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임오년이 가고
계미년이 앞으로 하루 남즌 지금
올해를 되돌아 본다.
올해는 개인적으로 참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인라인을 타고 인라인도봉을 알게 되고
활동을 하면서 내 삶에 많은 부분이 바뀌게 되었다
2002년 5월인가 처음 인라인을 접하게 되었는데
퇴근하면서 항상 지나치는 도봉 X게임장에서
인란타는 사람들을 보고 어느 순간 나도 타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 주에 이마트가서 인란하나 샀다
내 기억으로 9만8천넌짜린가? 보호대도 사고, 헬멧(다들 아는 노랑바탕에 불꽃무늬)도 사고, 그 해에 도봉 엑스겜장으로 네번정도 갔었나
휴가중에 회사에 출근해서 손가락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그 당시하던 축구, 헬스와 더블어 인란도 접었다.
누구하나 가르줄 사람이 없었던 때라 다시 넘어지면 어찌하리
그렇게 2002년이 지나가고 2003년이 왔다
다시 인란을 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혼자 타기는 그렇고 여의도까지 나가자니 멀었다.
그때 중랑천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친구 우인이 인란을 사고 그 친구랑 첨 시작을 하게 되었지
그후 생활이 바뀌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세번 술 마시던게
일주일에 한번 마실까 말까하게 되었다.
둘이서 타다가 가필드도 사서 셋이서 중랑천변을 누볐다
허접한 내가 씨디도 보고 사이트도 돌아다니면서 보면서 가르쳤다.^^;
한달가량 그렇게 탔을까??
다음에서 카페 검색으로 인라인동호회를 찾아보니 인라인도봉이 있었다
가깝고 사람도 많지도 않아서 가입했다
이삼일 까페 구경하고 삼일째 되던 날
번개쳤다.
과연 누가 나올까 했는데 8명인가 나왔었다. 그날 나왔던 사람 대강 생각나는게
디아, 그렘린, 지우, 지오, 정이, 소리, 린마스터 정도 기억난다.
그때는 지금처럼 농구장에서 모이지 안았고 창동교 밑에서 모였다
창동교 밑에서 모여서 위 아래로 로드 뛰고
해산하고... 아! 한명 생각났다 이녕이...
그때 정말 허접하던 실력으로 내 첫번째 가르침을 받은 넘 내가 친 두번째 번개때부터 나왔는데 그때부터 나의 야메강습은 시작 되었지
월계쪽으로 가면서 자세 가르쳐주고
또한 그때부터 빡쎄게 가르쳤으니... 그넘 그래도 오기가 있어서 아픈 발을 끌고 따라왔는데 지금은 탈퇴해서 멀 하고 있는지
날이 풀리면서 한명두명 회원이 늘어가고
오로지 로드만을 뛰던 시절이 마감된건
예비역(기형)이 농구장에서 번개를 치면서 농구장이 점점 아지트화 되면서 현재 번개장소로 바뀌게 되고 그후 인도는 양적팽창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열혈(?)회원들이 대부분이 이때 많이 가입을 시작했고
또 운영자를 뽑기도 했고 5월말 6월초로 기억되는데 그때부터 한강로드도 뛰기 시작을 했다.
또하나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돗자리와 폐인클럽 로드뛰고 와서 돗자리에 벌러덩 누워서 쉬는 맛 커피도 끓여 먹고, 라면도 끓여 먹었고 후후
폐인클럽탄생..
탄생배경은 나 쩡2 신의소리 팬더 이렇게 마지막까지 놀다가 날새고 난 출근하고 셋은 그 길로 다시 중랑천으로 가서 인란을 탔다나.
폐인들이다 해서 폐인이 생겼고 이녕이가 번호를 붙여갔지
폐인초호 가필드 1호 미르, 2호 우인, ......28호 이녕이
6월~7월 카페 내부의 갈등으로 일부회원 이탈이라는 개인적으로는 정말 맘상하는 일이 생겼지 그때부터 내 인란 열정은 식어가지 안았을까...???
운영자로서도 힘들었고...
