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심한 지 반년이 지났는데, 괴로움이 해결되지 않고 별다른 변화도 느낄 수
없습니다. 신심을 하든 안 하든 똑같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찍이 이케다(池田) SGI 회장은, 해외 청년부원의 솔직한 고민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초조해하지 말고 긴 안목으로 보아야 합니다. 나무도 한달
이나 반년만 보면 얼마나 성장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20년,
30년이 지나면 몰라볼 정도로 큰 나무가 됩니다. 하물며 신심은 일생, 아니
삼세(三世)를 위한 것입니다. 또 부처라고 해서 괴로움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부처는, 괴로움을 잔뜩 떠안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전 세계 일체
중생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까 하고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그러므로 괴로움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부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기원했는데 금세 좋아
지면, 신심은 깊어지지 않습니다. 참된 인간혁명도 숙명전환도 할 수 없습니
다. 어본존이 일부러 고생시키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원할 수 있다면, 그 마음이 바로 인간혁명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청년의 눈은, 이해와 결의로 빛났습니다. SGI 회장만큼 청년을 사랑하고,
청년을 믿으며, 청년에게 끊임없는 격려와 자애의 말을 보낸 지도자는
없겠지요.
청년 시절에는 누구나 추억이 많겠지요. 아니 추억이 없으면 결코 청년시절을
보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도(이케다 선생님)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 집은 가난한 탓에, 형 네명이 모두 군대에 끌려가 전쟁터로 내몰리고 말았
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없어, 상업학교와 전문학교
도 스스로 돈을 벌어 야간으로 다녀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게다가 나는
그다지 건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맡은 일은, 혼신의 힘을 다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회사 일로 긴자 거리에서 큰 짐수레를 끈 적도 있습니다.
가을바람이 불 때까지 남방셔츠 한 벌로 버틴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왠지
모르게 창피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드라마 속 주인공
청년처럼 방긋 웃으며, 괴로움과 싸우는 일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사실
그때 한 고생이, 오늘날 내 인생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때 내게는 굳센
믿음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니 그것은 결의에 가까웠습니다. '청년은 허영에
빠져서 살면 안 된다. 맨몸으로 사회를 활보하고, 온갖 힘을 길러 인생을 꿋꿋
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결의가, 당시의 나를 힘차게 떠받쳐주었
습니다. 이런 내 결심은 아직도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지위, 재산, 명예를
다 버리고 마지막에 오로지 인간으로서 승리하는 사람이, 인생에서 가장 승리
한 사람이라는 확신을 생애 잊지 않고 관철했습니다. 하지만 깊이 반성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10대 20대 때 더 기본적인 것을 철저히 공부하지 못한
일입니다. 또 '체력을 기르고 단련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점입니다.
스스로 청춘 시절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책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때 열 배, 스무 배 더 책을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지금 자신의 청년 시절을 되돌아보며, 청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통감하는 한 사람입니다. 결국 사람의 인생은, 청년 시절을
어떻게 보내느냐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청년 시절은 건설하는 시기입니다. 미완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한한 가능
성을 간직한 미지수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또 청년은 혁신의 숨결로 가득한,
넘치는 생명력의 소유자입니다. 청년만큼 위대한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나는, 청년의 가치는 용기와 확신 그리고 희망에 있다고 실감합니다.
청년의 용기 있는 실천은, 모든 것을 창조하는 근원입니다. 그리고 그 용기를
떠받치는 것은, 확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확신에는 망설임이 없습니다.
헤매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확신은, 자신의 사명과 책임을 끝까지 다하
겠다는 실천에서 나옵니다. 더구나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은, 청년기에
정립한 이상과 청년 시절에 그린 꿈을, 한 평생 끝까지 관철하는 사람입니다.
