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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말씀의 향기♣ No2533
9월29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연중 제26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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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주님! 하루의 양식이 될 이 묵상글을 받아보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며 은총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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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bc 오늘 미사**
https://m.youtube.com/watch?v=RiqOO-El8Y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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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1)곧 다시 춤추게 하소서!>
오랜만에 방송 출연차 서울 나들이를 했다가, 저명한 개신교 신학자이자 구약성경의 권위적인 해석가인, 윌터 브루그만 저(著) ‘다시 춤추기 시작할 때까지’(Ivp)라는 책을 손에 들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대혼란의 때, 사목자들이 양떼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시기, 꽤나 예언자적인 시선으로 현실을 분석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단 성급하고 대책없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말을 몇 번 인용하는 것을 빼면...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가 이전에 알고 있던 세상이 이미 지나갔습니다. 이제 지난날로 되돌아가는 길은 없습니다. 지금 인류는 긴급하고 힘겨운 배움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차분히 옛 세상을 단념하고, 상상력을 동원해서 모든 생명체가 다시금 재생하고 번영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살아계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라는 초대이며,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와 더 친밀하고 더 배려하며 서로 유익이 되는 관계를 맺으라는 부름입니다.
이제 인류는 이 재앙을 통해 더 생산적이고 더 포괄적인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재앙 한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우리 인간을 환대하시며, 극진한 사랑을 베푸시며, 발버둥치는 인류를 도우십니다.
사실 그간 인류가 쌓아 올린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연한 포기와 새로운 출산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 모든 과정에서 하느님께서는 변함없는 자비를 베푸시며,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어주셔서, 이 큰 환난에 당당히 맞서게 하시며 극복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저자가 쓴 기도문 하나가 참 인상적이고 제 마음에 크게 와닿았습니다.
"곧 다시 춤추게 하소서!
우리는 지금 많은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손자 손녀의 졸업식, 미식축구의 4강전, 메이저리그의 개막, 온 교우들이 모인 부활절 미사, 날마다 거리에서 사람들과 나누던 대화도 사라졌습니다.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거대한 침묵을 강요합니다. 그 침묵이 낳는 것은 외로움과, 가정 내 폭력과, 일자리 상실과, 레스토랑과 바닷가와 거리에서 누리던 일상생활의 종말입니다.
우리는 기다립니다. 절망 가운데, 최소한 깊은 실망 가운데, 그러나 다르게 기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확실한 믿음 속에 기다립니다. 우리는 간절히 바라며 기다립니다. 우리는 주님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미래를 향하여, 절망에 맞서 기다립니다. 생명의 하느님이신 주님이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실 것입니다. 우리는 기다리면서, 다시 시작될 춤의 다음 동작을 연습합니다. 기다림은 오직 잠깐입니다.
우리는 순종의 긴 여정을 걸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서 우리 앞에 펼쳐진 길을 달려갈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이 서로 사랑하는 하느님의 선한 미래 속으로 독수리처럼 날아오를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침묵을 이기실 것을 압니다. 그 침묵은 어둠에 불과하기에... 생명의 주님께서 이기실 것입니다. 아멘."
저자는 거듭 강조합니다. 이 엄중한 시기, 지금은 모임을 자제할 순간입니다. 그저 침묵하고 성찰할 순간입니다. 오직 어리석은 사람들만 계속해서 모임을 지속해도 된다고 고집할 것입니다.
어떤 정신 나간 목회자는 예수님이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 진정한 목회자들은 그런 사람들을 ‘멍청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큰 위기에 빠진 이스라엘에 파견되어 승리자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나자렛의 마리아에게 파견되어 인류 구원의 서막을 알리는 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눈먼 토빗에게 파견되어 치유자 하느님을 체험하게 했습니다.
오늘 특별히 치유자 하느님의 권능을 드러내게 한 중재자로서 라파엘 대천사의 역할을 기대해봅니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치유’라는 이름의 의미를 지닌 라파엘 대천사가 눈먼 토빗의 치유에 큰 힘이 되었듯이, 지금 투병중인 우리 인류에게 큰 치유의 힘이 되어주시길 간절히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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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해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2)우리 가운데 천사>
탄탄대로와 외진 산길, 향기로운 오솔길과 거친 들길,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쉼 없이 교차되는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우리가 겪게 되는 가장 큰 행운은 어떤 것일까요?
행운 중의 행운은 아마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일 것입니다.
만나기만 하면 너무 좋아서 설레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해도 세상의 시름을 잊게 만드는 그, 한없이 부드러운 눈길로 단번에 내 깊은 슬픔을 치유시키는 그, 언제나 느껴지는 따뜻한 환대와 자상한 배려에 천국을 느끼게 하는 그...
그래서 천국의 향기를 온몸에서 풍기는 그, 말이 아니라 삶으로, 온 몸으로 천국을 증거하는 그, 그는 어떤 면에서 이 시대 또 다른 천사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분의 대천사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얼마나 충실했던 하느님의 전령이었던지 그냥 천사도 아니고 대천사(大天使)입니다.
천사들은 항상 ‘골골하는’ 빈약한 우리 인간의 영적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유출되는 에너지이자 능력입니다. 나약한 우리 인간의 구원과 성장을 위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영적도우미입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놓여있는 영적 사다리와 같은 존재입니다.
이렇게 설명 드리는 저부터 정말 알쏭달쏭한 존재인 천사란 존재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어디 먼 다른 하늘에서 천사를 찾을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천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 사제들인 우리, 수도자들인 우리, 본당 단체장들, 다양한 단체의 봉사자, 지도자들, 오래 사셔서 많은 연륜을 쌓으신 어르신들이야말로 천사처럼 살아가야 될 사람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를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 뭐라고 말들을 합니까? “천주교 신자가 저래도 되? 믿는 사람들이 더해요!”가 아니라 이런 말들이 그들의 입에서 터져 나와야겠지요.
“천사가 따로 없네!”
“정말 날개 없는 천사네!”
어르신들, 저물어가는 인생이 못내 아쉽겠지만, 그럴수록 더욱 분발하셔서, 후손들이 “뜨는 해도 아름답지만 황혼의 아름다움에 비교할 바가 못 되는구나!”라는 감탄사를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봉헌생활자들, 살아가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겠지만, 때로 내 몸 한 몸 챙기기도 벅차겠지만, 그래도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새롭게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나’란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서 세상과 이웃과 시대의 아픔에 온 몸으로 투신하는 또 다른 천사로 거듭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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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천사는 복채를 받지 않는다>
(묵상 동영상)
https://youtu.be/e8s2iR8RY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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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가 잘 아는 세 대천사의 축일입니다. 천사는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받아 인간을 다시 하느님께 데려가기 위해 일하는 거룩한 일꾼들입니다. 천사들의 이끎을 잘 따라가면 천국으로 갑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천국에서 파견받은 천사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옥에서 파견된 악마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사탄의 심부름꾼으로서 우리를 천국과 반대 방향으로 이끕니다.
