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코 수녀회가 돌보는 한 아이와 포옹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Vatican Media)
교황
교황, 고아와 빈민, 난민을 따뜻하게 포옹하며 순방의 시작을 알리다
9월 3일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인도네시아 교황대사관에서 노인, 난민, 고아 등 40여 명을 만났다. 교황은 이날 특별한 외부 일정 없이 숙소인 교황대사관에서 휴식을 취할 예정이었으나, 대사관 도착 직후 예수회난민봉사기구(JRS)가 보살피는 난민들, 도미니코회 수녀들이 돌보는 고아들, 산에지디오 인도네시아 공동체와 연계된 이들을 만나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각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 자리에는 스리랑카 난민 가족, 로힝야족 난민 청년도 함께했다. 교황의 아시아-오세아니아 사도 순방은 이처럼 가난한 이들과의 만남으로 막을 올렸다.
Salvatore Cernuzio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도네시아 사도 순방은 ‘버림받은 이들’과의 만남으로 막을 올렸다. 이들 고아, 노인, 빈민, 난민들은 그동안 교황이 지속적으로 규탄해 온 “버리는 문화”의 희생양이다. 교황은 9월 3일 오전 자카르타 수카르노-하타 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메르데카 광장 인근 교황대사관으로 이동했다. 1960년대에 지어진 이 건물은 군사시설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번 사도 순방은 인도네시아를 시작으로 파푸아뉴기니, 동티모르, 싱가포르를 아우르는 대장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카르타 거리의 교황 환영 현수막
거리의 환영
교황을 태운 흰색 차량은 30분 동안 자카르타의 회색빛 도심을 가로지르며 들어섰다. 교황의 차량은 고층빌딩과 건물들 그리고 9세기 자바 전통 건축양식으로 설계된 건축물들 사이를 지나갔다. 그 건물들 아래에는 칠리웅 강을 따라 즐비한 판잣집과 나무 오두막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92퍼센트에 달하는 높은 습도 속에서 강변 거주지에 널린 빨래와 옷가지들은 도시의 생동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거리에 나온 많은 사람들과 아이들은 흰 티셔츠를 입고 교황의 차량이 지나갈 때마다 인도네시아 국기를 흔들며 “셀라맛 다탕!”, 곧 “환영합니다!”라고 외쳤다. 교황이 교황대사관에 도착하자 주인도네시아 교황대사 피에로 피오포 대주교가 교황을 맞이해 함께 대사관 안으로 들어갔다. 대사관 응접실에서 교황을 맞이한 이들은 고아, 노인, 빈민, 난민들이었다. 이들 40여 명은 모두 둥글게 앉아 교황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는 매일 이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도미니코 수녀회, 예수회난민봉사기구(JRS), 산에지디오 인도네시아 공동체 대표단이 함께했다.
도미니코 수녀회의 돌봄을 받는 고아들을 만난 교황
대사관에 모인 “다양한 백성”
특별히 지난 1991년부터 파당교구의 몇몇 젊은 평신도들에 의해 시작돼 현재 11개 도시에서 활동 중인 산에지디오 인도네시아 공동체는 이날 교황대사관으로 20명을 데려왔다. 산에지디오 공동체 관계자는 「바티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들을 “다양한 백성”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거리에서 쓰레기를 모아 재활용하며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유럽에서 흔히 보는 노숙인들과는 달리, 이들은 집이 없고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입니다.”
자카르타에서는 이처럼 거리에 사는 이들을 현지어로 “손수레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나무 손수레에 쓰레기장이나 거리에서 모은 쓰레기를 가득 싣고 다니며, 그 수레가 곧 집이 되어 그 안에서 먹고 자고 생활한다. 산에지디오 공동체는 세계 여러 도시에서처럼 이들에게도 음식과 옷을 지원한다. 그들 가운데 몇몇이 이날 교황과 직접 악수를 나눌 수 있었다. 교황은 자리에 앉아 있던 모든 이와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짧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난민과 조난 생존자들
산에지디오 공동체와 자카르타대교구의 첫 종신부제 얼립 비타르사 부제가 초대한 이들 중에는 사회시설에 사는 노인들, 쓰레기 매립지에 사는 빈민들, 공동체가 제공하는 급식소를 찾는 이들이 있었다. 또한 소말리아 난민과 타밀족의 박해를 피해 도착한 스리랑카 난민 가족도 있었다. 이들은 몇 달 전 호주로 향하는 작은 배에 올라탔으나, 바다에서 배가 전복됐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 사람들은 다시 인도네시아로 돌아왔고, 지금도 다른 많은 난민들처럼 호주나 캐나다에 살고 있는 친지를 만나길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배척하지는 않지만 제대로 된 법률지원이나 도움을 제공할 수 없는 나라에서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황은 이 자리에 모인 이들에 대한 설명을 간략히 듣고 모두를 축복했다. 특히 교황은 로힝야족 청년을 따로 축복했다. 로힝야족의 고통을 자주 언급해 온 교황은 이 약자들을 위한 도움을 공개적으로 호소하는 유일한 목소리로 알려져 있다. 교황은 이날 예수회난민봉사기구(JRS)의 도움으로 교황대사관에 온 로힝야족 청년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며 친밀함과 관심을 표했다.
아이들을 향한 교황의 따뜻한 마음
교황은 이 자리에 모인 많은 아이들을 더 많이 안아주고 애정을 표현했다. 이 아이들 중에는 도미니코 수녀회가 마을과 마을 외곽에서 데려와 보살피고 가르치며 먹을 것을 주는 고아들도 있었고, ‘평화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평화의 학교는 인도네시아 전역에 18곳이 있으며, 총 3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평화의 학교 아이들은 “내가 바라는 세상”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교황에게 선물했는데, 이 그림에는 모든 나라의 국기가 하나로 모여 형제애를 상징하는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두 팔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교황은 아이들의 머리와 이마에 입맞춤을 하거나 축복하고 묵주를 선물하면서 이날 만남의 대부분을 아이들과 함께 보냈다. 이날 만남은 13시간의 장거리 비행 후 맞이한 아시아-오세아니아 사도 순방 일정 중 첫 번째이자 이날의 유일한 일정이었다. 교황은 차도르를 두른 아프가니스탄 출신 여성과도 인사를 나눴으며, 휠체어에 앉아 있던 노인에게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끝으로 교황은 이날 만남으로 역대 최장 사도 순방의 시작을 맞이하게 되어 기쁘고 감동적이라며 참석자 모두를 축복했다.
번역 이재협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