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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종격투기 원문보기 글쓴이: 싸움10단 아시하라 히데유키
긍정적인 의미에의 충격 이었습니다.
힙합 매니아들에게조차 이제 막 알려진 랩퍼 나플라 를 본인이 대중들에게 소개한다거나
실력있는 인디밴드 들을 좋아하는 등..
유아인이 음악.연극 등 예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인것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참 진지하게 많은 부분들을 생각하고 있군요.
문화를 논하는데 사용하지도 않는 불필요하게 어려운 단어들 써가면서
뜬구름 잡는 소리하는 작가 와도 비교가 되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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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라는 껍질>
' 인디 영화계의 꽃'으로 불린 한 여배우가 있다.
영화계 인사들과 인디 영화 팬들에게 놀라운 호응을 이끌어 낸 하나의 단편 영화로
신인의 여배우는 자기가 피어난 줄도 모르게 꽃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 후 몇편의 영화로 커리어를 쌓으며 성장하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동안 그녀를 향하는 팬덤 또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필모그래피는 배우의 퍼즐이다.
퍼즐조각들을 구체화 된 이미지로 형성시키지 못한 신인의 배우에게는 한두 개의 조각이 전체의 이미지가 된다.
끝을 예측할 수 없는 그 다음의 모든 퍼즐은 기대와 배신 그리고 배우 본인의 끝없는 단련을 통해 확장하며
어떤 궤도에 올라가서야 커다란 연결고리를 가진 구체화 된 이미지로 형성된다.
한두 조각쯤 계륵으로 붙어 있어도 공고히 지켜지는 이미지.
그녀의 첫 번째 조각은 처음이란 찰나 속에서 인디 영화계의 꽃이란 선명한 이미지로 피어났다.
하우스에서 길러지지 않고 황량한 들녘에 핀 희대미문의 꽃에 나비들이 날아든다.
얼마 후 그녀는 대형 방송사의 주말 특별 기획 드라마에 메인 캐릭터로 캐스팅된다.
곧이어 일부 팬의 만류와 항의가 터져나왔다. 어째서 영화를 계속하지 않고 드라마에 출연하냐는 것이었다.
흔히 있는 제작 보고회 따위의 행사에서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경직되던 그녀의 얼굴 근육이 몇 년을 거치며
조금씩 이완되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은 그녀가 변했다고도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튜브 톱 드레스를 입고 부산국제영화제의 레드 카펫을 밟으며 미소 짓는 그녀에게 때가 묻었다고 했다.
무엇으로부터 변했고, 무엇에 때가 묻었으며, 무엇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걸까.
주목받던 신인 여배우는 자신을 향하는 팬덤 속의 특정 인물에 의해 배우의 본질이 아니라 그녀를 옭아맨
'인디'란 수식이 파생하는 가장 편협한 이미지로 소비되었다. 해를 거듭한 성장 속에서 그녀는 변절자가 되었다.
스포트라이트 앞에서 인형같이 웃어 보이는 대신 어리숙하게 구는 신선함을 유지하고 드라마 출연은 금기시되며
가슴골이 파인 드레스를 입고 레드 카펫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일부 집단의 인디에 대한 혹은 거기서 핀 꽃에 대한 판타지를 그녀는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녀는 개의치 않고 그 단어를 비집고 나와 자기 자신이란 꽃으로 만개하고 있다.
그녀는 대형 배급망과 자본을 확보한 영화에 출연하고 케이블 tv 드라마에 등장하며 홍상수 감독의 영화 안에서 연기한다.
그녀는 어디에서 연기하느냐보다 어떻게 연기하느냐를 중요시하는 연기자다. 그 여배우의 이름은 '정유미'다.
인디를 언급하며 흔히, 가장 크게 범하는 오류는 인디를 특정 장르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cgv와 씨네큐브를 나누고, sbs 인기가요와 ebs 스페이스 공감을 나누는 지점은 장르의 특성에 있지 않다.
인디란 우리가 쉽게 접하지 못하는 비주류 성향의 일부 장르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자본에 침식되지 않은 상태로
순수한 창작이 일어나는 특정한 양식을 얘기하고 그 주체가 되는 창작자들을 이른다.
또 하나의 오용과 부작용은 인사이드의 문을 열지 못한 창작자들의 절패감과 일부의 대중이 가지는
기존 대중문화에 대한 염증의 골이 인디란 단어를 등에 업고 깊어진다는 것, 희소한 문화를 생산하고 향유하는 우월감으로 왜곡된 반골 정신이 아웃사이드의 장벽을 높이며, 그 반대쪽에 주류와 상업 문화를 세워놓고 그것들을 불순한 것으로 매도하며 배타적인 시선을 갖게 된다.
