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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춘몽의 진실 2
“그붐이무슈 산은 샤르별에서 큰 산은 아니지만 신비스럽고 영묘한 기운이 감도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머물고 있는 츠나음이 연구소가 위치한 주스니라 산도 그 형세의 위용은 대단하지만 그붐이무슈 산의 신비로운 기운도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네 눈이 정확했다. 그붐이무슈 구천계곡에는 불로불사 신선들이 모여 살고, 이곳을 불로불사의 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붐이 무슈 산은 그 산세의 아름다움에서 신비한 기운이 넘치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뵈었던 산신령의 기운 때문이란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산신령이라 하셨나요?"
“그렇다. 우리 샤르별에는 큰 기운이 넘치는 명산들이 즐비하고 그러한 명산마다 산신령의 주인이 살고 있다. 그붐이무슈 구천계곡은 작지만 성스런 명산으로 알려져 있고 그 이유는 서슴어사비 큰 빛이 거하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구에도 산을 지키는 수호신의 이름을 산신령이라고 부르는데 샤르별에도 그런 이름이 있다니 신기한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지구의 산신령은 전설속의 이름이고 샤르별에는 실제의 이름이니 그 차이가 큽니다.”
“지구에서 사용하는 말 중에는 샤르별에서 사용하는 말들도 많이 섞여 있다. 우주의 문명이 지구에 전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아무튼 서슴어사비 신선님은 샤르별에서 대단한 존경을 받으며 불로불사의 수호신이 되어 샤르별에서 살아가는 영혼들을 보호하고 바르게 이끌며 지상낙원이 펼쳐지도록 큰 힘을 쏟고 계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 우리 샤르별에는 많은 불로불사의 수호신들이 살고 있고 수호신들의 애정으로 우리 샤르별에는 지상낙원 선경세상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 샤르별의 존재들은 그 은혜를 잊지 않으며 살고 있다."
"저시거수시 신선님도 불로불사 신명이 아니시나요?"
"맞지만 나는 아직 풋내기 불사신에 불과하다. 살아 있는 영혼으로 수천 년의 우주령을 살아오신 서슴어사비 불사신에 비하면 이제 겨우 1,000년의 우주령에 불과한 나는 이름도 내밀 수 없는 처지란다. 그렇게 큰 명성을 얻고 있는 분이기에 내 친구 아초시도 불사신의 명예를 누리지 않고 시종으로서의 겸손한 삶을 살아가고 있단다."
"샤르별에는 참 훌륭한 불사수호신들이 많이 살고 있어 샤르별의 영혼들은 우주의 어떤 영혼들보다 행복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 세상에 좋은 느낌을 가졌다니 고맙구나. 지구에서도 앞으로 불사수호신들이 많이 나타나서 지구의 낙원이 영원히 망하지 않고 후천세상의 명당이 되어 우주선망의 큰 명성을 얻기를 기원한다."
“지구를 위해 큰 축원을 올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지구를 축원해 주시는 샤르별의 큰 기운들로 말미암아 앞으로 지구의 기운은 크게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하늘의 모든 기운이 땅으로 내려와 우주대공사를 도모함을 잊지 마라. 이제는 하늘의 주도권이 땅의 주도권으로 바뀌었고 하늘의 신명들이 땅의 영혼들에게 복 받기를 갈망한다. 땅의 기운이 다하면 하늘의 기운은 저절로 소멸되고, 땅의 기운이 되살아나면 하늘의 기운도 되살아날 운명이 지금이다. 그러므로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영혼들은 이제부터 하늘을 향해 복달라고 조르지 말고 스스로 기운을 모아 하늘과 땅을 살리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하늘의 기운이 땅의 기운을 도울 것이니 이제부터는 땅에서 사는 영혼들이 하늘의 대접을 받으며 살아가리라. 곧 후천세상은 천존(天尊)시대가 아니라 지존(地尊)시대로 바뀌었으니 땅에서 살아가는 영혼들의 사명이 어느 때보다 크다고 강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땅에서 살고 있는 영혼들은 하늘의 큰 별들이니 작은 영혼이라 하여 함부로 대하면 하늘의 노여움을 살 것이다."
"땅에서 살고 있는 영혼들은 모두 하늘의 큰 별이란 뜻인가요?"
