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태종대 기행 Photo 에세이
*. 영도 이야기
항구 도시 '부산'하면 영도를 생각하게 되고, 그중 영도다리가 생각난다.
영도다리를 더욱 유명하게 한 것이 나훈아의 "굳세어라 금순아" 로 6 25 피난살이를 노래한 한 많은 대중가요였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 -나훈아의 '굳세어라 금순아'
이 영도다리(부산대교)는 하루에 6차례 큰 배를 지나가게 하기 위해서 다리 중 뭍 쪽의 31.3m가 위로 들려 올라가서 구경거리가 되던 다리였다.
1934년 3월에 완공된 이 다리는 1966년부터는 들어 올리는 것을 멈추고 말았다.
들어 올리는 기계가 낡았고 다리를 통하여 뭍에서 영도로 수도관이 놓였기 때문에 그후 보행자만 다닐 수 있는 다리게 된 것이다.
다리를 통행하는 차량들이 당시 건설 시의 예상보다 수 백배나 교통량이 많아서 부득이 영도다리(부산대교)대신에 길이 260m, 너비 20m의 새 영도교가 생겼다.
거기에 쓰인 강철만도 400대 트럭과 1,000 대 이상의 차량이 자갈, 모래, 시멘트를 실어 나르던 대 공사였다.
그런데 그 영도(影島)란 이름은 무슨 뜻일까?
김정호의 '청구도'에는 이 섬의 이름이 '牧場 絶影'이라 나온다. 이처럼 영도(影島)는 목도(牧島) 혹은 절영도(絶影島)라 불러온 것이다.
나라에서 쓸 역마나 군마를 제주도에서 길렀는데 너무 멀고 불편해서 조선 정조 때는 영도에 나누어 말을 기르게 한 것이다
옛날 이곳에서 사육하던 말 중에는 명마(名馬)가 많아서 그 말들이 한번 달리기만 하면 하도 빨라 그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 하여 '절영도(絶影島)'라 한 것이다.
그러던 것을 '무연탄'을 '무'자를 빼고 '연탄'이라 하듯이, '절영도'의 '절' 자를 빼고 '영도(影島)'라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영도 지도를 보니 지금도 종합사격장 근처에 목장원이 있다.
*. 태종대 유원지 이야기
태종대는 영도대교에서 9.1㎞의 영도의 최남단 해안가에 있는 곳으로 태종산(250m) 기슭에 있는 유원지다.
이 영도는 북동쪽은 완만하지만 남서쪽은 급경사로 절벽 지역이다. 남해 바다의 파도로 해식애(海蝕崖)가 되어 높이가 거의 100m의 수직 절벽을 이루어 그 해안은 기암괴석으로 밀려오는 파도에 하얗게 부서지는 경관은 둥둥 떠 있는 배들과 더불어 절경을 자랑한다.
'영도다리'를 걸어 건너겠다고 나섰는데 태종대 가는 버스가 있어 이를 타니 그 옆에 새로 생긴 영도대교로 태종대 주차장에 이르렀다.
거기서 만난 서울 분당에서 왔다는 사람들이 말을 건넨다.
"일산에서 오셨다구요. 우리 집에 가서 차 한 잔 합시다."
영문을 모르고 따라 가보니 레저 캠핑 랜트카를 이용해서 전국 일주를 하는 분들이었다.
차 내에서 6인이 침식과 대소변을 해결할 수 있는 차인데 하루 빌어 쓰는데만도 30만원이나 하는 모양이다.
찜질방 여행이나 하는 나 같은 서민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로 그 구경하는 것만도 황송할 따름이었다.
태종대도 예전에는 군부대가 있어 민간인의 출입금지 지역이다가 1972년 6월 26일 부산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면서 새로 단장하여 개방된 유원지다.
태종대에서는 아침 9시 30분부터 “다누비” 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다누비란 공모에 의하여 채택된 이름으로 아름다운 태종대 곳곳을 다 누비고 다닌다는 뜻이 담긴 멋진 이름이다.
열차는 태종대 입구를 해안 쪽으로 출발하여 원점 회귀하고 있는데 그 정류 장은 태종대 5경인 태종사, 영도등대, 전망대, 구명사, 태원자갈마당 5개 소다. 관람객은 그 중 어디서나 하차 하여서 자유롭게 구경하다가 30분 간격으로 있는 다음 다누비 열차를 이용할 수가 있다. 요금은 일반 1,500원/학생 1,000원/ 65세 이상 경로 자는 신분증을 제시면 무료였다.