만약 우리를 이끄는 힘이 천사의 힘인지, 악마의 힘인지 구별하지 못한다면 우리 결말은 심각하게 끝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천사일 수 있고, 어느 정도는 마귀일 수 있습니다.
영화 ‘사랑과 영혼’(1990)은 한 여인을 둔 두 남자의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몰리’는 갑자기 남자친구인 ‘샘’을 잃습니다. 샘은 영문도 모르고 총에 맞아 죽습니다. 하늘이 열리지만, 그는 울고 있는 연인을 두고 차마 하늘로 올라가지 못합니다. 귀신의 모습으로라도 몰리 곁에 머물려 합니다.
그러던 중 샘은 자신의 친구이자 직장동료인 ‘칼’이 돈 문제 때문에 킬러를 고용해 자신을 살해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몰리까지 차지하려 하는 것을 봅니다. 샘은 무언가 해야만 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심령술사인 ‘오다 매’를 찾아갑니다. ‘오다 매’는 샘의 일을 도와줍니다. 반면 샘을 죽인 킬러는 칼을 도와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주위엔 오다 매와 킬러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천사일 수 있고 악마일 수 있습니다. 물론 완전히 천사나 악마가 된 사람은 거의 없기에 두 모습이 섞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쨌든, 오다 매는 천국의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고, 킬러는 지옥의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몰리는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천사인지, 누가 악마인지 구별하지 못합니다. 겉보기엔 감옥에 여러 번 다녀온 오다 매가 더 사기꾼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오다 매를 통해 말하려는 샘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샘은 몰리가 오다 매를 받아들이게 하려고 동전을 집어 올려 그녀의 손에 쥐여줍니다. 영화에서는 오다 매가 친구가 빼돌린 4백만 달러의 돈을 기부하게 만든 일이 나옵니다. 돈을 몰리의 손에 올려준다는 것은 저 나름대로 오다 매가 돈 때문에 그녀를 찾아온 것이 아님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어쨌든 결말은 이 일로 몰리는 오다 매를 통해 샘을 만나 다시 사랑을 확인하고 악한 무리는 죽어서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천사와 악마, 천사의 일을 하는 사람과 악마의 일을 하는 사람을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점을 보러 무당을 찾아갔다고 합시다. 무당은 공짜로 굿을 해 주거나 점을 봐주는 일이 없습니다. 그의 목적은 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복채를 반드시 가지고 가야 합니다. 영화에서 칼과 킬러는 모두 돈에 중독된 이들이었습니다. 돈이 아니면 어떠한 행동을 할 에너지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 오다 매는 돈이 아닌 연민의 마음으로 샘의 목소리 역할을 합니다. 끝나도 마음의 따뜻함 외에는 얻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천사는 복채를 받지 않고 악마는 복채를 챙깁니다. 이것으로 내 주위에서 천사와 악마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타나엘이 나옵니다. 그는 거짓이 없는 사람이란 칭찬을 듣습니다. 순결한 사람이고 세속, 육신, 마귀의 욕구에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당신 위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천사를 볼 수 있다는 말은 그 당사자도 천사의 일을 하게 됩니다.
오늘 세 대천사의 이름은 하느님의 천사가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인지 잘 보여줍니다. 먼저 미카엘 이름의 뜻은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입니다. 이름 뜻대로 미카엘은 사탄의 세력과 싸우는 역할을 합니다. 내가 돈, 쾌락, 교만이 아닌 청빈, 절제, 겸손의 길로 사람을 이끌고 있다면 미카엘 천사입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은 나의 힘”이란 뜻입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보통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성모님께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준 이가 가브리엘입니다. 미카엘 대천사가 사람의 마음에 하느님과 같은 분은 없다는 생각을 심어주면 가브리엘 천사는 그 하느님만 의지하며 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말씀으로 누군가에게 양식이 되어주고 또 누군가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잉태되게 하고 있다면 가브리엘 천사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치유하신다”라는 이름을 가진 라파엘 대천사도 있습니다. 토비트서에 라파엘은 토비아와 함께 여정을 하며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치유해줍니다. 누군가의 옆에서 그 사람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치유해주고 부축해주는 일을 한다면 그 사람은 라파엘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은 세속의 집착에서 벗어난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유학을 다녀와서 불러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여기저기서 강의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마다 강의료를 받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교구에서 공부시켜 준 것이고, 또한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 그 대가로 돈을 받기는 싫었었습니다. 하지만 돈을 주는데 거부할 수 있는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하다 보니 강의료를 많이 주는 쪽을 조금씩 선호하게 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돈을 적게 주면 왠지 하기가 싫었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천사는 복채를 받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재물에 치우치는 욕심을 경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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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복음: 요한 1,47-51: 하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천사는 하느님의 사자들이며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들이며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이다(히브 1,14). 성서는 자주 이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성경에 나오는 천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가 하느님께서 갖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미카엘 천사는 구약과 신약에서 각각 두 번 언급되었는데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을 지닌다. 미카엘 천사는 주로 천상 군대의 장수, 악에 대한 수호자, 임종자의 수호자로 등장한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이란 뜻이며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준 대천사이며, 즈가리야와 마리아에게 각각 탄생을 알린 하느님의 사자이다. 그리고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이며, 토비아를 위해 파견된 천사이며, 맹인들의 수호천사로 공경을 받고 있다.
이 천사들이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진정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하는 것은, 그들 천사들까지도 인간을 위하여 창조하셨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천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지고 계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이제 더욱 인간을 위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는 은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러한 사랑을 우리 안에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 천사가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오가며 하느님의 뜻과 사랑을 전하는 존재라면, 이제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하느님께로부터 사랑과 그분의 뜻을 전할 수 있는 천사의 모습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오늘 복음의 나타나엘이 예수님께로부터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47절)하고 칭찬을 들었듯이 우리 자신이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자세를 갖는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모습을 갖춘다면, 오늘의 이 복음 말씀을 올바로 사는 것이며, 우리의 모습이 진정 다른 사람들에게 천사의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의 삶 속에서 나의 천사가 되어 내 삶을 바꾸어준 사람은 누구인가? 한편 나는 누구의 천사가 되어 그 사람의 삶에 축복이 되고 있는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위해 선물이 되어줄 수 있다면 우리도 천사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러한 삶의 노력을 주님께 바쳐드리며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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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오늘의 묵상
[대구대교구 박병규 요한보스코 신부님]
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우체부 역할을 맡았지요. 대표적인 천사가 가브리엘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에 가브리엘 천사가 등장한 이유입니다. 또한 천사는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천사가 나타났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함께하고 계신다는 말이지요.
나타나엘이 예수님을 제대로 고백한 이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볼 수 없었던 것을 볼 수 있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볼 수 없다고 여긴 것을 이미 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천 년 전에 세상에 오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없다고 하여 그분께서 계시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과 함께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천사를 볼 수 없다고 말하여서도 안 됩니다. 이미 우리는 하늘의 천사가 사람의 아들 위에 오르내리는 것을 고백하고 믿고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증거를 대라며 따져 묻겠지요. 그렇다면 간단히 답하세요. 내가 그 증거라고. 그럼에도 믿고 따르고 살고 있는 내가 그 증거라고. 그리고 또 답하세요. 그래서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과 함께 어떻게든 살아 보려 노력하는 이가 나라고.
