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면 강가로 나가
저무는 계묘년이 앞으로 일주일 남은 세밑이다. 십이월 넷째 일요일은 크리스마스이브로 성탄절과 이어지는 사흘 연휴에서 중간이었다. 자연학교는 휴일이나 방학이 없는지라 달력의 빨간색 유무와 상관없이 정한 시각 등교했다. 행선지를 북면 강가 어디쯤으로 삼아 그곳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외동반림로를 따라 걸으니 동지를 앞두고 찾아온 강추위가 조금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창원수영장 맞은편 나갔더니 지난봄부터 시공하는 원이대로 시내버스 교통체계 개편 공사 공정률이 점차 진전되는 듯했다. 중앙분리대에 자라던 배롱나무와 향나무를 파내고 차선 자체를 뭉개버리고, 그 자리는 보의 도랑에 물길을 틔우듯 새로운 차선이 만들어졌다. 아마 바뀌게 될 교통체계에서는 중앙의 왕복 차선은 시내버스만 다니게 해서 정류장도 서울 거리처럼 바뀔 모양이다.
정류소에서 대방동을 출발해 내봉촌으로 가는 11번 녹색버스를 탔다. 충혼탑에서 홈플러스를 지나 명곡교차로로 되돌아 와 소답동과 천주암 아래서 굴현고개를 넘어갔다. 버스는 온천장에서 강변의 바깥신천과 안신천을 거치니 초등학교가 나왔고 내산을 지나 초소에서 정차했다. 시내에서 거기까지 가는데 타고 내린 승객은 몇 되지 않고 내가 내리고 나니 노인 한 분만 타고 있었다.
버스는 초소에서 이삼십 분 머물다가 정한 출발 시각이 되면 내봉촌을 둘러 시내로 돌아간다. 내봉촌은 행정 구역으로는 함안 칠북면 북단인데 창원 시내버스 11번 종점이기도 했다. 거기서 야트막한 산마루를 넘으면 창녕함안보가 나오는 낙동강 강가 산골이다. 이전에 11번 버스로 내봉촌까지 몇 차례 다녀와 이번은 버스가 초소에 정차할 때 내려 명촌으로 가는 차도 따라 걸었다.
그쪽 북면 일대는 크게 묶어 내산리와 외산리로 나뉘는데 강에서 먼 곳은 내산리고 바깥은 외산리였다. 초소나 명촌은 낙동강이 가까운 외산리에 딸린 작은 마을이었다. 수확이 끝난 단감나무들이 보이는 과수원 모롱이를 돌아가니 강마을 명촌이 나왔다. 마을 안길까지 가질 않고 동구 밖에서 임해진 양수장에 퍼 올린 농업용수가 지나는 수로의 둑을 따라 걸어 들판으로 나가 봤다.
벼농사를 짓던 저지대 들판은 4대강 사업 때 파낸 강모래로 농지를 높여 과수원으로 바뀐 곳도 있었다. 매실나무와 자두나무를 비롯해 대추나무나 사과나무도 보였다. 둑이 가까워지자 사료가 될 볏짚을 가득 쌓아둔 대형 축사도 보였다. 명촌 마을 어귀에서 들판을 빙글 둘러 둑으로 오르니 맨 가지만 드러난 노거수 플라타너스가 나왔다. 양버즘나무는 한 그루가 아닌 세 그루였다.
한때는 도심 가로수나 교정에다 녹음을 드리우는 정원수로 심던 플라타너스는 양버즘나무로 불린다. 넓은 잎이 지고 봄에 새잎이 돋기까지 겨울에는 탁구처럼 생긴 열매가 달려 있었다. 양버즘나무 아래 쉼터에서 가져간 삶을 고구마를 꺼내 먹고 함안보를 빠져나와 본포로 향해 가는 낙동강 물줄기를 굽어봤다. 강 건너는 부곡 학포 노리에서 임해진으로 가는 벼랑 개비리길이었다.
쉼터에 둔치로 내려서니 물억새와 수크령이 색이 바래 갈색으로 바뀌어 야위어 갔다. 자전거길과 다는 산책로를 따라 바싹 강기슭까지 나가니 무성했던 갯버들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 겨울다운 풍광을 느끼게 했다. 함안보를 빠져나온 시퍼런 강물은 너울너울 본포 취수장을 향해 흘렀다. 안신천이 가까운 둔치 체육공원으로 산책객 가운데는 강아지를 데리고 나은 이들도 만났다.
몇 해 전 가을 그곳 강가에서 어미 품을 벗어나 며칠 되지 않았을 아기 고라니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녀석은 내가 상위 포식자가 아님을 알기나 했는지 내 주변을 한동안 서성이다가 가시덤불로 사라졌다. 색이 바래 야위어 바람에 일렁이는 물억새 군락지를 지나 북면 수변공원까지 걸어 바깥신천에서 시내로 가는 14번 버스를 탔다. 반송시장에서 동네 카페를 둘러 집으로 왔다. 23.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