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가는 길에서
엊그제 성탄절이 지나고 묵은해가 나흘 남은 수요일이다. 가을부터 유난히 포근하던 겨울 들머리를 보낸 동지를 며칠 앞두고 찾아왔던 동장군은 물러간 듯했다. 여름에는 폭염이나 강수 날씨에 도서관을 나가고 겨울에는 추위가 혹심할 때 이용해 왔다. 추위가 엄습했던 지난주에는 이틀 연속 교육단지 도서관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날씨와 무관하게 불편한 다리에 안식이 필요했다.
작년 연말 퇴직 후 귀촌을 앞둔 대학 동기의 표고목 벌목 일손을 지원하다 다리에 불편을 겪는지가 일 년째다. 그날 쓰러트린 통나무가 무릎으로 스친 후유증이 남아 뒤늦게 동네 의원에서 치료받다가 내일은 상급병원으로 진료를 예약해 놓았다. 산행이나 산책으로 무릎과 종아리에 무리가 올까 봐 날씨가 포근한 날이었지만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현관을 나섰다.
교육단지 창원도서관으로 가려고 외동반림로를 따라 걸어 원이대로를 지나 폴리텍대학으로 향했다. 10년 전 교직을 마무리 지어 갈 즈음 교육단지 여학교에 근무할 적 출퇴근이 떠올랐다. 교단 마지막을 보낸 거제로 건너가기 직전 근무지였다. 자차를 운전하지 않기에 이른 아침 폴리텍대학 캠퍼스를 지나 고목 벚나무가 도열한 교육단지 차도의 보도를 따라 여학교 교정으로 들어섰다.
사람의 일이란 게 한 치 앞을 알 수 없음은 여실했다. 당시 교육단지 안에 교육청 산하 도서관이 있는 줄 알고 있었지만 퇴직 후 여가 활용을 위해 수시로 드나들게 될지는 예견하지 못했다. 앞으로 내가 일과를 보내는 시간 활용에서 어쩌면 산행이나 산책보다 우선순위가 도서관으로 나감인가도 싶다. 야생화 탐방은 웬만큼 다녔고 산나물이나 버섯 채취도 체력이 부칠 만도 하다.
일 년 사계에서 내게는 봄날이 무척 바빴다. 한 뼘 땅을 소유하지 않음에도 농부보다도 내가 관리해야 할 텃밭이 더 넓다. 길을 나서면 온 산천이 내가 푸성귀를 마련하는 남새밭이라 텃밭의 경계는 내 발길 닿는 곳까지다. 산나물을 뜯으면 우리 집 식탁은 물론 주변 지기들과 봄내음을 함께 맡기 예사였다. 산나물을 마련하느라 호젓한 임도를 따라 걸으면 야생화는 덤으로 만났다.
여름에는 장맛비 틈새나 폭염인 날이면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반나절 산행을 다녀왔다. 높고 먼 곳이 아닌 창원 근교 야산의 참나루 숲으로 들어 묵은 그루터기에 붙는 영지버섯을 찾아냈다. 숲을 빠져나오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발을 담그거나 알탕으로 더위를 식혔다. 숲에서 찾아낸 영지는 베란다에 말려 음용하는 약차의 재료로 삼고 형제자매나 친지들에게 아낌없이 보낸다.
산행이나 산책다운 길은 가을에 나섰다. 인적이 드문 임도를 무념무상 진종일 걸으면서 길섶에 제철에 절로 피고 지는 들꽃을 완상했다. 햇살이 세게 내리쬐지 않아 강둑이나 바닷가로도 나가 걷기 좋은 계절이었다. 산에서 구하는 산나물은 아니라도 지인 농장을 지나다 협찬받은 푸성귀로 배낭이 불룩한 날이 있기도 했다. 닷새마다 돌아오는 오일 장터 순례도 가을날이 제격이었다.
봄가을에는 비가 오는 날이 도서관으로 나갔고 여름에는 폭염의 더위를 도서관에서 식혔다. 겨울은 추위와 우천이면 당연하고 다른 날도 날씨와 무관하게 도서관으로 나감이 일과가 되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 용지호수 근처 시청 산하 성산도서관과 작은 어울림 도서관도 이용하기도 한다. 거기보다 교육단지 도서관이 장서나 열람석 환경이 훨씬 나아 창원이 문화도시임을 자부한다.
도서관 문이 열린 시각 입실해 지정석이 되다시피 한 2층 창가 열람석을 차지했다. 집으로 가져가 못다 읽은 정병설의 ‘나의 문학 답사 일지’를 펼쳤다. 아직 강단에 선 국문학자가 문학 작품에 나온 국내외 명소를 소개했다. 이어 영문학자며 평론가인 권택영의 ‘인공지능이 따라 하지 못할 뇌’라는 부제가 붙은 ‘생각의 속임수’와 황경택의 ‘숲의 인문학을 위한 나무 문답’을 독파하고 왔다. 23.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