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기 전
6월 중순에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코로나 펜데믹 이후 처음이니
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었지요.
종로 인근만, 전에 다녔던 곳 위주로
짧게 돌고 왔습니다.
서울은 참 덥더군요.
기온, 습도가 높다 이런 것보다
도시의 열기가 뜨거운 느낌이었습니다.
여행 내내 얼굴이 뜨거운 느낌이었네요.
여행을 마치고 부산역에 딱 도착하자마자
"역시 부산이 시원하네!" 가 절로 나오더군요.
서울역 광장을 딱 나오는데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가뜩이나 뜨겁고 더운데
스피커에서 요란하게 울려퍼지는
찬송가 메들리...
예수님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어르신들이 그 땡볕에 서서
예수 좀 믿으라고~믿으라고 고래고래...
서울의 처음과 마지막이
그렇게 인상지워지는게
안타까웠습니다.
서울은 역시 글로벌 도시더군요.
관광객이 많은 곳 중심으로 다녔다쳐도
외국인과 외국어가 발에 치이는 수준이었습니다.
펜데믹 이전에도 그랬긴 했지만
그 양과 다양성은 비교가 안되더군요.
하긴 그 사이에 '오징어 게임'도 있었으니...
그리고
그 많은 외국인들이 죄다 한복을 입고 다닙니다.
한복 안 입어본 외국 관광객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한복 체험은 제대로 자리잡았더군요.
현지인의 입장에선
"제발 그 한복 입지 마소" 하고 싶을 정도로
땡~볕!의 날씨였지만
경복궁 주변은 이미 다인종 조선인에게
정복당한 상태였습니다.
하긴 아시안이 아닌 이상
한국에 또 언제 와보겠어요.
쪄죽어도 일단은 입어봐야지.
그 다인종 조선인들에 섞여
새로 복원되고 공개된 유적지도
둘러보고 왔습니다.
복원된 광화문 왕의 길 덕분에
경복궁은 더 위용있어 보였고
정비된 광화문 광장은
휴식하기 좋은 공간이 되었더군요.
담벼락에 둘러쌓여 의문의 장소였던
열린 송현 녹지 광장은
미술 작품들이 전시가 되어 있긴 하지만
생각보다 가꿔지지 않고
자연의 풀밭에 가까운 느낌이라
의외였습니다.
의정부 터를 못 보고 온 게 아쉽네요.
창경궁 담장길은 되게 신기하더군요.
딱 들어서는 순간
도시의 공기와 소리가 차단되면서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딱히 그늘도 없었는데
더위까지 잊혀졌습니다.
그곳의 풍경을 폰카에 담는데
한복을 입은 외국인 소녀들이
화룡점정이 되어 줘서 기부니가 좋았습니다.
해질녘에 맞춰 낙산공원으로 갔습니다.
노을이 지는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가볍게 맥주 한 잔을 하고 싶었거든요.
뷰 좋은 카페에 딱 원했던 테라스 자리에 앉아
맥주를 적시는데...
이야~ 좋더군요~
뭘 더 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좋았습니다.
이곳에도 역시 외국인이 많았습니다.
옆자리에 외국인 커플이 있었는데
자꾸 제 쪽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누굴 닮았다고 생각하나?" 생각하면서
정리를 하고 가려고 맥주잔을 드는데
그 커플이 화들짝 놀라며 제지하는 겁니다.
알고 봤더니
한모금 정도 남은 기네스에
벌레가 빠져 죽어있었던거죠.
그것도 모르고 그걸 마셔버릴까봐
그 커플이 전전긍긍했던겁니다.
사실 저도 이미 알고 있어서
"아이 노 아이 노 땡큐" 하며
미소를 날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서울에는
못보던 벌레 천지더군요.
"러브버그' 라고 하던데,
없는 데가 없고 쫓아지지도 않고
익충이라니 죽이기도 그렇고
꽤 귀찮았습니다.
부산에선 못 봤는데...
오랜만에 찾은 익선동과 종로 3가는...
선을 넘은 느낌이었습니다.
을지로가 히트치고 공인받으면서
종로 3가의 야장도 엄청 확장되었던데
길거리에 판을 벌려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고
옆에선 담배를 피고 쓰레기를 버리고...
덥고 습해서 그런지
혼돈과 지저분 그 자체더군요.
정돈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익선동은 펜데믹 이전부터 그랬긴 하지만
전통 한옥 마을의 개성이
자본에 완전 잠식되버려서
고만고만한 악세사리, 옷가게 판이 되었더군요.
그래도 아직까진 유니크한 동네인데
더 이상 색깔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전부터 유진식당을 가고 싶었습니다.
가성비 좋기로 소문난 노포에서
냉면-녹두전-소주의 콜라보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딱히 인상적이진 않더군요
아니, 사실...
맛을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습니다.
에어컨을 어찌나 세게 틀어놨던지
에어컨 바람이 정확히 제 정수리로
쏟아져 내려 꽂혔거든요.
폭포수처럼 내려꽂는 칼바람 때문에
머리가 얼얼해서
맛이고 뭐고 얼른 탈출하고 싶은
마음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날 추울 때 다시 도전하던지 해야겠어요.
일하는 어르신들한테도 안좋을텐데...
서울 갈 때마다 꼭 들르는 곳이 을지면옥입니다.
종로 주변 평양냉면집 돌다가
정착한 곳이 을지면옥이었어요.
위치가 좋았거든요.(필동도 좋아하는데...ㅠㅠ)
마지막으로 갔을 땐 이명세 감독님 뒤에
줄을 섰던 기억도 있네요.