신앙은 도깨비 뿔을 단 이들의 괴기한 신비를 좇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하늘의 이치를 땅 위에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고, 그 일을 통하여 신앙은 자기 가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일을 예수님께서는 당신 십자가를 통하여 보여 주셨고, 또 다른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오늘 자신의 삶 안에서 또 다른 십자가를 통하여 그 일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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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
<천사의 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성(神性)을 암시하신 말씀입니다. 천사들이 예수님 위에서 오르내린다는 말은, 천사들이 예수님의 시중을 든다, 또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긴다는 뜻입니다. 원래 천사들은 하느님 주위를 날아다니면서 하느님의 시중을 들고 하느님을 섬기는 존재인데(이사 6,2), 그 천사들이 예수님의 시중을 든다는 것은,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으신 분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서 단식을 하셨을 때, 사탄은 예수님을 유혹했지만 천사들은 예수님의 시중을 들었습니다.(마태 4,1-11; 마르 1,12-13) 그 일을 복음서 저자들이 기록한 것은 “예수님은 주님이시며 하느님이신 분”이라고 신앙고백을 한 것과 같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천사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으로서, 구원을 상속받게 될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되는 이들이 아닙니까?”(히브 1,14) (천사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서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 사람들의 기도를 하느님께 전해드리는 영적 존재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하느님의 말씀’을 백퍼센트 그대로 전하기 때문에, 천사의 말은 곧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은 천사가 사람에게 나타난 일은 사실상 하느님께서 나타나신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창세기 18장의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낯선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나셨고, 보통 그런 경우는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났다고 표현하는데, 창세기 저자는 ‘천사’ 라는 표현을 생략하고 ‘주님’께서 나타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히브 13,2) 여기서 ‘천사들’은 하느님을 뜻합니다. 아브라함은 낯선 나그네에게 사심 없이 호의와 친절을 베풀었는데, 그 나그네가 하느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실천한 ‘사랑’이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뵙게 했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천사들의 임무 가운데 하나이니, 우리가 하는 선교활동도 천사의 일을 하는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선교활동은 복음을(구원에 관한 하느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서, 또 하느님의 일꾼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마태 9,37-38) 말씀을 전하는 일 외에도, 신앙인으로서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는 것도 ‘천사의 일’을 하는 것이고,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살아가는 것도 ‘천사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하느님에게로 인도하는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고 ‘빈 손’으로 가라고 지시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마태 10,10-11)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는 당연히 당신의 일꾼을 먹이신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면, 그곳에서 너희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마음 착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만나거든 그의 친절과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여라.” 라는 뜻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을 접대하는 그 ‘마음 착한 사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꾼을 먹이시려고 보내신 천사와 같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일도 ‘천사의 일’이고,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기꺼이 맞아들여서 숙식을 제공하는 일도 ‘천사의 일’입니다. 두 일을 합해서 생각하면, 천사가 천사를 만나는 것이고, ‘천사의 일’이 ‘천사의 일’을 만나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천사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사탄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과 짝을 이룹니다. 사탄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이간질을 하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과 인간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마귀 들린 것과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의지로 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바로 죄로 이어지지만, 마귀 들린 것은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의지를 빼앗기는 것이고, 그것은 몹쓸 병에 걸린 것과 같습니다. 공관복음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마르 1,32-34)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 주신 일과 마귀들을 쫓아내신 일은 같은 성격의 일입니다. 둘 다 치유의 은총을 베풀어서 건강을 회복시켜 주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마귀 들린 이들을 ‘어떻게’ 데리고 올 수 있었을까? 마귀들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순순히 따라왔을까? 아니면 격렬하게 저항했을까? 저항했다면 어떻게 제압했을까? 어떻든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온 그 사람들은 ‘천사의 일’을 한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 바로 그 일입니다.
요즘 뉴스에서 악마적인 증오심과 이기심과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죄와 악을 자주 봅니다. 그런 일들은 사탄이 옛날과 다름없이 아직도 여전히 집요하게 사람들을 괴롭히고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세상이 그런대로 돌아가는 것은 ‘천사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능동적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말씀을 전하고, 믿음을 증언하면서 더 많이 ‘천사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가운데에 있는 ‘사탄’과 ‘사탄의 악’을 물리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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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가톨릭 평화신문 미주지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1998년의 기억입니다. IMF의 거센 파도가 밀려 올 때입니다. 많은 기업이 파산하였고, 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인 직장을 떠나야 했습니다. 저 역시도 그 파도를 온 몸으로 맞아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국민도, 국가도 갈 길을 몰라 방황하였습니다. 그때 미국에서 위로와 용기를 주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한국의 박세리 선수가 US 오픈 골프대회에서 극적으로 우승하였습니다. 신발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가서 어렵게 공을 살려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승하였습니다. 한국 국민은 ‘금 모으기’ 운동을 하였습니다. 국가의 빚을 갚아나갔습니다. 한국은 IMF라는 깊은 수렁에서 벗어 날 수 있었습니다. 22년이 지났습니다. 저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파도를 잘 넘을 수 있었고, 가족들도 안정을 찾았습니다.
