 올라온 후
서로 연락이 없었다.그 당시 술을 마시면서 학창시절 그의 소개로 펜팔을 했던 하루꼬에 대해 많은 이야기도 했다.
그런 그와 엊그제 통화한 것이다.내가 1개월전그에게 여러번 전화를 걸었으나 통화되지 않았는데 동남아 출장을 자주 다녀 전화를 못받았다고 했다.4워초 출판기념회대 꼭 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만약 못오면 화분을 보내줄까해서 그렇지 말고 책을 다섯권 10만원어치를 사라고 햇다.
그리고 축전을 보내라고 했다.오랜만에 벗과 통화하니 너무 행복하다
또,그날 오후 굽은 다리역 C.G.V극장에서 영화 <골드>를 보고 있는 데 전화가 왔다.이동엽 본부장이었디.
그가 건강이 좋지 않아 이번 출판기념회 초대하지 않으려던 참이었는데 그옛날 청호정수기에서 같이 사업하던
시절 실적면에서 항상 쌍벽을 이루면서 사업을 했는데 그러더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심지어 그대는 지역지중 인기있던 벼룩시장 하단 전면 광고 금액이 월 80만원이었는데
어느날 보니,강남본부는 이동엽 본부장의 전화로, 강북 본부의 전화번호는 나 고석홍의 전화해주었다.
즉,80만원중 40만원을 나를 위해 투자해준 것이다.당시 나로서는 그를 위해 거금을 투자해줄 마음이 솔직히 없었다.
그후 그는 뒤늦게 대한체육회 써이클 연맹 사무국장으로 들어간 후 2003년 두바이에서 개최한 아시아싸이클 대회 참석도중 국제전화로 나에게 안부를 물어온 후, 소식이 두절되었다.
그리고 나는 주피터 국제결혼사업을 하던 시절 우연히 카톡으로 연결되어 다시 만났었는데 14년만인 3월23일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그는 사무국장으로 있다가 나와서 3년간 미얀마 선교를 다녀 왔다고 했다.
미얀마에서 선교활동중 파킨스 병을 얻어 귀국후에도 집에 가지 못하고
잠실 아산병원에서 3개월 치료받은 후 귀가했다고 했다.
나는 남양주에 있는 그의 부영 아파트 집으로 가서 그와 함께 부근식당에 가서 오랜만에 저녁을 같이 먹었다.
그는 아픈 상태에서도 매일 전교와 신앙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그래서 나는"동엽이 너는 지금까지 남을 위해 봉사를 했으니,이젠 자신을 위해 봉사하라"고 했다.그러자 그는 "이렇게 살다가 죽는게 아니겠느냐"고 싱겁게 말했다.
너무도 독실한 신앙인인데 주님께서 왜 그런 병을 그에게 주었을까?나는 이번 출판기념회에 차마
그를 초대하지 못했는데,전화를 받고서 전후 사정을 이야기해주자 전화잘했다고 꼭 오겠다고 했다.
청호 정수기 시절 극히 우연히 친구가 되었는데 나는 지금까지도 그만큼 참 신앙인을 보지 못했다.
오직 그가 쾌유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렇게 반가운 두 친구를 오랜만에 찾았다,
자서전이 이어준 결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