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6]
강정자 (姜禎資) - 말씀따라 모든 사연 뒤로하고
19. 10년간 홀로
1 1981년에 남편이 유럽 순회사로 발령을 받아 떠나게 되었다. 그로부터 10년 동안 혼자서 8남매를 키웠다. 살림과 신앙을 책임지다 보니까 건강이 점점 나빠졌다.
2 내가 너무 아파하니까 주변에서는 영계로 가는 것 아닐까 하는 염려를 하기도 했다. 건강이 악화되어 나 자신조차 돌보기 힘들어지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알아서 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생각해 보면 불평 한마디 없이 착실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이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3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막내아들 일기장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나는 언제 아버지와 손잡고 바닷가나 산으로 가볼까?”라고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아버지의 정을 이렇게도 그리워하는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4 지금은 다 큰 막내 아이가 아버지와 커피 한잔하면서 데이트하자고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릴 적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못 느끼게 해준 것이 여전히 미안했다.
5 한번은 해외에 나가 있던 남편이 돌아왔다. 그런데 네 살의 막내아들은 아버지라고 부르지를 못했다. 우리도 자식을 놓고 생각해 보면 못해준 것이 많아 마음이 아픈데 참부모님께서 자녀님들을 뒤로하시고 한평생 인류를 위해 사셨으니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희생인 것이다.
6 나는 남편이 10년 동안 유럽 순회사로 있는 동안 딱 한 번 미국에 갔다. 1985년, 남편이 텍사스 주 책임자로 있을 때였다. 참아버님은 댄버리에 계시고 참어머님과 자녀님들은 이스트가든에서 생활하고 계셨다.
7 내가 미국에 도착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참어머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그래서 이스트가든으로 찾아가 인사를 올리게 되었고 그날부터 참어머님을 모시며 생활하였다.
8 하루는 참어머님께서 “오늘은 나랑 댄버리에 가자.”라고 하셨다. 참아버님을 뵈러 가실 때는 정진님을 대동하고 가셨는데 그날은 나에게도 같이 가자고 하신 것이었다.
9 그래서 나와 은진님, 정진님, 임연수씨가 참어머님을 모시고 댄버리로 향했다. 댄버리에 도착하자 먼발치에서 참아버님이 걸어오고 계셨다. 잔디밭에서 경배를 드리자 참아버님께서 “강정자가 왔구나!”라고 하셨다.
10 그날 저녁 참어머님께서는 자정이 가까워 올 때까지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특히 흥진님이 승화하신 뒤 마음의 벽이 다 무너져 내려 너그러워지셨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11 그 후에도 저녁마다 진솔하고 꾸밈없는 이야기들을 해주시면서 “내 마음이 방황하지 않게 너희들이 기도를 많이 해라.”라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참어머님의 사랑을 한없이 받았던 날들이었다. 그렇게 40일을 이스트가든에서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証言- [36]
姜禎資 – み言葉通り、事情は全て後回し
19 10年間独りで
1 1981年に夫がヨーロッパの巡回師に任命され、発つことになった。それから10年間、一人で8人の子女を育てた。生活と信仰の責任を担っているので、健康が段々悪くなった。
2 私があまりにも痛がるので、周辺では霊界に行くのではないかと心配したりもした。健康が悪化し、自分自身さえ面倒を見れなくなり、子供たちは自らやるべきことをよく処理した。そして子供たちが本当に沢山苦労した。思えば文句一つ言わず着実によく育ってくれた子供たちが只々ありがたい限りだ。
3 小学校に入学したばかりの末息子の日記帳を偶然見たが、「私は何時お父さんと手をつないで海辺や山に行けるか」と書かれていた。それを見ながら「父親の情をこんなにも懐かしむんだな」と思うと涙が出た。
4 今はもう成長した末っ子が父親とコーヒーを一杯飲みながらデートしようと言う時がある。そんな時は幼い頃、父親の愛をあまり感じられなかったことが依然として申し訳なかった。
5 ある日、海外に出ていた夫が帰ってきた。ところが、4歳の末息子はお父さんと呼べなかった。私たちも子供のことを考えてみると、してあげられなかったことが沢山あって胸が痛いが、真の御父母様が子女様たちを後にして一生人類のために生きて来られたので、私たちとは比較にならないほどの犠牲だ。
6 私は夫がヨーロッパの巡回師として10年間滞在している間に一度だけアメリカに行った。1985年、夫がテキサス州の責任を持っていた時だった。真のお父様はダンバリーにいらして、真のお母さまと子女様たちはイーストガーデンで暮らされていた。
7 私がアメリカに到着したという話を聞いたお母様が私を呼んだ。それでイーストガーデンに行って挨拶をするようになり、その日から真のお母様に侍って生活した。
8 ある日、真のお母様が「今日は私とダンベリーに行こう。」と言われた。真のお父様に会いに行く時は、情進様をお連れされていたが、その日は私にも一緒に行こうと言われたのだ。
9 それで私と恩進様、情進様、イム·ヨンスさんが真のお母様と共にダンバリーに向かった。ダンバリーに着くと、遠くから真のお父様が歩いて来られていた。芝生で敬拝を捧げると、真のお母様が「姜禎資が来たんだね!」と言われた。
10 その日の夕方、真のお母様は深夜12時近くまで家門について話を聞かせてくれた。特に、興進様が昇華された後、心の壁がすべて崩れ落ちて寛大になったと話して下さった。
11 その後も夕方ごとに率直で飾らない話をしながら「私の心が彷徨しないようにお前達が 沢山 祈りなさい。」とも言われた。真のお母様の愛を限りなく受けた日々だった。このように40日間をイーストガーデンで過ごし、韓国に帰ってき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