순환도로는 1974년에 완공 된 4.3㎞ 아스팔트길로 걸어서 2시간 코스라 하여 나는 다누비 열차의 역방향으로 걷기로 하였다.
, 산은 절을 품고, 절은 세상을 품는다는 말처럼 나를 태종대에서 제일 먼저 품어 준 것은 석가의 사리를 봉안한 도량인 태종사(太宗寺)였다.
여기서 사리(舍利)라 함은 부처님을 화장하고 남은 유골 중 구슬 같은 것으로 2,500년 동안이나 스리랑카에서 모셔 오다가 그 인정서와 함께 한국의 도성 큰스님께 전달하여 태종사에 모신 부처님의 진신 사리였다. 따라서 태종사에서 특별한 볼거리는 그 사리를 모신 당우였다.
태종사에서 조금 지나니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등대가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해안가에 멋있게 서 있다.
*. 영도 등대 나는 수년 전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파로스 섬에 있는 BC 3세기경에 세웠다는 세계 최초의 등대를 보고 왔다. 그 등대는 유감스럽게도 1349년의 지진으로 수몰되고 그 등대 터만 남아 있었다.
한국의 최초의 등대는 1903년 6월1일 팔미도의 해발 71m 위에 세운인천 팔미도 등대다.
영도등대는 우리나라에서 10번째로 1906년 12월에 건립 된 등대인데 2004년 8월 최신 시설로 지금처럼 새롭게 단장하여 무역항 부산항을 찾아오는 국내외 선박들에게 바다의 길안내를 하여 주고 있다.
다른 등대처럼 식별이 쉽게 높은 굴뚝 모양에다가 흰빛으로 형상표지를 하였고, 밤에는 광파표지 프리즘렌즈 동명기를 이용하여 8초마다 3번씩 50만 광촉의 빛을 발사하여 24마일(38km) 떨어진 바다에서도 잘 보이도록 하였다.
안개 끼고 비나 눈 오는 날과 같이 시야가 흐릴 때에는 전기혼을 이용하여 매 45초마다 5초 동안 소리를 5마일(8km)까지 들리도록 음파표지를 하고 있다.
영도등대는 태종대유원지에 가서는 꼭 보아야 할 해운대 경치의 가장 중요한 명승지가 모여 있는 곳이다. 영도등대에 딸린 부속 시설은 물론 부산을 대표하는 바닷가 암석 지대의 절경과 부산을 상징하는 오륙도도 그렇지만 태종대라는 두 개의 대(臺)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등대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해기사 명예의 전당' 조형물들이 있고 등대 부속물로 전망대, 바다와 바다 갤러리, 해양도서실, 정보 이용실, 해양영상관, 자연사 전시실 등 해양문화공간시설물이 각종 볼거리를 제공해 준다.
등대보다 더 볼거리는 등대에서 계단 따라 해안 쪽으로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바다에서 100m 이상 솟아 있는 두 개의 대(臺)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금강산의 총석정처럼 바다에서 쭉 뻗어 올라가다가 중간이 뚝 잘린 모습인데 그 위가 생각보다 크고 넓었다. 이 두 대가 오리지널 태종대인 것이다.
앞에 있는 대는 우리가 직접 밟아 볼 수 있는 운동장처럼 평평하고 7m 정도의 바다 사이를 두고 있는 건너의 대(臺)를 옛날에 신선들이 놀던 곳이라 하여 신선대(神仙臺)라 하고 그 중간쯤에 바다를 향하여 애절한 모습으로 우뚝 선 바위가 있다.
이 바위가 애달픈 전설을 간직한 망부석이었다.
왜구(倭寇)에게 끌려갔나, 파도가 삼켰는가.
바다에 물어보고, 불러보는 한(恨)이 되어
그 마음
내 낭군 기다리는 망부석으로 서있다.-망부석(望夫石)
이곳을 신선대라고도 하였는데 옛날 삼국을 통일한 태종무열왕[김춘추]이 수려한 자연 경관에 반해서 이곳에서 활을 쏘며 즐겼다는 속전(俗傳: 東萊府誌 所載)에 따라 현재는 이 두 대를 태종대(太宗臺)라 하였다는 곳이다.
*. 부산의 상징 오륙도 등대 전망대에서 좌측을 굽어보면 파도가 남해의 푸른 바다를 하얗게 부수고 있고, 눈을 들어 보면 저 멀리 부산의 상징이라는 부산기념물 제22호 오륙도(五六島)가 아득하다.
오륙도는 부산항을 지켜 주는 파수꾼 같은 섬이지만 오육도란 이름자체만도 자못 신비롭고 시적(詩的)이다.
