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松 건강칼럼 (430)... 푸른 보약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푸른 보약(補藥) 매실(梅實)
여름은 ‘푸른 보약’이라고 불리는 매실(梅實)의 계절이다. 최근에 대학교회 교우(敎友) 한 분이 대학교 제자가 전남 보성 농장에서 보내왔다면서 아내에게 청매실 10kg 한 상자를 선물로 주셨다. 대학에서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20여년 재직한 바 있는 아내와 현재 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있는 둘째 딸이 싱싱한 매실로 매실청과 매실 장아찌를 담그는 일을 했다. 모녀(母女)는 요리솜씨가 있는 편이며, 같은 아파트 5층에 딸 가족이, 그리고 21층에 필자(筆者) 부부가 거주하고 있다.
매실나무(Prunus Mume, Japanese apricot tree)는 장미과(科)에 속하는 활엽의 소교목(小喬木)이며, 원산지는 중국의 사천성과 호북성의 산간지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에 분포되어 있다. 매화나무 높이는 약 4-5m이며, 흰색 또는 연분홍색 매화(梅花)가 핀 후 열리는 둥근 모양의 핵과(核果)가 매실(梅實)이다.
매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연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백제의 왕인(王仁)이 일본에 귀화한 후 고국이 그리워 읊은 시(詩)에 매화가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 이전에 우리나라에 매화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매화는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정원수(庭園樹)로 전해져, 고려 초기부터 약재(藥材)로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매화나무는 예부터 관상용(觀賞用)으로 재배하였기 때문에 원예 품종은 2백여 종이나 되며, 과수(果樹)로 재배되는 매실이 큰 품종도 여럿이 있다. 매화는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꽃을 피워 봄을 가장 먼저 알려줌으로 불의(不義)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사군자(四君子: 梅ㆍ蘭ㆍ菊ㆍ竹)에 속한다. 눈 속에서 피는 설중매(雪中梅)와 추위 속에서 피는 한중매(寒中梅)는 문인묵객의 총애를 받는 매화이다.
고승(高僧)이자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계를 대표하여 3ㆍ1독립운동(獨立運動)을 이끌었으며, ‘님의 침묵’이란 시(詩)로 유명한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ㆍ1879-1944) 시인은 “쌓인 눈 찬바람에 아름다운 향기를 토하는 것이 매화라면, 거친 세상 괴로운 지경에서 진정한 행복을 얻는 것이 용자니라. 꽃으로서 매화가 된다면 서리와 눈을 원망할 것이 없느니라. 사람으로서 용자가 된다면 행운의 기회를 기다릴 것이 없느니라. 무서운 겨울의 뒤에 바야흐로 오는 새 봄은 향기로운 매화에게 첫 키스를 주느니라.”고 읊었다.
매년 3월 초순이면 섬진강변 매화마을에서 봄꽃 놀이마당이 펼쳐진다. 매실은 5-6월에 익으며, 맛은 시며 식용(食用)과 약용(藥用)으로 이용한다. 한편 매실을 날것으로 많이 먹으면 아미그달린 배당체가 분해 되어 유독한 청산(靑酸)이 만들어져 중독을 일으키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그러나 매실을 음식이나 약재로 가공하면 독성은 없어진다.
매실은 신맛이 특징이다. 즉 산미(酸味)로 인하여 타액선이 자극되어 침의 분비를 왕성하게 한다. 타액(唾液) 분비는 건강의 척도라 할 수 있어 건강한 사람은 침의 분비가 많다. 이에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나 노인들은 타액 분비가 적어 입 안이 타서 구취(口臭)가 난다.
한편 중국의 삼국지(三國志)에 조조(曹操)가 대군을 거느리고 무더운 여름철에 남정(南征)을 할 때 병사들이 목이 마르고 타서 거의 행군을 못하게 되자 조조는 병사들에게 조금만 더 가면 매실 숲이 있으니 빨리 가서 그늘에서 쉬면서 매실을 따먹으라고 영(令)을 내렸다. 이 영을 들은 병사들은 입 안에 저절로 침이 생겨서 목을 축이고 원기 백배하여 승리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여기서 나온 말이 망매지갈(望梅止渴) 또는 상매소갈(想梅消渴)이다.
매실은 중국에서 처음으로 약용으로 오매(烏梅)가 사용되었다. 오매는 매실의 껍질을 벗기고 짚불 연기에 훈증(薰蒸)해 말린 검은색 매실이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 오매는 담(痰)을 삭이고, 구토 갈증 이질 설사를 그치게 하며, 술독(酒毒)을 풀어주고 검은 사마귀를 없애는 효과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알칼리 식품인 매실의 약 80%가 과육(果肉)이며, 수분이 85%, 당분이 10%, 그리고 사과산ㆍ구연산ㆍ주석산ㆍ호박산 등 유기산(有機酸)이 5% 가량 들어 있다. 따라서 신맛이 강하여 피로 회복, 입맛을 돋우는 효과가 있다. 특히 구연산은 해독 작용과 살균 작용을 한다. 이에 식중독이 많은 여름철에 매실을 먹으면 위장 내에 산성이 강해져 약간 변질된 음식을 먹어도 소독이 된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매실은 맛이 시고 독이 없으며, 기를 내리고 가슴앓이를 없앤다. 또한 마음을 펀하게 하고, 갈증과 설사를 멈추게 하고 근육과 맥박이 활기를 찾는다고 적혀있다. 한편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매실의 효능을 간과 담을 다스리며 근을 튼튼하게 해주며, 피로회복과 노화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했다. 또한 사지 통증과 토사곽란을 멈추게 하며 월경불순, 변비, 중풍과 경기를 다스리며 주독, 담을 없애준다고 기록되어 있다.