“영혼도 영혼 나름일 것이다. 짐승의 혼을 영혼이라고 부르지 않듯, 땅에서는 짐승보다 못한 존재들이 영혼이란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들은 영혼의 허물만 쓰고 있을 뿐이지 실제는 짐승의 혼이 그 몸 안에서 살고 있다. 지금 땅에서는 하늘의 영혼과 짐승의 혼들이 혼전을 이루며 기세제압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후천세상에서는 짐승의 혼들이 하늘의 영들과 공생할 수 없으니 후천세상의 기틀을 허물려는 암흑세력의 도전이 그만큼 만만치 않다는 설명일 것이다.”
“지구에서도 그러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선과 악의 힘겨루기가 치열하고 창조와 파멸의 혼전이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며 무엇이 창조이고 무엇이 파멸인지 쉽게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무엇으로 하늘의 영과 짐승의 혼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지구는 선과 악이 힘겨루기를 하는 마지막 혼전장이다. 우리 샤르별은 선과 악의 싸움이 이미 끝나고 신천지 지상낙원 시대를 펼쳐 가고 있다. 우주에는 짐승의 세상도 존재하지만 그 세상은 이미 짐승들이 지배하여 선과 악의 싸움이 필요 없다. 지구에서의 싸움이 우주대개벽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래서 하늘의 신명들이 모두 땅으로 내려와 땅의 영혼들을 후원하고 있다. 짐승의 세력들은 서서히 그 전모를 밝히게 될 것이니 마찬가지로 하늘의 세력도 새롭게 진영을 정비하여 선과 악의 실체가 뚜렷해질 것이다. 파멸의 세력들은 누구나 짐승의 혼이 그 몸 속에서 살고 있는 자들이다. 짐승의 혼들은 마지막까지 지구 파멸을 위해 발악할 것이니 하늘의 영들은 쉬지 말고 하늘의 주문을 외우며 큰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
저시거수시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샤르비네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라도 하려는 듯 그뭄이무슈 계곡을 내려다보며 천하절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샤르비네의 모습은 요염한 자태가 고혹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천상의 선녀가 날개옷을 입고 땅에 내려와도 그토록 요염한 모습으로 혼을 빼놓지는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샤르비네를 보아오던 모습과 불사의 나라 구천계곡에서 바라보는 느낌은 달랐다. 좋은 것도 자주 보면 좋은 줄 모르고 귀한 것도 자주 보면 귀한 줄 모르는 이치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샤르비네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선녀를 곁에 두고도 나는 다른 선녀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다른 선녀들의 미모에 심취한 나머지 샤르비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이 날도 나는 저시거수시와 봉황정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시중드는 선녀들의 미모에 마음을 빼앗기며 본의 아니게 샤르비네를 홀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샤르비네는 신선들이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는 구천계곡의 구경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무아의 경지에서 삼매경에 빠져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샤르비네의 모습이 그토록 요염한 자태로 빛나는 천상의 옥녀(玉女)일 수 없었다.
저시거수시와 대화를 마치고 나서 구경 삼매경에 빠져 있는 샤르비네 곁으로 살며시 다가가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샤르비네는 놀라지도 않는 표정으로 다정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나를 쳐다 보았다. 마치 장난꾸러기의 철부지 소년을 대하는 눈초리였다. 곁으로 다가와서 앉은 나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어 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대화는 언제 끝났어요?"
“이제 바로...."
"좋은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잠든 영혼을 일깨워주는 말들을 많이 들었소. 불로불사의 신선들은 그냥 저절로 그 자리에 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은 것 같소. 샤르비네가 곁에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저시거수시 신선님과 대화에 심취해 있었으니... 혼자 외롭게 해서 미안한 생각이 드오."
샤르비네는 더욱 다정한 얼굴로 나의 두 손을 잡아주면서 말을 꺼냈다.
“미안하긴요. 저는 샤르앙의 그런 모습이 좋아요. 대화를 하거나 여행을 하거나 때로는 친구들과 신선놀음을 즐길 때도 심취하고 깊게 빠져드는 모습이 너무 좋아요. 무슨 일이나 심취하지 않으면 높은 정상에 오를 수 없어요. 저도 구경을 하든지 이야기를 하든지 심취하는 버릇이 있어요. 누구든지 작은 일에도 심취하는 모습은 참 아름다운 모습인 것 같아요."
"심취하는 영혼이 아름답다는 뜻인가요?"
“그래요. 심취하는 영혼이 아름답지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샤르비네와 나는 서로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그붐이무슈 구천계곡을 함께 내려다보았다.
흰 구름이 뭉글뭉글 피어나며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하면서 조화를 부리는 모습이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가끔씩 구름을 몸에 감고 하늘을 날아가는 불로불사 신선들의 모습도 학처럼 눈에 들어왔다.