2020년입니다. 코로나19라는 파도가 한국은 물론 전 세계를 덮치고 있습니다. K 방역으로 코로나19를 잘 막아내던 한국도 감염자가 늘어 또 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마스크가 일상이 되면서 이웃과의 대화가 단절되고 있습니다.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많은 사람이 생활의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지친 일상에 위로와 용기를 주는 신앙생활도 힘들어졌습니다. 이번에도 미국에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지난 2월에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오스카에서 4관왕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영화가 가장 세계적인 영화가 되었습니다. 9월에는 방탄소년단(BTS)의 노래 ‘다이너마이트’가 미국의 노래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BTS의 음악성, 순수함, 진솔함, 메시지가 미국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22년 전 IMF의 파도를 잘 넘어갔듯이, 이번 코로나19의 위기도 함께하면 또한 넘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대천사 축일입니다. 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전해 주는 사명이 있습니다. 천사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사명을 지녔습니다. 미카엘 대천사의 이름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라는 뜻을 지닙니다. 전승에 따르면, 사탄이 하느님을 거슬러 반역을 일으켰을 때, ‘누가 감히 하느님처럼 구느냐?’라고 호통을 친 데서 비롯한 것이라고 합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악의 세력과 싸워 승리를 거둔 지도자로 소개됩니다. 교회는 미카엘 대천사를 악마의 유혹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고, 임종하는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보호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라파엘 대천사의 이름은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구약 성경의 토빗기에 나옵니다. 청년 토비야를 먼 곳까지 안전하게 안내하여 아버지의 심부름을 완수하게 하고, 아내 사라를 맞이하게 도와주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대천사는 임무를 다 마치고 토비야에게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나는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대기하고 또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인 라파엘이다.’ 교회는 라파엘 대천사를, 이 세상의 삶을 잘 마치고 영원한 천국으로 무사하게 순례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도와주는 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사람’, ‘하느님의 권세’, ‘하느님께서 당신을 권세 있는 분으로 드러내셨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다니엘에게 나타나 환시를 보여 주었으며, 무엇보다 즈가리야에게 나타나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그리고 나자렛의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해 주었습니다. 가브리엘인 저의 축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원해서 정한 세례명은 아니지만 저는 가브리엘 세례명을 좋아합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천사는 하얀 옷을 입고, 날개를 달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천사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박세리는 운동으로, 봉준호는 영화로, BTS는 음악으로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우리들 역시 기쁜 소식을 전해 줄 수 있다면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겸손한 사람,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불쌍한 이웃을 도와주는 자비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 옳고 그름을 알아 늘 바른 길을 가는 사람은 날개가 없어도 천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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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천사가 내려옵니다>
요한 1,47-51 (필립보와 나타나엘을 부르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천사가 내려옵니다>
하늘이 열립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내려옵니다
하느님께서 땅으로 보내신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립니다
하늘의 하느님과 땅의 하느님
사이에서 천사들이 노닙니다
천사들이 오르내리며 노니니
하늘은 땅이요 땅은 하늘입니다
하늘이 열립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내려옵니다
땅의 하느님 사람의 아들을
닮은 사람들 위에서 오르내립니다
하늘의 천사들이 내려와 함께 하니
땅의 사람이 하늘의 사람이 됩니다
천사들과 함께하는 사람은
땅을 딛고 하늘을 품습니다
하늘이 열립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내려옵니다
땅만 바라보는 사람은
천사들을 보지 못합니다
땅만 있다고 믿는 사람은
하느님의 천사들을 거부하고 죽입니다
하늘 없이 땅도 없기에
하늘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땅에서도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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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장운철 마르첼리노 신부님]
옛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참 재미있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요. 제가 첫영성체 교리를 할 때 본당에 계셨던 할머니 수녀님께서 저희들을 보고 말씀하시기를 “성당에 오려니까 싫지? 재미없고 힘들고. 그렇지?”라는 겁니다.
이 말에 뭐 사실 그렇기는 했습니다만. 주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씻고 닦고 그때 재미있는 만화도 했었는데 그것도 제대로 못 보고 성당으로 가야 했었습니다. 사실 수녀님의 이 말씀에 “예, 오기 싫어요. 잠도 자야하고 만화도 봐야 해요.”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또 그렇게는 못하고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수녀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 성당에 올 때 눈에는 안 보이지만 수호천사가 따라오면서 성당으로 갈 때 얼마나 걸어가는지 금으로 된 잣대를 들고 거리 재면서 따라온다. 그리고 재놓은 거리가 멀수록 나중에 하늘나라 가서 더 많은 상을 받는 거야. 그러니 성당에 자주 올수록 다른 친구들보다 더 많은 상을 하늘나라에서 받을 수 있겠지. 성당에 오기 싫다고 미사 빠지고 다른데 놀러가고 그러면 다른 친구들 다 상 받는데 그 친구는 아무것도 못 받아. 그러니까 열심히 성당 다녀야 한다.”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 말씀이 잊히지가 않습니다. 지금도 한 번씩 뒤를 돌아보면서 수호천사가 금자를 들고 나를 따라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축일을 맞이하는 형제자매님들 축하드립니다. 천사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들이지만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 늘 하느님과 우리를 이어주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분들이지요.
그러면 우리는 천사가 될 수 있을까요? 어떤 아이가 이렇게 질문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나도 나중에 천사가 될 수 있나요? 천사가 되어서 하얀 날개옷 입고 하늘을 막 날고 싶어요.” 저는 “그럼 착하게 살면 하느님께서는 천사가 될 수 있게 해 주실 거야.”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이건 아이들한테 해 줄 수 있는 대답이구요. 실제 어른들에게 이런 대답을 하면 그냥 웃어넘기시지요. 천사가 되고 싶다는 질문도 하지 않구요.
우리 모두에게는 수호천사가 따라 다닌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게 우리를 이끌어 주고 도와주는 분들이지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수호천사에게 도움을 받는 입장인데 그 도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신적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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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이기양 요셉 신부님]
<천사들 앞에서 당신께 노래하오리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람의 모습과 비슷한 형상에 날개를 가진 사람을 천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주 착한 사람을 '천사 같다'고 표현하지요. 천사는 사람과 교회를 지켜주고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상징적인 존재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데 요즘은 천사의 이미지가 교회에서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대신 젊은 남녀들 사이에서, 또 일부 장사꾼들이 '수호천사'라고 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는 의미로 천사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지요.
천주교회에서는 천사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는 반면에 세상에서는 살아나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천사는 과연 존재하는 인물일까요? 우리 천주 교회에서는 이 천사의 존재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으며, 역사 속에서 천사는 어떤 변천사를 밟아 왔는지, 또 요즘은 왜 천사를 보기가 어려운지를 오늘 대천사 축일을 맞이하여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천사는 창세기에서 요한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도와주는 심부름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는 영적인 존재를 일반적으로 '천사'라고 표현했지요.
성경에는 천사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구약성경에는 하느님이 심부름꾼으로 천사들이 많이 파견되고 있는데 몇 가지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창세기 16장에 주인의 박대를 견디다 못해 도망치는 하가르 앞에 천사가 나타나 도움을 줍니다.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의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그에게 복종하여라.' 주님의 천사가 다시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너의 후손을 셀 수 없을 만큼 번성하게 해 주겠다."(창세 16,9-10)
또 창세기 19장 1절-22절에는 멸망하는 소돔에 천사들이 나타나서 도움을 주며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고, 24장에는 늙은 아브라함이 며느리감을 얻는데 천사의 도움을 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한편 천사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뿐만 아니라 처벌하는 일도 하였습니다. 사무엘 하권 24장에는 백성을 치는 천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지요.
"천사가 예루살렘을 파멸시키려고 그쪽으로 손을 뻗치자, 주님께서 재앙을 내리신 것을 후회하시고 백성을 파멸시키는 천사에게 이르셨다. '이제 됐다. 손을 거두어라.' 그때에 주님의 천사는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있었다."(2사무24,16)
그밖에 하느님을 모시는 군대로 천사들을 인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천사의 역할은 신약성경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둘러싸고 처녀 마리아를 찾아오고(루카1,28), 약혼자 요셉의 꿈에 나타난 분은(마태1,20) 가브리엘 천사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천사는 꿈에 나타나 에집트로 피신할 것을 일러주는 가 하면(마태2,13), 흰옷을 입고 예수님의 부활을 알려주며(마르16,5), 심판 때에는 그리스도를 옹위하여 나타날 것이라고(묵시22,6) 성경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 곳곳에서 천사는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요.
천사에 대하여 교회의 학자들은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디오니시오 성인입니다. 성인은 성경을 바탕으로 하여 9품 천사에 달하는 천사의 계보를 만들었습니다.
