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주남지 들녘으로
동지를 며칠 앞두고 찾아왔던 동장군이 여전히 맹위를 떨친 십이월 넷째 토요일이다. 지난 이틀은 엄습한 추위를 구실 삼아 교육단지 도서관에서 시간을 잘 보냈다. 구내식당이 없어 집에서 준비해 간 삶은 고구마와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웠지만 장서와 열람석 여건이 좋아 하루 입장료를 1만 원 이상 내라고 해도 찾고 싶은 도서관이라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자주 이용할 생각이다.
3일과 8일은 진해 경화장이 서는 날이라 토요일은 그쪽으로 나가 하루를 보낼 참인데 일정을 변경했다. 전날 저녁 한 문우로부터 원로 문우 문병을 겸한 업무 인수인계 차 하는 걸음에 동행하십사는 제안이 와 흔쾌히 동의했다. 동짓날이라 일 년 중 어둠이 가장 긴 밤을 보낸 이튿날 여명이 밝아올 무렵에 음용하는 약차를 달이고 도서관에서 빌라다 둔 책을 읽다 아침 식사를 마쳤다.
정한 시간에 현관을 나서 아파트단지를 나서다가 나목으로 겨울을 나는 벚나무 가지를 치올려보니 한겨울에도 꽃눈이 몽글하게 부푼 기미가 보여 사진으로 남겼다. 아침마다 지기들에게 보내는 1일 시조의 글감으로 삼아도 될 듯해서였다. 도민의 집 앞으로 나가 일정을 함께 보낼 문우를 만나 인근 주택에서 동행하게 되는 선배를 태워 팔룡동으로 이동해 다른 문우와 넷이 떠났다.
창원역 앞 창이대로에서 도계동 만남의 광장을 지나 용강고개를 넘어 동읍 남산리로 갔다. 구룡산 기슭 정비창과 맞닿은 넓은 농장에 분재 묘목을 가꾸는 농부 시인 댁을 방문했다. 나이 아흔을 앞둔 원로는 우리가 속한 문학 단체 수장을 역임하기도 한 분이기도 했다. 올겨울 예기치 못한 교통사고를 당해 문안 갔더니 건강은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봄이 되면 할 일이 많을 듯했다.
차기 집행부는 원로가 연전 회장직에 몸담을 적 발급했다는 카드를 회수해 뜰로 나와 농장과 비닐하우스를 둘러봤다. 넓은 농장 이랑은 분재 묘목이 가득 심겨 자라고 비닐하우스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여름 찾아갔을 때 실내에 가득하던 분재 묘목은 경매장으로 보냈던지 한 개도 없었는데 그간 다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명자꽃과 모과 묘목 가운데 꽃망울을 단 화분도 봤다.
원로의 분재 농장을 나온 일행은 주남저수지로 이동했다. 주남지 들머리 가월마을에는 추운 날씨에도 탐조객이 타고 온 차량이 더러 보였다. 저수지 둑 아래 차를 세우고 탐조 전망대 부근으로 오르니 망원렌즈가 장착된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전문가들이 피사체를 겨냥하고 있었다. 덩치가 큰 고니들은 빙판이 된 곳에 모여 오글거렸다. 벼를 거둔 논바닥에도 먹잇감이 있는 듯했다.
둑에서 내려와 낙조대 근처로 갔더니 벼농사 휴경지는 수백 마리 재두루미들이 먹이활동에 여념이 없었다. 목이 길어 외양이 우아한 재두루미는 주남저수지를 찾아오는 여러 종류 철새 가운데 천연기념물로 보호받는 진객이었다. 당국에서는 철새가 먹이활동을 하는 구역으로는 출입을 제한하는 푯말을 세워두어 먼발치서 사진에 담았더니 흐릿해 다음 언제 한 번 더 찾을 생각이다.
주남저수지에서 봉강을 거쳐 북면 마금산 온천장으로 옮겨가 어탕국수로 점심을 들었다. 식후 인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한담을 나누다 자리에서 일어나 시내로 들어왔다. 운전대를 잡은 문우는 동행한 선배에게 교육단지 도서관을 구경시켜 주려고 그쪽으로 가게 되어 쾌적한 환경의 도서관을 둘러보고 감탄했다. 주말을 맞아 아이들 데리고 도서관을 찾은 젊은 부모들도 보였다.
이후 집 근처로 와 일행과 헤어져 나는 나대로 용지호수 어울림 도서관으로 향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거기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책을 반납하기 위해서다. 1인 사서로 운영되는 도서관을 찾아 책을 반납하고 지정석이 되다시피 한 좌석은 한 젊은이가 차지해 신문을 펼쳐 읽지 못하고 되돌아 나왔다. 동네 제과점을 들어서던 주말 오후는 햇살이 퍼지면서 추위가 조금 누그러졌다. 23.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