청년은 나라의 보배이자, 다음 세대를 짊어질 세계의 재산입니다. 이 재보를
이길 힘은 없습니다. 이러한 청년의 미래를 좀먹고, 생기를 앗아가는 행위는,
그야말로 재보를 바다에 버리는 것과 같겠지요. 심지어 전쟁 등에 몰아넣어
아까운 생명을 빼앗아버리는 지도자는, 사악한 사람입니다. 나는 청년을
좋아합니다. 청년의 성장이 가장 기쁩니다. 영지를 단련하고 평화를 이룩하고
자 행복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기쁜 마음에 가슴이 뜁니다. 요즘엔 나도,
생애 청년과 함께 걷고 언제까지나 청년의 숨결로 살고자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우리가 구축한 토대 위에, 청년들이 잇따라 세계평화와 문화
창조를 위해 웅비하는 모습이, 내 유일한 바람이자 가장 큰 기쁨입니다.
'자신을 격려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좋아할 수 있는 사람으로!
괴로움을 장작으로 불태워 빛나는 사람으로!'
청춘은 괴롭습니다. 고뇌뿐입니다. 그러나 고뇌가 있기에, 마음이 성숙해
집니다. 마음껏 고뇌한 나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한 나날이, 나중에 돌이
켜보면 가장 소중한 나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괴로움에서
도망치지 말고, 그 괴로움을 정면으로 뚫고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숲을 빠져나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쓸쓸하면 그 쓸쓸함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쓸쓸함과 슬픔을 유흥 따위로 속이면 안 됩니다.
소모해 버리면 안 됩니다. 참고 또 참아, 자신을 성장시키는 '밑거름'으로
삼아야 합니다.
인간도 꽃과 마찬가지로 햇볕이 필요합니다. 사람도, 남이 소중히 해주지 않으
면 마음이 메마르고 맙니다. 그러므로 그대가, 모든 사람의 태양이 되기 바랍
니다. 인간도 꽃과 마찬가지로 물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격려하고,
기쁘게 하고, 마음을 생기발랄하게 하지 않으면 마음은 메마르고 맙니다.
스스로 자신을 격려할 수 있는 사람은 멋진 사람입니다. 남의 괴로움도 아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기쁘게 하는 말을, 강함을, 현명함을!
우울한 마음을 '영차' 하면서 스스로 끄집어 올리기 바랍니다!
스스로 자신을 좋아하지 못하면, 남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부끄럼쟁이라면 그대로 괜찮습니다. 무신경해지고 무뎌져야 '어른이 된' 증거
는 아닙니다. 콘크리트처럼 딱딱한 꽃은 없습니다. 꽃은 모두 부드럽습니다.
순결합니다. 상처받기 쉽습니다. 남의 마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 마음을
평생 꽃피우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입니다. 운명은 밖에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그대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따분할 때,
그것은 자신이 따분한 인간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인생이 허무하다
고 느낄 때, 그것은 자신이 빈껍데기인 인간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인생에 진저리가 날 때, 오히려 인생이 그대에게 진저리 난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결국 자신에게 어울리는 인생밖에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적은 중간 정도라도 괜찮습니다. 큰 인간이 되면 됩니다.
머리가 좋으냐 나쁘냐는 성적만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살아가는 데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생각하기에 왠지 '이상하다'는 의문이
생기면,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답을 찾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끝까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사시에
진리와 정의를 위해서라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이 늘어난 만큼, 이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세계 어딘가에서 그대밖에 할 수 없는 사명이, 그대가 올 날을 기다리고 있습
니다.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날이 기다리고 있는 그대는,
꿋꿋이 살아야 합니다! 사명을 만날 그날을 위해!
빛나려면 불타올라야 합니다. 불타오르려면, 번뇌라는 장작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청춘 시절의 괴로움은, 즉 빛입니다.
어떤 사람도 반드시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이 있기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굳세게 살아야 합니다. 사명, 무엇에
'목숨(命)'을 '사용(使)하는가'. 나는 어떠한 '명(命)'을 받고 우주에서
'왔는가(使)', 파견되었는가. 불법은, 전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이라고
봅니다. 각각의 생명은, 그 큰 바다에서 일어나는 파도와 같습니다.
파도가 일어나면 '생(生)', 그 파도가 우주에 녹아들면 '사(死)'입니다.
생도 사도 우주와 일체입니다. 한 생명이 태어나려면 전 우주가 찬성하고,
전 우주가 협력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전 우주가 축복하며 보내준 생명입니
다. 생명의 존귀함은 평등합니다. 생명에는 서열이 없습니다. 생명에는
각기 개성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생명도, 전 우주와 똑같이 존귀합니다.
