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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예의를 다하는 인의와 의리, 사람의 도리를 다하라
아무리 작은 죄라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
삶은 진실이다
“당신의 인생은
당신의 생각이
만들어낸 작품이다”제임스 알런
언품(言品)이 곧 인품이다.
섬세하고 따뜻한 감성으로
높고 푸르름의 이상
고매한 인품
우아한 자태
사람의 도리로
향기로운 삶으로
꽃길을 걸으며
세상을 향기롭게 하라
한번 뿐인 우리 인생,
매 순간 아깝지 않게
후회없이 꽃을 피우도록
아름다운 마음으로 참되게 사십다
멋진세상!
즐거운 인생!
답게 겸손하게
참되고 진실하게
선하고 인자하게
사랑으로 아름답게 살자
사랑은 처음처럼
삶은 마지막처럼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은 물을 버여야 바다에 이룬다
참된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늘 질문하라
"선을 행하다가 화를 입더라도 달게 여긴다”(爲善被禍 吾所甘心) 엄흥도
바른 사람이 옳은 일을 한다 義在正我
하늘을 두러워 하라
날마다 하늘이 지켜보고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을 하늘이 다 보고 있다.
푸른 하늘도 눈이 있다(人在干 天在看 蒼天有眼)”리커창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성글지만 절대 빠뜨리지 않는다"《노자(老子)》도덕경 73장
한 번의 실수도 하늘은 놓치지 않는다.
하늘이 다 지켜보고 기억한다.
하늘에 부끄럽지 않게
야심에 부끄럽지 않게
자신을 속이지 말라
하늘은 다 알고 계신다
정치하는 놈들아! 정신차려라!
노자의 도덕경에 ,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성글지만 절대 빠뜨리지 않는다"《노자(老子)》도덕경 73장
하늘의 법은 관대해 보이지만 악인은 반드시 벌을 면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
인과응보의 촘촘한 사슬이다.
하늘의 그물은 촘촘하다
하늘 무서운 줄을 알아라
한 번의 실수도 하늘은 놓치지 않는다.
하늘이 다 지켜보고 기억한다.
하늘에 부끄럽지 않게
야심에 부끄럽지 않게
자신을 속이지 말라
하늘은 다 알고 계신다
정치하는 놈들아 정신차려라
하늘을 두러워 하라
“내가 만물을 보는 눈을 통해 신은 나를 보신다”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내가 타인을 미움과 무관심의 눈길로 바라보면 신도 그런 내 눈을 통해 나를 바라보신다니! 하늘의 그물인 법망은 너무 크고 넓어 헐거워 보이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빠뜨리는 법이 없다는 노자의 잠언도 떠오른다.
내가 지극한 연민과 사랑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신도 나를 그렇게 바라보신다니,
얼마나 놀랍고 고마운 일인가.
파릇파릇한 지구 어머니의 뜨락을 거닐 때마다 나는 간절히 빈다.
경외와 설렘의 눈빛을 잃지 않기를. 고진하
영혼이 자유롭게 바른 마음으로(自立),
바르게 살았는지 반추하고(反芻)
바르게 생각하고(省察),
바르게 관조하여(觀照)
바르게 말하고(言忠信)
바르게 행동해서(行篤敬 禮儀),
바른길을 가자.(섬김과 奉仕)’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고결한 마음(恕)은
세상을 밝게 살게 한다
착하게 살아라.(止於至善)
매사 진실 하라(立處皆眞)
모든 순간을 성실하게 살아라(卽事而誠)
세상 끝 날까지 선하고, 인자하게 살며(止於至善)
말은 믿음이가고 충성 스럽게 하라(言忠信)
행동을 독실하게 공경 스럽게 하라(行篤敬)
독실하게 행동하라.(篤行之)
빛을 발하라
삶의 향기를 가슴 가득히 실어 환한 미소를 보내라
하나님의 뜻, 仁義의 길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義在正我로 살아라
아무도 주목 하지 않아도 늘 바르게 살아라
사람의 마음이 이끄는 방향으로 살아라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마음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사람이 가고자 하는 길은 옳고, 바르고, 참됨이다
요즘 절찬히에 공영되고 있는‘왕과 사는 남자’가 왜 관람자가 넘치는가?
