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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랑 속에 감춰진 교회의 신비
마가복음 4:35~41
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수년 전에 대만을 여행하면서 인상 깊게 감상하였던 작품 중에 <상아 공>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청나라 시대 제작되었으며 얼핏 보면 평범한 장신구 같아 보이지만 공안에 공이 무려 17개나 있는 조각품입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상아 공이 '하나의 상아'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상아 공 하나를 만들기까지 3대에 걸쳐 100년이 걸렸으며 어떤 기술을 사용했는지는 지금까지 미스터리라고 합니다.
현대 기술로도 17겹을 모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작품의 모든 부분이 놀라울 만큼 정교하며 가장 안쪽의 공은 아예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 위아래 연결되어있는 조각 또한 하나의 상아로 만든 것이며 생각한 것보다 작아서 더 놀라웠습니다.
상아 공의 작품처럼 성경에 나타난 사건과 비유를 통하여 중의적 의미로 나타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중의적 표현’이란 하나의 단어나 문장이 둘 이상의 의미로 해석되는 표현을 의미하는데 성경에서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갈릴리 바다의 풍랑 속에서 죽음의 위기를 겪는 제자들과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교회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엡 5:31에서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면서 남편과 아내가 각기 다른 곳에서 지내다 둘이 하나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교회에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엡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는 땅에 속한 피조물이요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창조주이십니다. 그런데 교회에 속한 성도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영광중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이며 신비인 교회는 세상이란 마귀의 대적으로 상징하는 풍랑에서 견고해지고 온전하게 되기 위하여 교회는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세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풍랑의 영적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제자들의 두려움에 대한 것과 세 번째는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권세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풍랑의 영적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막 4: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여러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느라 지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갈릴리호수의 건너편에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굳이 해가 지는 저녁에 그것도 종일 말씀을 전하시느라 피곤하신 중에 배 타고 건너자는 이면에는 긴박하게 전해야 할 메시지가 있는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예수님은 복음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계속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비유로 자세하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이제는 그 실제를 보이시기 주님의 제자들이 모이는 교회에 대하여 경험할 기회를 얻으시게 된 것입니다. 빛을 드러내기 위하여 어둠을 말할 수 있는 것처럼 하늘에 속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이기 위하여 세상의 풍랑을 경험하게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풀 수 있는 실마리가 있다면 풍랑에 담긴 영적 의미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먼저 배에 올라타시고 제자들이 함께 배에 타고 돛을 높이 세워서 미끄러지듯이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순식간에 물이 뛰기 시작하면서 큰 광풍이 일었다고 하였습니다.
풍랑이 갑작스러운 이유는 갈릴리호수는 남북으로 약 22킬로, 동서로 약 14킬로 정도입니다. 아주 크기 때문에 갈릴리호수를 바다라고도 부릅니다. 이 호수는 해발 200m 아래, 다시 말해 바다 높이보다 200m 아래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호수 주위에는 해발 500m에서 1000m 높이의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 풍랑을 ‘큰 광풍’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영어 성경에서는 ‘A furious squall’이라고 하였습니다. 스콜은 아열대 지방에서 생기는 기상 현상으로 열대 소나기라고도 불리며, 지면에서 가열된 공기가 급격히 상승하여 비구름이 만들어져 좁은 지역에 걸쳐서 발생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호수에 풍랑이 이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입니다. 첫째, 헐몬산의 눈 덮인 찬 공기가 골짜기를 타고 내려와 갈릴리의 더운 공기와 만날 때이고, 둘째, 지중해에서 갈릴리 상공을 지나 사막으로 지나던 바람이 급강하할 때입니다. 이 풍랑은 예측할 수 없고, 일단 일어나면 1-2시간 정도 지속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광풍을 욥 38:1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라고 하면서 ‘폭풍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에는 마귀의 능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욥의 극심한 고난에는 마귀의 시험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벧후 2: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라는 말씀에서 ‘이 사람들’ 거짓 교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거짓 교사는 그 배후에 마귀가 있습니다. 마귀의 조정에 의하여 진리를 버리고 거짓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근거로 광풍이라는 심한 바람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마귀의 권세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을 통하여 흐르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교회를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땅의 지배권을 가지고 있는 대적자 악한 영 마귀가 이에 대항하여 부딪히는 현상이 광풍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예수님이 막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라고 하면서 풍랑의 배후에 인격을 지닌 존재가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풍랑은 마귀의 세력에 움직임을 보입니다.
