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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두 목사 / 쓰임 받는 삶을 살려면? (렘 1:5)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복된 자리에 초대받은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에 우연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으시고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목적이 없이 무엇을 만들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입니다.
예레미야를 향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너를 만들기 이전에 이미 나는 너의 할 일을 계획해 놓았었다.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너를 구별해 세계 만민을 위한 예언자로 선정해 놓았다.”(렘 1:5, 현대어성경)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와 같이 유명한 사람을 위해서만 할 일을 미리 정하시고 구별해서 그 일을 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세계 만민을 위한 예레미야와 같은 사람으로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각 사람에게 해야 할 일들을 주어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만이 성취할 수 있는 특별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을 놓치면 여러분을 세상에 보낸 목적을 놓치고 맙니다.
여러분의 생애를 향한 특별한 목적을 가리켜서 여러분의 사명, 일생의 사명이라고 합니다.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낸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사명을 주어서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그들에게 사명을 주어서 세상으로 보냈습니다.”(요 17:18, 메시지성경)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는 것보다 더 큰 감격은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동안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합니다. 발견하지도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방황하며 인생을 허비합니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여기에서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만 던질 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사명은 자동적으로 발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사명완수를 위한 그 세 가지 조건을 오늘 우리는 살피려고 합니다.
1. 한 눈을 팔지 말아야 합니다.
중요하지 않은 여러 가지 일로 인해 주의를 분산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것은 모두 피하고 가장 중요한 일에 관심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눅 9:62, 표준새번역)
세상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최상의 사명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으로부터,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들 몇 가지를 살펴봅시다.
1.1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떨쳐버리십시오. 만약 부하고 싶은 것을 여러분의 생애에 가장 큰 욕망으로 삼으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명쾌하게 선언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
주님은 부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면 부자가 되는 것을 인생 제일의 목표로 삼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재산축적이 인생의 목표가 되고, 윤택한 노후보장이 삶의 최종선택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목표로 삼는 순간 여러분은 하나님이 부과한 목적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1.2 과거사, 과거의 실수나 실패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는 실수를 합니다. “실수하는 것은 인간이 하는 것이고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실패한 과거를 기억하고 곱씹지 말고 하나님이 가진 미래의 계획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과거의 상처와 죄책감에 사로잡히지 말고 하나님이 마련하신 놀라운 미래를 바라보십시오.
1.3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계획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보고 생각할까를 염려하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우리 모두는 비교하는 나쁜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비교하는 것은 요즈음 가장 인기 있는 실내스포츠 같다고 비꼬기도 합니다. 특히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타인과 비교하고 침체되고 낙심하고 질투하고 시기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독특한 존재입니다. 여러분의 생애를 위한 독특한 계획을 하나님은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애에 하시는 하나님의 일들에만 주목하면 여러분 자신의 목적을 놓치게 됩니다.
정말 많은 것들이 우리의 주의를 산만하게 합니다. 때로는 좋은 것들도 우리의 생각을 흩뜨리게 합니다. 취미생활이나 건강추구도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주신 목적과 사명으로부터 여러분의 관심을 흩뜨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스포츠나 심지어는 성경공부조차도 여러분의 사명완수에 지장을 줄 수 있습니다. 설교 말씀을 듣는 것은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함이지 듣기만을 위함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세상에 두신 그 사명 완수에서 멀어지는 한, 사탄은 여러분이 무슨 일을 하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어떤 좋은 일을 하든지, 매일 교회당에 나와서 무슨 일을 하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1.4 자기 계획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사명완수에서 멀어지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는 노력보다 자기 계획을 성취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계획, 여러분의 꿈, 여러분의 욕망, 여러분의 소원, 여러분의 목표, 여러분의 야망, 여러분의 희망과 바람에 집착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완수를 방해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하게 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드신 그 목적을 성취하지 않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안에 새겨놓은 그 사명을 완수하기까지는 결코 인생은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코 여러분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계획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덧붙이는 것이 사명완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기 계획을 따르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하든지 결단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처럼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도에 나를 소성케 하소서”(시 119:37) 쓸데없는 것을 바란다고 삶을 낭비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주님의 계획만 바라보도록 우리 모두는 기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그러기에 우리에게 있는 명령입니다. 간절히 기도하지 않으면 엉뚱한 곳에 주위를 분산시키기 때문입니다. 자신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짐과 쉽게 빗나가게 하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히 12:1, 표준새번역)
버릴 것을 버리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포기할 것을 포기하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의 쓰임을 받습니다.
