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코르누코피아'카페와 '포르투나'사주카페
그림 동화에는 주인이 명령만 내리면 저절로 진수성찬 밥상이 차려지는 요술 식탁이 나온다. 그리스 신화에도 주인이 원하면 무엇이든지 넘칠 정도로 풍성하게 채워 주는 풍요의 뿔이 있다. 풍요의 뿔은 그리스어로는 '아말테이아의 뿔'이라는 뜻의 '케라스 아말테이아' 라틴어로는 '코르누코피아'라고 한다. 라틴어로 '코르누'는 '뿔', '코피아'는 '풍요'라는 뜻이다. 서울 서초구에 '코르누코 피아'라는 디저트 카페가 있다. 그런데 그 스펠링을 자세히 살펴보면 'Cornucopia'가 아니라 "Cornu Coffeea'다. 풍요의 뿔 코르누코피아를 알지 못하고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기발한 네이밍이다.
풍요의 뿔의 탄생에 산파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불세출의 영웅 헤라클레스다. 그는 12가지 과업을 완수한 다음 언젠가 아이톨리아의 칼리돈에 잠시 머문 적이 적이 있었다. 그곳 왕 오이네우스 왕에게는 데이아네이라라는 딸이 있었는데 무척 아름다워 오이네우스의 궁전은 구혼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헤라클레스도 마침 그녀의 구혼자가 되어 구혼자들과 경합을 벌이다가 강의 신 아켈로오스와 단둘이 남게 되자 레슬링으로 담판을 짓기로 합의했다.
첫째 판에서는 힘에서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던 헤라클레스가 아켈로오스를 단숨에 제압했다. 그러자 아켈로오스는 기다란 뱀으로 변신해서 그와 대적했다. 하지만 헤라클레스에게 급소인 목을 잡혀 졸리는 바람에 둘째 판도 지고 말았다. 그러자 아켈로오스는 다시 황소로 변신해서 헤라클레스와 대적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헤라클레스에게 두 뿔을 잡혀 그중 하나가 뽑히는 바람에 셋째 판도 지고 말았다. 아켈로오스는 그제야 비로소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고 헤라클레스에게 데이아네이라를 양보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는 그 후 아켈로오스에게서 뽑은 뿔을 물의 요정 나이아데스에게 주었고, 그들은 그것을 풍요의 뿔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히기누스의 [이야 기]에 따르면 헤라클레스에게서 그 뿔을 받아 풍요의 뿔로 만들어 준 것은 바로 헤스페리데스였다. 헤스페리데스는 헤라가 대지의 여신 가이아로부터 결혼 선물로 받은 황금 사과밭을 지키는 요정들을 총칭하는 이름이다.
또한 핀다로스의 [송가]에 따르면 아켈로오스는 헤라클레스에게 뽑힌 뿔을 돌려받는 대신 아말테이아의 뿔을 주었다. 아말테이아는 제우스가 어렸을 때 아버지 크로노스의 눈을 피해 크레타섬 딕테산 동굴에서 자랄 때 그에게 젖을 먹여 주었던 암염소였다. 제우스는 어린시절 아말테이아가 자신을 아버지 크로노스로부터 구하다가 뿔 하나가 부러지자 나중에 신들의 왕이 된 후에 그 공을 기리기 위해 그 뿔을 풍요의 뿔로 만들어 주었는데, 아켈로오스가 어떤 연유인지는 몰라도 마침 그걸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풍요의 뿔은 하나만 있었던 게 아니다. 풍요와 깊은 관련이 있는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 곡물의 여신 데메테르, 그녀의 아들이자 풍요의 신 플루토스 등도 하 나씩 갖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직접 만들 것일 수도 있거나, 제우스가 아말테이아의 뿔로 만든 풍요의 뿔을 복제하여 그들에게 주었을 수도 있다. 특히 행운의 여신 티케나 로마의 풍요의 여신 아분단티아의 상징물도 풍요의 뿔이다. 티케는 로마에서는 포르투나로 불렸다. 그런데 화가들이 그린 포르투나(티케)의 모습은 우리에게 아주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어떤 그림은 포르투나가 두 손으로 풍요의 뿔을 들고 그속에 가득차 있는 보물들을 짐승들에게 쏟아붓는다. 부라는 것은 누가 원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포르투나 기분대로 아무에게나, 심지어 짐승들에게도 주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어떤 그림은 똑같은 의미로 포르투나가 둥근 구에 올라서서 헝겊으로 눈을 가린 채 왼쪽 가슴에 보물을 한가득 안고서 아무에게나 나눠 주고 있다. 그런데 포르투나는 왜 구에 올라서 있는 것일까?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는 굴러다니는 구처럼 빠르고 방향을 예측할 수 없어 누가 붙잡으려 한다고 쉽게 잡히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포르투나는 운명과 우연의 여신이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의 티케가 운명과 우연의 여신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포르투나(티케)는 소위 인간의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는데 화가들이 그린 바퀴 모습이 자못 흥미롭다. 가령 에드워드 번 존스의 그림 <운명의 수레바퀴>를 보면 포르투나가 바퀴 앞에 서서 지그시 눈을 감고 바퀴에 왼손을 얹은 채 기대어 서 있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바퀴에는 노예, 왕관과 홀을 든 왕, 월계관을 쓴 시인 등 셋이 차례로서 로의 머리를 밟고 서 있다. 사람의 운명은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포르투나의 마음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단테는 [신곡]의 [지옥]의 '탐욕' 편에서 오롯이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의 손에 달려 있는 재화를 서로 차지하려고 처절하게 헛된 싸움을 일삼고 있는 인간들을 한탄하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모든 지식을 초월하는 그분께서는/
하늘을 창조하시고 담당 천사를 두어/
그가 빛을 균일하게 배분하여/
온 하늘을 골고루 비추도록 했다/
그분께서는 또한 지상의 재화를 담당할 자로는/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를 선택하셨다/
그래서 그녀는 때가 되면 허망한 재화를/
다른 민족이나 다른 부족에게 넘겨준다/
그때가 언제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건 마치 풀 섶에 숨어 있는 뱀처럼/
은밀한 그녀의 판단에 달려있을 뿐이다/
인간의 어떤 지식도 그에 맞설 수 없다.
조각, 그림, 문헌 등을 살펴보면 그리스의 티케보다는 로마의 포르투나가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하고 언급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고대 그리스인보다는 로마인들이 부에 대해 더 강한 욕망을 지녔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포르투나를 더 섬기고 잘 모셨던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에는 '티케'를 상호로 쓰는 곳은 하나도 없다. 그에 비해 '포루투나'를 상호로 쓰는 곳은 여행사, 요리주점, 레스토랑, 키즈카페 등 아주 많고 다양하다. 주택이나 주상복합아파트에도 '포르투나'라는 브랜드가 붙어 있다. '(주)포르투나'도 몇 개 있다. 그중 '포르투나' 타로 사주카페가 가장 눈에 띈다.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는 운명의 여신이기도 하지 않는가?
브랜드로 읽는 그리스 신화 중에서
김원익 지음
첫댓글 모든 명칭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있군요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우리기사협회 실기시험 문제로 나왔던 풍요의뿔 코르누코피아 새삼기억이 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