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가 그리는 집
이 글을 읽기 전에 잠시 멈추고 머릿속으로 초가든 기와집을 그려 봅시다. 직접 그려도 좋습니다.
잠시 그리다가 멈추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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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그렸나요?
누구는 초가의 둥근 지붕을, 또 누가는 가와집의 지붕을 각지게 그렸을 겁니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집은 없습니다.
바닥이 없이 공중에 지붕만 떠 있는 그런 집은 없습니다.
목수는 집을 그릴 때 바닥에 선(線)을 먼저 그립니다.
다음에 주춧돌과 기둥과 마루를 그리고, 지붕은 맨 마지막에 완성합니다.
이게 정상적인 그림의 순서가 아닐까요?
전력을 생산하면 생산시설- 풍력이든 수력, 원자력이든 태양광 발전이나 조력(潮力)발전-이 우선이겠만. 그렇게 생산한 전력을 혹은 저장하고(ESS), 운반하고(전선), 전압을 바꾸거나 조정하고(변압기) 소요처에 배전(配電)하는 시스템이 필요하겠지요.
나 같은 문외한도 이건 압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아는 한 강릉 안인 석탄 발전소나 삼척 석탄 발전소는 다 완공을 하고도 가동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석탄 발전소는 짓지 않아야 할 것이지만, 수조원을 들이고, 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반대를 무릅쓰고 건설하였다. 베트남에 석탄 발전을 수출한 문통의 작품이다.
완공 후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석탄은 이제, 아니 우리나라의 생산품이 아니었다.
우리 것은 칼로리가 낮고 그나마 생산 단가가 비싸다. 과거에도 화력발전소에 우리 탄을 쓸 때도 벙커씨 유를 혼합해서 사용했다.
그래서 케나다나 호주에서 수입한 유연탄을 쓴다.
그러나 이 탄을 싣고 와서 하역하고 발전소 까지 운반하는 것부터 문제가 됐다. 비산(飛散)먼지가 도심을 통과하는 게 큰 문제였다. 반대가 극심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발전소가 가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조용해졌다.
이 어처구니 없는 사태는, 전기를 소모하는 경인 또는 경기도 지역으로 운반(송전)하는 문제에서 걸렸다.
신안에서 염전을 훼손하면서 얻은 태양광 발전도 마찬가지다. 신안에서는 소용되지도 않는 전기를 경기도로 송전하는 문제가 가로막았고 있다.
송전선이 지나가고 송전탑이 설치되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센 탓이다.
그러지 않아도 삼척의 야산에서 보면 울진 죽변에서 생산된 전기를 서울 경기도로 배전하는 전선들로 눈이 어지럽다. 여기에 또 원전을 지으니 거기에 배전선은 더 늘려야 할 처지다.
석탄 발전소를 계획할 때부터, 원전 부지를 확보할 때부터 이런 문제를 먼저 대책을 세우고 추진해야 할 게 아닌가?
이게 바닥도 없이, 기둥도 없이 지붕부터 그리는 그림이 아니고 무엇인가? 진정한 목수는 그런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정부는 경기도 평택 일대를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협업단지)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하였다.
대단히 좋은 발상이다.
대만이 앞서가고 중국의 추격이 거세고, 미국의 보호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한 두 기업의 힘만으로는 될 수가 없고, 여러 기업이 힘을 모아서 연구, 개발에서부터 생산 수출에 이르기 까지 거대한 조직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발상에 이의를 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계획 역시 거기에 필요한 전력 확보와 용수(用水)문제가 따른다. 전력도 문제지만, 반도체 생산에는 원전 다음으로 많은 물이 필요하다.
그러나 물 확보에 대한 대책은 없다.
원전 냉각수는 바닷물을 쓸 수 있지만, 반도체 생산에 쓰는 물은 깨끗한 민물이며, 이것도 더 깨끗이 정수한 것이로, 그 양도 많이 소요된다.
뒤늦게 경향 각지에 댐을 만들어서 용수를 확보하려 하나, 이 역시 주민의 반대가 자심하여 성사가 미궁에 빠져있다.
반도체 클러스터 역시 지붕부터 그린 엉터리 그림이 아닐까?
끝으로 올 한해를 논쟁 속으로 몰고 가서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의대생 증원 문제다.
윤통이 2천명 증원을 발표했을 때, 난 즉각 이 계획이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한 글을 쓴 바가 있다!
도대체 현재 1500명을 뽑는 신입생에 2,000명을 보태면 3,500명이 되는데, 이를 가르칠 교수가 어디에 있으며, 매일 강당에서 마이크를 들고 수업을 해야 하나?
인문 철학 강의라면 모를까.
아니면 예전 궁민학생처럼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 가르칠 건가? 시체 한 구를 갖다 놓고 몇 명이 같은 것을 해부해야하나?
난 의사들의 이기심 때문에 이런 사태가 난 것을 확신한다. 궁민건강? 이런 건 애초에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2,000명 증원은 불가하다. 난 500명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필수 진료과목에 집중하는 강제 배치를 권한다.
코로나 창궐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고 돈벌이 에만 여념이 없는 한의대생중 희망자를 뽑아서 의대생으로 전환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의사가 된 사람은 양한방을 모두 다룰 수 있는 의사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의대는 없어도 된다.
이들은 주민들의 평균 나이가 높은 지역에 근무하게 된다면 대단한 환영을 받을 것이다.
이와같이 의사 증원문제도 지붕부터 집을 그린 서툰 그림이되었다.
나의 외침이 공허한 것임을 나는 안다.
그러나 공자나 맹자가 인의의 정치를 갈망하고 설파했다고 세상이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공자를 ‘안되는 줄 알면서도 해보는 사람’이라 부른다.
나는 나의 외침 자체가 좋다.
귀두라미 소리도 듣기 어려운 도시의 가을이 삭막하다.
甲辰 白露後
豐 江
첫댓글 심각한 사회 문제를 감히 가타부타 하기가 어렵지만 스스럼없이
비판할 수 있는 풍강님이 계셔서 가끔은 속이 시원할 때도 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