짐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길을 걸어가십시오. 이 세상에 살게 하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념하십시오. 시선을 빗나가게 하는 것을 버리도록 간절히 소원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온 마음을 다해 열망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이웃들의 축복이 되길 원하시면 사소한 것들을 먼저 버리십시오. 생명이 달려있지 않은 일을 두고 온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2. 하나님의 목적을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의 목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개인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다른 어떤 것보다 나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갈망합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나를 지으신 주님의 뜻을 갈망합니다. 나를 지으신 주님이 하기 원하는 일을 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받아들이는 것은 여러분의 전적인 결단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여러분은 육신의 한 부분이라도 죄에 내맡겨 악의 도구가 되게 하지 말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자처럼 여러분을 전부 하나님께 드려 의로운 일에 쓰일 도구가 되게 해야 합니다.”(롬 6:13, 현대어성경)
여러분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받아들이면 여러분의 가치, 여러분의 우선순위가 즉시 바뀌게 됩니다. 순식간에 지금껏 중요하게 여기던 것이 분토와 같이 여겨지게 됩니다. 멀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내 삶에도 소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받아들이면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추구하고 사모하는 것이 밖의 사람들과 같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만나야 할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답게 결단해야 될 사람입니다.
다메섹 도상의 사울이 바울이 된 것을 기억하십시오. 핍박자가 추종자가 되었습니다. 종교적 테러리스트가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미워하던 자가 그분을 위해 생명을 내놓는 추종자로 순식간에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가치 없는 것인지 확연히 구별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수십 년 정도 지속할 것에 삶을 소모하지 않고 영원히 지속할 것에 생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0장에서 바울은 고백합니다. “그러나 내가 내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주 예수에게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하기만 한다면 나는 내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행 20:24, 표준새번역)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되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로 자리 잡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그 사실을 전하는 것을 최우선 사역으로 삼아야 합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우리가 하는 것 중 하나는 반복학습입니다. 중요한 것은 반복해서 교육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다섯 번 이상 다른 상황에서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복음서와 행전에 각각 나오는 기록입니다. 그것이 바로 대 위임명령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명령은 가서 전하라는 명령입니다. 이것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분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입니다. 여름에 아프가니스탄을 간 것이 국법을 어긴 것입니까? 여행 제한국으로 정해놓은 것은 가든지 말든지 스스로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여행 금지국으로 정해져 있으면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우리 선교팀들이 나간 것은 국법을 어긴 것이 아닙니다. 국법을 어긴 사람들은 중앙에 있습니다. 국법을 어긴 사람들은 사전에 허락 없이 북한을 드나드는 사람들입니다.
또 하나는 예전에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국법을 어긴 것입니까? 아닙니까? 국법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분이 가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해서 대동강에 토마스 선교사가 피를 뿌렸습니다. 그래서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과 제가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어떻게 태어났습니까? 태어나면 남자는 무조건 강에 던져야 했습니다. 그것이 애굽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운명이었고 부모들이 지켜야할 국법이었습니다. 모세의 부모가 그것을 지켰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가서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예배의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 모두는 그리스도의 증인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살지 않기 때문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온통 뒤집어쓰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사람답게 살아가면 세상이 감히 우리에 대해서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가장 중요한 소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 기쁜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우리를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고후 5:18, 표준새번역)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켜서 여러분에게 권면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고후 5:20, 표준새번역)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만든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살아있다면 여러분은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모두가 소중한 존재입니다. 자신의 아들의 생명을 내어놓기까지 구원할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 친척이나 이웃이든지, 직장 동료든지 누구든지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공허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 자신은 알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 공백은 오직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공백을 채우려고 온갖 시도를 합니다. 돈을 벌고, 명예를 얻고, 훌륭한 업적을 남기려고 하고, 성을 추구하고, 스포츠를 하고, 인기를 얻으려고 합니다. 이런 것은 다 영원한 갈증을 해결하기 위한 발버둥입니다. 취미생활과 운동에 탐닉하기도 합니다. 