전 우주의 생명과 일체이고, 무게도 똑같습니다.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
은 그 점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숨은 모든 재보(財寶) 중에서 으뜸
가는 재보다." (어서 1596쪽, 통해) "목숨은 전 우주의 재보로도 살 수 없다고
부처는 설하셨다." (어서 1059쪽, 통해) "하루의 목숨은 전 우주의 재보보다도
존귀하다." (어서 986쪽, 통해) 그러므로 절대로 자살하면 안 됩니다.
절대로 폭력을 휘두르면 안 됩니다. 남에게 상처를 입히면 안 됩니다.
남을 괴롭히면 안 됩니다. 존귀한 생명에 상처 입힐 자격 따위는, 그 누구에게
도 없습니다. 자신은 왜 태어났는가. 청춘 시절은 그것을 탐구하는 시기입니다.
청춘은 '제2의 탄생'의 때입니다. 제1의 탄생이 육체의 탄생이라면, 청춘 시절
은 참된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때입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그래서
고민합니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때처럼 발버둥 칩니다. 그때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됩니다. 발버둥 치면서 기원하고, 생각하고, 배우고, 벗과 대화를
하고, 지금 해야 할 일에 부딪쳐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반드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자신의 사명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겨울의 괴로움'을 아는 사람만이 '봄의 기쁨'을 압니다. 인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스위스의 철학자 힐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쁨이 무엇인지 아는
이는, 본디 많은 고통을 참고 견뎌낸 사람들로 국한된다. 그 밖의 사람들은
참된 기쁨과 전혀 다른, 단순한 쾌락을 경험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고생하지 않는 사람은 '참된 기쁨'을 알 수 없다는 말 그대로입니다.
힐티는 말합니다. "인생의 행복은 어려움이 적다거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어려움을 늘 승리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훌륭히 극복하는 데에 있다"
모든 어려움을 유유히 이겨내는 데에, 인생의 행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불법의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와도 통하는 인생관입니다.
세간에는 고생하지 않고 요령 좋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편하게 이득을
보자, 출세하자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결말은 어떤가. 허식은 언젠가
벗겨집니다. 허영은 언젠가 막힙니다. 자연계에서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됩니다.
인간의 세계가 그렇게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힐티는 이렇게 외칩니다.
"관철하라! 이 한 마디는 내적인 생활의 위기에 맞서 도전하면, 몇번이든 거의
대부분 마술적인 효력을 발휘한다." 관철하라! 지속하라!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관철하라! 이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힐티의 결론
입니다. 힐티는 외쳤습니다. "지성이 잠에 빠지려 할 때, 또 나른한 기분에
지려할 때, 그럴 때일수록 '관철하라!' 이 짧은 말은, 건전한 의지에 충격을
주어 깨닫게 한다. 그리고 고귀한 혼은 다시 자유로워져 진실을 향해, 정의를
향해 움직일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허무함이나 나른함에 '속박되어 있다'
고 느낀다면, 그럴 때일수록 '관철하라!'"
조직, 직장, 인간관계 등에는 당연히 어렵거나 막히는 일도 있겠지요.
그럴 때일수록 '관철하라!' 전진을 관철하여 자신이 스스로 승리하는 수밖에
길은 없습니다. 삶이 어쩐지 울적할 때도 있을지 모릅니다. 무언가에 속박
되어 있다고 느낄 때, 모든 것이 수동적일 때, 어쩐지 방황하고 있다고 느낄
때, 그럴 때일수록 수동적인 일념을 바꾸어 '자, 이 길을 관철하자!'
'오늘의 사명을 관철하자!'고 정하면, 그 일념에 참된 '봄'이 옵니다.
꽃이 핍니다. '관철한다'는 것은 우리로 말하면 제목을 올리자, 한사람 또
한사람에게 불법을 말하자는 실천입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구체적인
길을 알고 있는 우리는 행복합니다. 청년부 중에서 창가학회를 이끌어갈
'21세기의 위대한 지도자'가 잇달아 나오기 바랍니다. 그렇게 강하게 기대
하기에 '철저히 노고하라'고 거듭 말하는 바입니다.