살아서 불로불사의 땅을 밟고 그 세상의 공기를 호흡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잠시 후 시중드는 선녀가 우리들 곁에 다가오더니 둘을 데리고 풍운정 높은 누각으로 올라갔다. 풍운정의 누각에서 바라보니 그붐이무슈구천계곡들의 모습이 더욱 한눈에 들어왔다.
봉황정은 저시거수시의 거처이고 풍운정 누각은 친한 친구들이나 손님을 맞이하는 영빈각과 같은 장소였다.
저시거수시와 아초시는 이미 그곳에서 자리를 잡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시종 선녀의 안내를 받고 샤르비네와 내가 그들의 곁에 함께 자리를 하자 향기로운 술잔이 눈에 띄었다. 붉은색의 술병이 네 개의 잔과 함께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시종 선녀가 네 개의 술잔에 붉은색이 감도는 향기로운 술 한 잔씩을 따르자 저시거수시가 "자, 그럼 모두 한 잔씩!" 하고 건배를 제안했다.
모두 작은 술잔을 들고 꿀꺽 한 모금씩 삼켰다. 작은 술잔의 술은 한 모금 마시면 끝날 정도로 적은 양이었다. 이제까지 마셔 본 신선주 중에서 가장 맛과 향이 뛰어나고 몸 속으로 술기운이 퍼지는 내용이 다른 것 같았다.
"술맛 좋으냐?"
저시거수시가 묻자 샤르비네와 나는 "네." 하고 함께 대답했다.
아초시도 한 마디 거들었다.
“너희들 때문에 내가 좋은 술을 대접받는다. 나도 좀처럼 맛보기 힘든 귀한 술이란다.”
이어서 다른 시종 선녀 둘이 소반에 담긴 천과를 들고 와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고 향기가 좋았다.
저시거수시는 "어서들 맛보아라.” 하고 권했다.
모두들 천과 하나씩을 입에 넣고 깨물기 시작했다.
한 입 깨물자 달콤하고 향기로운 물이 입 안 가득 고였다.
천과는 씻거나 껍질을 벗겨 먹을 필요도 없었다. 껍질 째 씹은 과일은 입 안에서 찌꺼기도 생기지 않으며 씹지 않아도 스르르 녹으면서 좋은 기운이 몸 속으로 퍼져 갔다.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과일의 기운은 몸 속으로 들어가 온몸을 휘둘러 순환하며 기운이 넘치게 하는 작용을 했다.
맛있는 천과를 몇 개째 씹었지만 배는 부르지 않았다. 신비로운 기운만 커지고 얼굴은 홍당무처럼 붉어지며 마음은 구름을 타고 있는 듯 좋았다.
'천상계의 즐거움이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예전에도 다른 불사의 땅을 찾아가서 맛보았던 천과였다.
불사의 땅에서 살아가는 신선들은 이렇듯 향기로운 신선주를 마시고 천과를 먹으며 살고 있었다. 신선주와 천과는 불로불사 신선들의 주식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천과가 열리는 나무를 구경하진 못했다. 하늘에 있는 나무인지 땅에 있는 나무인지도 알지 못했다.
신선주와 천과를 먹고 나서 좋은 기분에 취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에 저시거수시가 샤르비네와 나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모처럼 찾아온 사랑하는 영혼들을 그냥 돌려보내기가 서운하니 좋은 구경을 시켜줄까 한다."
샤르비네와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너희들 봉황을 타고 하늘을 날아보고 싶으냐?"
저시거수시의 말을 듣고 샤르비네와 나는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리고 함께 입을 모아 "네!" 하고 대답했다.
다시 내가 "신선님 봉황을 타고 꼭 하늘을 날아보고 싶습니다. 용은 타보았지만 구름과 봉황은 못타보았습니다. 지금 태워주십시오.” 하고 졸랐다.
“허허허, 그러면 사랑하는 영혼들을 위해 소원을 들어줄까?"
저시거수시는 우리를 데리고 풍운정 누각에서 내려왔다.
커다란 봉황 두 마리가 풍운정 지붕의 꼭대기에 앉아 있었다.
저시거수시가 손가락으로 봉황을 향해 신호를 보내자 두 마리가 일시에 날아와 우리들 앞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잘 길들여진 신조(神鳥)라는 생각이 들었다.