역사를 단순화했다
이해하기가 쉽게 만들었다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
이웃과 함께 어울러 일상을 아름답게 하였다
엄홍도는 단종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바라보며 품어주었다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오고 있는가?
삶은 가슴을 울리는 스토리텔링이다
가슴을 움직이는 감동을 맛보게 하라
인간적인 이끌림이 있다
똑 같은 수양대군과 단종을 소재로한 영화
영화‘관상’(2013년)에서는 배우 이정재가 수양대군의 강한 권력에 대한
집착을 잘 보여주었다.
KBS 드라마‘왕과 비’(1998~ 2000년)는 세조를 선인으로 그렸고,
단종의 충신인 김종서를 별로 좋게 보지 않았다.
KBS ‘공주의 남자’(2011년)는 김영철이 열연한 조선의 마키아벨리
수양대군과 그의 정치적 숙적이었던 김종서의 두 자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뤄
인기를 끌었다.
수양에게 당한 피해자 입장에서는 영화 ‘단종애사’(1963년) 등이 있다.
관객수 1500만명을 돌파한 국민영화‘왕과 사는 남자’는 억울하게 죽은 단종의 이야기다.
‘왕사남’의 차별점은 역사를 단순화했다는 점이다.
‘세조실록’ 9권에는
“노산군이 스스로 목을 매어 죽으니 예로써 장사를 지냈다”고만 돼있다.
거기에 약간의 상상을 입혔다.
그래서인지 스토리텔링이 꽉 차지는 않지만,
영화 줄거리를 이해하기가 쉬워 남녀노소가 관람할 수 있다.
‘왕사남’은 1457년 삼촌인 수양에 의해 왕위를 찬탈당하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의 청령포로 유배온 어린 선왕 이홍위(박지훈)와
가난한 마을을 부흥시키기 위해 옆마을 여우골 사례를 참고해 유배지를 자처했다가
어린 왕을 돌보는 광천골 촌장 엄흥도(유해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영화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다.
압축하면 단종-엄흥도-한명회, 이 세 사람이 삼각형의 꼭지점을 형성하고 있다.
세조 세력은 한명회(유지태) 한 명이 메인 빌런이다.
한명회는 단종, 엄흥도와 불화한다.
단종과 엄흥도는 인간적으로 끌린다. 이게 끝이다.
단종과 엄흥도가 인간적으로 끌리는 과정이 별로 정교하지도 않다.
단종은 광천골 사람들이 만들어준 음식을 맛있게 먹고,
또 이 마을 청년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면서 서로 하나가 된다.
그러다 엄흥도와 함께하는 단종의 최후장면에서는 모두가 울게 된다.
짧은 세월이지만 단종이 엄흥도와 마을사람들을 만나 교감하며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과정이 눈물겹다.
어린 단종이 16세에 죽임 당하는 것의 억울함
어린 왕이 16세에 죽임을 당하는 게 얼마나 억울한가.
‘왕사남’에서는 단종의 이런 억울한 심경이 잘 전달됐다.
단종은 태어났더니 할아버지가 세종대왕이다.
아버지 문종과 단종 본인은 모두 적장자(嫡長子)다.
적장자는 정실부인(正室)에게서 낳은 맏아들을 말한다.
조선시대 27명의 왕 중에서 적장자가 별로 없다.
단종은 왕이 될 수 있는‘피’가 가장 진한‘순혈’이다.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왕위 승계 순위가 한참 뒤지는 작은 아버지에게 왕위를 뺏기다니.
조선왕릉이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때,
이런 스토리텔링이 담긴 영월의 장릉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영월군에서는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와 영월군 주천면 등을 잇는 단종대왕 유배길,
일명‘통곡의 길’ 코스를 정해놓았다.
‘통곡의 길’이란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마음 둘 곳 없어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던
단종 신하들의 가슴 먹먹했던 고통의 길이다.
임금에게 전할 사약을 손수 들고 가는 신하들이 울고 또 울며 걷던 애달픈 길이기도 하다.
마음을 놓고 가슴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극장에서는 관객들이 소리내 울 수 있는‘왕사남 울어롱 스페셜 상영 이벤트’,
일명 통곡상영회도 등장했다.