썰물 때 5개, 밀물 때 6개의 섬으로 나누어 진다하여 오륙도라 불리기 때문이다.
이 섬들은 육지에서 가까운 것부터 방패섬(2,166㎡)·솔섬(5,505㎡)·수리섬(5,313㎡)·송곳섬(2,073㎡)·굴섬(9,716㎡)·등대섬(3,416㎡)으로 나누어지는데 그 이름만으로도 재미가 있다.
파도를 방패처럼 막아주니 '방패섬', 소나무가 있어 '솔섬', 갈매기를 잡아먹으려고 독수리가 떠돈다니 '수리섬'. 송곳 같이 뾰족해서 '송곳섬', 큰 굴(窟}이 있어 '굴섬'. 등대가 있어서 '등대섬'인데 이 섬은 밭처럼 평평하다고 해서 '밭섬'이라고도 한다니 말이다. 이 여섯 섬 중 방패섬과 솔섬은 두 섬의 아랫부분이 1m 가량 붙어 있어 썰물일 때는 1개의 섬 '우삭도'가 되고, 밀물일 때는 '방패섬'과 '솔섬' 2개의 섬으로 보인다.
등대섬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무인도로 낚시꾼의 천국으로 어선이 오가는 곳이다.
어디선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가 파도 소리에 섞여 들려오는 것 같다.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님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봐도 말없는 그 사람 ~ 여기서 동백섬은 오륙도가 아니라 오륙도가 마주보고 있는 아치섬(朝島)이다.
아치섬는 영도와 제방으로 연결 되어 한국해양대학교가 있는 섬으로, 부산에서 아침이 가장 먼저 시작되는 섬이라 하여 조도(朝島)라고도 하지만, 동백꽃이 많이 피는 섬이라 해서 동백도라고도 하기 때문이다.
*. 자살바위 전망대 영도등대를 위로 하여 순환도로에서 조금 내려가니 울창한 숲 사이에 지붕이 원형인 전망대가 나타나더니 그 앞에 바다와 어울리지 않는 모자상이 있다.
여기가 부산에서 악명 높은 자살바위 전망대였다.
전망대에서 아래 바다를 굽어보니 아슬아슬한 수직 절벽인데 그 높이가 해발 168m로 세상에서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생을 비관하여 뛰어 내려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 해서 속칭 자살바위라 하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부산시는 이를 제지하기 위해 1973년 전망대를 세우고 뛰어내리기 어렵게 담으로 막아 놓았다.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를 한번만이도 생각하고 참으라고 세운 조각이 모자상이었던 것이다.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전 노(盧) 대통령이 태종대의 자살바위를 기억하는 분이기에 봉화마을의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리는 그런 끔찍한 일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말한다면 억설일까.
전망대에서 700m를 내려가면 또 하나의 전망대 남항조망지(南航眺望地)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는 이름 그대로 부산의 대표항인 남항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세상이 고해(苦海)라지만 그 세상을 멀리 보면 아름답다. 산위에서 굽어보는 산은 동화 같이 아름다운 세계요, 바다 건너로 멀리서 바라보면 천국 같은 곳이 세상이다.
이 전망대에는 무료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지만 망원경 아니라도 부산 남항는 물론 푸른 바다 가운데에 외로운 섬 하나가 배처럼 둥둥 수석 같이 떠 있다. 주전자 섬이었다.
송강이 이곳에 왔다면 관동별곡의 유하주를 북두칠성 기울여 먹었다는 대목을 고쳐 써야 될 것 같다.
. '북두성 기울여 창해수 부어 내어~'
*.구명사(救命寺)
남항조망지를 뒤로 하고 700m를 다시 내려오니 절 이름치고는 이상한 구명사(救命寺)가 있다.
이 절은 자살바위에서 1m 거리이니 자살바위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절은 구내가 아주 좁아서 종각 속에다가 종은 물론 부처님들까지 가득 모신 것이 특이하다.
그중 주불이 지장보살이다. 지장보살(地藏菩薩)은 사후의 세계를 관할하는 부처님이고 보니 세파에 시달려 육신을 버리려는 가여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설립된 사찰 같아 마음을 숙연케 한다.
갑자기 후회가 난다. 나도 나누비열차 코스처럼 해안가로 시작해서 다닐 걸 그랬다.
그러면 태종대의 아름다움만을 마음에 안고 돌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즐거운 곳에서 날 오라 하여도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지금 이 시간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아내 곁으로 돌아가자. 이런 아내가 없다면 어느 누가 정년하고 저처없이 떠도는 늙다리를 기다려 주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