섬섬옥수로 수놓은 것 같은 아름다운 깃털로 장식된 봉황은 몸집이 매우 크고 부리부리한 두 눈에서는 신비한 기운이 불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저시거수시가 봉황의 등을 가볍게 만지자 넓고 큰 날개를 쭉 폈다. 봉황이 날개를 펴자 푹신한 털로 덮인 융탄자 같았다.
우리들은 저시거수시가 시키는 대로 두 마리 봉황의 등에 각각 올라타서 앉았다. 푹신한 등에 앉아보니 새의 등허리라는 느낌과는 다르게 안정감이 있었다. 저시거수시가 길을 잘 들여 놓았는지 봉황은 앉아있는 우리를 편안하게 챙겨주었다.
저시거수시가 신호를 보내자 두 마리의 신조 봉황이 힘차게 두 날개를 펴면서 구천계곡의 하늘로 비상했다. 계곡마다 서기(瑞氣)가 뻗혀있고 색동구름이 이 계곡 저 계곡에 뭉게뭉게 떠 있는 구천계곡의 하늘을 봉황의 등을 타고 날을 때 마치 천지창조가 이루어진 태초의 하늘을 날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봉황이 날고 있는 그붐이무슈 구천계곡에는 계곡마다 천태만상의 볼거리들이 환상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구천의 계곡마다 기화요초의 꽃수풀이 덮여 있고, 비단결 같은 폭포는 쉬지 않고 떨어지며 하얀 포말을 만들어 내고, 굽이굽이 흘러가는 계곡의 물줄기들은 모아지고 갈라지기를 반복하면서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무한이론이 펼쳐진 4차원 문명세계와 신화(神話)가 무르익어 가는 별천지의 동거로 이루어진 샤르별은 이질적인 세상 같으면서 동질성이 녹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황의 등을 타고 구천계곡의 모든 구경이 끝날 즈음 어디선가 통신조(神鳥) 한 마리가 날아왔다. 봉황은 통신조의 뒤를 따라 우리를 태우고 다시 풍운정으로 돌아왔다. 통신조와 봉황은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통신조와 봉황이 나란히 날아가며 "끼록 끼록." "꺼르렁 크크, 까르렁 크크.” 같은 소리를 내가며 무언가 의사소통을 나누고 있었다.
봉황은 풍운전의 뜰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던 저시거수시와 아초시 앞으로 다가와 살며시 날개를 접으며 내려앉더니 우리를 내려놓았다. 샤르비네와 내가 봉황의 등에서 내리자 저시거수시가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다.
"구경은 잘했느냐?"
“네, 구경 잘하고 돌아왔습니다. 불로불사 신선님!"
샤르비네와 나는 약속이라도 하듯 동시에 대답했다.
"오호, 그랬더냐?” 하면서 나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소원은 다 풀었느냐?"
나는 매우 만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신선님. 소원은 충분히 풀었습니다. 구름은 타보지 못했지만 구천계곡의 신조(神鳥)인 봉황을 타고 하늘을 맘껏 날고 나니 맨몸으로 하늘을 날고 싶은 소원이 다 풀린 것 같습니다."
“그래도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고 싶은 소원은 아직도 남아 있다는 표정이구나?"
저시거수시의 말에 나는 긍정도 부정도 않고 빙그레 미소만 지었다. 그때 아초시도 한 마디 거들었다.
“살아 있는 영혼들이 불로불사의 땅을 찾아와 불사조 봉황의 등을 타고 하늘을 날아보기란 4차원 문명세계의 존재라 하여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늘과 땅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고 있는 너희 사랑하는 영혼들이 누릴 수 있는 예우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이치이니 이 점 마음에 잘 새기고 저수시거수 불사신의 배려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둘 다 빛의 화신인 아초시는 저시거수시와 친구이면서 저시거수시를 구천계곡의 산신령으로 깍듯이 예우하며 대했다. 저시거수시가 100년 먼저 빛의 화신에 오른 신도(神道)를 지키는 풍습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초시는 겸손하고 친절함이 몸에 배어 있는 풋내기 빛의 화신이었다. 아초시의 설명을 듣고 샤르비네가 대답했다.
“신선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 살아 있는 영혼들은 불로불사의 땅을 함부로 찾아오지도 못하고 불사조의 이름을 가진 봉황신조(鳳凰神鳥)의 등을 타고 하늘을 나는 일은 쉽지 않은 기회란 걸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불청객과 같은 저희들을 이렇게 따뜻하게 대접해 주시고 쉽지 않은 구경을 시켜 주시니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초시는 다시 웃으면서 대꾸했다.