7,8월은 장마... 인라인을 못 타는 장마 다들 술마시기에 여념이 없던 시절
또 하나의 문제가 붉어 졌으니 소문으로만 듣던 작업남이 활개를 치던 시기
회원 여렇 탈퇴하고 지하에서 곪고 있을 때
8월 속속 사고가 났으니 엔젤의 왼쪽팔 골절, 소리의 쇄골 골절
운영진의 입장에서 내린 특단은 헬멧착용의무화 머리만이라도 보호하자는 취지로 시작했으나 많은 회원들의 거부와 불참 운영진의 강제진행으로 또한 많은 진통이 있었다. 여타 동호회에서는 헬멧 착용이 의무화이나 유독 인도만은 자유스런 분위기였기에 더욱 힘들었지만 지금은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9월에 기억나는건 내 생일과 첫번째 마라톤
1차 장소는 뉴페이스 였고 대략 25명이 참석을 해줬다.
내 생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생일을 축하해준건 처음이다.
그때 모두한테 진심으로 감사한다.
5차까지 가서 날새고 깨보니 집이었지
하나포스 마라톤 2003년에 절대 빼놓수 없는 단어
나에게 다시 인란열정을 불어 넣은 기폭제이며 또다른 여러가지를 알게해준 대회였다. 당시 참가자 나 소리 비가 프리 엔젤 사오정 응원단 병규
장마가 끝나갈 무렵 전날 생일자 모임이어서 (그날 같은 생일 4명에 아닌 사람 2명) 친구 집에서 모여 두시까지 소주마시고 노래방갔다가 맥주마시고 잤다. 마라톤 전날에 컨디션 조절은 안하고 술을 마신 배경은 비가 많이 와서 대회가 취소 될 것같았기 때문이다
아침에 다섯시에 일어나서 그래도 뭐좀 먹고 가겠다고 라면 끓여 먹고
사오정 엔젤한테 일어났는지 확인 전화하고 차끌고 오정이 엔젤 태우고 창동역으로 가서 프리 소리 비가 병규와 만나서 상암으로 출발 정말 비몽사몽간에 운전했다.
월드컵공원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대회장소까지 인란타고 가서 준비하는데
가만히 서서 한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정말 힘들었다. 다리에 힘풀려서
어찌어찌 출발 아 정말 오백미터 갔나 다리에 힘빠진다. 옆사람 발에 걸려서 엎어졌다. 아픔보다 쪽팔림이 우선이어서 일어나 다시 달렸다. 반환점 돌기전에 또 엎어졌다.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서 가다가 정말 크게 넘어졌다. 그야말로 헤딩이란 표현이 어울릴듯 어깨땅에 닿으면서 다행히 헬멧이 있어서 머리는 다치지 안았다.
그때의 흉터가 아직 어깨에 남았으니...
그후 수원 토야인라인, 엠비씨 미디어텍, 인천마라톤까지 4번참가했다
허리통증 맞바람 다리통증등을 이겨내고 피니쉬를 통과하면 희열이 느껴졌다.
마라톤 뛰어 본 사람은 알것이다.
그후 운영진 개편도 있었고, 회칙도 수정되 올라오고
근래 보기 안조은 사건도 있었고.
그렇게 한해가 마무리 되가네
첫댓글 영원하라 인라인이여~~~~
형 넘 길다^^
휴~~한참 기네...잼나게 읽었어요^^;;
이것도 중간중간 짤라 먹은거야
읽으면서 "그땐그랬지...."하믄서 옛생각나넹...나두 중간 맴버지만~ㅋㅋㅋ 오빠두 새해 복마니 받구 내년엔 좋은소식(?)있길~^^
흐음 미르형님이 올드멤버에 속하시니꼐 그만큼 인도에 정도많이붙었을듯 암튼 미르행님 새해복 저만큼만 받으세요^^ 내년봄부터 저도 인라인에 미처볼예정입니다.간간히..^^ 내베어링..바퀴는썩어가네 내방구석에서 ㅜㅜ
멋진 글이네요 한편의 서사시를 읽는 기분임~~~
형~~올해 형 결혼식 꼭 참여하고 싶어요^-^.....인도사람들 백 그라운드로 기념 촬영...올해 할수 있게요^^
오우.. 하초 꼬리말 00시56분54초네 ㅋㅋ 다행히 "올해" 가 됐군 ^^:
ㅎㅎㅎ그럼요~제가 그정도 치밀하지 못할줄 아셨어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