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 너무 바빠서 4.19 혁명 책을 읽지 못해서 오늘은 신라에 대해 정리해보려고 한다
신라의 성립과 성장
신라는 진한의 소국 중 하나인 사로국에서 시작,사로국은 경주 일대 6개의 촌이 연합하여 건국(기원전 57)
신라는 초기에는 박씨,석씨,김씨가 돌아가며 '이사금' 자리를 차지하여 왕의 권력은 강하지 않았다.신라는 4세기 중반까지 낙동강 동쪽의 진한 소국을 대부분 복속하였다.'내물왕'떄에는 김씨가 왕위를 독점,왕의 칭호도 대군장을 뜻한는 '마립간'으로 바꾸었다. 이 무렵 왜가 공격해 오자 신라는 고구려의 광개토 대왕에게 도움 요청,왜군을 격퇴.이 계기로 고구려의 정치적 간섭을 받았지만 고구려를 통해 중국의 선진문문을 받아드릴수 있었다.
국가 체제의 정비
6세기 초 '지증왕'은 나라 이름을 신라로 정하고 왕이라는 칭호 사용,대외적으로는 경상도 북부로 진출,우산국(울릉도)을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관리를 17등급으로 나누고 관복의 색을 구분하고 상대등을 설치 귀족회의인 '화백 회의'를 이끌게 하였고 불교를 공인하여 백성의 사상 통합을 꾀하였다.이후 김해의 금관가야를 정복 그 지배층을 수용하고 건원이라는 연호를 사용하며 자주성을 드러냈다.
진흥왕의 영토 확장과 한강유역 점령
6세기 중반 '진흥왕'은 안정된 통치 체제를 기반으로 영토를 확장,백제 성왕과 연합하여 고구려가 장악하였던 한강 상류를 차지 그리고 다시 백제로부터 한강 하류의 지역까지 뺴앗았다.이로써 고구려와 백제의 연결을 차단하고 황해를 통해 중국과 직접 교역할수 있었다.
이후 고령의 대가야를 포함한 가야연맹 정복.이로 인해 낙동강 서쪽을 장악하였다(562)
북쪽으로는 고구려의 영토인 함흥평양까지 진출하고 정복지마다 비석을 세워 영토 확장을 기념하였다.
화랑도를 국가조직으로 재편하여 인재를 양성하였다.
오늘은 신라의 성립과 성장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