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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하고 ‘노추’ 될 겁니까? 자식에 이 돈은 꼭 받아라
카드 발행 일시2024.06.21
에디터
김연지
더,마음
관심
중견기업에서 사장까지 했던 A씨.
높은 연봉에 좋은 대우를 받으며 윤택하게 살던 그는 은퇴 후 불면증에 걸렸다. 수입은 없는데 부모 봉양, 자식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다. 퇴임 후에도 사장으로 살 때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니 ‘가랑이가 찢어지는 듯’했다. 은퇴 전과 후의 격차에서 오는 우울이 A씨를 사로잡았다.
사진 Pixabay
A씨는 상담전문가를 찾았다. 장성숙(70) 극동상담심리연구원 소장. 칼날처럼 정확하고 매섭게 조언해 ‘장칼’이라 불린다. 가톨릭대 심리학과 명예교수이기도 한 그는 한국인의 특성에 맞는 ‘현실 역동 상담’을 정립했다. 과거의 상처를 끄집어내기보다 현재에 직면한 문제에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A씨의 고민을 들은 장 소장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 사장직은 끝났으니, 긴축 생활로 전환하세요.”
“그게 쉽지 않아요…. 아내가 생활 수준을 유지하고 싶어합니다.”
“아내 핑계 대지 말고 잘 생각해봐요. 본인이 내려놓지 못한 게 아닌지. 당신이 특권을 갖고 태어난 게 아니잖아요. 세상이 나를 따라오지 않아요. 내가 세상을 따라가야지.”
장 소장의 서릿발 같은 조언에 A씨는 뒤통수가 얼얼했다.
40년 간 9만 명. 장 소장이 지금까지 상담으로 만난 사람이다. 그중 A씨처럼 은퇴 후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며 찾아오는 사람이 매년 늘고 있었다. 특히 ‘현역’ 때 높은 직급까지 올라갔거나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던 사람일수록 정신적 타격이 컸다. 장 교수는 노여움·괘씸함·고립감이 은퇴한 중·장년 층의 마음을 곪게 한다고 했다.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소장. 가톨릭대학교 심리학과 상담 전공 교수로 30년간 재직 후 명예교수가 됐다. 은퇴 후에도 유튜브 채널 운영과 연구 및 저술·강연 등 여전히 현역처럼 활동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은퇴하면 가치관의 ‘대전환’이 필요해요. 그걸 모르면 더 비참해질 수 있어요.”
어떤 전환이 필요하다는 걸까. 장 교수는 “삶의 조건이 달라지더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노후에 비참해지지 않으려면, 긴 인생을 활기차고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장 교수에게 물었다. 그는 40년간의 연구와 상담 노하우를 바탕으로 따끔하지만 보약이 되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Part1. ‘척심’을 버려라
은퇴자들의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인가요?
은퇴하고 2~3년은 너무 좋아요. 여행도 다니고 해방감을 만끽하죠. 그런데 그 기간이 지나잖아요?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부지기수예요. 특히 사회적으로 고립됩니다. 직장 떠나면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누가 나를 좋아하고 지지해줄 때 살맛이 나거든요. 회사에 다닐 때는 ‘회사 이름’이나 ‘직급’ 때문에 나를 찾는 사람이 있어요. 회사 나오면? ‘얄짤’없어요. 그래서 은퇴 직후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지요. 자신을 대단하게 여겼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소외감·무력감·분노에 시달립니다. 수입이 줄어드니까 ‘더는 가치가 없나?’ 싶고.
자존감이 낮아지는군요.
과거에 직위가 있고 잘난 사람이 은퇴하고 적응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아요. 저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생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야 내가 살아요. 좋든 싫든 인생에는 정점이 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세요. 정점이 지나면 과거의 영광을 내려놓아야 해요. 특히 ‘척심’을 버려야 해요. 잘난 척, 있는 척, 알은척하고 젊은 사람처럼 자기를 과시하거나 뭔가 움켜쥐려 하면 ‘욕심 사납다’ ‘노추다’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어요.
생각을 어떻게 전환하면 될까요?
