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포천 독수리
주말에서 이어진 성탄절 연휴를 보낸 십이월 넷째 화요일이다. 동지를 앞두고 찾아왔던 동장군 기세가 누그러지는 기미를 보인다. 평소와 같은 자연학교 등교 시각에 맞추어 현관을 나섰다. 어제는 근교 산행을 예상하여 등산화에 스틱을 챙겼으나 오늘은 가벼운 산책 차림이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 보도 따라 높은 메타스퀘어 가로수가 줄지은 퇴촌교 방향으로 걸었다.
아파트단지와 맞닿은 학교는 아직 방학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한 학기를 정리한 시험을 끝내고 학예발표회를 앞두고 있는가 싶었다. 교직원이나 출근이나 학생들의 등교가 시작되지 않은 무척 이른 시간이었는데 한 학생이 등에 진 가방보다 부피가 더 나가는 보조 가방을 안고 교문을 들어섰다. 아마도 방학을 앞둔 전시회나 발표회에 필요한 소품을 챙겨 등교하는 아이인 듯했다.
그 학생을 보니 현직 시절이 떠올랐다.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학업 성취가 높은 아이가 다른 분야에도 열성적이었다. 청소도 그렇고, 봉사활동이나 학급회 활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등교 학생의 뒷모습만 봐도 방학을 앞둔 학예 행사에 무슨 역할을 책임감 있게 수행하는 아이로 짐작되었다. 녀석은 새벽잠을 설쳐가며 준비물을 챙겨 남보다 먼저 등교해 자신의 임무를 다하지 싶다.
학교와 교회를 지난 퇴촌삼거리에서 창원천 상류 도청 뒷길에서 역세권 상가를 지나 창원중앙역으로 갔다. 진주에서 마산을 거쳐 동대구로 가는 무궁화호 승차권을 한 장 끊었다. 화포천 습지 철새 탐조를 위해 기본 구간 요금에 해당하는 진영으로 가는 길이다. 정한 시각에 도착한 열차에 올라 비음산터널을 통과해 진례역에 잠시 멈췄다 그다음 진영역까지는 10여 분 남짓이었다.
역사를 빠져나가 내가 가는 산책로는 화포천 아우름길이었다. 여러 사람이 진영역을 이용하지만 현지인도 잘 모르는 산책로로 노 대통령 생가로도 걸어서 갈 수 있으나 평소 이용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나는 여름이나 겨울에 화포천 습지로 나가 야생화나 철새를 살피는 시간을 가져왔다. 어느 해는 새해 첫날 아침 화포천으로 나가 해돋이 광경과 함께 사진작가들을 만나기도 했다.
봉하마을 가는 길과 다른 화포 습지 생태학습관으로 향해 갔다. 멀리 대암산과 용제봉에서 발원한 몇 갈래 냇물이 모여 화포천을 이루었다. 저습지는 당국에서 철새가 먹이터 삼아 놀기 좋도록 무성한 검불을 제거하고 초지를 조성해 놓았다. 그곳에 덩치가 무척 큰 독수리들이 모여 웅크려 있었다. 녀석들은 육식 맹금류라도 자발적 사냥 본능을 상실해 동물 사체를 먹잇감으로 삼았다.
독수리를 겨냥해 사진을 찍고 있으니 당국의 관계자가 짐칸이 달린 차량을 몰아왔는데 도축 축산의 부산물을 흩어 주는 듯했다. 독수리 곁에는 큰기러기들이 보리싹이나 벼 낱알을 쪼아 먹느라 경계심을 풀고 지냈다. 삼미마을 어귀에서 화포천 생태학습관 근처로 향해 갔다. 둑으로 오르니 검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마리 고라니가 가시덤불 속으로 겅중겅중 사라졌다.
생태학습관에서 나목이 된 벚나무 둑길을 걸어 습지 탐방로로 내려섰다. 물웅덩이와 냇바닥에는 기러기와 고니가 와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매년 겨울이면 시베리아에서 한반도 남단이나 일본 규슈까지 내려와 겨울을 보내다 봄이면 다시 본향으로 돌아가는 철새 가족들이다. 우리 지역은 을숙도나 주남저수지의 서식 개체 수가 많으나 일부는 화포 습지처럼 흩어져 겨울을 보냈다.
화포천 습지 쉼터에서 가져간 삶은 고구마를 간식으로 먹으면서 물웅덩이 그림자가 거꾸로 비친 갯버들 모습을 폰 카메라에 담았다. 습지 구역을 한 바퀴 돌면서 아까 독수리가 모여 노는 근처로 가니 녀석들은 몸집이 무거워서인지 날아오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산책로가 끝난 곳에서 습지 바닥 시든 풀을 헤쳐 진영역으로 나가 합성동으로 가는 140번 버스를 타고 소답동에 내렸다. 23.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