‘왕사남’ 배급사인 쇼박스는 관객들이 눈물을 닦을 수 있도록
‘자수 수건’도 굿즈로 준비했다.
단종을 보면 괜히 미안해진다. 마음껏 통곡하면서 단종을 잊지말고 기억하자!
수양대군은 ‘왕사남’에 안나오지만 ‘슈퍼빌런’
수양은 군사정변인 계유정난(1455년)을 통해 순식간에 실권을 장악했다.
‘정난’이라는 말은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이 어린 아들 건문제에게 제위를 넘기자,
주원장의 동생이자 건문제의 삼촌인‘연왕’ 영락제가 3년간 내전을 일으켜
조카의 제위를 찬탈한‘정난의 변’(靖難之役)에서 따온 듯하다.
명의 3대 황제가 된 영락제는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겨
새로운 궁성인 자금성을 짓고 항저우와 베이징을 잇는 대운하를 개수했다.
수양은 계유정난때 자신의 편에 선 한명회, 권람, 신숙주, 한확, 정인지 등
정난공신과 권력을 나눴다.
이들 일당은 12.12 군사 쿠데타를 성공시킨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신군부 세력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샴페인을 터뜨렸듯이, 득의양양했다.
수양은 큰아버지이자 세종의 형들인 양녕과 불교에 심취한 효령도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양녕과 효령이 각각 68세와 92세로 천수를 누린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수양은 자신보다 한 살 아래의 동생으로,
당대 이름난 예혼을 가진 문화예술인과 학자들을 거느리고 다녔던 안평대군을 죽였고,
9살 아래의 금성대군(영화 속 이준혁 분)을 영주시 순흥면으로 유배보냈다.
금성대군은 나이 차이가 있는 형 수양보다, 15살 어린 조카인 단종과 잘 어울렸다.
1457년 계유정란 단종복위를 위해 금성대군과 함께 지조志操 있는 선비들이,
단종에 대한 굳은 충정으로, 충절로 목숩을 초개 같이 버렸다
금성대군은 단종 복원을 위해 순흥부사와 연계해 무장봉기 계획을 세웠다는 이유로
31세에 사사됐다.
영월과 가까운 순흥이 당시에는 큰 도호부급 고장이었지만
세조의 분노로 작은 면으로 줄어들었다.
세조는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평정심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평생 가려움증(피부병)에 시달려 충청도 온양에서 온천욕을 하고,
강원도 평창 월정사와 상원사까지 가 깨끗한 물에 몸을 씻었다.
그러나 세조는 큰 아들 의경세자(덕종)가 18살에 사망한다.
예종은 왕위에 오른지 1년만에 죽었다
임금 수업을 탄탄히 받고 있던 왕세자가 갑자기 죽자
“세종의 묏자리는 후손이 끊어지고 장남을 잃는 자리”라고
과거 풍수가가 말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원래 세조 부친인 세종은 죽기 전
“아버지(태종) 옆에 묻히고 싶다”태종의 능이 있는 헌릉(獻陵·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근처에 먼저 승하한 소헌왕후와 합장돼 영릉(英陵)으로 불리었다.
하지만 이를 불길하게 여긴 세조가 아버지의 천장을 논하다,
결국 아들인 예종 1년인 1469년에 경기도 여주시 영릉으로 옮겼다.
그 결과로 여주는 대왕을 쌀에도 붙이고,
거리와 행정구역에도 붙여 세종대왕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세조는 왕에 오른 지 13년이 된 1468년, 아들 예종에게 양위하고 상왕이 됐으나
하루 만에 사망했다.
세조는 상왕을 하루밖에 하지 못했다.
의경세자의 동생인 예종도 재위 1년만에 요절했다.
다음 왕은 예종의 어린 아들이 아니라,
의경세자의 아들인 자을산군(성종)이 작은 아버지 예종의 양자로 입적되어 물려받게 된다.
세조는 미리 자신이 묻힐 자리를 경기 남양주 진접읍에 마련하려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 국립수목원의 빽빽한 수목이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다.
세조는 백성들에게도 미안했는지, 석곽과 묘실을 만들지 말고
회곽묘만 만들어 안장하라며 자신의 왕릉(광릉)의 간소화를 미리 지시했다.
