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모토하루(후편): 스모 일가에서 태어났어도 「원래 그다지 스모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의 강함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원문: https://sumo.sports.smt.docomo.ne.jp/interview/20220905_5546.html
2022년 9월 05일 10:50 배포
기사 제공:iSM
일본의 전통문화를 깊이 계승한 화려한 오즈모의 세계. 리키시들은 모두, 왜 이 길에 뜻을 두며, 매일 도효를 향하고 있는가. 본 연재 칼럼에서는 다양한 리키시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살펴본다.
아라시오 베야 소속, 와카모토하루 선수의 인터뷰 후편. 지금까지 도효의 추억, 스모를 시작한 계기, 그리고 취미인 프로 레슬링의 매력에 대해서 폭넓게 이야기했습니다. 「원래 그다지 스모를 좋아하지 않는다」라며 웃는 그지만, 지금의 강함의 이유, 그리고 원동력은 무엇인가.
인터뷰어・글・사진/이즈카 사키
많은 선수들과 절차탁마하는 나날
――평소에 스모의 연구를 하십니까.
와카모토하루 선수(이하 「」안의 내용)「꽤 하죠. 상대의 경기도 보지만, 자신의 진 경기를 꼭 봅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다지 스모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진 경기만은 꼭 챙겨 보고 있습니다. 역시 뭔가 패배한 원인이 있고, 그것을 개선할 수 있든 없든간에 찾아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를 하는 오늘은, 다른 헤야의 리키시가 출장 케이고를 하러 오셨다면서요.
「오노쇼 선수, 타카야스 선수, 메이세이 선수, 호쇼류 선수, 니시키기 선수, 호쿠토후지 선수, 키리바야마 선수, 그리고 키타노와카 선수가 와 주었습니다. 저희 아라시오 베야의 세 명을 합해, 총 11명의 선수들이 케이고를 했습니다. 이렇게 와 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네요」
――아라시오 베야에는 세 명의 세키토리가 계신데, 평소에도 활기가 넘치지 않으신가요.
「코로나 사태로 출장 케이고가 금지된 기간에는, 동생(와카타카카게)이나 코토쿠잔 선수와 주로 케이고를 했고, 요즘에는 기세 좋은 케이고 상대가 넘쳐나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헤야의 분위기는 옛날부터 계속 좋았지요」
――지금까지 인상적인 경기는 뭐였습니까.
「그 경기는 지난 바쇼(7월)의 아비전이 될 것이 분명했죠. 그런데, 다치아이 헨카를 당했습니다(쓴웃음). 저는 그것을 최고의 경기로 만들 생각이었습니다만. 그래서, 화제가 되었다는 의미에서도, 제가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에서도, 역시 이번의 요코즈나 전이 되겠네요. 하지만, 다음은 기대하지 마십시오. 기대를 받으면 약해지니까요(웃음)」
――아비 선수와는 아주 사이가 좋은데, 이번에 마쿠우치에서의 첫 대전을 치르셨죠. 그밖에 사이가 좋은 리키시가 있으십니까.
「동갑인 다이에이쇼 선수가 있고, 그 다음은 오노쇼 선수, 타카노쇼 선수. 키리바야마 선수와 호쇼류 선수도 있고요. 모두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이가 비슷한 선수들과는 특히 그렇고요」
――그러면, 동경하는 리키시는 있으십니까.