두 번째는 제자들의 두려움에 대한 것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면 배에 물이 차오르게 되었습니다. 마 8: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라고 하였습니다. 배를 덮어버릴 만한 큰 물결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들이 탄 배에는 갑판이 따로 없었습니다. 내부가 완전히 개방된 배였습니다. 따라서 큰 물결이 쉴새 없이 배에 부딪혀 들어오자, 순식간에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눅 8:23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어부로 잔뼈가 굵은 노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광풍으로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습니다. 물을 퍼내고 노를 힘껏 저으며 별의 별 방법을 다 썼으나 모든 것이 허사였습니다.
여기서 광풍이 몰아치는 바다에 떠 있는 배는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믿음을 지닌 자가 예수님을 모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를 뚫고 세워지게 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음부의 권세’는 ‘the gates of hell’ 또는 ‘the gates of Hades’라고 하였습니다. 즉 마귀가 지배하는 권세를 이길 수 있는 곳이 예수님이 세운 교회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광풍에 놀라 두려워 떨었습니다.
막 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예수님 역시 사람의 몸을 입고 있으셨기에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셨다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막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서워하다’ 이 표현은 제자들의 심리를 설명한 말씀이 맞습니다. 그들은 그 사나운 풍랑에서 분명히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것을 가리켜 ‘믿음이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제자들이 믿음이 없으므로 두려워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제가 제자라도 억울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면 ‘믿음’이 있다면 그 정도 광풍에서도 침착하게 있어야 하는냐 말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두려움을 갖는 것은 문제일 수 없습니다. 시험을 앞두거나, 출산을 앞두거나, 실직하거나, 병에 걸렸거나, 파산하는 등 이런 상황에 있을 때 “믿는 자여, 두려워 말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두려워하는 그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지식이 없으므로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두려워하는 배후에는 마귀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실체를 알았다면 잠시 두려워했다라도 담대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고 마귀는 예수님을 광야에서 시험하였지만 예수님에게 패배하여 쫓겨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지체로 이뤄진 교회는 예수님이 마귀의 권세를 이기셨기 때문에 어떤 환난이 오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는 날마다 승리를 외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권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권세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치고 풍랑을 겪어보지 않고 지낸 사람은 단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비바람을 맞을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 결과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풍랑을 뚫고 찬란한 햇빛과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노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풍랑에 쓰러지고 병들어 인생을 낙오자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막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불어닥치는 여러 환난의 바람, 시련, 그리고 병들어 아픔 등 모든 바람을 잠잠하게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모신 제자들이 탄 배는 교회의 모형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어떤 시련에도 예수님의 보호하심과 그분의 능력으로 모두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요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였습니다.
모든 풍랑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이 마귀는 수없이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에 앞장서서 두렵게 하고 낙심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는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창세가 6장에서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창세기 6장에 따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 완전한 자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하나님은 사람이 타락하여 강포한 모습에 실망하여 온 땅을 멸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다만 당대의 의인이었던 노아와 그 가정을 보호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노아의 나이 육백 세였을 때 만물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약 1600년 후 흐른 후에 대홍수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을 배역하고 말씀에 귀를 기우리지 않았던 사람들은 모두 물에 빠져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아와 그 가족은 방주를 예비하였고 그 방주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노아의 때는 물로 심판하였다면 마지막 주님이 오실 때는 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 불의 무서운 심판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구원의 방주인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는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 위에 세운 교회에 우리가 모두 속하여 믿음을 지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노아의 방주에 역청을 바른 것처럼 우리는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내 양심과 나의 믿음에 바르므로 마지막 불의 심판에서 건짐을 받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사41:10“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 말씀에 사로잡혀 믿음으로 다가오는 마귀의 풍랑을 이기십시오. 모든 두려움의 배후는 예수님께서 이미 이기신 마귀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두려워하고 무서워 떨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교회 안에 우리와 항상 함께하므로 풍랑을 잠잠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소중한 교회를 귀하여 여기시고 믿음에 굳건하게 세움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