자주 대화를 나눈 마쓰시타 고노스케 씨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서 떠나지 않습
니다. "이케다 선생님, 역시 젊었을 때의 고생은 사서라도 해야 합니다."라고.
지금 시대는 모두 고생을 피하려고 합니다. 고생하는 것을 시대착오처럼 생각
합니다. 또 고생하면 손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고생은 전부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응석부리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응석
부릴 수 있는 '단련 없는 시대'입니다. 단련이 없기 때문에 자기라는 존재가
무너지고,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가 붕괴의 양상을 띠어 왔습니다. 이런 시대
이기 때문에 스스로 원하여 '고생하자'고 자각한 사람이 득을 봅니다.
어떤 것에도 '지지 않는' 자신을 만들고자 철저히 단련한 사람이 승리합니다.
그 귀중한 '자기교육'의 세계는 어디에 있는가. 바로 여기, 창가학회에 있습
니다. 여기에 인생을 최고로 승리하는 '길'이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말했습니다.
"앞으로 그대에게 영예를 안겨주는 것은 '어디에서 왔느냐'가 아니라,
'어디로 가느냐'다! 자신을 초월하려는 그대의 의지와 발이야말로, 그대의
새로운 영예가 되어야 한다!" '지금부터!', 늘 '지금부터!'입니다.
불법(佛法)도 현당이세(現當二世)의 정신을 가르칩니다.
가치 있는 인생, 특히 '가치 있는 청춘'을 여는 것은 '지금까지 어떠했느냐'가
아닙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힘차고 적극적인 일념입니다.
거기에 위대함이 있고, 승리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을 뛰어넘는
힘든 작업에 끊임없이 도전한다, 그 '향상하는 마음'에 청년의 혼이 있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청년에게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청년이라면 끊임없이 향상
하고, 품위와 교양을 높이고, 더욱더 위대한 자신을 확립해야 한다."
'청년이여, 자신을 만들어라!'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늘 '독서와 사색을 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장래에 사회의 지도자, 광선유포의 지도자가 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남보다 몇 배 더 사색하고, 철저히 고생해야 합니다.
자진해서 고생하고, 남보다 더 공부하기 바랍니다. 그런 자각으로 일어서면
눈도 빛나고, 생명도 충실해집니다. 반대로 고생을 피하려고 하면, 청춘의
싱그러움은 없어지고 맙니다. 나는 '하루를 일주일, 한달처럼 살자'는 마음
으로 움직이고, 말하고, 계속 도전하고 있습니다. 모두 회원 여러분을 위해서
입니다. 광선유포를 위해서입니다. 나는 이 '목적'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
니다. 수행하지 않는 생활은 타락합니다. 수행하지 않는 인생은 마지막에는
패배합니다. 자신을 만들지 않고, 단련하지 않고, 그럴듯하게 요령만 부리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인생의 마지막은 허무합니다. 반드시
후회합니다. '청춘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입니다.
어떤 일이든 순서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자유로우
면 오히려 불행합니다. 청춘 시절에 정신을 철저히 단련하고, 자신을 끝까지
연마하면, 그것을 토대로 어느 시기에 이르러 정신면에서도, 물질면에서도
꽃을 피웁니다. 그것이 도리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올바른 궤도입니다.
청춘은, 도전을 달리 부르는 이름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지지 않고 앞으로
또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고투 속에, 승리와 영광이 빛납니다.
청춘 시절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오히려 청춘 시절의 실패는,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과거는 과거, 미래는 미래입니다. 늘 '자, 오늘부터!' '이제부터!' '지금부터!'
'이 순간부터!' 하고 미래를 응시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니치렌대성인
이 나타내신 불법의 진수인 '본인묘(本因妙)'입니다.
인생은 40대, 50대가 되지 않으면 승패를 알 수 없습니다. 결코 눈앞의 일로
절망하거나 초조해하면 안 됩니다. 후회하는 일이 있어도, 괴로움이 있어도,
실패를 해도,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길고 깁니다. 일일이 불평하고, 일마다
자포자기하는 그런 볼품없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을 보아도, 청춘 시절은 가지각색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영국의 정치가
처칠은 '만년 낙제생'이었습니다. 간디는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습니다.
