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가 나빠서 / 조미숙
모처럼 남편이 쉬는 날, 전날 술독에 빠지더니 힘겨운 몸을 일으킨다. 비몽사몽간에 엄마 가게에 문 열어 주러 나갔다가 들어와 다시 누워 버린다. 몇 주 전 일요일에 가까운 지인 남편들과 어울려 유달산 둘레길을 걸었다. 가위바위보로 아카시 나뭇잎 따는 놀이로 점심값 내기를 하자고 했더니 두 남자가 들은 척도 안 한다. 그래서 우리 집 오서방은 아마 할 것이라고 했더니 다음에 쉬는 날 같이 오자고 했다. 어제저녁에 그 얘기 하면서 갈 건지 물었더니 그러자고 했는데 일어나질 못한다. 다시 한 번 흔들어 깨웠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는데 일행은 카톡을 확인하지 않고 먼저 출발했다. 오늘은 다른 집 남편이 빠지고 언니네와 동생만이다. 두 여자는 걸음이 늦으니까 중간에 만나기로 하고 먼저 보내고 그 형부만 남아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체력이 바닥으로 떨어진 남편은 ‘천천히 가’를 입에 달고 걷는데 오늘은 아무 소리 안 한다. 자기보다 형님인 사람도 저만치 앞서 가는데 말하기 뭐해 그랬겠지만 아마 죽을 맛이리라. 옆을 지나는데 술 냄새가 확 끼친다. 아침에 음주단속 했으면 걸렸겠다고 했더니 안 그래도 뒤에 경찰차가 따라와 은근히 걱정했단다.
중간 지점에서 일행을 만나 수박으로 목을 축였다. 정자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짖거나 꼬리를 흔드는 보물이(반려견) 때문에 한참 웃다가 출발했다. 땀은 비 오듯 하고 숨은 컥컥 막혀도 그늘로 들어서면 상쾌한 기분이 좋다. 남편에게 좋지 않냐고 물었더니 맨날 보는 산이 뭐가 어떻다고 그러느냐며 핀잔이다. 멋대가리가 없다.
혼자 온 동생네 남편과 다시 만나 점심을 먹고 가까운 카페에 가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로 시간을 보냈다. 로또가 화제에 올라 떠들다가 언니가 받은 게 있다며 확인했는데 오만 원이 당첨됐다. 모두 신기해했다. 한 줄짜리라 확률이 희박하다는 거였다. 그 언니가 얼른 지갑에 다시 넣자 형부가 “봐봐, 벌써 챙기는 거.”하며 웃는다. 시간도 체력도 부족하지 않게 기분 좋게 보내고 일어섰다.
마침 차 기름을 넣어야 해서 주유소에 들렀다가 들어왔다. 피곤한 남편은 낮잠을 자러 침대로 갔고 나도 잠깐 소파에 누웠다. 하지만 글쓰기가 나를 일으킨다. 마지막인데 안 쓸 수도 없고 이거 야단이다. 지난주에도 숙제하듯 등 떠밀려 늦은 시간에 썼는데 또 이렇다. 매번 반복된다.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치는 피나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좋은 글을 쓰기를 바란다. 책은 읽어도 글에 녹여내지 못한다. 아무래도 머리가 나쁜가 보다. 틀리는 것은 또 여전하다. 설명을 들어도 그때는 이해했는데 글 쓰려면 까맣게 잊어버린다. 창의적인 생각이나 세세한 묘사 능력도 떨어진다. 남의 글을 읽으면 짧지 않은 내 경력이 무색해진다. 지난 시간 난 뭘 한 거지?
그래서 항상 고민한다. 아무래도 그만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내가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이걸 꼭 쥐고 있는지 모르겠다. 더 이상 글이 좋아질 건덕지가 없어 보인다. 작가가 될 생각도 없었지만 어쩌다 보니 이 길로 들어선 지가 꽤 되었다. 그냥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아서 떠날 수가 없었다. 소속의 욕구가 가장 크게 작용했을까? 하지만 사랑받고 싶은 욕망도 무시할 수 없다. 많이 배우지 못해 남들보다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나도, 내 글도 사랑받고 싶은데 그렇지를 못한다. 내가 봐도 샘나게 잘 쓴 글을 보면 한숨이 난다. 난 왜 이런 생각을 못 하지?
머리로는 이건 쓸데없는 욕심이자 말도 안 되는 자격지심이라고 인정하는데 가슴으로는 그게 잘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이미 초연한 척하면서도 속으론 칭찬을 듣고 싶은 욕망이 부글부글 끓는다. 글을 쓰면서 내 삶이 가꾸어졌는지도 잘 모르겠다. 삶의 태도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오늘은 이랬다가 내일은 또 저렇게 변한다. 욕심이 과해서일까? 내 머리는 나쁜데 자신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늘 고민하고 후회하고 실망하면서도 때가 되면 또 글을 쓰겠다고 꾸역꾸역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나른한 오후의 햇빛이 평화롭다. 내 머리는 반짝이지 않아도 나를 둘러싼 세상은 빛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쓴다. 오늘도 내 머리를 탓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