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 복효근
6월 저녁 해 어스름
어둠이 사물의 경계를 지워나갈 때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어두워지는 일이 이리 좋은 것인 줄 이제 알게 되네
흐릿해져서
흐릿해져서 산도 나무도
무엇보다 죽도록 사랑하고 죽도록 싸웠던 일들도 흐릿
흐릿해져서
개망초 떼로 피어선 저것들이 안개꽃이댜 찔레꽃이댜
안개꽃이면 어떻고 찔레꽃이면 어뗘
개망초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뗘
꽃다워서 좋더니만
이제 꽃답지 아니해서 좋네 이녁
화장을 해서 좋더니
화장하지 않아서 좋을 때가 이렇게 왔네
저녁 이맘때의 공기 속엔 누가 진정제라도 뿌려놓은 듯
내 안에 날뛰던 짐승도 순하게 엎드리네
이녁이라고 어디 다를라고
뭐 죽도록 억울하지는 않아서 세상 다 용납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듯 어둠 속에 둥글어진 어깨를 보네
이대로 한 이십 년 한꺼번에 더 늙어지면
더 어둡고 더 흐릿해져서
죽음까지도 이웃집 가듯 아무렇지 않을 깜냥이 될까
모든 일이 꼭 이승에서만이란 법이 어디 있간디
개망초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뗘
꽃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뗘
그때 기억할까 못 하면 또 어뗘
저녁 먹고 동네 한 바퀴
지는 꽃 쪽으로도 마음 수굿이 기울어지던
-시집 『따뜻한 외면』(실천문학사, 2013)
*****************************************************************************************
어제는 아침나절에 텃밭에 나가 감자 한 골을 캤더니 두 상자가 되더군요
집떠나 사는 세 아이들에게 보낼 정도는 되겠다 싶어 덥기 전에 집에 왔는데...
저녁에는 장마전선이 기웃댄다는 소식이 들려 다시 밭으로 나가 감자 캔 골에 콩을 심고
옥수수 밭에 무성하게 돋은 잡초도 뽑았습니다
토일 솔밭에는 동네 어르신 몇이 평상에 둘러앉아 훈제오리를 구워서 낮술 한잔 하고 계시대요
저녁드실 때가 되었다고 안어른들도 어스름길을 돌아드시고...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국수집에 들러 시원하게 콩국수나 해 먹을 양으로 좀 사왔습니다
이번 장맛비가 지나면 무성하던 잡초들도 한 풀 기세가 꺾이겠네요
농부들 마음도 수굿이 기울었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