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정이성지
“이곳은 천주교인이 피를 흘려 신앙을 증거한 거룩한 땅이다!”
이명서 베드로를 비롯한 6분의 성인聖人과
이순이 루갈다를 비롯한 12분의 복자福者
그리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려 신앙을 증거한 이곳 숲정이는
조선시대 당시 전주성城의 장대將臺가 있던 곳으로
군사훈련장으로 사용되던 군영지였다.
그랬던 이 땅을 지금 순교성지殉敎聖地로 거룩하게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명서 성인의 손자인 이준명 아나돌 덕분이다.
그는 소양면 유상리 막고개라는 곳에 초라하게 묻혀계신
할아버지의 유해를 그렇게 모셔둘 수 없다는 생각에
근근자자하게 살면서도 돈을 모아 진안 어은동 모시골에 산을 마련하고
1920년 3월 22일 성인의 유해를 그곳으로 이장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자기의 도리를 다하였다고 여기지 않았다.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위대한 신앙의 증거자들의 피가 뿌려진 이 거룩한 땅을
아무런 표식 하나 없이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 이곳을 매입하여 이 땅이 얼마나 거룩한 땅인지,
이 거룩한 땅에서 얼마나 위대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리는
치명비碑를 세우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리고 그 꿈은 끝내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
이근화 가롤로의 평생 소원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사학역도의 후손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던 재산도 몰수당하고
참으로 어렵게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던 이준명에게
그 꿈은 쉽사리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1929년 평생 담배농사를 지으며 모은 돈으로
이 거룩한 땅 두어 마지기를 매입할 수 있었다.
그것이 지금의 숲정이 성지를 교회의 소유로 마련하여
거룩하게 보존하는 첫 계기가 되었다.
할아버지의 치명터를 어렵사리 매입하는 첫 번째 꿈을 이룬 이준명은
이제 두 번째 꿈인 치명비를 세우고 싶었다.
그러나 땅을 매입하는 데 평생 모은 돈을 다 쏟아 부은 그에게는
더 이상의 경제적 능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같은 문중이며 어은동 모시골에서 함께 살았던 이학수 바오로가
이러한 사정을 전해 듣고 1935년 6월, 200원을 들여
화강암에 ‘天主敎人殉敎之地’라는 문구를 새긴 십자가비碑를 세웠다.
그리하여 허허벌판으로 남아 있던 이 땅이
위대한 순교자들의 피가 스며있는 거룩한 땅임을 만천하에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은 참으로 위대하고 영광스럽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그들의 용맹스러운 신앙을 이어받아 지키고 보존하려는
우리 후손들의 노력도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가슴깊이 되새기게 한다.
(이영우 신부)
첫댓글 도심에 자리하고 있어 좋은점이 있기도 합니다.
성지를 돌아보고 식사 할 곳을 찾아 헤맸던 기억이 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