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대의 눈빛이라는걸, 아시나요?
맞잡은 손은 시간이 흐르면 흙이 되어 묻혀지지만
애틋한 시선들은 천년이 흐른다 해도 그대로 남아있으니까요.
어린 새싹이 거대한 소나무로 변화할 정도의 시간이 흐른뒤
똑같은 눈빛을 지닌 채 미소지으면
그 시절 그대로의 눈빛이 세상에 각인 된채 내게 웃어주겠죠.
그래서 눈물 흘릴 필요, 슬퍼할 필요는 없어요….
우리는 영원이란 거대한 굴레속에서, 수많은 인연들을 가질텐데….
때로는 그냥 지나치기도 하고, 때로는 이별하기도 할테지만 울지 않아요.
그대의 눈빛이 남아 숨쉬는 곳에서, 우린 계속 반복해서 만날테니까요….」
-몇백년전, 마족들의 습격을 당한 마을에서 찢겨진 채 발견된 편지 中-
빨간 풀꽃이 수풀사이로 얼굴을 흔들다가, 다시 노랗게 빛나는 풀들 사이로 숨어버렸다.
어디에 있는 꽃일까?
지금은 바람이 불어,보이지 않는데.
그 꽃은 분명, 엄마의 눈만큼이나 새빨간 꽃잎을 가지고 있는듯 했었다.
저녁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것 같은데, 빨리 찾고 가야겠다.
"꽃님~ 나와봐요오~"
앳된 목소리가 길게 자란 풀속에서 들려오고, 자그마한 손들이 잔디들을 때리고 갔다.
앙증맞은 얼굴에 아직 젖살이 남아있는, 아마 4살쯤으로 추정되는 꼬마가 들판속을 누비고 있었다.
그 아이의 손에는, 뿌리채 뽑힌 꽃들이 수북히 들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꽃들은 매우 정성스럽게 뽑혀 있어서, 집에 가서 화분에 심으면 다시 되살아 날것 같은 미묘한 생기를 가지고 있었다.
"으-응?"
풀속을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뒤지던 꼬마는, 꽃이 아닌 훨씬 커다란 것을 찾고, 눈이 휘둥그레 졌다.
"아찌- 거기서 뭐해?"
꼬마가 얼굴을 갸웃거리며 다가간 곳에는, 후드를 뒤집어 쓴채, 바닥에 앉아 쉬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쪽으로 모험해온 작은 꼬마숙녀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그는 한껏 장난기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귀여운 어린 숙녀분께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다니, 영광스럽습니다."
"숙녀가 아니라 모험가야!"
후드를 쓰고 있어 인상이 잘 보이지 않는 남자의 등에는 검이 매여져 있었다.
그의 흰 망토에 묻은 먼지로 보아, 오랫동안 여행해온 사람같다.
"아, 그렇군요, 모험가양... 마을에서 왔나요?"
남자는 웃음이 섞인, 상냥한 목소리로 꼬마에게 물었고, 꼬마는 얼른 머리를 끄덕였다.
무언가가 잔뜩 묻은 멜빵바지와 반팔을 입은 채, 머리에다가는 모자를 쓰고 있는 조그만 꼬마.
탐스러운 붉은 머리칼만 아니면, 멀리서 볼때는 사내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응, 마을에서 왔어! 그런데 여기서 예쁜 빨간 꽃 못봤어, 아찌?"
"빨간 꽃? 꽃 모으는 중이니?"
남자는 잠시 얼굴을 옆으로 기울였다가, 꼬마의 손에 들린 꽃들을 보고 물었다.
"으응! 엄마가 꽃 모아오면, 맨날 머리 쓰다듬어주면서 "착한 리리"라고 하는데 기분이 좋거든."
"이름이 리리구나... 엄마는 이쁘셔?"
남자는 피식 웃었지만, "리리"라고 불리운 꼬마는 매우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으-응. 세상에서 우리 엄마만큼 이쁜 사람 없어. 엄만 맨날 자기 머리카락이 빨간색이었을때가 이뻤다고 하는데, 나랑 아빠는 지금 하얀색도 이쁘다고 생각해."
꼬마는 방긋 웃어보였다.
남자는 꼬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미소지으며 친절하게 질문했다.
"그래, 리리... 엄마랑 아빤 잘 지내니? 상점도 잘 되고?"
"엄마아빠 아는구나! 와~ 착한 아찌인가보다... 헤헤. 으음~ 맨날 엄만 아빠 해파리라고 놀리긴 하는데, 잘 지내! 그렇지만 지금은 좀 이상한 세일룬 공주님이랑 돌박힌 아찌가 와서 바빠."
"그렇구나..."