9품 천사란 천사의 등급을 치품(Seraphim), 지품(Cherubim), 좌품(Thrones), 권품(Dominantes), 능품(Principatus), 역품(Potestates) 주품(Virtus), 대(大)천사(Archangelus), 천사(Angelus)로 분류한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은 아니고 천사에 관한 디오니시오 성인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그렇다면 천사에 관하여 우리 신자들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 것일까요? 믿어야 할 것은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과 감각을 초월하는 영원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바로 그것입니다.
천주교회는 745년 라테라노 공의회 때까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이라는 이름 이외에는 다른 천사의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하였습니다. 그러나 1215년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천사의 존재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지요.
천사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 역할이 무엇인지, 그리고 과연 각 사람에게 수호천사는 존재하며, 천사의 등급이 또한 존재하는지에 관하여서는 권위 있는 해석을 유보한 채 다만 천사의 존재만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이 증명해주듯이 예전에는 천사들의 활약이 돋보이고 천사의 존재에 관한 가르침도 확고했는데, 왜 우리 시대에는 천사의 존재가 희미해지고 믿어야 되는지 믿지 말아야 되는 지도 모를 정도로 천사의 존재가 퇴조를 보이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천사는 주로 하느님의 뜻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입니다.
하느님의 뜻, 즉 계시(啓示)의 원천이 성경에 그대로 다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느님의 뜻을 새롭게 전달해 줄 이유가 없어진 셈이지요. 성경 안에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에게는 그 성경을 해석하고 설명해주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옛 예언자들이 사라진 것과 맥을 같이 합니다. 구약시대 많은 예언자들이 어느 순간 사라진 것은 하느님의 뜻을 전달해 주는 성경이 집대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계시의 원천인 하느님의 뜻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성경이 우리에게 전해지면서 이제는 더 이상 예언자들의 역할이 필요 없게 된 것이지요.
예언자들은 사라지고 성경을 해석해주는 율법학자들이 존재하게 됐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같은 맥락이지요.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또 성경을 해설해 주는 성직자와 수도자, 교리 교사들이 많아지면서 비교적 쉽게 하느님의 뜻을 전달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천사들이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시대에 따라 계시의 방법도 달라집니다. 이제 계시의 방법이 '천사'에서 '성경'으로 변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천사의 역할이 많이 퇴조해 있지만 분명한 것은 라테라노 공의회의 가르침대로 천사는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회에서는 천사에 관한 축일로 오늘 9월 29일을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로, 또 10월 2일을 '수호천사 축일'로 정하여 공경하며 장려하고 있지요.
오늘 축일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미카엘 대천사의 이름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라는 뜻을 지닙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악의 세력과 싸워 승리를 거둔 천상 군대의 지도자로 소개됩니다.
요한 묵시록 12장에 미카엘 대천사가 나옵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운 것입니다. 용과 그의 부하들도 맞서 싸웠지만 당해 내지 못하여, 하늘에는 더 이상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습니다.'(묵시12,7-8)
우리는 미카엘 대천사를 악마의 유혹으로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고, 임종하는 사람들을 보살펴 주는 보호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의 이름은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다니엘에게 나타나 환시를 보여 주었으며(다니9,21 이하 참조), 무엇보다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그리고 나자렛의 마리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해 주었습니다(루카1,26 이하 참조).
라파엘 대천사 의 이름은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구약 성경의 토빗기에 나옵니다. 청년 토비야를 먼 곳까지 안전하게 안내하여 아버지의 심부름을 완수하게 하고, 아내 사라를 맞이하게 도와주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대천사는 임무를 다 마치고 토비야에게 자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나는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서 대기하고 또 그분 앞으로 들어가는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인 라파엘이다."
우리는 라파엘 대천사를, 이 세상의 삶을 잘 마치고 영원한 천국으로 무사하게 순례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도와주는 분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매일 미사 9월호 참고)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의 뜻을 전달받습니다. 또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을 마치 '천사 같다'라고도 표현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담긴 성경을 자주 접하고 성경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천사 같이 사는 우리의 모습임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오늘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을 지내면서 하느님의 말씀대로 착하게 사는 여러분이 바로 천사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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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김종기 바오로 신부님]
오늘은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축일입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강함’ 또는 ‘하느님의 사람’이란 뜻이고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자’라는 뜻이며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라는 뜻입니다.
주님 앞에 서 있는 일곱 대천사 중의 한 분인 라파엘 대천사는 토비아와 사라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천사였습니다.
또 요한 5장 14절에 보면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을 휘젓곤 하였는데, 물이 움직일 때 맨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나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주님의 천사’가 바로 라파엘 대천사라고 교회 전승은 전하고 있습니다.
미카엘 대천사는 외경에 더 많이 등장하는데 주로 천상군대의 장수나 그리스도인의 보호자, 특히 임종자들의 수호자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가브리엘 대천사는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 준 대천사이며, 즈가리야와 마리아에게 탄생을 알린 하느님의 사자로 등장합니다.
어떻든 성서에 나오는 천사 이야기는 그 모두가 하느님께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고 계심을 알려주기 위해 등장합니다.
어릴 때 저의 어머니는 수호천사들이 늘 우리를 지켜주신다고 가르쳐 주셨고, 특히 로사리오를 드리다 잠이 들면 나머지는 수호천사가 대신 기도를 해 주신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오늘까지도 저는 잠들기 전에 로사리오 기도를 드리는 습관이 남아 있습니다. 수호천사가 나머지를 바쳐 주시기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언제 어떤 위험이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는 위태한 현세 생할 속에서 우리 자신도 모르게 위험에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느님의 손길이 있다는 것은 마치 든든한 보디가드를 항상 데리고 다니는 것과 비슷한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우리의 수호천사들이 우리를 악에서 보호해 주시기를 간청하며 하루를 보낸다면 누구보다 가까이 하느님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하느님의 자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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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하나의 가치관만을 정답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타인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말, 행동으로 ‘예의 없다’, ‘개념이 없다.’ 등 수많은 비난과 지적을 합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는 물음 자체가 없습니다. 솔직히 이 대상의 주인공이 자신이었을 때, 참으로 견디기가 힘들어집니다. 나의 의도를 자기 생각으로 바꿔놓고, 내 생각은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만들 때 과연 편할까요? 그런데 더 힘들게 느껴질 때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이 아니라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의 말을 더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체험을 인터넷 활동을 하며 몇 차례 겪었습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으로부터의 받는 비판을 견디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얼굴이 비치는 방송은 사양이고, 댓글은 무조건 무시합니다. ‘그러든지 말든지….’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래야 저 자신이 살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스스로 겪어보니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 역시 판단 받을 수 있음을 떠올리며 그의 장점을 봐주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줘야 합니다. 개인을 향한 비난은 그저 한순간의 통쾌함을 바라는 폭력이자, 정의, 예의,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억압입니다.