"나의 친구 저시거수시 신선께서 감추어둔 뜻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숨겨진 뜻이 무엇인지 훗날이라도 영감이 열리면 너희가 깨닫게 되리라."
저시거수시는 아초시와 샤르비네가 나누는 이야기를 그냥 듣고만 있으면서 알 듯 말 듯하는 미소만 입가에 머금고 있었다.
샤르비네와 나는 두 빛의 화신에게 대례를 올리고 하늘자동차에 몸을 싣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샤르비네와 나는 하늘자동차 선실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샤르비네는 일장춘몽(一場春夢)이란 말을 듣고 어떤 느낌이 들었소?"
"일장춘몽?"
"서슴어사비 불사신께서 들려주신 일장춘몽 이야기 말이오?""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봄날 잠깐 눈을 붙일 때 일어나는 꿈속의 장면과 같다는 말씀?"
“그렇소. 지구에서 살고 있는 영혼은 길어야 백년이요, 샤르별의 영혼들은 삼, 사백 년의 생을 마감한 후 저 세상으로 떠나기도 하고 빛의 화신으로 탈바꿈도 하지만, 영혼의 전생들이 살아온 무량겁(無量劫)의 우주령에 비하면 현생의 삶이란 한순간 눈을 붙일 때 일어나는 꿈결과 같은 내용일 뿐이라고 서슴어사비 불사신께서 말씀하셨소.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들을 때 샤르비네는 지금 우리들이 함께 보내고 있는 시간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오.”
“무량의 우주령을 살아가는 우리들 영혼이 샤르앙과 샤르비네라는 이름으로 잠깐 꿈속에서 만나 소중한 인연을 맺으며 지내다 눈을 뜨면 까마득한 기억 속에 지워지고 말 것이란 허무감(虛無感)을 설명하고 싶은가 보군요?"
“그렇소. 우리들은 지금 영원히 놓치고 싶지 않은 아름답고 소중한 인연의 시간을 보내고 있소. 이 아름다운 순간들이 잠시 후 영원한 이별의 시간이 다가올 때 일장춘몽의 허무함을 맛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그리고 앞으로도 무량겁의 궤도를 여행하는 우주시간이 흐르면서 소중했던 지금의 순간들은 역시 아련한 기억과 함께 안개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오. 그 점에 대해서 소감을 말해 보오."
"샤르앙은 제 마음을…. 그렇게... 슬프게 만들고 싶어요?"
샤르비네는 갑자기 등을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샤르비네의 울음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흐느끼는 샤르비네의 얼굴에 이슬처럼 맑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내 말이 그렇게 샤르비네의 맘을 슬프게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샤르비네가 흘린 눈물은 금세 나의 가슴을 다 적시고 말았다.
샤르비네는 나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흐느끼는 샤르비네의 두 어깨를 감싸고 있으면서 울음이 그칠 때까지 아무 말도 못하고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겨우 샤르비네의 울음이 그치고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을 생각도 없이 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한참 동안 나의 얼굴을 쳐다보던 샤르비네는 작은 손으로 나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우고 싶지 않은 허상이여! 붙들고 싶은 바람이여! 놓치고 싶지 않은 햇살이여!"
그렇게 말하는 샤르비네의 두 손을 잡으면서 내가 말했다.
"우리는 언젠가 무량집(無)의 우주 궤도 속에서 지금의 소중한 순간과 모습들이 안개의 잔영처럼 흔적도 없이 기억 속에서 지워질 운명을 말하고 있는 건가요?"
"그렇지 않을까요? 지금 이 순간이 우리들에게 아무리 소중하고 달콤해도 앞으로 영원한 순간들이 지나고 지나면서 퇴색된 기억 속의 잔영으로 남아 끝내는 흔적도 없이 지워지고 말 것이란 생각을 샤르앙은 이미 마음속에 품고 있지 않았나요?"
“그러한 제 마음을 이미 샤르비네가 알고 있었다는 뜻이오?"
"바보... 제가 왜 샤르앙의 슬픈 생각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잠깐씩 잠깐씩... 샤르앙의 얼굴에 스쳐가던 우수어린 눈빛과 표정... 때로는 살짝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상념에 잠기며 쓸쓸한 표정을 짓기도 했던 샤르앙의 마음속을 왜 제가 들여다보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했을까? 그렇게 생각했다면 샤르앙 당신은 숙맥과 같은 바보지. 일장춘몽 한마디로 제 마음을 아프게 찢어 놓는 샤르앙은 바보란 말이에요."
"일장춘몽 한 마디가 그렇게 슬픈 의미였소?"
