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산(마른 나무가지), 밤나무골 등의 지명과 혈처의 형상, 산줄기 모습, 곳곳에 알밤이 떨어져 있는 형상 바위 등이 이 자리가 밤이 떨어져 나간 자리라 확신 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번 간산 때 확실하게 확인을 하지 못해 다시 찾아 보았다.
자좌오향, 한겨울 밤나무라 앙상한 나무형상이다.
이를 두고 검척형이니 무슨 형이니 말들이 많은데 이 형상을 모르니 나오는 말에 불과하다.
따라서 혈처도 현재같이 능선 바로 아래가 아니고 능선 옆 우묵한 와혈자리가 정혈처이다.
즉 밤이 떨어져 나간 자리. 그리 되어야 장풍도 되고 안산은 산줄기가 끝나는 아래 큰 밤이 떨어진 바위 형상과 일치 된다.
이 자리는 퇴계선생이 성리학의 대학자가 되는데 결정적인 힘을 준 묘소라 평가한다.
자연의 이치가 너무나 신비롭다.
子좌 午향
이 능선 아래 묘소가 있다.
밤나무골
묘소 아래에서, 최 상단이 이 정 묘소
큰 알밤
첫댓글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능선에 있는 현재 자리는 혈이 아니고 그 옆 와로 된 곳이 진혈이라고 하시면서도 비혈지에 있는 현재의 묘소가 퇴계선생이 대학자가 되는데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은 모순되지 않는가요. 비혈지이라면 발복과 무관하다고 보아야 되지 않을가요?
혈처 바로 옆이니 발응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고, 다만 원 역량은 감소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퇴계 조부가 잡았다는 탄생지가 발복처가 되는 명당이라는 견해가 옳지 않을가요?
소생은 음택60~70%
양택30~40% 정도가 영향을 미친다고 보며,
당연히 양택 명당 기운도 보태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