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풍지대
양균원(楊均元)
서해 연안
어둠에 연무가 달라붙는다
폴대 꼭짓점 아래
바람마저 사라진 새벽 한 시의 삼각구도에
빗소리가 떼를 지어 생환 중이다
예고 없는 직하가
파산으로 생명을 선포하는 소리의 나락
내홍을 불사르던 초저녁 장작더미는
잿가루마저 씻겨 나갔다
자지 않는 새가 있다
두견새와 소쩍새 둘 사이 어디쯤에서
낯설게 친밀한 이도 화음이
바닷가에 낭자하다
만(灣)에 갇힌 물
곁을 지키는 해안도로 불빛
삶의 테두리를 따라
더러는 이빨 빠진 자리여서
더러는 수명이 다해가는 손전등이어서
에둘러 명멸하는 한 가닥 영(零)의 행렬
눈먼 바다와 애먼 하늘 틈에서
두 쪽 적막을 꿰매는 이음매 솔기로
금방이라도 가라앉을 듯 떠 있다
천둥소리를 기다린다
나는 빗물의 법고(法鼓)
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파락호
혹은 우기의 피라미드 속에 홀로 환생한 파라오
소란은 힘이다
우주의 혼란이 뇌파로 전환되는
귀로 들어와 눈으로 나가는
흰 라일락 향이었다
작약 분지에 갓 착륙한 꿀벌이었다
햇살이 간혹 뜨거운 사월 끝자락이었는데
바로 어제였는데
비가 오다 말다 안개에 살을 섞는 이 어둠
저 감감한 무풍지대에서
은은히 밀려오는 향은
식은 모주(母酒) 마지막 잔처럼
그저 들쩍지근
웹진 『시인광장』 2023년 7월호 발표
양균원(楊均元) 시인
전남대학교 영문과 및 고려대학교 대학원 영문과 졸업. 1981년 ≪광주일보≫와 2004년 ≪서정시학≫으로 등단. 저서료는 시집 『딱따구리에게는 두통이 없다』, 『집밥의 왕자』와 연구서 『1990년대 미국시의 경향』, 『욕망의 고삐를 늦추다』가『삶의 이론으로서의 시론: Wallace Stevens와 T. S. Eliot』(1994), 『영미시창작이론』(2000), 『1990년대 미국시의 경향』(2011)이 았음. 2004-05년에 미국 University of Washington 객원연구원, 2008년에 일본 관서외국어대학교 한국어 교수로 활동. 있음.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역임. 현재 대진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출처] 무풍지대 - 양균원(楊均元) ■ 웹진 시인광장 2023년 7월호 신작시 □ 2023년 7월호 ㅣ 2023, July ㅡ 통호 171호 ㅣ Vol 171|작성자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