너나 할 것 없이 권세와 부귀를 추구하면서도 그것을 불순한 것으로 여기는 자본주의 내부의 위선이 여기에서도 나타난다.
창 작자의 진정성이 담긴 빛나는 작품들이 대중의 외면 속에서 꺼져가는 불씨가 되는 것보다는, 이왕이면 더욱 다양한 루트를 통해 소개되고 더 많은 평가의 기회를 얻으며 그림자를 밝히는 불씨가 되는 쪽이 좋지 않은가.
표현의 의도가 자본에 의해 변질되지 않고, 작품성이 자본에 의해 훼손되지 않으며 역으로 자본을 냉정하게 이용할 줄 알고, 자본을 통해 더 많은 대중과 만나는 과정과 그 일을 해내고야 마는 존경받아 마땅한 창작자들이 시장 논리에 의해 변질된 영웅으로 치부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들을 즐기고 감동하며 문화 욕구를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
대 중에게는 영화보다 음악을 접하는 것이 더 간편한 일이고, 영화계보다 대중 음악계에서 인디를 둘러썬 긍정적 변화들이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매스미디어의 인디 뮤지션들에 대한 관심은 보다 다양한 틀을 거리에 대한 대중의 요구와 함께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그를 통해 기존의 인디 안에서 내공을 기르며 마니아 층에 갇혀 있던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cd산업은 무너졌을지 몰라도 한국의 대중 음악계는 k-pop으로 대변되는 아이돌 음악의 홍수 속에서 보다 풍성하고 다양한 컨텐츠로 채워지고 있다.
소녀시대가 미끈한 다리를 내놓고 오빠를 외치는 것은 대단한 철학을 가진 예술이 아닐지 모르나 충분한 엔터테인먼트이고, 틀림 없이 대중문화의 한 갈래다.
그리고 어딘가에 인디가 있다.
장 기하는 자의와 무관하게 인디계의 서태지란 타이틀을 달고 sbs의 간판 토크쇼 '힐링캠프'에 나와 내리 한 시간을 떠들며 공중파 tv 채널에 얼굴을 비친다.
과거의 명성에 비하면 궁색하기 없는 mbc 예능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서 4인조 밴드 국카스텐은 자신들만의 색깔로 단단한 음악 세계를 펼쳐 유명 출연진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며 시청자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보다 더 이전에 10센치는 mbc '무한도전'을 통해 수많은 대중에게 자신들의 음악과 존재감을 알리며 핫하게 떠올랐고 기타를 치고 노래하고 유명 여배우와 함께 tv 광고에까지 얼굴을 내비치며 폭발적 인기의 맹위를 떨쳤다.
그들은 모두 '인디 밴드'의 카테고리로 분류되고 인지되는 뮤지션들이다.
우리는 그들이 아이돌 가수들과 어깨를 겨루며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의 순위 차트 상위권에 랭크되는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
일찍이 자우림이나 YB같은 뮤지션들이 존재했고, 이 외에도 다수의 그룹사운드와 언더그라운드로 통하던 힙합과 같은 장르의 뮤지션 또한 지금은 대중의 각광 속에서 널리 사랑받고 있다.
그들은 홍대 앞에서 놀다가 압록강을 건너 여의도로 간 것인가? 그들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변절자들인가?
매스미 디어는 대부분이 사기업의 손아귀에서 쥐락펴락 된다.
공영을 가장하고 있지만 가장 상업적인 매체라 할 수 있는 tv 예능 프로그램에 '인디'한 아티스트들이 나와 노래하고, 소위 기획사의 자본을 통해 음반을 발매하고 이윤을 추구하며 대기업의 광고에 출연해 통장 잔고에 0을 몇 개 늘린다 해도 그들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음악가의 본질은 음악에 있고, 배우의 본질은 연기와 작품이며, 작품은 곧 작가와 감독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들은 자본의 논리에 매몰되어 본질을 잃지 않는 한 충분히 창조적인 채로 어디에라도 존재할 수 있다.
미디어의 순기능을 적절히 이용하고 본질을 잃지 않는 영민한 아티스트의 출현은 지극히 반길만한 일이다.
인디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대중은 보다 유연해졌다.
만일 우리의 기대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마라톤을 완주하는 판자촌의 영웅을 향하는 것이라면, 거기에 인디는 없다.
장기하가 얘기한다. 자신은 인디에서 출발했지만 인디를 지향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김기덕 감독이 케이블 tv 토크쇼에 나와 얘기한다. 서운했다고, 이제는 더 많이 사랑받고 싶다고.