내성적이고 마음이 여려, 대화도 서투른 사람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열등생, 단 수학만큼은 뛰어나게 우수했습니다. 엑스선을 발견한 물리학자
뢴트겐은 공업학교에서 퇴학당했습니다. 같은 반 친구가 일으킨 사건에
휘말려 누명을 쓴 것입니다. 그럼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닐까요. 성적이 나쁜 사람,
집단괴롭힘을 당한 사람, 배신당한 사람, 실패한 사람, 병이나 경제고로
괴로워한 사람이 오히려 그만큼 남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의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지 말아야' 합니다. 지지 않으면, 괴로워한 만큼
장래 반드시 커다란 꽃을 피웁니다. 자신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사회의 차별,
경박한 풍조나 모순에 좌우되면 불행해집니다. 자신을 위해 살겠다는
마음을 잊으면 안 됩니다.
도다 선생님은 "인생은 마지막 몇년 동안에 어떤 행복을 느꼈느냐로 결정된다"
고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젊었을 때 형편이 어땠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젊었을 때 실패는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생 때 안 되면 중학교
에서, 중학생 때 안 되면 고등학교에서, 고등학생 때 안 되면 대학에서, 대학
생 때 안 되면 사회에서, 사회에서 안 되면, 40대가 안 되면, 50대가 안 되면,
70대가 되면 하는 식으로 늘 큰뜻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금세에서
못하면 내세에서 하겠다는, 영원한 생명을 응시하며 달관했을 때 불법이 됩니
다. 가장 큰 뜻을 품어야 불법입니다. 설령 여러분이 스스로 자신을 비관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 사명을 띠고 태어난 사람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누가 여러분을 바보 취급해도, 나는 여러분을 존경합니다. 여러분을
믿습니다. 지금이 어떻든, 반드시 훌륭한 미래가 열린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쓰러지면 그때마다 다시 일어나면 됩니다. 일어나면 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
니다. 여러분은 젊습니다. 건설입니다. 투쟁입니다. 지금부터입니다.
지금, 무언가를 시작해야 합니다.
어느 의미에서 말하면, 어떠한 시대에도 심각한 괴로움은 있습니다.
어떠한 시대도 청춘은 고뇌로 갈등하는 시기입니다. 공부뿐만이 아니라 가족,
건강이나 용모, 이성, 친구 등 여러가지 고뇌가 있습니다. 괴로움도 있습니다.
불안도 있습니다. 분한 일도 있습니다. 슬픔도 있습니다. 온갖 고뇌와 투쟁
하는 때가 청춘 시절입니다. 그런 가운데 발버둥 치면서 깜깜한 구름을 헤치고
태양을 향해 나아가자, 희망을 향해 나아가자, 이 힘이 청춘입니다.
고뇌나 실패, 후회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 것에 지지 않는 것이 중요
합니다. 고뇌하면서, 괴로워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길을 잃었다, 바다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느 길이라도 좋으니
앞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그러면 강이 나옵니다. 강줄기를 더듬어 가면
언젠가 반드시 바다로 나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발버둥
치면서 제목을 올리고 1밀리미터, 2밀리미터라도 좋으니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
다. 그렇게 끝까지 살면, 나중에 되돌아 보았을 때 어느새 정글을 빠져 나온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괴로워한 만큼, 슬퍼한 만큼, 제목을 올린 만큼
인생은 깊어집니다. 그것이 21세기의 지도자가 되기 위한 영양소입니다.
청춘 시절 흔들리기 쉬운 마음은 때로는 환경을 비관하거나, 환경에 휘둘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은 '지지 않는 혼'으로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반드시 '환경이 좋으니까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환경이 나쁘니까 불행하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습니다.