「옛날에는 무사시마루 선수였습니다. 단숨에 앞으로 파고드는, 알기 쉬운 스모로 강했거든요. 그 다음은 쇼호잔 선수. 승모근이라든지, 몸이 멋있어서 동경했습니다. 저는 입문할 때 츠키오시 스모였기 때문에, 츠키오시에서 히다리요츠로 가는 스타일에 가까웠죠. 은퇴하시긴 했지만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시면서 같이 경기도 할 수 있었고, 이야기할 기회도 많아서 기뻤습니다. 저는 커리어가 늦어서 요코즈나 하쿠호 선수와 맞붙었다면 영광이었겠다고 생각하지만, 붙어 보지 못한 분들도 많죠. 한 번은 주료 시절에 케이고를 해 봤는데, 내던져지고 말았습니다만 그래도 굉장히 기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케이고를 싫어하는」것도 기세가 점점 좋아지는 이유
――조부님은 전 코무스비 와카바야마, 아버지는 전 마쿠시타 와카시노부라는 스모 일가에서 태어나, 삼형제가 함께 스모를 시작하셨는데요.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삼형제 중에 누군가 하고 싶다고 했는데, 누군가 한 명이 할 거면 다 같이 하자고 한 것 같습니다만, 저에게는 기억이 없고요. 하고 싶다고 말할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옛날부터 저는 방에 틀어박혀서 만화를 읽는다던가 하는 인도어파의 소년이었는데, 그런 말을 했을까요? 라는 거죠. 스포츠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근본적으로 없었다는 느낌입니다. 스모도 말이죠, 힘들기도 하고, 케이고는 싫고, 계속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찌어찌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찌어찌 여기까지 왔다, 그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응원해 주시는 분들 덕분이죠. 지켜봐 주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섬세한 면도 있어서, 과도한 기대를 받으면 약해진다고나 할까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방치되는 것은 싫지만 지나친 간섭도 싫은 거죠. 어느 쪽이야⁉ 같은 성격이죠(웃음)」
――그 기분 이해할 것 같습니다(웃음).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올해 아이도 태어나셨죠. 가족이라는 버팀목도 크지 않으신가요.
「그렇죠. 올해 들어간 마쿠우치에서 올라가서, 지난 바쇼 마케코시까지는 3바쇼 연속 9승을 달성했으니까요. 올해 아이도 태어나서, 기세가 좋아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올해 기세가 올라간 만큼, 더욱 분발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상위권의 벽은 두텁지요.
「상대가 다들 강하고 어렵습니다. 상위 단골 멤버 상대로 이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임하고 있는데, 어쨌든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케이고가 싫기 때문에, 사실은 연습장에서도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지만 말이죠…. 하지만 이걸로 살아가기로 결심했으니,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프로 레슬링과 만화를 좋아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엿보다
――선수님께서는 프로 레슬링을 좋아하신다고 전에 들었습니다. 프로 레슬링을 좋아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습니까.
「시작은 만화 『근육맨』이었습니다. 시합을 TV로 본 것은 중학생 쯤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미국의 WWE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어서, 그 아이와 함께 WWE를 보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경기장에 보러 가게 된 것은, 프로가 된 후였어요」
――프로 레슬링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스모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이기면 장땡인 세계. 하지만 프로 레슬링에서는 지더라도 얼마나 멋있게 지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대조적인 느낌이 들죠. 스모에 없는 것은 프로 레슬링에 있고, 프로 레슬링에 없는 것은 스모에 있습니다. 스모는 경기자로서 하고 있습니다만, 프로 레슬링에 대해서는 우와~ 하면서 즐기고 있으므로, 팬으로서 변하지 않는 시선으로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취미는 있으십니까.
「만화를 좋아해서 자주 읽습니다. 요즘에는 『체인소 맨』이라는 만화를 다시 읽고 있는데요. 이번에 애니메이션으로 나온다더군요. 그리고 게임도 좋아하는데, 실제로 인도어파라서 코로나 사태에도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혼자서 노는 것은 제 특기죠. 계속 혼자서만 지낼 수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인터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바쇼의 목표를 들려주시죠.
「목표를 세우는 건 잘 못하기 때문에, 매 경기를 제대로 하고, 힘을 내는 것이 목표라고나 할까요. 성적은 도외시하고, 얼마나 저의 스모를 할 수 있느냐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는, 다시 한번 아비와 경기를 하고 싶네요. 이번에는 헨카 하지 마세요(웃음)」
【프로필】
若元春 港(와카모토하루・미나토)
1993년 10월 5일생. 후쿠시마현 후쿠시마시 출신. 형은 마쿠시타 와카타카모토, 동생은 세키와케 와카타카카게. 소학교 2학년 때 형과 함께 스모를 시작했고, 유도와 소프트볼에도 몰두. 중학교를 졸업한 뒤 스모에 전념하여, 가쿠호 후쿠시마 고등학교에 진학해 3년 연속 인터하이 개인에 출장. 3년차에 토호쿠 대회 준우승. 형이 입문하고 있던 아라시오 베야에 입문하여, 2011년 11월 바쇼에 첫 도효에 오름. 그 뒤로 1년 반 만에 마쿠시타 우승, 입문하고 7년 만에 염원하던 신주료 승진. 올해 1월 바쇼에 신입막을 달성하고, 3바쇼 연속으로 9승 6패의 약진. 지난 7월 바쇼에는, 자기 최고 계급인 동군 마에가시라 4위로 승진. 결과는 아쉽게도 6승 9패로 마케코시가 되었지만, 알찬 내용의 경기로 그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신장 185cm, 체중 139kg. 특기는 히다리요츠・밀어부치기.