베풀고 헌신하는 삶으로 방향을 바꿔보세요. 그동안 잘살았던 것, 누렸던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나를 낮춰야 해요. 하심(下心)이라고 하죠. 그러면 더 존경받을 수 있어요. 세상의 이치는 희한하게도 내려놓으면, 거꾸로 더 대접받습니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내려놓을 수 있나요?
한 중년 여성이 “남편이 주식으로 큰 빚을 져서 집을 날렸다”며 찾아온 적이 있어요. 좁은 집으로 이사 가면서 최소한의 물건만 들고 갔는데 우울할 줄 알았대요. 그런데 살림이 줄어드니까 그렇게 자유롭더래요. 내가 왜 이렇게 번잡스럽게 다 끌어안고 살았나, 물건 없이 사니 너무 쾌적하고 즐겁다. 비워가는 재미를 알아야 해요. 어차피 죽을 때 못 가져가요. 그동안 욕심부리고 살았지만 ‘죽을 때는 깃털처럼 가볍게 죽자’라고 목표를 세워 보는 거 어때요? 멋있지 않나요?
장성숙 소장은 은퇴 후 명예 ·체면 ·권력을 내려놓고 나를 낮추면 더 존경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경록 기자
💡Part2. 자녀로부터 독립하라
노후에 가장 두려운 것이 ‘노후 파산’입니다. 특히 성인 자녀를 뒷바라지하다 노후 준비를 못 하는 부모가 많은데요.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습니다. 그만큼 심각해요. 30~40대에도 독립하지 못한 자식을 뒷바라지하다 함께 망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나도 망하고 자식도 망치는 길이에요. 부모도 자녀로부터 독립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부모는 자녀 교육비라면 무계획적으로 쏟아부어요. 지금 젊은이들이 불안정한 건 맞지만, 그만큼 ‘자립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필요해요. 대학 졸업하면 내보내는 걸 원칙으로 삼으세요. 자녀가 결혼할 때 전세자금을 달라고 하면 “전세자금 줄 테니, 너는 우리한테 정기적으로 용돈을 달라. 꼭 갚아야 한다”고 말해보세요. 그러면 자녀가 황당해하겠죠. 하지만 “나는 할 만큼 했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네가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을 꼭 가질 필요가 있어요.
자식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하다 보니 애착도 강해지고 바라는 바도 커집니다.
자식이 ‘내 것’이라는 생각에서 빨리 탈피해야 해요. 전문직 남편에 윤택한 삶을 사는 부인이 있었어요. 문제는 아들이 공부를 안 해요. 동서 아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니까 시댁만 가면 머리가 아픈 거죠. “외탁해서 애가 공부 안 한다”는 소리 들을까 봐. 그런데 아이가 압박감을 느꼈는지 자살 시도를 했어요. 목숨은 건졌지만 죄책감을 느낀 부인 역시 정신과 치료를 받았어요. 그분이 하는 얘기가 “좋은 학교, 좋은 성적, 그게 다 뭐라고 거기에 미쳐서 속을 바글바글 썩고, 아이를 저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다”고요.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우리 다 미친 짓 하고 사는 거예요. 경쟁하고 괴로워하고 스스로 지옥을 만들고 있어요.
아이가 홀로서기를 하듯, 중·장년 층도 ‘자립심’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젊을 때는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을 ‘소유’한다는 마음이 강해요. 그런데 살아보면 다 각각입니다.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우리는 모두 개별체입니다. 뭘 그렇게 내 뜻대로 하고 싶어서 악을 쓰냐는 거죠.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잘살자는 마음을 가져야 무탈해요. 그게 바로 정서적 자립심·독립심입니다. 은퇴하고 배우자랑 붙어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가 많아요. 내 고집대로 상대를 바꾸려 하지 마세요. 배우자는 배우자 뜻대로 살게 존중해주세요.