행불행은 환경으로 좌우되지 않습니다. 자기가 결정합니다. 환경에 지느냐
이기느냐, 그것으로 결정됩니다. 공부뿐만 아니라 인생에는 곤란한 일,
괴로운 일, 싫은 일 등 고민거리가 많습니다. 그럴 때 삶의 방식은 두 가지
뿐입니다. 하나는 불평을 일삼으며 모든 것을 환경 탓으로 돌리고 패배하는
삶입니다. 그러면 주위 사람들이 동정할지는 모르지만 결국 자신이 손해를
입고, 뭐라고 해도 변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환경이 어떻든 자기 길을 스스로 열겠다는, '지지 않는 혼'을 불태
우는 삶입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스스로 정할 문제입니다.
무엇을 하든 마음이 약해서 '남 탓'으로 돌려버리면, 희망이라는 커다란 길은
열리지 않습니다. 먼저 '다 내가 결정한다!' '내가 강해진다!'고 마음을
다져야 합니다. 그런 노력도 하지 않고 불평만 일삼으면, 참으로 비굴합니다.
'선생님이 나쁘다' '부모가 나쁘다' '친구가 나쁘다'
이렇게 남 탓으로 돌리는 버릇은 비굴한 태도입니다.
나폴레옹은 '환경이 무엇인가? 환경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환경 탓으로 돌리지 말고,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입니다. 나는 언제나 믿습니다. 사명이 있는 여러분이,
어떤 일이 있어도 질 리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승리하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꿈을 향해 힘껏 노력하기 바랍니다. 설령 멀리 돌아갈지라도,
마지막에 결승 테이프를 끊고 승리하면 됩니다. 강해져야 합니다.
강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를 악물고 노력하는
사람은, 남이 발견하지 못하는 '재산'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약한 사람은, 아무리 '혜택 받은 환경'도 '자신을 망치는 환경'으로
만들고 맙니다. 여러분이 선택한 삶이, 여러분의 '장래'를 결정합니다.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 탓도 아닙니다. 모두 여러분 인생입니다.
'환경'에 휩쓸리기만 하면, 여러분 인생의 주인공은 환경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보잘것없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 인생을 결정하는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대성인은 여성 문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대저 정토(淨土)라 함도 지옥이라 함도 밖에는 없느니라. 오직 우리들의 가슴
속에 있느니라. 이것을 깨달음을 부처라 하고, 이에 미혹함을 범부라 하며"
(어서 1504쪽) 행복도, 지옥도, 모두 자기 가슴속에 있습니다. 마음속에
있습니다. 유명하니까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인기가 있으니까 행복
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예찬을 받아도,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재보(財寶)가 많아도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
니다. 참된 행복은 그대 자신의 생명을 개척하면서, 미완성인 생명 오저에서
혼으로 빛나는, 남묘호렌게쿄라는 영원불멸한 절대적 행복의 혈맥에 연을
맺는 데에 있습니다. 이것이 불법의 진수입니다. 이기기 위한 신앙입니다.
또 불법은 이기기 위한 법칙입니다. 자기 인생을 승리로 장식하려면, 늘 변함
없는 평범한 생활과 일상의 책무를 완수하며 이 광선유포의 길을 더욱 힘차게
걸어야 합니다. 거기에 고귀한 혼이 빛납니다.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삼세
시방의 부처가, 이름도 알 수 없는 부처의 심부름꾼인 사랑스러운 그대를
세계 제일의 여왕으로 섬기며 지킵니다. 환상 같은 현상에 휩쓸리면 안 됩니다.
참된 행복의 법칙을 모르는 사람을 뒤따라도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행복으로 가는 대도를 엄연히 남기신 왕자(王者)인 대성인의 불법을 따르는
것이 궁극적으로 올바른 길입니다. 그 신앙을 수지한 사람은 영원히 승리로
빛나는 공주와 같은, 꿈같은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인생은 누구를 따르느냐, 이것으로 결정됩니다. 책략에 능한 정치가를 따르
느냐, 악마와 같이 허영기 가득한 사람을 따르느냐, 탐욕스럽고 교활한 인간을
따르느냐. 속으면 안 됩니다. 우주의 당체이신 대성인을 따르는 근본적인
길을 걸어야 합니다. 자신이 부처가 되면 어떤 아버지라도, 어떤 어머니라도,
어떤 형제자매라도 모두 구제할 수 있습니다. 행복하고 강한 자신을 만드는
것이 창가입니다. 결혼이 곧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결혼하지 않아서 불행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올바른 신앙을 토대로,
흔들리지 않는 자신을 구축한다, 이것이 참으로 행복한 모습입니다.
