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그런데 덧붙여 인문학까지
모든 예술은 세계의 일부라고 한다. 작품을 만든 작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든 예술작품에는 시대의 진실과 작가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다양한 종류의 예술 중에서도 미술은 특히 우리에게 많은 고민과 성찰의 계기를 만들어 준다. 미술은 색채미나 조형미 등 시각적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으면서도, 그 작품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예술작품과는 다르게, 고정된 단 하나의 작품 속에 모든 주제가 담겨 있기에 우리들로 하여금 더 많은 성찰과 고민의 시간을 갖게 한다. 작가가 표현한 장면, 구도, 색깔 등은 작가가 긴 시간 심사숙고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며, 해당 시기의 흔적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해온 인간의 정신활동에 대한 학문이다. 과학기술과 신자유주의가 시대의 대세가 되는 과정에서 인간성이 말살되는 현상이 일어나자 여기저기에서 다시 인문학의 중요성을 얘기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인문학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삶의 주인이 된다는 의미이며, 일상적인 통념에 도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스펙 쌓기가 일반화된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차근차근 인문학에 대한 이해를 높여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미술관 옆 인문학"은 미술작품을 통한 인문학적 성찰을 시도한 책이다. 다양한 시대와 작가의 미술작품을 함께 감상하면서 그 작품 혹은 작가에게서 발견되는 문제의식을 우리의 시대, 우리의 생활과 연관시켜 보고 그것을 인문 고전으로까지 심화해 갈 수 있다. 처음부터 인문 고전을 읽거나 인문 강의를 듣는 것은 인문학을 더 어렵게 느끼게 할 수 있다. 미술작품을 통한 접근은 딱딱함과 지루함을 넘어 스스로의 삶을 찬찬히 고민하는 황홀한 지적 여행의 재미를 느끼게 할 것이다.
이 책은 총 35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각 글에는 문제의식의 단초가 되는 미술작품이 두 편씩 실려 있고, 같은 주제를 다룬 인문 고전의 본문 일부를 실어 놓았다. 서른다섯 편의 글은 자유, 동양과 서양, 이성, 빈곤, 일상성, 자아 등 6개로 구분되어 있으며, 인문학적 통찰이 요구되는 다양한 주제 가운데 상대적으로 통념이 더욱 강하게 작용하는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형식적인 자유와 시장경제를 자유의 거의 전부로 사고하는 경향,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알량한 개념 하나로 문화의 상대성을 대신하는 습관, 이성과 합리성의 신화, 인간은 사라지고 지표상의 수치로 대신하는 계량경제학적인 빈곤 이해, 소소한 일상과 학문적 탐구의 분리, 전통적 자아 개념에의 매몰 등 통념적 사고가 손쉽게 우리의 의식을 좀먹고 있는 주제들이다.
본문에 실린 미술작품은 김정희, 윤두서, 피카소, 에셔, 드가, 고야, 백남준, 곽덕준, 클림트 등의 것이며, 인문 고전은 마르크스, 에밀 졸라, 보카치오, 포퍼, 신채호, 맹자, 마빈 해리스 등이 쓴 것이다. 다양한 장르와 시대, 사조를 포함하려 애썼고, 잘 알려진 것들과 덜 알려졌지만 주목해야 할 것들을 함게 다루었다. 우리 사회에 인문학적 토양을 마련하는 일에 힘을 기울여 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통념이라는 우상에 대한 뾰족하고 삐딱한 시선, 다른 한편으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