매화(梅花)를 이용한 우리나라 고유 식품에는 매화를 주머니에 넣어 술항아리에 담갔다가 꺼낸 ‘매화주(酒)’, 매화를 깨끗이 씻어 흰 죽이 익은 다음 넣어서 함께 쑨 ‘매화죽(粥)’, 매화 봉오리를 따서 말렸다가 끊는 물에 넣어 만든 ‘매화차(茶)’ 등이 있다.
매실(梅實)을 이용하여 만든 ‘매실주(酒)’는 옛날부터 과실주의 대명사라 할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매실주를 입맛이 없을 때 한두 잔씩 마시면 식욕증진이 되고 피로할 때나 취침 전에 마시면 피로회복이 잘 된다. 또한 신경통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실주를 담그는 방법은 매실을 끼끗하게 씻은 후 꼭지를 떼고 마른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한다. 담금 용기에 매실과 소주(25도 담금주)를 1:4 비율로 넣고 감초(甘草)를 함께 넣어 밀봉한다. 감초를 넣으면 매실주의 뒷맛이 깨끗해진다. 만약 단 맛을 좋아하면, 매실 위에 설탕을 한 줌 뿌려 놓은 후 이튿날 소주를 부어 담근다. 용기에 창호지를 덮어 그늘진 곳에서 9개월 이상 숙성시키면 맛있는 매실주가 된다.
‘매실청’을 만드는 방법은 매실을 깨끗하게 씻은 후 꼭지를 떼고 마른수건으로 물기를 닦은 후 씨를 제거한다. 담금 용기에 매실, 설탕, 올리고당(糖)을 1:0.5:0.5 비율로 넣고 창호지를 덮어 밀봉한 후 실온에서 90일 이상 숙성시킨다. 설탕과 올리고당을 함께 사용하면 발효(醱酵)가 더 빨리 진행된다. 한여름 더위에 지쳤을 때 매실청을 냉수에 타서 마시면 더위가 싹 가시고 피로도 빨리 회복된다.
‘매실장아찌’ 담그는 법은 매실을 소금물에 약 30분 정도 담군 후 물로 깨끗하게 씻어 준다. 물기를 완전히 제거한 후 꼭지를 따고 매실을 반으로 잘라 씨를 빼고 과육만 준비한다. 매실과 설탕을 1:1로 용기에 켜켜이 쌓아 올리고 밀봉해서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2-3주 후 매실 과육은 아삭아삭하고 새콤달콤한 매실장아찌가 된다. 매실장아찌는 살균, 해독, 식중독 예방에 효과가 있다.
매간(梅干, 매실소금절임)은 예부터 장수(長壽)식품으로 전해 오고 있으며, 일본 사람들이 즐겨 먹는 ‘우메보시’는 일본의 절임음식인 쓰케모노(漬物)의 일종이다. 옛날 일본의 나라시대에는 매실을 소금에 절여서 먹었으며, 이후 가카쿠라시대에는 매실 장아찌로 만들어 수도승들의 식사에 반찬으로 올려서 먹었다. 일본 무사(사무라이)들은 우메보시를 비상식량으로 항상 휴대하였다고 하며, 임진왜란(壬辰倭亂ㆍ1592-1598)때는 가장 중요한 군수품으로 취급했다고 한다.
매간 만드는 방법은 매실을 물에 1-2일 담가 두었다가 건저 내어 물기를 없앤 후 말려서 소금에 절인다. 매실이 소금에 조금 절여지면 국물은 버리고 말려서 차조기 잎을 섞어 다시 절인다. 차조기 잎에는 시소닌 색소(色素)가 있어 산성에서는 빨갛게 된다. 10년 이상 묵은 우메보시도 있다고 한다.
매간 한 개를 주먹밥 속에 넣으면 밥이 쉬지 않으며 식욕을 돕는 효과도 있다. 감기에 매간을 태워 갈아서 뜨거운 차로 만들어 마시면 효과가 있으며, 배 멀미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매간에는 열을 흡수하는 효능이 있어 열병에 먹으면 열이 내린다고 한다.
‘여름 밥도둑’이라 불리는 장아찌는 무더위로 잃은 입맛을 되찾아주는 여름이 제철인 음식이다. 장아찌는 장저(醬菹), 장지(醬漬), 장과(漿果) 등으로 불렸으며, 궁중에서는 주로 장과로 불렀다. 장아찌는 고려 후기 문신ㆍ문인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ㆍ1168-1241)가 지은 시(詩) ‘가포육영(家圃六詠)’에서 무장아찌와 오이장아찌로 처음 등장한다.
이규보의 시풍(詩風)은 호탕 활달하여 당대를 풍미했으며, 특히 벼슬에 임명될 때마다 그 감상을 읊은 즉흥시(卽興詩)는 유명하다. 고려 말 문신ㆍ학자ㆍ문인 목은(牧隱) 이색(李穡ㆍ1328-1396)은 목은집(牧隱集)에서 “병중에 오이장아찌가 꿀처럼 귀했다”고 적었다. 목은 이색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함께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장아찌는 고려는 물론 조선 중기까지 귀한 음식으로 취급되어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일반 서민들도 먹는 저렴한 반찬으로 변해갔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는 ‘물자를 절약하라’며 오이장아찌와 가지장아찌를 먹으라고 장려하였다.
매실의 매(梅)를 한자로 풀이하면 ‘人+母 +木’이므로 ‘사람에게 어머니 같은 나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어머니가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는 것과 같이 매실도 사람들에게 이로운 것을 음식으로 약으로 주고 있다. 무더운 여름철에 ‘푸른 보약’으로 건강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글/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청송건강칼럼(430). 2015.6.15. mypark1939@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