“샤르앙과 저와의 관계에서는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진짜 바보였나 보오. 쓸쓸했던 제 속 깊은 마음이 샤르비네에게 들통 나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괜히 샤르비네의 연약한 감정을 건드려 놓고 본의 아니게 슬픔을 자아내서 미안하오."
“그렇진 않아요. 실컷 눈물을 토하고 나니 마음이 오히려 후련해진 것 같아요. 그동안 말은 못하고 이별의 순간이 점점 눈앞에 다가올수록 샤르앙의 소중한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 속에 남기려고 애를 썼는데…. 그리고 샤르앙에게 슬픈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명랑한 표정만 지으려고 노력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샤르비네와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순간의 소중한 인연들을 헛되게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 영혼이 무량겁의 우주령 속에서 살아가는 아무리 영원성을 가진 존재라 할지라도, 그 무량검의 영원함은 순간의 시간들이 조각처럼 쌓여서 이루어진 현상이라고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영원함은 실제적으로 느낄 수 없고 손으로 만져볼 수 없는 추상적인 현상에 불과하고 오히려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는 순간순간의 삶이 소중하고 가치 있다는 생각을 불현듯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해 영원을 약속하며 현실의 순간을 희생하지 말고 현실의 소중한 순간 그 자체를 즐기고 순간을 영원함 속에 승화시키는 느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그러한 느낌을 샤르비네에게 전했다.
"순간은 영원함 속에서 허상과 같은 현상
이라고 했지요?"
“그렇지요. 아무리 아름다운 순간도 영원이라고 하는 시간의 수레바퀴를 따라 구르고 구르다 끝내는 흔적도 없이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지요. 구름처럼 안개처럼…. 그리고 손에 쥔 공기나 햇살처럼...."
“그러면 샤르비네는 영원이라고 하는 실체를 만져보았소?"
“영원이란 실체는 순간의 시간이 쌓여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누구도 만지거나 느낄 수는 없어요."
"만지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는 현상 앞에서 허무주의의 감상에 젖는 일은 무모하고 어리석다고 느껴지오. 이제부터 샤르비네는 순간의 아름다움만 생각하시오. 순간은 영원하며 순간은 현재의 모든 것이오. 그러므로 샤르비네는 이제부터 돌아오지도 않고 손에 만져지지도 않는 영원이란 허상 속에서 순간의 미래를 위해 눈물짓지 말고 마음껏 즐기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간을 맞이하시오.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이 순간을 만날 수 없소. 그러나 순간은 붙들려고 마시오. 붙든다고 멈추지 않는 것이 또한 순간의 특성이니까... 그냥 다가오는 모든 순간들을 즐기며 사랑합시다."
“샤르앙은 제게 듣기 어려운 명언들만 골라서 들려주는 것 같아요. 샤르앙의 높은 영성에 감동했어요. 그래요. 영원은 아직 돌아오지 않는 미래일 뿐인데, 아직 눈앞에 다가오지도 않은 미지의 시간을 대상으로 허무주의에 빠지고 슬퍼해야 하는 건 슬기로운 마음이 아닐 것 같아요.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미래의 주인공이 되려는 마음보다 현재 이 순간의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그리고 순간의 주춧돌을 잘 쌓고 쌓아서 미래의 큰 세상을 창조하는 마음으로 즐겁고 행복하고 의미 있게 살아가도록 합시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제안이라고 믿고 싶어요. 그러면 이제부터 저는 샤르앙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현재의 순간들을 잘 보내며 살아가도록 노력할게요. 아직 다가오지 않는 미래에 대한 근심이나 슬픔 같은 건 마음속에서 모두 지워버리고 현재의 시간과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며 최선을 다할게요."
“샤르비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제 마음이 너무 홀가분하고 기쁘오."
그붐이무슈 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초시로부터 통신전갈을 받았다.
"너희 둘에게 전할 소식이 있다. 특별한 손님들이 내일쯤 츠나음이 연구소를 방문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 손님들을 안내할 것이니 너희들도 얼굴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초시는 짧은 내용의 전갈만 들려주고 통신을 끊었다.
4차원 문명세계의 메세지 6 <4차원의 현상과 초월적인 삶의 세계 1> - 박천수著
첫댓글 생각하는 것들이 우주에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게
더이상 상상이나 신화같은 말은 맞지 않는거 같네요.
네 맞습니다 상상이 현실입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
아무리 황홀하다 해도 그 또한 순간이니
순간의 쾌락에 빠지지 않도록 바로세움 다짐다짐
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