나타나엘은 자기 형 필립보와 마찬가지로 예언서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대단한 것은 성경을 자신의 해석에 맞추기를 거부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간 것도 사람들의 해석을 거부하는 행동이었고,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그를 칭찬하셨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주장 안에 갇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천사는 사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하느님의 심부름꾼들입니다. 심부름꾼들을 볼 수 있는 거룩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대천사들은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 주는 조력자이자 파견자, 치유자로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런 거룩한 존재와 함께할 수 있어야 하느님의 조력과 치유 그리고 영광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희망 안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한 존재에 더 가까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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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준비>
처음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제주도를 자전거로 일주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자전거를 타면 200km 이상 갈 것이고, 따라서 하루면 충분히 제주도 일주를 마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처음 시작은 기분도 좋았고 이곳저곳 구경도 하면서 신나게 달렸습니다. 너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낮이 되어 뜨거운 햇빛이 내리비치면서 땀은 비 오듯이 쏟아지고 점점 더 힘들어졌습니다. 엉덩이는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얼얼했고 다리 역시 “제발 좀 쉬어!!”를 외치는 것만 같았습니다. 결국, 하루에 완주하는 것을 포기하고 이틀 만에 힘들게 완주했습니다. 그러나 재미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힘든 기억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장거리 여행을 하려면 몇 차례 자전거로 미리 장거리를 다녀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의욕만으로 하루 만에 제주도 일주를 하겠다고 했으니 얼마나 무모합니까?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이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준비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혹시 그냥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가겠다고만 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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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우리 모두 하느님의 천사들이다>
-찬미와 심부름-
오늘은 참 아름답고 고마운 축일입니다. 바로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와 모든 거룩한 천사 축일입니다. 세상 한 복판에서 천사처럼 살아가는 오늘 축일을 지내는 대천사 세례명을 가진 참 많은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축복을 비는 마음입니다.
잠시 천사들에 대한 교회 공식 견해를 나눕니다. 교회는 천사들의 존재를 신앙 교리로 선언(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 제1차 바티칸 공의회)하였지만, 천사에 대한 학자들의 여러 학설에 대해 유권적 결정을 내린 적은 없습니다. 다만 교회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천사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들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다만 오늘 세 대천사 축일과 수호천사 기념일을 제정하여 천사 공경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수도승 전례력에서는 대천사를 비롯한 수도천사 및 모든 거룩한 천사들을 오늘 경축합니다.
말 그대로 ‘천사들의 날’같은 기분 좋은 축일이요 우리 주변의 천사처럼 고마운 분들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날입니다. 천사는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로써 하느님을 모시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종종 하느님으로부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천상의 메신저로 파견됩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가 성서에서도 자주 목격하는 사실입니다. 오늘 제1독서 다니엘서 전반부가 바로 하느님 옥좌 주변을 가득 에워싸고 있는 천사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같았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감각의 대상인 이 세상과 우리의 감각을 초월하는 영의 세계도 창조하셨다는 것을 일깨우며 교회는 천사의 존재를 신앙 교리로 선포합니다. 천사들에 대한 교회의 견해를 개략적으로 소개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세 대천사를 통해 우리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천사들은 그대로 자비하신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존재들입니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이며, 천상 군대의 장수, 악에 대한 수호자, 임종자의 수호자로 등장합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이란 뜻이며, 즈카르야와 마리아에게 각각 탄생을 알린 하느님의 사자로 등장합니다. 이어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으로 토비아를 위해 파견된 천사이며, 맹인들의 수호천사로 큰 공경을 받습니다.
이처럼 천사들 이름 말마디 마다 하느님이란 뜻의 ‘엘’이 따라 붙는 것을 통해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의 휘하에서 하느님의 전능과 자비를 드러내는 실재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도 참 심오합니다. 제가 볼 때 나타나엘을 주님께 인도한 필립보는 나타나엘에게는 그대로 천사였습니다. 마침 어제 본당 사제가 친구 신부를 저에게 안내했을 때 친구 신부의 순수함에 마음이 끌려 나타나엘 대신 친구 신부의 이름을 넣어 말씀 처방전을 써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오로 신부가 당신 쪽으로 가까이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이 말씀이 생각나 써줬는데 바로 오늘 축일 복음임을 알고 얼마나 신기하던지요! 이 복음을 강론할 때 마다 반드시 언급하는 이 대목입니다. 주님과 나타나엘의 만남은 참사람과 참사람, 영혼과 영혼, 순수와 순수, 천사와 천사의 만남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참 나를 발견한 나타나엘에게는 그대로 평생 잊지 못할 구원체험이었을 것입니다. 나타나엘은 우리 수도자는 물론 모든 신자들이 롤모델임을 깨닫습니다.
결코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 나타나엘의 하느님 찾는 갈망이 무르익어 순수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선물처럼 주어진 만남이겠습니다. 천사같은 순수와 열정의 두분의 만남은 이어지는 나타나엘의 고백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이십니다.”
천사처럼 순수한 영혼의 눈에 환히 드러난 예수님의 정체입니다. 자기의 신원을 알아 챈 예수님은 한껏 고무되어 나타나엘에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것을 은밀히 예고해 줍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볼 것이다.”
그대로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하늘길이자 하늘문으로 계시됩니다. 바로 이 복음 말씀은 창세기의 야곱이 꿈에 본 하느님과 그의 백성들을, 즉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인 천사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강생하시고 부활하신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은 바로 하느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의 다리와 같고 사다리와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의 궁극의 사자로써 대천사들의 대천사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오셨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께 갑니다. 그러니 제1독서 다니엘 예언서 후반부 말씀이 오늘 복음의 이런 예수님을 통해서 실현됨을 봅니다.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모든 이들의 아버지께 이르는 진리와 생명의 길이자 다리이자 사다리인 파스카의 예수님이 온 우주는 물론 인류역사의 중심이 되심에 대한 예언으로 점차 실현되고 있음을 믿습니다.
천사들중의 천사가 예수님이십니다. 천사의 역할은 하느님 찬미와 하느님의 심부름꾼 역할입니다. 그러니 매일 평생 끊임없이 성당 제대 주변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되어 일하면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수도자들은 그대로 하느님의 천사들을 닮았습니다. 천사처럼 살다가 천사처럼 떠나신 바오로 수사님입니다.
