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문을 열면 하늘 문도 열린다>
다니엘 6:3-10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게 있습니다.
처음 아이가 생겼을 때는 그 자체로 기뻤습니다.
그렇게 열 달이 흘러 세상 밖으로
아이가 나왔을 때도
울음 소리와 찡그리는 얼굴 자체로 감사했습니다.
처음 걸음마를 하고 처음 ‘아빠’를 불렀을 때는
감격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기쁨과 감사, 감격보단
실망과 야단이 커져가는 것을 느낍니다.
왜 이렇게 된걸까?
예나 지금이나 품 안에 있는 자녀인데도 말입니다.
그것은 익숙함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엔 모든 게 신기하고 새로웠습니다.
그래서 다 기쁘고 감사했죠.
하지만 점점 아이의 행동이 당연해지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익숙해지면서
달라졌습니다.
처음으로 아빠를 불렀던 그때보다
훨씬 말을 잘하는 지금이
너무 당연한 게 되어버렸습니다.
처음 마음을 잃어버리면 감사할 제목이 줄어듭니다.
설교를 준비하며 이런 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감사할 것을 떠올렸습니다.
아이가 삼시 세끼를 잘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아이가 건강하게 바깥 생활을 잘하고
돌아오게 하셔서 감사하다.
아이가 잘 자게 하셔서 감사하다.
그러자 점점 아이의 모습이 사랑스러워졌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도 이와 같지 않습니까?
예전에 처음 예수님을 깊이 만났을 땐
모든 게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에 익숙함 때문에 교회도,
예배도 모두 시시해져 버린 거 아닙니까?
우리의 익숙함을 벗어나기 위해선
감사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이야기가 바로 감사에 대한 말씀입니다.
함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갔던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마음대로 살던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침공을 받습니다.
이때 왕족과 귀족들 중에 일부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여기에 속했던 사람이 바로 다니엘입니다.
정확한 나이는 나오지 않지만
그가 처음 끌려갔을 때가
10대 후반~20대로 보여집니다.
그는 바벨론의 문화와 언어, 관습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신앙에 있어서만큼은
누구에게도 타협하지 않았죠.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특별한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포로 신분임에도
바벨론의 2인자가 되었어요.
이건 마치 오늘날 미국으로 간
아시아 이민자가 부통령에 오른 것과 같습니다.
엄청난 기적 아닙니까?
세월이 흘러 다니엘도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강대국의 패권도 계속 바뀌었습니다.
다니엘 5장 31절에 매데 사람 다리오가
왕이 된 것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다니엘은 바뀐 왕조에서도
총리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다니엘은 누구보다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이 민첩하여’란 말은 뛰어나다는 의미입니다.
비록 그는 이민자 신분이었지만
본토 출신의 어떤 누구보다 뛰어났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이유를 다루기 전에
먼저 그에게 찾아온 위기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수석 총리로 세운 일은
궁궐 내에서 큰 비판을 불러왔습니다.
포로 출신에다가 바벨론 제국의 관료였던 그에게
중직을 맡길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죠.
그들은 다니엘을 고소하려고 했지만
어떤 흠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계획을 세웁니다.
왕에게 찾아가 말하죠.
“위대하신 왕이시여,
당신의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이제 당신 외에 다른 신에게 절하거나
기도하는 자는 사자굴에 던져 넣으면
어떻겠습니까?
이 문서에 도장만 찍어주시면
나머진 저희가 다 하겠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가져와”라고 하며
흔쾌히 도장을 찍어줍니다.
이제 그 누구도 왕 외에 다른 신에게 경배하거나
기도하면 황천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을 죽이려는
다른 관료들의 계획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했습니까?
본문 10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다니엘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는 위기 앞에서 ‘감사’했습니다.
우리도 때론 인생의 어려움을 만납니다.
그럴 때마다 다니엘처럼
감사하는 인생이 되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의 모습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감사의 원리는 어떤 게 있을까요?
1) 감사는 선택입니다.
다니엘은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생사의 기로 앞에서 그는 어떤 선택을 하였나요?
사자 굴에 빠질지라도 감사하기로 결단한다.
다시 본문을 한번 보겠습니다.
다니엘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저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묵상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총리의 힘을 이용해서
반대파를 묵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왕에게 찾아가 자기에게만
특별 혜택을 베풀어 달라고 해도 될 텐데?’
‘그리고 굳이 창문을 열고 기도하는 건 뭐지?’
그렇게 묵상하던 중 깨달았습니다.
‘감사는 행복하거나
좋을 때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
감사는 선택입니다.
다니엘의 행동은 일반적인 상식으론
이해되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분노를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그걸 포기하고
감사를 선택하는 겁니다.
우리의 마음은 모든 일의 근원입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달라집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먹기로 선택하면
감사하는 말이 나오고,
그로 인해 행동이 자유로워집니다.
반대로 불평하는 마음을 먹기로 해보십시오.
그러면 불만 섞인 말이 터집니다.
그리곤 이내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말죠.
군대에 가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너무 잘하지도, 또 너무 못하지도 말고
딱 중간만 가라’
그런데 이 말에 정면으로 반박했던
선배가 있었습니다.
이 선배는 군필자였습니다.
그래서 군에 입대하는 친구들이
자주 그 형을 찾아갔죠.
그러면 꼭 이렇게 말했어요.
“군대에 가면 누구보다 열심히 해.
그게 크리스천의 모습이야.”