새는 날지 않으면 결국 날 수 없습니다. 행복의 날개를 빼앗겨, 행복의 너른
하늘로 날지 못하는 새가 되고 맙니다.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가, 달리지 않고
연습을 게을리하면 이길 수 없습니다. 투쟁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전진
하지 않고, 귀찮아하는 사람은 마지막에 인생의 낙오자가 됩니다.
무언가를 위해 투쟁하고, 무언가를 향해 전진한다, 이것이 행복의 본질입니다.
청춘 시절부터 남을 위해, 법을 위해 활약하면 얼마나 위대한 인간이 되는지
모릅니다. 자신을 혁명하면서 얼마나 위대한 생명이 되는지 모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내 아내도 청춘 시절, 여자부 결성식에 반장으로 참석하고
본진인 이곳 도쿄를 무대로 광선유포를 위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가마타지부의 '2월 투쟁'에서도 아내는 도쿄 여자부라는
긍지를 갖고 찬바람을 맞으며, 우인을 절복하고 동지를 격려하러 활기차게
뛰어다녔습니다. (중략) 아내는 이 신선한 여자부 시절이 가장 추억에 남는
다고, 이때 신앙과 인생의 기반을 구축했다고 회상합니다. 전 세계의 동지도
모두 온 힘을 다해 절대적 행복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묘법은 우주의 대법칙
입니다. 이 묘법 외에 21세기가 나아가야 할 평화의 길은 없습니다.
함께 걸어갑시다! 신분이나 재산, 지위, 가문 따위는 행복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이렇게 되었으면, 저렇게 되었으면, 이렇게 하고 싶다, 저렇게 하고
싶다, 그러면 행복할 텐데…, 이런 생각은 참된 불법이 아닙니다.
대성인은 "마음만이 중요하니라" (어서 1192쪽)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은 '신심'이고 '신심'은 '행복'의 요건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
그 환경에서, 지금 있는 그곳에서 자기 모습 그대로 행복해져야 합니다.
젊은 여성이여, 생명의 개척자가 되어라!
위대한 행복의 승리자가 되어라!
안일함과 허영으로 가득한 평범한 쾌락과 향락에서 눈을 떠라!
근본적인 행복으로 가는 행렬에 앞장서 나아가라!
그럴 때 천사와 불보살이 모두 기쁘게 춤추며 그대의 앞길을 혁혁히 비추고,
용약환희하는 그대의 생명을 수호하고 최대로 찬탄하면서,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첫댓글 이 승리의 전진은, 화려한 영웅이 떠맡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명의 서민입니다.
그중에는 병과 싸우는 벗, 숙명에 괴로워하는 벗, 일로 고투하는 벗, 이직해야만 하는 벗 등 자기 인생과
현실사회에서 격투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도(이케다 선생님) 청춘 시절에
그렇게 고생하며 투쟁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자기 마음속에 묘법의 태양을 떠올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나 환경이 아닙니다. 자신이 바뀌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속에 묘법의 태양을 떠올리면,
비바람이 몰아쳐도 이윽고 구름 사이로 눈부신 햇볕이 내리쬐듯이, 자신의 인생을 무한한 희망과
용기의 빛으로 비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지역에, 사회에, 세계에, 미래에 위대한 인간혁명의 빛을 보낼 수 있습니다.
(법련 2016년 2월 93p)
"어느 시대에나, 아무리 작더라도 정의를 희구하는 존귀한 목소리는 있었다. 그러나
이 폭력과 증오의 소란을 능가할 정의로운 음성을, 지금처럼 크게 내야 할 때는 없다."
핵무기 폐기와 평화를 위해 행동한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모인 '퍼그워시회의'의 지도자
로트블랫 박사가 외친 잊지 못할 말씀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지
60년을 새긴 2005년 8월, 박사는 서거했다. 향년 96세였다.
('지지 않는 청춘' 102p)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