비단 수도자들뿐 아니라 세상에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되어 살아가는 모든 신자분들 역시 익명의 천사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천사같은 역할을 새롭게 확인하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화답송 후렴처럼 천사들 앞에서 찬미 노래 부르는 우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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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청주성모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천사>
천사는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도와주는 심부름꾼입니다. 우리 인간을 위해서 파견된 일꾼입니다. 히브리서1장 14절에는 “천사들은 모두 하느님을 시중드는 영으로써, 구원을 상속받게 될 이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되는 이들이 아닙니까?” 하고 적고 있습니다. 천사란 말은 그들의 정체나 본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맡고있는 직무와 사명을 뜻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은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우주를 다스리는 하느님의 일에 협조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될 때 우리도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의 아브라함은 길손을 대접하다 천사를 만나는 축복을 얻었습니다.(창세18장) 다니엘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기도 응답의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다니8,17) 토비트는 라파엘 대천사를 통해 눈을 뜨는 기적의 축복을 누렸습니다.(토비11,4-13) 구약에서 천사론이 전개되는데 하느님의 아들, 거룩한 자, 수호자 등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하느님의 피조물이요, 순수한 영적존재로 나타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고(루카1,28), 요셉의 꿈에 나타난 분도(마태1,20) 가브리엘 천사입니다. 루가2장14절에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탄생 때 천사들이“하느님께 영광”이라고 찬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천사는 꿈에 나타나 마리아가 이집트로 피난할 것도 알려주고(마태12,13),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실 때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습니다.(마르1,13) 또한 흰옷을 입고 부활을 알려주었으며(마르16,5), 심판 때에는 그리스도를 옹위하여 나타날 것(묵시22,6).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창조하셨다고 가르치며 천사들이 영적인 실체라고 가르칩니다.(1차 바틴칸 공의회) 그리고 선한 천사들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께 봉사한다는 생각은 성경에서 나온 사상입니다. 그리고 천사들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이바지한다는 것은 성경과 교회 정통 가르침에 의거한 교회의 신앙입니다.
각 사람에게는 수호천사가 있습니다. 우선 길을 인도하고 돌보는 존재로서 사람과 동행하는 천사입니다. “주께서 너를 두고 천사들을 명하여, 너 가는 길마다 지키게 하셨으니, 행여 너 돌부리에 발을 다칠세라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고 가리라.”(시편91,11) 마태복음은 “너희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하늘에 있는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를 항상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어라”(마태18,10).하고 각자에게 배속된 천사를 언급합니다.
결국, 천사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해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천사에 대한 의식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을 통해서 그리고 예언자와 율법학자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알려졌지만, 이제는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성직자나 수도자, 교리교사를 통해 예수님의 계시진리가 좀 더 쉽게 전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천사의 존재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 천사는 존재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18,10) 각 사람을 수호하는 천사들이 있지만, 이제는 하느님의 뜻을 사는 내가 천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이웃에게도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이 되어야 합니다. 천사를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천사가 되는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손길을 통해 이미 천사를 만났습니다. 이제 누군가의 천사가 되어주어야 할 때입니다. "아무리 우리 눈에 부족하게 보인다 해도, 지금 우리의 일상이 천상의 영광과 기쁨을 만날 자리입니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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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견줄 수 있느냐?'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만군의 주님 사령관으로 악마를 물리치는 대천사 입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영웅’, ‘하느님의 권세’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라파엘은 ‘하느님의 치유자’, ‘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라는 의미입니다.
@@ 축일을 맞이한 모든 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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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님]
♡알타반의 말씀 사랑♡
대천사 축일인 오늘, 우리는 미사의 말씀에서 천사가 어떤 존재인지 배웁니다.
복음에서는 나타나엘과 예수님의 만남 장면이 그려집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에게는 거짓이 없다."(요한 1,47)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을 보고 말씀하십니다. 한 인간으로서 예수님께 이런 칭찬을 받는다면 세상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참 이스라엘 사람"은 불륜과 죄와 배반으로 부정해지기 전,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순결한 신부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계약 상대로 불림 받아 주님과 약속을 나누던 그 순간의 이스라엘에게는 거짓도, 계산도, 속셈도 없었습니다. 주님의 신부, 그분 백성이 된 감사와 영광으로 충만한 상태였지요. 예수님은 나타나엘이 그런 순결함을 간직한 채 하느님 나라를 고대하는 사람임을 보셨고 아셨습니다.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요한 1,49)
나타나엘이 화답합니다. 한 쌍의 연인이 서로를 향해 사랑의 환성을 올리는 아가의 한 장면이 연상됩니다. 서로는 서로를 알아보고 기쁨에 겨워 외칩니다. 티없이 순수한 바라봄과 알아봄, 그리고 확신의 순간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이 말씀은 우리를 창세기의 한 대목으로 데려갑니다. 에사우를 피해 하란으로 가던 야곱의 꿈 이야기입니다.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창세 28,12)
야곱과 하느님을 잇는 층계는 사다리와 같습니다. 사람의 아들이시며 참 하느님이신 예수님은 하느님과 세상을 잇는 존재시지요. 그 위를 하느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립니다. 천사는 메신저의 역할을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람을 보호하지요.
"하느님 현존, 하느님의 집, 하늘의 문"(창세 28,16-17 참조)
야곱이 꿈에서 깨어나 고백하였듯이,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하늘 계단의 자리가 곧 하느님 현존의 자리이고 하느님의 집입니다. 하늘의 문이기도 하고요. 예수님이야말로 이 세상에 드러나신 하느님의 현존이시고, 하느님의 집인 성전이며(요한 2,21 참조), 하늘의 문이십니다.(요한 10,9 참조) 그러므로 나타나엘에게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은 참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적 뿌리를 일깨우신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과 사람의 아들이 만나는 환시 장면이 장엄하게 펼쳐집니다.
"그분을 시중드는 이가 백만이요, 그분을 모시고 선 이가 억만이었다."(다니 7,10)
"연로하신 분"으로 표현되는 하느님 주변에 천사들이 운집해 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시중들며 섬깁니다. 백만, 억만이라는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를 의미하지요.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다니 7,13)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앞으로 나아옵니다. 인간 세상으로 치자면 황제의 대관식과 같은 장면이 펼쳐집니다.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사람의 아들께 주어지고, 이제 온 세상 모든 민족이 사람의 아들을 섬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앞으로 보게 되리라고 말씀하신 광경은 단순한 천사들 발현을 뛰어넘습니다. 천사들은 하느님 현존을 보필하는 동시에 그분의 뜻을 품고 와서 전달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있다면 그곳은 하느님 현존의 자리이고 옥좌인 셈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주님께서는 이 지상의 고된 순례 여정을 걸어가는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천사를 보내주십니다. 하느님의 뜻이 전해지는 자리가 곧 하느님 현존의 자리이니, 우리는 천사를 알아보고 받아들이면서 하느님을 받아들입니다. 아울러 우리도 누군가에게 주님의 뜻을 전하는 천사의 역할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나 같이 부족한 사람이 언감생심 어떻게 천사일 수 있느냐고요? 오늘 말씀에 그 답이 들어 있습니다.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의 모든 천사들아,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고 그분 말씀을 따르는 힘센 용사들아"(입당송)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의 모든 군대들아, 그분 뜻을 따르는 모든 신하들아"(복음 환호송)
천사는 첫째, 주님을 찬미하는 존재입니다. 둘째, 주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존재지요. 셋째, 천사는 그분 말씀을 따릅니다. 또 천사는 그분 뜻을 행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토록 부족하지만, 삶 안에서 주님께 찬미를 드리며 그분 말씀을 경청하고 따르면서, 주님 뜻을 행하면 감히 천사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약한 우리를 위해 보내주신 천사를 두 눈 크게 뜨고 찾아보는 오늘 되시길, 또 나에게 허락하신 가족, 이웃, 온 세상의 이름 모를 가난한 형제자매들에게 부족하나마 천사로서 다가가는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서로에게 천사가 되어 주는 그 자리가 곧 하느님 현존의 자리니까요. 우리 모두의 축일을 축하드립니다.