그들은 어떠한 시기에 틀림없이 인디의 상태 또는 그러한 양식으로 존재했지만 그것을 향해 가는 아티스트는 아니다.
판자촌에서 시작된 창작은 거기에서 끝나야만 순수한 것인가. 좋은 것들, 좋은 사람들.
이왕이면 여럿이 나누자. 인디를 바라보는 대중의 편협하지 않은 시선,
그 단어에 심취하지 않은 순수한 표현의 욕구를 가진 창작자들의 정확한 자기 인식, 그리고 자본과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인디는 한류를 타고 뱉어나가는 한국 대중문화의 견고한 기저가 되어줄 것이다.
그 껍질 밖으로 변태하여 수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 땅에서 피어나고 있다.
WRITER 유아인(배우)
많은 부분들이 인상적이지만
만일 우리의 기대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면서도 마라톤을 완주하는 판자촌의 영웅을 향하는 것이라면,
거기에 인디는 없다.
이 문구가 기억에 남네요.
기부 하며 유아인이 썼던 글도 생각 나서 옮겨왔습니다.
.......
몰래 하는 것도 좋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하고 또 따라하게 할수록 좋은 것이 기부라고 생각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서적 기부관을 가진 모든 분들의 생각을 존중합니다만
보다 젊고 진취적인 기부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 또한 사회 공헌 의지를 가진 젊은 연예인들이 해야 할 일 아닐까요?
유명인의 기부와 관련한 기사에 달리는 ‘고작 그것뿐이냐’, ‘이미지 관리용이다’ 같은 악성 댓글을
기부자 스스로가 두려워해서는 안 될 일이지요.
좋은 일의 가치는 누가 그 일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아니라
‘뜻’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얼마나 잘 전달되느냐 하는데 달려있습니다.
유명인은 기부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보람을 느끼고 그 일을 널리 알려 더 많은 사람들이 뜻 깊은 일에 동참하게 하는 시너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선진 기부 문화이고, 좋은 뜻을 가지고도 주저했던 저와 같은 많은 분들이
이제는 주저 없이 그러한 기부 문화를 만드는 일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미 좋은 일에 앞장서신 선배님들의 발꿈치에라도 따라가고자 애쓰는 저처럼 많은 분들이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의를 가지고 행동하건 행동함으로써 선의를 갖게 되건
기부라는 행동은 그 자체로 사회의 음지를 밝히는 등불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꼭 기부와 연결되지 않더라도 유명인의 움직임이 사회 곳곳의 불편과 불행에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만으로도 틀림없이 가치 있는 일 아닐까요.
나는 아동생활시설 급식비 1,420원에 반대합니다.
올해 100원 올린 1,520원짜리 식단에도 역시 반대합니다.
사치스러운 식단을 만들어주지는 못할지라도
아동생활시설 아이들이 매끼니 적정단가 수준의 식단을 지원받고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 합니다.
우선은 시민예산이 그 모자람 채워주고 나아가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진 정부예산이 그 일을 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복지를 외치기 전에
기본도 누리지 못하는 아이들의 삶을 돌아보는 일이 선행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웃 아이들을 돕고도 나는 기름진 삼겹살로 외식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행운아입니다.
그런 나의 행운이 소외받는 아이들의 의도치 않은 불행에 나누어져 조금이라도 가치 있게 쓰이기를 바랍니다.
나는 부자이길 원하고, 성공하길 원하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전 화제가 되었던 이런 인터뷰... 절대 허세가 아님을 인정합니다..ㅎㅎ
첫댓글 유아인 데뷔 초기? 유명세 안 탔을 때 기고한 글들 읽어보면 잘쓴거 많았는데 언젠가부터 이상해짐... 갑자기 필력이 줄고 장황해진 느낌
이 때는 문장도 표현도 엄청 깔끔하네...? 내용도 좋고
와 글 내용 좋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정유미라고 써있어ㅠㅠ
헉.. 글 왜이렇게 잘 써 ? ㅜㅠ 아이고..
글을 마음에 와닿게 잘썼네 바란다면서 왜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지못했냐
ㅁㅈ 유아인 글 잘썼어.. 찐 걸오사형이라고 다들 그랬었는데.. 애호박때부터였나 어느 기점부터 글 쓰는 것도 그렇고 이것저것 달라진게 눈에 보였음
ㅜ 자아비대가 시작되면서.. 무슨 사건이 있었던건가..?
근데 진짜 옛~~~~~날엔 유아인 글도 잘 쓰고, 멀쩡?한 편이였음
나는 예전 인터뷰 중 여자친구관련 질문에 애인이라고 대답한게 기억에 남음
왜그렇게 변했을까?
오... 필력 좋다
와 이 글 진짜 잘 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