그런데‘왕사남’이 인기를 끌면서 관객들이 광릉(光陵)에 계속 별점 테러를 가하고 있다.
‘수양대군의 책사’한명회라는 빌런
‘왕사남’에서 빌런은 한명회만 나올 뿐, 세조도 나오지 않고 몇 차례 언급만 된다.
한명회는 계유정난 때 반란군 지휘관인 수양대군 편에 선 책사로
수양을 왕이 될 수 있게 만드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한명회는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뛰어난 책사인 ‘장량’에 비교된다.
한명회는 계유정난을 통해 진압군의 대표인 김종서를 척살하며 반란을 성공시키고,
사육신의 단종 복위 계획도 사전에 알고 차단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일등공신이 된 훈구파의 대표 한명회는 2차례 영의정을 지내고,
세조와는 사돈으로 예종과 성종 두 임금을 사위로 두는 막강한 세도가가 된다.
한명회는 집안이 괜찮았지만, 과거에 여러 차례 낙방한 후
수양의 측근인 절친 권람을 통해 수양을 만나 거사를 논하게 되면서
‘책사’로 불리게 됐다.
계유정난의 반대파 명단이 적힌 살생부도 한명회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명회는 이시애의 난때 위기를 맞기도 했고,
여생을 자연을 벗삼아 지내려고 한강가에 지은 압구정이 중국 사신들에게 소문이 나고,
증축 문제로 성종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성종 초기 수렴청정을 했던 세조의 부인 정희왕후 편에 섰지만
성종이 홀로서기에 나서면서 권력이 급속히 약화됐다.
예종(장순왕후(한명회) 안순왕후)
성종(공혜(한명회), 폐비 윤씨(연산군), 정현)성종의 비 공혜왕후(恭惠王后 한명회의 딸)
후손이 없음
73세로 사망한 한명회가 사후 연산군 시절 폐비 윤씨와 관련된
갑자사화(甲子士禍 : 1504년 연산군 10)한명회부관참시 당한다
부관참시를 당하기도 했지만 중종 때 사후 복권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엄흥도는 기록이 적어 상상하기 좋은 캐릭터
1990년대에 영월에 여행 가 영월읍내에 있는 관풍헌(觀風軒)을 방문하고
엄흥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관풍헌은 조선시대 지방 관서에서 정무(政務)를 보던 중심 건물인 동헌(東軒)이다.
단종은 1457년 여름 서강의 끝자락인 영월 청령포 주변에서 홍수가 나
관풍헌에 와 있다가 여기서 사약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동헌의 동쪽에는 단종이 시를 읊었다는 자규루(子規樓)가 있다.
엄흥도는 영월의 호장(戶長)이다. 호장은 향리들의 우두머리다.
엄흥도는 세 명의 아들과 함께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고
자신의 선산에 안장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삼족을 멸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엄흥도는 세 아들(엄호현 엄광순 엄성현)은 각자 뿔뿔이 흩어지게 했다.
엄흥도도 조용히 살다가 둘째 엄광순과 군위 화본에서 생을 마감했다.
엄흥도는 관련 기록이 적어 상상하기 좋은 캐릭터다.
영화 ‘왕사남’에서도 엄흥도 아들이 나온다.
시간이 흘러 숙종과 정조 시기에 와서 사육신과 생육신도 복권된다.
엄흥도의 명예도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어쨌든 엄흥도의 충성심과 의리는 기릴만하다.
엄흥도 캐릭터를 ‘왕사남’이 잘 활용했다.
조선 왕조는 왕위 쟁탈전이다
1392 태조 이성계 조선건국
1397 (태조 6년) 태조 임금이 신덕왕후 소생인 의안군 이방석을 왕세자로 책봉
1398 1차 왕자난 정안군(태종) 무인정사 1398년 이성계와 정도전이 몰락
(신덕왕후 아들 이방번과 이방석을 죽임)
정종(이방과)이 왕위에 오르다
1400 2차 왕자난 회안공 이방간이 일으킨 난
1400 (정종 2년) 11월에 정종 임금은 태종 임금에게 선위(禪位)했습니다.