그 사이 을지면옥은 가격도 오르고 위치도 옮겼죠.
그 때의 맛과 만족감을 기대하고 걱정하며
새로워진 을지면옥을 찾았습니다.
새거 냄새가 폴폴 나는 큰 건물에 자리하긴 했지만
특유의 정취를 잃진 않았더군요.
그리고 몇 년간 그리워했던 평양냉면의 맛은
"와...비싸졌어도 오길 잘했다.
이게 평양냉면이지...!" 하는
감격과 반가움의 맛이었습니다.
부산에선 찾을 수 없는 맛이라
만날 때마다 더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또 언제 만나게 될 지...ㅠㅠ
서울을 떠나기 전 마지막 음식은
서울역의 파이브 가이즈였습니다.
여유있게 기차를 타고 싶었고
저한테 파이브 가이즈는
서울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거든요.
그렇게 떠들석했던 미국 본토 버거의 맛을
체험하기 위해 긴 줄을 견뎠습니다.
희안한 새치기도 경험했어요.
분명 우연히 만난 지인인데
대신 주문해주니 어쩌니 하더니
어느 새 앞줄의 지인 곁에 합류해서는
주문은 따로 하는...?
어이는 없었지만 제 차례가 금방이라
불쾌하진 않았습니다.
"서울은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곳"이라는
옛말이 오랜만에 생각났을 뿐.
아무튼 파이브 가이즈의 맛은
기대만큼 미국 맛이 아니더군요.
미국에 가 본 적도 없는 놈이라
미국 맛에 상당한 오해가 있는 것도 같은데
버거도, 감튀도, 땅콩도 딱히 임팩트가 없었습니다.
가격도 우리 동네 맛있는 수제버거에 뒤지지 않으니
버거가 먹고 싶으면 수제버거를 먹기로 하고
그냥 체험한 걸로 만족했습니다.
쉑쉑도 별로였는데 인앤아웃은 언제쯤 먹어보려나...
이렇게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를 마쳤습니다.
개인적으로 서울 나들이의 진면모는
겨울이라고 생각해요.
춥긴 추운데 그만큼 운치가 있어요.
언제쯤일지 모르지만
겨울의 서울을 계획해봐야겠습니다.
첫댓글 유진식당은 싼맛에 가는곳이었는데
지금은 메리트가 없어요
그래도 잘 되더군요 젊은 사람도 많이 오고 다음에 또 갈진 생각해봐야겠지만^^
@풀코트프레스 돈 조금 더 주고 을지면옥 가시는게 더 좋을듯요
@kirt2050 을지면옥은 무조건 가죠^^
여행기? 잘 보았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셨기를
긴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저 사는 동네 근처로 수시로 걷곤 하는 지역입니다. ㅋ 청경궁 창덕궁 연결된 길이 이제 복원 마쳐서 걷기 좋아졌죠. 종묘-창경궁 연결길이 솔직히 복원 전이 개인적으로 운치는 더 있었는데 지금 도로 위에서 보는 맛도 색다르긴 해요.
걷기 너무 좋아요. 경복궁-창덕궁-창경궁-북촌-서촌을 그래서 좋아해요. 경희궁-덕수궁도요!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서울서 직장생활을한지가 17년쯤 된거 같은데 위 음식점들 중 가본곳이 한번도 없네요ㅎㅎ
저도 부산에 있으면서 유명 밀면집, 돼지국밥집 거의 안가보니까요 ㅎㅎ
을지먄옥 캬
평양냉면집 골라서 다니는 감독님 넘 부럽
잘 보았습니다. 감사해요. 서울을 보니 가슴이 몽글몽글해지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고
저 사진속의 길들을 걷고 싶습니다
이역만리에서 보면 정말 그리우시겠어요.
@풀코트프레스 예! 아까는 저 사진속에 들어가고 싶다.. 라는 밀도 안되는 상상을 ㅎㅎㅎ. 제가 즐겨 가는곳이라 그런가봐요
@둠키 저는 고향도 아니고 그저 여행지일 뿐인데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볼 때 그런 생각이 드는데 둠키님은 오죽하시겠어요.
을면지옥 으로 잃었나이다.
혹시 알콜지옥에서 보신건지^^
ㄷㄷ 그와중에 읽다 잃다 오타까지..ㅠㅠ
유진식당은 저희 부부 인생맛집인데ㅠㅎ
오랜 세월 그 곳에 있었으니 인생맛집이신 분이 얼마나 많을까요 저도 좀 더 좋은 때에 가봐야겠읍니다
산책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게 하네요. ^^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잘찍으시네유 ㅎㅎ
피사체가 좋으면 누가 찍든 뭐^^
재밋는데요 ㅋㅋ또 올려주세요
겨울에 다녀오면 더 정리 잘해서 올려보겠습니다^^
1)맥파이와 파이브가이즈는 가보고 싶네요
2)서울 사람도 서울역 광장과 종로3가는 잘 안가게 됩니다
3)관광코스를 4대문안,여의도,강남같은 오피스 밀집지역으로 잡으신다면 여름과 겨울은 피하셔야 됩니다
왜냐면 중간이 없어요 여름은 무진장 덥고 겨울은 그거 이상으로 추워요 가을에 오시는거를 추천드립니다
2) 제가 서면에 잘 안가는거랑 같군요^^
3) 아무래도 가을이 제일 좋죠. 전 겨울도 나름 괜찮았습니다. 귀가 시리긴 하지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