대천사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저희를 온갖 위험에서 지켜 주시고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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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김홍언 요한보스코 신부님]
♡김홍언 신부님의 영성의 샘물♡
♥내가 나를 존중해야 다른 사람들도 따라합니다
“사람들이 저한테 불친절하고, 무시하듯 함부로 대합니다.”라고 하는 사람의 고민들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원인이 상당 부분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선 내가 먼저 다른 사람들을 무시한 경우, 다른 사람들이 나를 고운 눈으로 볼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격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기에 다른 사람이 자신을 대접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만 집착합니다.
♣다음으로 열등감이 많거나 자기 연민에 빠져 매일 징징대며 사는 경우도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느라 급급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피로감을 주어 결국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게 되기도 하지요. 사람들은 강아지가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면 안쓰러워 하지만 사람이 애처로워 보이면 동정심마저 피로감으로 변질되어 다가오는 것입니다.
-「나는 생가보다 괜찮은 사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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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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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수도회 양주분회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오늘은 성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교회는 4차 라테란공의회(1215년)와 1차 바티칸공의회(1870년)를 통해, 천사의 존재를 신앙교리로 선언하고 있지만, 천사의 본질과 역할이 무엇인지, 혹은 사람마다 수호천사를 가지고 있는지, 여러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등의 학자들의 주장(그레고리오 대종의 천사직무론, 디오니시우스의 9품 천사론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유권적 결정도 내리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천사론>에서 믿어야 할 교리는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곧 천사는 존재한다는 것과 천사는 우리의 감각을 초월하는 영적존재로서 하는 일은 사자(천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수호천사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가 인정한 성경에 나오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말고는 다른 위경에 나오는 다른 천사의 이름을 사용하거나 기리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계급적인 9품천사론은 믿어야 할 교리가 아니라, 단지 전승에 불과할 뿐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천사는 하느님의 사자들이요, 하느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들이요, 하느님을 섬기는 영적인 존재들로서(히브 1,14), 자주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기념하는 “미카엘 대천사”는 ‘누가 하느님과 같은가’라는 뜻을 지녔으며, 주로 천상 군대의 장수요, 악에 대한 수호자요, 임종자의 수호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힘’이라는 뜻을 지녔으며, 다니엘이 본 환시와 예언을 설명해 준 대천사이고, 즈가리아와 마리아에게 각각 탄생을 알린 하느님의 사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라파엘 대천사”는 ’하느님의 치유’라는 뜻을 지녔으며, 토비아를 위해 파견된 천사이고, 맹인들의 수호천사로 큰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천사 이야기는 모두가 하느님께서 갖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관심을 쏟고 계시다는 진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곧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천사들은 인간에게 봉사하고, 인간을 보호합니다. 곧 인간인 우리가 존귀하기에,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대천사를 보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오늘, 우리는 대천사들의 축일을 지내면서, 하늘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이야기를 어디에서 들을까? 그리고 하늘은 어디에서 열릴까? 대체, 어떻게 하늘을 만날 수 있을까?
그것은 만남의 신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나타나엘의 만남에서 하늘이 열렸듯이, 예수님의 세례 때 하늘이 열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셨듯이, 오늘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곧 하늘이 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늘이 땅에서 열리는 것은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늘을 우리 안에서 만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분명, 우리 안에는 당신이 계시니, 우리가 곧 당신께서 계시는 하늘이 됩니다. 그러니, 사실 하늘은 이미 열려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자리요, 우리 ‘일상의 삶’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계시며, 우리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미 그분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대천사 축일을 맞아 우리의 마음과 일상 안에서, 하늘을 열고 주님의 사랑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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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주님,
땅에서 열리는 하늘을 보게 하소서.
우리 안에 계신 당신을 보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이, 하늘이 열리는 자리가 되고
우리 일상의 삶이, 하늘이 열리는 장소가 되게 하소서.
우리가 만나는 이들과 우리가 하는 일 안에서
하늘을 열고 주님의 사랑을 만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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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님]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요한1,47)
<천사가 됩시다!>
오늘은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입니다. 먼저 오늘 영명축일을 맞이한 많은 형제님들과 자매님들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우리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을 두고 천사 같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천사는 외모가 깔끔한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 마음 안에 거짓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쪽으로 오는 나타나엘을 보시고, 그에게는 거짓이 없는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하느님의 천사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독서는 '다니엘서의 말씀'입니다. 다니엘서는 요한 묵시록과 함께 장차 우리가 들어가려고 하는 천상예루살렘의 모습, 완성된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곳은 마음이 깨끗하고, 마음 안에 거짓이 없는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
십자가 앞에서 묵상하는 사람!
십자가의 사랑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에 간직하는 사람!
이런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성체를 받아모시는 사람!
이런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들이 마음이 깨끗하고, 마음 안에 거짓이 없지 않을까요? 바로 이런 사람들이 보이는 것 그 너머의 있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천사들은 지금 여기에서도 만날 수 있는 우리의 친구들이지만, 조금 후인 완성된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할 친구들입니다.
천사가 됩시다! 지금 여기에서부터 하느님의 일을 도와드리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됩시다! 그리고 조금 후인 천상예루살렘에서 하느님의 천사들을 만납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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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성심시녀회 소보둥지 김연희 마리아 수녀님]
(5분 아침묵상)
https://www.youtube.com/watch?v=cmNwTNSPcPU&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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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 51)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삶이 중요하다.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린다.
하느님의 사랑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하느님의 사랑은
처음과 끝이
한결같다.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사랑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있을 수 없다.
대천사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우리는 알게 된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영원한 사랑이다.
사랑 안에
대천사가 있다.
대천사는
사랑이신
하느님을
향해 있다.
대천사는
하느님의 사람들을
더욱 충만하게 한다.
하느님의 뜻을
전달한다.
인간의
시간이 아닌
하느님의 시간임을
깨닫게 한다.
사랑은 모든
시간을
아름답게 한다.
가장 강력한
사랑은
하느님 사랑뿐임을
대천사들은
우리들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대천사들은
거룩해지는
삶으로 우리를
이끈다.
거룩함을 통하여
성숙되고
성장하는 것이다.
사랑은
대천사들도
사람들도
하느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한다.
하느님 사랑은
뜨겁고
변하지 않으며
언제나 한결같다.
사랑은
대천사들을 통해
단절되어 있지 않으며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랑은
거룩함을
지향한다.
하느님을
드러내는 삶이
거룩함이다.
거룩함으로
변화시키시는
하느님의 놀라우신
사랑이다.
사랑은
대천사와 더불어
거룩한
사랑의 자녀가
되게 한다.
사랑으로
빛나고
치유되고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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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2013. 10. 24
연희동성당 류상현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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