제3대 왕인 태종의 1차 왕자의 난과 2차 왕자의 난
1453 수양의 왕위 쟁탈 1455 단종 폐위
1456년 계유정난(세조 2년) 단종복위 사육신, 생육신,
국왕 세조와 함께 신숙주·정인지·권람·한획·한명회·양정등을 모조리 주살하고
상왕 단종을 복위시킬 예정이었다.
1457 정축지변 금성대군 순흥부가 해체된 사건을 정축지변이라고 부른다.
세조찬위(世祖簒位)는 조선 단종 3년 (1453년)에 일어난 정변으로,
1456년 을해정사(乙亥靖社)로 사육신이 참혹한 고문을 가했으나
모두 굴하지 않는 바른 삶이 백성의 마음을 움직였다
1457년 계유정란 단종복위를 위해 금성대군과 함께 지조志操 있는 선비들의,
단종에 대한 굳은 충정으로, 충절로 목숨을 초개 같이 버렸다
1455년 단종의 왕위를 창탈한 세조는 1456년 을해정사(사육신),
1457년 계유정란으로 동생 안평, 금성을 죽이고 순흥을 피바다로 만들다
1457년 단종이 자살하다
세조는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 평생 가려움증(피부병)에 시달렸다
의경세자(덕종)의 급사
1468년, 아들 예종에게 양위하고 상왕이 됐으나 하루 만에 사망했다.
산소를 아버지 어머니 산소 옆에 헌릉(獻陵·현 서울 서초구 내곡동) 쓰고,
아버지 세종과 어머니 소현 왕릉을 천장하여,
예종(장순왕후(한명회) 안순왕후) 1년인 1469년에 경기도 여주시 영릉으로 옮겼다.
예종도 왕위에 오른지 1년 만에 요절 되고
덕종(소혜왕후 인수대비 연산군의 할머니)의 아들을 양자하여 성종으로 왕위를 이었다
성종(공혜(한명회), 폐비 윤씨(연산군), 정현)성종의 비 공혜왕후(恭惠王后 한명회의 딸)
폭군 연산군이 왕위를 이어받아 사대사화로 나라가 위기
제11대 중종반정(1506)
중종반정(中宗反正)은 1506년(연산군 12) 이복동생인 중종을 옹립한 사건이다.
* 중종반정(연산군, 정난정 (조이제문 김종직-김광필 서흥-조광조 한양)
사화 : 무오사화(1498, 연산군 4 성종의 폐비 윤씨)·
갑자사화(1504, 연산군 10)·기묘사화(1519, 중종 14)·을사사화(1545, 명종 즉위)
중종반정(1505) 연산군 폐위 중종(1506 반정).
4대 사화(四大士禍)는 훈구(勳舊)·사림(士林) 세력 간에 다툼이었다.
기축옥사(1589 정여립 모반 동인을 물리치고 서인이 득세 송강 정철
특히 정여립 기축옥사 때 1000명이 넘는 동인들을 고문하고 죽였다.
기축옥사 후에 서인 정철도 세자 책봉 문제와 명나라에 사은사로 갔을 때의
문서가 거짓이었다는 정적들의 탄핵에 말려
유배로 길지 않은 삶을 끝냈으니 인과응보라고나 할까? (1594 선조에게 버림 받음)
붕당정치 : 옥사(1589) 결과 국가 기틀이 무너져 임란이 일어남)
조선오현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퇴계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선조(임란 1592), 광해
임진왜란(1592~1597)의 화를 당하다
제16대 인조의 인조반정과 달리 새로 집권한 왕이 직접 반란에 가담하지 않았다.
* 인조반정(1623 광해군)
인조(반정, 정묘, 병자(호란, 삼전도 수치), 효종, 현종, 숙종, 경종,
인조반정(1623 광해군)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 남한산성 삼전도 수치
인조반정후 전주이씨는 인조계열 뿐이다
숙종과 장희빈(장옥정) 경종
영조와 정조 탄평책(사도와 갈등 사도 세자 후손들이 통치)
조선 왕조에 두 번의 반정이 있었다
성종의 아들 연산군은 중종반정(1506 중종과 정난정) 군으로 전략하였다
선조의 아들 광해군도 인조반정(1623)으로 군으로 전략 하였다
제22대 정조, 순조 안동김씨 세도정치(1801)
영조(21). 정조, 순조, 현종, 철종, 고종, 순종
정조의 개혁정치(1776)
천주교의 전래 1783 이승훈이(다산의 매부) 전파 김대건 신부 2000년 김수환 추기경
1791년(정조 15년)에 일어난 신해박해.