【저자 프로필】
이이즈카・사키
1989년생, 사이타마시 출신. 와세다 대학 국제교육학부 졸업. 베이스볼 매거진 사에서 근무한 후, 2018년에 독립. 프리랜서 스포츠 라이터로서 『스모』(동사), 『오즈모 저널』(어플리 스타일), 『IRONMAN』(피트니스 스포츠), 야후! 뉴스 등에서 집필 중.
[번역 후기]
이래저래 미뤄 오다가 기분을 내서 이틀 만에 번역했습니다. 3~4시간 정도 걸린 듯? 최근에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기도 했고, 이번에 우승한 타마와시를 이긴 선수도 오나미 형제 2명뿐이었죠. 큰형이 주료에 오르지 못해 삼형제 모두 세키토리 달성은 아직이지만.. 어떻게 보면 큰형이 먼저 입문했기에 동생들도 따라서 입문하고 지금까지 열심히 해 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과연 삼형제 중에서 제일 먼저 스모를 하겠다고 말한 건 누구였을까요(큰형? 막내?). 참 듬직하고 잘해 주고 있는 와카모토하루 선수인데, 의외로 연습을 싫어하고 게임과 만화를 좋아하는 일면도.. 일부 표현은 한국어에 맞게 변경하였습니다. (예: 세키토리>선수. 문맥상 꼭 '세키토리'여야 하는 부분은 '세키토리'로 표기) 케이고도 왠지 음역해야 할 것 같아서 그대로 뒀고요. ('연습 경기'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함) 아비가 부상으로 지난 바쇼에 빠지게 된 것은 너무 아쉽습니다. 건강하게 돌아와서 와카모토하루 선수와 멋진 경기를 치러 주기를..
첫댓글 와카모토하루, 와카타카카게는 "모리의 양천(両川)" 이라고 불리는 깃카와 모토하루, 고바야카와 타카카게에서 따온 것이라는데, 다른 곳도 아니라 후쿠시마현 출신인 선수 형제들이 그런 시코나를 칭한 것이 특히 궁금하네요... 물론 모리 모토나리의 아들들의 결속력이 유명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후쿠시마현 일대와 죠슈 번주 모리(毛利) 가문이 지배하던 야마구치현 지역은 지역감정으로는 철천지 원수일 터인데 말이지요.
메이지 유신 시기에 신정부군 죠슈번, 사쓰마번 군사들이 에도성 무혈개성 이후 에도에 입성한 뒤에 도호쿠의 여러 번들은 오우에쓰 열번 동맹을 형성해서 신정부군에 대항했었는데 도호쿠에서 가장 큰 아이즈번은 아이즈와카마쓰 성을 중심으로 정말 처절하게 저항했었지요. 여자들 까지 수백명씩 나서서 결국 집단자살을 할 만큼이요... 아이즈와카마쓰성이 결국 신정부군에 항복할 때 아이즈 사람들이 통곡하면서 항복 의식을 하는 장소 바닥에 깔려 있던 천을 찢어다가 각자 보관했는데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 당시 후쿠시마현 일대를 비롯한 도호쿠 지역은 그야말로 대타격을 입어서 수십년이 지난 뒤에야 일정부분 복구가 되었고 아직도 일본에서 낙후된
지역이지요.
더군다나 특히 아이즈번 출신들은 이후 오랜동안 공직 진출 같은데서 엄청난 지역 차별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조슈번이었던 야마구치 지역이 그야말로 보수 우익 초강세 지역인데 반해, 후쿠시마는 야당세가 강한 지역이지요.
어엇! 듣고보니 그러네요. 야마구치 영주 집안에서 쓰던 이름을 후쿠시마 출신이 갖다붙이다니
좋은글 감사합니다. 이제야 답글이 써지네요 ^^
료마전을 보는듯 합니다
죠수번 전투 등ㅡ
형제는 용감하다는 글들을되세겨 봅니다
무명님 대단하십니다. 번역글이 아닌것 같네요.
제가 님처럼 일본어를 잘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님덕에 와카모토하루 라는 리키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되서 아주 기쁩니다.
앞으로도 많은 글 올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