온갖 모임에 다 참석하지만 그 공백은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물론 기독교는 싫다고 말하며 예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마음 안의 공백은 부인할 수 없는 우주적인 현상입니다. 비록 공산국가든 회교국이든 사람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갈증이 있습니다. 창조될 때부터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는 행복할 수 없는 존재들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 국가라고 회교 국가라고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든 사람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우리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격적이고 거부적인 사람이라도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궁극적인 관심은 자기 존재의 근원을 알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여름은 더웠습니다.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사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부가 여행을 자제하라고 했는데 왜 갔느냐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 싸움은 세상과 성도간의 싸움입니다. 이 싸움은 말세가 될수록 더 치열해 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싸움은 종교적인 현상을 두고 말하면 극렬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세계에서 가장 신앙의 열심이 있는 한국 기독교가 부딪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나라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열정을 능가할 민족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반드시 창끝과 맞닿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저런 문제는 다 사소한 것들입니다. 좀 더 지혜롭게 했을 수도 있고 우리 쪽에서 실수할 수도 있지만 이슈의 핵심은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는 한국 성도들과 극단적인 회교를 전파하려고하는 그들과의 어쩔 수 없는 대결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왜 사람들이 이 일을 놓고 그렇게 벌떼처럼 악플을 달고 기독교를 비난합니까? 그것을 여러분이 만든 것입니다. 진리란 사랑과 함께 전달될 때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말이 진리이지만 사랑이 함께 하지 않으면 그것은 사람들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입니다.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예수 믿으라고 했던 1, 2백 만 한국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시달린 사람들이 악의를 품고 달려드는 것입니다. 지혜롭지 못해서, 사랑이 없이 다가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 없이 다가갔기 때문입니다.
이 한 해 동안 부흥을 주시도록 기도했지만 어디에도 낌새가 보이지 않는 더운 여름을 우리가 지나고 있습니다. 부흥을 기도했지만 이처럼 집단적으로 매도를 당하는 것은 120년 한국 역사에 처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물러서야 합니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혜롭지 못한 우리의 전도방식에 대한 수정이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움츠러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서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단의 분당 샘물교회를 택하신 것을 찬송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의 비난받는 표적으로 분당 샘물교회를 택했습니다. 저는 순교의 소식을 듣는 순간 배목사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어떤 분이었기에 하나님께서 순교의 제물로 받으셨는지 같은 목사로서 알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할 자를 택하시고 택할 교회를 택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저는 울산교회를 사랑합니다. 주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일을 위해서 우리 울산교회가 어느 교회의 뒤에 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왜 시골에 가서 목회를 하냐고 하지만 저는 시골에 있는 사람들이 더 헌신할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직접 와서 보니 울산은 대단한 도시였습니다.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뿐만 아니라 의로운 일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이 민족의 의사들이 이곳에 많이 있었습니다. 서울 사람들이 계산하고 있을 때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이 땅의 어느 곳도 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문제의 핵심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두 세력은 어쩔 수 없이 충돌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슬람들은 우리나라에 와서 그들의 종교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에 호의적인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3, 4백만입니다. 우리는 납치하고 죽이고 하지 않습니다. 한때 타락한 기독교가 그런 적이 있습니다. 당하면 그들의 군대를 불러들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기독교 국가가 아닙니다.
문제의 핵심은 악과 선의 투쟁입니다.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코란을 들고 있는 사람들과 우리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는 칼로 다른 사람을 죽이면서 우리의 종교를 전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가 죽임을 당하더라도, 순교의 피를 흘리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를 갚아주시도록 기도하면서 눈을 감는 사람들입니다. 아벨이 그러했고 이 땅에 처음 찾아왔던 토마스 선교사가 그러했습니다. 제가 믿기로는 이번에 희생한 두 사람도 절대 사람들을 저주하며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프가니스탄을 축복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우리를 욕하고 증오하고 미워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미워할 수 없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들을 사랑하는 일이라면 우리를 희생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릴 수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뒤를 따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얼마나 많이 피 흘리는 단어가 나오는지 읽어보십시오. 이럴 때마다 계속해서 계시록을 강의하고 있지만 나와서 들어보십시오. 남의 피를 흘려서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은 공산주의입니다. 기독교는 자기의 피라도 드려서 세상을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피와 피의 싸움입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피를 십자가에 흘림으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말도 안 되는 악한 생각으로 달려드는 세상을 향해 우리는 함께 욕을 할 수는 없습니다.