신유박해 1801년(순조 원년, 수렴청정기)
기해박해 1839년(헌종 5년)에 일어난 박해.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가 세도 정치의 중심
병오박해 1846년(헌종 12년)에 일어난 박해. 김대건 신부 순교 (한국 103위 순교성인)
병인박해 1866년(고종 3년)에 일어난 박해. 24명의 순교
병인양요 1866년 개항 요구(일본은 1853년 개항, 1868년 명치유신 한국 보다 200년 앞서감)
홍경래의 난(1881 홍경래의 난, 1853 일본개항, 1868 명치유신,
근대화1866 개항요구,
흥선개원군 집권(1863) 쇄국정치(1905 을사보호 조약 1910.8.29. 한일합방) *서원철폐령 1868(고종) 사액 서원 47개 남김
1876 강화도 조약, 1882 조미수교
기독교 전래 1884 알렌 의료 선교
1885 언더우드(장로교), 아담스(감리교)
을사보호 조약 1905
한일 합방 1910
삼일 운동 1919.3.1. (천도교 15, 기독교 16명. 불교 2)
임시정부 수립 1910. 4.11
1945.8.15. 해방 (신탁통치)
1948.8.15. 정부수립, 국부 이승만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다
1950.6.25. 육이오 사변
61.4.19 학생의거, 62.5.16 군사혁명
산업화, 과학화, 현대화, 교육화, 문화 성역화로 한국의 위상을 찾다
경제안정 전두환, 노태우 88올림픽
편가르기, 국론분열, 내로남불, 아시타비, 안전인수
현대 정치사 오적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제명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2002 한일 월드컵
2020부터 일본 경제를 앞지루다
〈何如歌〉며 〈丹心歌〉
圃隱和之曰
이 몸이 죽어죽어/ 一百番 고텨 죽어
白骨이 塵土 되어/ 넉시라도 잇고 업고
님 向ᄒᆞᆫ 一片丹心이야/가실 줄이 이시랴
太宗使人歌於 酒席曰
이런들 엇더ᄒᆞ리/ 뎌런들 엇더ᄒᆞ리
萬壽山 드렁츩이/ 얼거딘들 엇더ᄒᆞ리
우리도 이리코 잇다가/ 百年 산들 엇더리
불사이군의 도원결의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도은 이숭인
두견사의 단종애사
한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에서 나온 뒤로
외로운 몸 짝없는 그림자가 푸른 산속을 헤맨다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을 못이루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나
두견새 끊어진 새벽 멧 부리엔 달빛만 희고
피를 뿌린 듯한 봄골짜기에 지는 꽃만 붉구나
하늘은 귀머거리인가?
애달픈 하소연 어이 듣지 못하는가?
어찌하여 수심많은 이 사람의 귀만 홀로 밝은고!
一自寃禽出帝宮 孤身雙影碧山中
假眠夜夜眠無假 窮恨年年恨不窮
聲斷曉岑殘月白 血漏春谷落化紅
天聾尙來聞哀訴 何奈愁人耳獨聽
엄흥도 묘소 영월 창절사(彰節祠)
영월 장릉 인근의 엄흥도 기념관은 2021년 화재로‘충절의 상’동상이 남아 있다
노량진 동산의 사육신공원 아래 민절 서원을 세워 신위를 모시고 제사
엄흥도의 장자인 엄호현은 대를 이어야 해서 문경(예천)으로, 망월정(望越亭)
전식지 - 망월정 – 충의각, 의산서원(義山書院)과 충절사(忠節祠)
차자 엄광순은 부친인 엄흥도와 함께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에 부자 묘소
삼자는 엄성현 함경도 안변 또는 울산(울주)으로 피신
울산 삼동면 둔기리 원강서원(圓岡書院), 불천위 제사
충의공 엄흥도 비석 '조선 충신' '불천위(不遷位 제사를 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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