꼬마는 양볼이 도드라지게 입을 움직였고, 그걸 바라보던 남자는 입이 절로 곡선을 그리는것이 느껴졌다.
"동생은 있니?"
갑자기 꼬마는 얼굴을 찡그렸고, 약간 우울한 얼굴이 되어버렸다.
"아직 없어-. 엄마가 몸이 약하거든... 나도 기적적으로 태어난거고.
히히, 내가 우리 엄마보다도 더 센 화이어볼 만든다?"
남자는 그 말을 듣고, 표정이 어두워지는것을 감지했다.
약 5년전에 있었던 일... 그녀는 다시 살아났지만, 그녀의 마력은 사라져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답답해 하던 붉은 머리카락의 소녀였지만, 지금은 어느정도 적응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아찌는 동생있어?"
반면, 꼬마는 우울한 표정을 떨쳐버리고, 쾌활하게 물었다.
"응, 있지. 지금은 동생녀석이 사람들 도와준다고 해서 떨어져 있지만..."
"흐엥~ 좋겠다~"
부럽다는 듯한 눈빛이 남자에게 향해졌고, 그것을 본 남자는 꼬마의 머리에서 모자를 빼낸 후,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찌는 왜 혼자 여행해?"
엄마와 아빠는 항상 일행이랑 같이 다녔다는 걸 기억해낸 꼬마는, 궁금한 듯 얼굴을 갸웃거리며 물었다.
남자는 그것이 귀엽다고 생각했는지, 꼬마를 어깨위에 태웠다.
"꺄하하~ 목마다! 아빠도 이런거 무지 잘해!"
꼬마는 까르르 웃으며 즐겁게 떠들어댔다.
남자는 아직도 후드를 쓰고 있었지만, 그림자는 그의 입가에 머무르는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혼자 여행하는게 아니야."
꼬마가 질문을 잊어버렸을 무렵, 남자의 굵은 목소리가 울렸다.
꼬마는 목마를 탄 채, 남자의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았고, 일행의 흔적이 없자, 이상하다는 얼굴을 했다.
"일행이 있어? 없는거 같아 보이는데~ 에헤~ 거짓말은 나쁜거래!"
남자는 소리내어 웃었고, 천천히 꼬마를 내려놓았다.
"저어기, 흙이 있지? 풀도 있고, 바람도 느껴지지?"
"응, 응, 으-응."
꼬마는 천진한 얼굴로 남자를 올려다 보았다.
"흙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몸이 스며 들어간 곳이고, 풀은 그녀의 향기지. 바람은 그녀가 내게 속삭이는 목소리고..."
"와아- 멋진 친구구나."
꼬마는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무언가 있어보이는 듯 들렸는지, 수긍했다.
싱긋, 미소가 그려진다.
"그래... 난 언제나 함께 있지."
미풍이 불어오고, 그의 입술위에 수줍게 입맞춤을 하고 지나간다.
5년전, 그날과도 같은 따뜻함으로.
그때, 바람은 남자의 후드를 벗겨버리며, 숨겨져 있던 그의 가느다란 머리카락들을 햇빛속으로 드러냈다.
"와아아..."
"아찌"가 상당히 잘생긴 미남이란걸 발견해버리자, 꼬마의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첫댓글 와우~@ 2년이나 걸렷던 거에요..?[놀람] 잘쓰셧어요^^ 너무 멋져요~@ [환호@]
...지금 보니 프롤로그까지 합하면 70화군요. 딱 70화[...]
헉.. 2년이나.. -_-;; 어무튼 멋져요!! >ㅁ<
피엘언니..............굿カ[그것밖에 할말 없냐?]..
10...100화요? 그 엄청난 장편이 목표였다니!! 대단해요~~~>ㅁ<
70편....[어질..] 오옷! 라피엘양 수고했어! 무지 맘에 들었어! 아름다운 엔딩이야.;ㅁ;!!!
굿!!!! 밖에 할 말이 없다;
말이 필요없다... 피엘;;
세상에..;;;; 2년..... [두둥] 릴레이 쓰신 모든분들, 수고하셨습니다!
와앗... 2년이라.. 모두 수고하셨어요~ 멋졌습니다! 무지무지 길었지만 하나의 새 스토리를 만들어낸 릴레이였네요...^^;; 다음 릴레이는 뭐가 될지.. ^^
3월 25일, 4:34분. 릴레이 完 [<-따봉 -_-b]
이번 릴레이 정말 대단하네요.. 잘봤습니다.
아아아- 리나양은 그래도 데몬슬레이어겠지요?(뭔소리야...) 아무튼 잘봤습니다
웅......................... 다시 한 번 읽어봐도 감동적인 에필로그에요-- 리나가 불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