내가 누군지를 알고 일을 하는 것과,
그러지 않고 남들과 똑같다는
생각 속에 하는 것을 완전히 다릅니다.
그 선배는 크리스천으로서 군대에서도
최선을 다할 것을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남들처럼 전역 날만을 기다리며
대충하지 말라는 거였죠.
저도 군대에 가보니 알겠더라고요.
정말 딱 중간만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형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매사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저를
인정해주기 시작했어요.
동시에 엄청난 업무가 주어지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굳이 이걸 해야하나?’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서 다니엘의 마음으로
감사를 선택했습니다.
‘나는 비록 군인 신분이지만
여기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우게 하시니 감사하다.
많은 일을 맡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니 감사하다.’
이렇게 감사를 선택하니
감옥같이 여겨지던 군생활도 즐거웠습니다.
물론 전역이 훨씬 행복했지 말입니다.
감사하는 것은 선택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본인의 몫입니다.
찰스 스윈돌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문제의 10%는 객관적인 사실이지만,
나머지 90%는 우리의 반응에 의해 결정된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를 선택하십시오.
감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줍니다.
그리고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함께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는 감사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인 줄 믿습니다.
2) 두 번째로 감사는 훈련입니다.
본문에 보면 다니엘이
‘전에 하던 대로 했다’고 나옵니다.
무슨 말인가요?
창문 열고 기도하는 게 처음이 아니란 말입니다.
다니엘은 늘 감사를 훈련했었습니다.
군필자가 미필자를 구분하는 방법 중에
가장 쉬운 게 뭔지 아십니까?
경계 자세를 보는 겁니다.
군대에 가면 제식 훈련을 합니다.
경례를 할 때 손의 각도까지도 다 배웁니다.
처음엔 이게 어색해요.
그런데 훈련소 기간만 지나면
경례할 때 각이 달라집니다.
손이 칼날처럼
날카롭고 예리하게 눈썹 옆에 고정되죠.
그래서 군필자들은 경례 자세만 봐도
미필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비단 경례뿐만 아닙니다.
총을 쏘는 훈련, 가스실 훈련,
특기 교육 등이 왜 필요합니까?
전시와 같은 위기 상황이 왔을 때를
대비하기 위하기 아닙니까?
그때가 되면 자기도 모르게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만드는 게 훈련입니다.
그래야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훈련은 매우 중요합니다.
감사도 훈련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기로 매일 훈련해야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번주에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경기가 있었습니다.
손흥민 선수가 멋진 중거리 슛으로
상대방의 골문을 갈랐습니다.
누가 봐도 멋진 슛이었죠.
경기가 끝나고 인터뷰를 하는데,
어떤 기자가 묻습니다.
“어떻게 그런 멋진 골을 넣을 수 있었나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위치였고,
가장 많이 훈련한 위치였습니다.
때리는 순간 공의 궤적을 보고
들어갔다고 느꼈습니다.”
손흥민의 아버지도 축구선수였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훈련할 땐
스파르타식으로 했다고 합니다.
어제의 골은 훈련 때
수천, 수만 번씩 했던 슛이었기에
같은 상황이 왔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했던 거죠.
감사가 훈련되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마음이 생길 틈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훈련입니다.
3) 그리고 감사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이유로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집니다.
그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왕은
다니엘을 찾아갔습니다.
사자 굴을 덮어둔 문을 치웠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니엘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의 문을 열면 하늘 문도 열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자 굴에 떨어졌던 다니엘을 위해
하늘의 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하늘 문을 여시고
친히 사자의 입을 막아주셨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 바울이 실라와 함께
전도 여행을 하다가 감옥에 갇힙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깊은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 속에 감사할 게 있겠습니까?
오히려 불평하라고 하면 한보따리를 해도
부족하지 않죠.
바울과 실라가 서로를 쳐다봅니다.
그리고 이야기 하죠.
“오늘 맞은데는 괜찮아?”
“오늘따라 좀 쑤시는데 버틸 만해.”
“그래. 그래도 우리가 언제 이렇게
감옥에 갇혀 보겠어?”
“그렇게 말이야. 예수님 때문에
이렇게 고난도 겪네.”
“난 정말 감사해.
내 인생에 예수님 안 만났으면
죄나 짓고 살았을텐데
나를 구원해 주신 은혜로 여기까지 왔네.”
“그러게.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 이러지 말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겠나?”
“너무 좋고 말고.”
“지금 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이렇게 감옥에 갇혀서 불평할 게 한 가득이었지만,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어떻게 되었나요?
감옥 문이 열리고 간수장이
예수를 믿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옥에 수없이 갇혔던 바울이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빌립보서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눈을 뜨면 걱정 거리가 떠오르십니까?
염려할 일 많은 게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하나님의 평강이 필요합니다.
그 평강을 경험하기 위해선
감사함으로 나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지금 감사하십시오.
나중에 잘되고 나서 감사하려다간
사자 밥이 되고 맙니다.
이번주 말씀을 준비하며
계속 떠올랐던 찬양이 있습니다.
찬송가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3절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의 사랑 어찌 큰 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성령 감화받은 영혼 하늘나라 갈 때에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감사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길 원하십니까?
날마다 우리 입에서
“예수 인도하셨네”가 터져 나오는 게 감사예요.
그러면 우리도 사자 굴에서 건져질 줄 믿습니다.
감사의 습관을 멈추지 마십시오.
이를 위해 감사 훈련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늘 문이 열리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