장 소장이 말하는 ‘배우자와 잘 싸우는 법’
배우자에게 화가 날 때가 있죠. 감정을 폭발하면 돌이킬 수 없는 싸움으로 번질 것 같고, 참으면 속병이 생길 것 같고요. 이때는 감정을 싣지 말고 진술 형태로 ‘나는 이런 상태다’라고 표현하세요. 상대를 지적하고 평가하지 마세요. ‘이런 이유로 내가 참 서운했다’라고 담담하게 자기 상태를 묘사하세요. 모든 정서적 문제는 분노와 불만족에서 나옵니다. 자신의 분노를 잘 풀고 해소해야 마음이 아프지 않습니다.
💡Part3. 명예는 사라지지만, 성장은 남는다
예비 은퇴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일만 열심히 하다 은퇴하니 정작 가족들이 자신을 외면한다”며 푸념하는 내담자가 많아요. “나는 가족을 위해 일했는데”라며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그런데 진짜 가족을 위해 살았을까요? 아닐걸요. 잘 생각해보세요. 은퇴 후에 삶이 풍요로워지려면 균형 잡힌 삶을 만드세요. 일·가족·친구·종교 등. 나를 지탱하는 끈이 3~4개는 있어야 해요. 일만 하다 퇴직하면 삶이 통째로 흔들립니다.
은퇴 후에도 활기차게 살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효능감’(어떤 일을 잘해낼 수 있다는 기대·신념)이 정말 중요해요. 일·소속감·수입이 없으면 자존감을 상실할 수 있죠. 그런데 내가 잘하는 게 있으면 자부심이 생깁니다. 사람들이 불러주지 않아도 스스로 즐길 수 있고, 몰두할 수 있는 취미를 미리 마련해 놓으세요. 취미를 잘 개발해 제2의 돈벌이를 찾는다면 그것도 좋겠죠. ‘돈’은 사람에게 굉장한 동기부여가 돼 주니까요.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내담자 중에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 퇴임하고, 학생 등·하교 지도와 학교 경비 일을 시작한 분이 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했는데 즐겁다고 하더라고요. 한 주부는 남편 따라 외국에 오래 살다가 한국에 들어왔어요. 자기가 잘하는 것이 살림하고 영어래요. 그래서 ‘영어 베이비시터’ 일을 시작했는데, 시급도 높고 일도 잘하니까 자부심을 느낀다고 해요. 새로운 일을 찾을 때 그동안 쌓은 명예·권력·체면을 앞세우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소박하더라도 내가 어떤 분야에 기여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노년에 스스로 자랑스럽게 사는 분들이 더 당당하고 행복해요.
"운동 하나는 꼭 하세요. 노년에 아프면 돈 엄청 써요" 장성숙 소장은 마음 관리만큼 운동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10년 넘게 매일 아침 1시간씩 산책하고, 근력 운동에 힘쓰고 있다. 김경록 기자
교수님도 2018년 정년 퇴임을 하셨습니다.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퇴직 후에 ‘내 전문성을 어떻게 살릴까’ 궁리를 많이 했어요. 저는 상담을 40년간 해왔으니 은퇴 전에 상담소를 미리 열어서 운영했어요. 책도 쓰고 개인 블로그, 유튜브도 운영하고요. 갑자기 은퇴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미리 준비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직장을 다닐 때는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일도 많았는데,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일만 하니까 오히려 더 바쁘고 자유롭게 살아요.
저서인 『나는 현명하게 나이 들고 싶다』(비타북스)에서 ‘이미 70세나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성장의 기쁨에 늙어가는 것을 잊고 산다’는 문장이 인상 깊었습니다. 은퇴 후에도 성장이 중요할까요.
‘성장’ 하면 젊은이만 생각하는데요. 죽을 때까지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꼭 하고 싶어요. 전 불교 신자인데요. 얼마 전 ‘불교적 상담’ 이론을 체계화하려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모르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새벽 5시에 매일 하는 산책도 생략할 만큼 공부에 푹 빠져 있어요. 너무 즐거우니까 다른 것에 에너지 쓸 틈이 없어요. 돈·명예·물질은 언젠가 사라져요. 그러나 내 성장만큼은 내 것입니다. 늙을 새도 없이 뿌듯해요.
에디터
김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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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에디터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7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