1, 2백만 기독교인이 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지혜롭지 못했을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3교대를 근무하고 쉬고 있는 자들을 깨우는 것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길이라면 불사하겠지만 그렇지 않고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언제나 상대방을 먼저 생각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바꾸어놓고 생각해보면 아직도 복음을 따르지 않는 75%의 비기독교 인구들은 25%의 기독교 인구 때문에 당해왔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습니다! 하고 좋게 포장해서 말을 해도 그 말의 포장 속에는 예수를 믿지 않으면 멸망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는데 상대방이 기분이 좋을 리는 만무합니다. 받아들여서 우리와 같은 길을 걷게 되면 아주 기뻐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정말 한심하고 대책 없는 것들이 예수쟁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호제를 만난 것입니다. 당해왔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거부하려하는 것입니다. 3, 4백이나 되는 이슬람에 호의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공산주의에 호의적인 사람들도 이 땅에 3, 4백이 된다고 합니다. 국법을 어긴 것은 국민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접촉하는 사람들이 국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명령을 상부로부터 받았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분께서 “가서 전하라 내가 그들을 위해서 죽었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흘 만에 살아난 그분은 모셔 들이기만 하면 삶이 새로워지는 이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땅의 이슬람을 박멸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도 우리나라에 와서 그들의 종교를 전합니다. 우리도 그들의 땅에 가서 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하려면 공평한 룰을 지켜야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갚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시간과 가진 것, 여러분의 정열과 능력을 바쳐서 사람들을 천국에 보내면 여러분 때문에 천국에 가게 된 사람은 영원토록 감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을 하늘에 쌓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금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눅 16:9, 표준새번역)
세상의 재물로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돈으로 세상 친구를 만드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친구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시간과 재물, 정열과 노력을 다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관계를 맺도록 돕는다면 여러분은 영원토록 그 관계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너무 자주 그리고 쉽게 우리가 주님의 제자임을 잊어버립니다. 죄를 용서 받아 삶의 목적을 찾은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것인지를 망각합니다. 그리스도께 우리 삶을 드리기 전에 우리는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았던 것을 자주 잊어버립니다.
그 가운데 첫째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행한 잘못으로 인해서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안고 살았습니다. 여전히 내 마음 속에 오셔서 내게 그 사랑을 쏟아부어주기 전에는 미움과 분노, 침체와 고독 속에 살았던 인생입니다. 죄의 용서를 받고 삶의 목적을 찾고 하늘본향을 사모하는 새 삶을 살면서 우리는 옛날 고민을 모두 잊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옛날을 기억하십시오. 죄 용서를 받기 전의 비참했던 과거를 떠올리면 여러분은 아직도 그 상태에 있는 친구들을 불쌍히 여기게 될 것입니다. 외롭고 힘들고 괴로웠던 그 때를 기억하시고 아직도 그 처지에 있는 여러분의 소중한 사람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하는 진리는 사랑으로 전달될 때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어 보겠다고 밝은미래, 문수실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봉사하러 가서 누구는 먹고 누구는 섬긴다고 생각하면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자이든지 가난하든지 상관없이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야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서 여러분은 봉사하러 가는 것입니다. 가진 것을 재어보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변화시켰습니다. 그의 능력이 우리를 변화시켰습니다. 우리의 삶은 이제 기쁨과 기도, 감사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에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을 드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진리는 사랑으로 전달되어야 하며 진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달되어야 더 나은 사람들이 반발을 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천당이라고 써 붙이고 외치고 다니는 것은 이젠 종교적인 공해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천당 단 두 마디가 무적함대와 같이 한국의 어둠에 사로잡힌 자들을 비추어 구출했습니다. 사랑으로 전달했고 성령의 능력으로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그 사람이 있는지 물어 보아야 합니다. 내게 그 능력이 있는지,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기까지는 함부로 흉내 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내게 그런 능력이 없을 때는 아주 겸손한 태도로 전해야 합니다. 부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은 변화된 자신의 삶을 기억할 때 상승기류를 탈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변화된 이웃의 삶을 목도할 때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구역별 전도운동을 통해서 주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의 삶의 변화를 목도하면 우리의 신앙이 새로운 힘을 내어서 함께 사역하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도움을 사모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하라고 명한 일이라면 하나님의 도움과 능력을 기대해도 좋습니다.
