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여파로 삼 년간 취소되었던 초파일 행사가 올해에는 다행히 풀려
행사를 치르게 되었다고동네 사찰마다 분주하다.
사실 일 년 내내 거의 주말마다 전국의 사찰을 순례하다 보니
초파일 행사 참배는 가급적 자제하고 초파일 날 하루는그냥 집에서 보냈는데
올해에는 코로나 여파도 있고 해서
불자들이 얼마나 모였나 궁금하여 불암산 학도암을 둘러보았다.
불암산 학도암은 둘레길 좋아 매주 적어도 2~3번씩은10여 년을 다니다 보니
초파일이라고 해서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나들이인 셈이다.
공릉동 백세문을 지나 30여 분 걷다 보니 어느새 정자에 이러렀다.
정자에 앉아 등산객들을 보니 학도암으로 내려가는 사람들도 드러 보인다.
집에서 느긋하게 출발해서 그런지 경내에 이르니벌 써 공양 시간인지 참배객들이 무척 많다.
대웅전 앞에는 줄을 서서 참배 차례를 기다리는 것도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불암산 학도암의 명물은 단연 마애불과 약사전의 석굴이다.
학도암(鶴到庵)은 조선 후기인 1624년(인조 2) 무공(無空)스님이
불암산의 한 암자를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창건한 사찰이다.
초기의 사찰 명칭은 알 수 없지만 전하는 말에 따르면
절 주위의 불암산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학이 이곳에 날아와 노닐었다고 하여
학도암으로 불리게 된 절로 알려져 있다.
마애불 가는 예전 모습은 철쭉이 활짝 피어 있었는데...
예전 초파일날에
불암산 마애관음보살좌상 조성시대: 고종 7년(1870)문화재지정: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4호마애불 크기: 높이 13.4m
불암산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鶴到庵 磨崖觀音菩薩坐像)은
고종 7년(1870년) 명성황후의 시주로 조성되었다.
명성황후는 당시 최고의 불화가 장엽을 금어로 임명하고 경복궁을 복원하던
왕실석공 김흥연 이운철 원승천박천 황원석을 보내 관세음보살 좌상을 조성하게 한다.
당시(조선시대)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가 탄압받는 중임에도
왕실의 후원으로 조성된 마애관음불좌상으로 국내 마애불 좌상 중 크기도 8.3m로
제일 크지만 회화적 기법이 사용된 조선 후기 빼어난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조선 전반기의 도식적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 대형마애불입상으로는
북한사 도선사 마애불입상(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4호. 크기 8.43m)이 있다.
학도암 마애불은 양각의 융기된 선묘로 부조되어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는 좌상으로
화불이 있는 보관 장식이나 칠보문, 옷 주름 표현 등에서
불화의 도상을그대로 바위에 옮겨 놓은 것처럼 보인다.
특히 보관 양쪽으로 뻗어 나온 관대에 구슬처럼 달린 마름모 모양의 사슬 장식이
양어깨 위에 늘어져 있는 점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이 관음보살상의 얼굴은 가늘고 긴 눈과 뭉툭한 코,작은 입술 등으로 인해 새침한 인상을 준다.짧은 목에 표현된 형식적인 삼도는 가슴 아래쪽으로 내려가 있다.양쪽 어깨에는 대의를 걸치고 있으며안쪽의 내의(內衣)는 가슴 위에 수평으로 입고그 위에 띠 매듭을 표현하였다.
두 손은 엄지와 셋째 손가락을 맞대고 있으며,오른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사뿐히 얹어놓고 왼손은 가슴 앞으로 올려서 들고 있다.
첫댓글 성불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