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수 시인 · 화가의 시집, 『슬픔이 나를 꺼내 입는다』(문학세계사), 2024년 6월 25일 간행.
재미있는 시들이구나. 솔직한 시들이구나. 착한 시들이구나. 넉넉한 시들이구나. 실재의 시들이구나. 애틋하고 감동을 주는 시들이구나.
슬픔이 나를 꺼내 입는다
장인수
내 옷은 아내에게 엄청 혼난다
막걸리 얼룩이 묻었다고 된통 혼났고
분필과 사인펜 자국이 베었다고 혼났다
빨래를 개면서
패대기치듯 빨래를 혼내곤 했다
도대체 어디서 슬픔과 외로움을 잔뜩 묻혀 왔냐고
술집 알바 투잡을 뛰고 왔냐며 옷에게 핀잔을 퍼부었다
아내에게 짜장 혼나는 내 옷이 불쌍하다
옷장에 걸린 반팔 티셔츠가
허름한 내 육신을 빌려 입고 집을 나선다
어울림과 맵시를 걸친 듯 만 듯
내 몸은 점점 늙어가는데
옷이여, 나의 까칠한 성격을
폼나게 입고 다니느라 고생했겠지
내 육신이 점점 볼품 없어지고
이제는 허리 협착증으로 끙끙거리는 나를 껴입고
슬퍼도 슬프지 않은 척 걸어다녔겠지
넘치는 역마살과 외로운 중년을 탕진하고 있는 육신
떨어질 듯 대롱대롱 매달린 남방의 단추
오늘도 슬픔이 나를 꺼내 입는데
“칠칠 맞게 한두 살 먹는 어린애야?”
“질질 흘렸잖아! 파키슨 병 걸린 노인네야?”
어린애였다가 갑자기 노인이 되는
신기한 내 옷아, 너는 왜 늘 혼나고 사니?
아내의 잔소리가 백색 소음이라도 되는 거니?
(60∼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