산상보훈에서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이룰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일을 어떻게 실천할까 고민하면서 그분을 생활의 중심에 모시고 살면 그분은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더불어 주실 것이다.”(마 6:33, 현대어성경)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서는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대부분은 필요한 것이 있어서 주님 앞에 나왔지만 나와서 예배할 때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영광스러운 주님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아직 너무나 어리다고 하지 말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그에게로 가고, 내가 너에게 무슨 명을 내리든지 너는 그대로 말하여라. 너는 그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늘 너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렘 1:7,8 표준새번역)
왜 사람들은 이 중요한 사명을 소홀히 하고 있을까요?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무어라고 생각하는지가 염려됩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리라고 약속합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심을 알면 두려움은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소중한 일인지 알게 되면 두려움은 사라질 것입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대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두렵기는 해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용기입니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해내는 힘입니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 바로 용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이 축복의 통로가 되기 위해서 특별해야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들을 사용하시길 기뻐하십니다.
비록 두려움이 있지만 해야 할 중요한 일은 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올 가을에는 전력투구하십시오. 만만치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남은 생애에 가장 큰 사명은 한 영혼이라도 더 구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님께로 인도합시다. 그보다 더 큰 사명은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성공과 출세보다 여러분의 가족보다 취미보다 더 중요합니다.
새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새 생명을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지옥에서 구출해서 천국으로 보내는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일이야말로 우리 생애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의 생애에 가장 존귀한 사명이요 소중한 이력이 될 것입니다.
잃어버린 사람을 찾는다는 전단을 가끔 보신 적이 있습니까? 때로는 공공요금 청구서에 까지 사람을 찾는 사진이 실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하늘 아버지의 잃어버린 자녀들을 찾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자녀를 찾아서 세상에 오신 주님의 발걸음을 따라서 가는 자들입니다. 세상이 무어라고 말하든지 정부가 무어라고 말하든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생이 있는 곳이라면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다만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함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때문에 천국에 간 사람이 있어야 제대로 된 신앙인입니다. “고마워, 너 때문에 내가 여기에 오게 되었어!”라고 반갑게 인사하는 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여러분의 주위에 사람들을 배치하셨습니다.
좋은 소식을 나누십시오. 여러분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그들을 하나님의 가족으로 초대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당신의 능력을 주셔서 당신이 기뻐하는 사역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 16:9) 하나님께서는 오직 한 마음으로 주님만 의지하는 이들을 도와주시려고 온 세상을 두루 살피고 계십니다. 주님만 의지하는 자 가운데 여러분이 포함되기를 바랍니다. 그 주님의 눈이 오늘 오후 4시에 이 현장에서 여러분을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소한 일에 메여있지 않도록 TV앞에서 여러분을 발견하는 하나님의 눈이 되지 않도록 하시길 바랍니다. 오늘 오후 생사나 발대식, 간증의 장에는 울산교회 세례교인은 반드시 나오셔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몫을 하지 않으면 희생이 생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 우리는 사소한 모든 일에 대한 관심을 끊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애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수용하고 여러분의 생애를 놀랍게 쓰시고자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재산을 버린 사람은 지금은 박해를 받을지라도 장차 그 버린 것의 백배로 돌려받을 것이며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막 10:29)
여러분의 인생을 이 거룩한 일에 투자하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여름의 사태는 부주의하고 지혜롭지 못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창끝의 만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침에 메일 한통이 왔습니다. 읽어보니 한남동 사원에서 훈련을 시킬 때 쓰는 정보 중의 하나입니다.
“한국을 보십시오. 1, 2백 년 전에는 한국의 기독교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의 기독교인이 1, 2백만이나 됩니다. 지금은 모슬렘이 열세이지만 우리는 한국을 정복할 것입니다. 솟아나는 오일만을 가지고 그 뒷감당을 하고 있습니다. 모슬렘 국가의 공관장들은 함께 모여서 어떻게 이 나라를 모슬렘 나라로 바꿀 것인지를 회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싸워야할 싸움은 남들이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오늘 오후 4시에 여러분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