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한 날, 행복한 아침입니다. 새 날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4절을 보면 시인은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지극히 보잘것 없는 인간을 귀하게 여기셨다는 말입니다. 5절에 보면 시인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이러한 고백에는 인간은 그처럼 하나님게 존귀한 자로 여김 받을 만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사상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도대체 어떠한 존재입니까? 도대체 인간의 본질이 무엇이기에 다윗은 이렇게 감격해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를 본절에 사용된 사람을 가리키는 두개의 단어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이용된 단어는 '사람'이라는 단어입니다. 이에 해당하는 원어는 '에노쉬'로서 깨지기 쉬운 존재, 부패하기 쉬운 존재, 낡아 떨어지기 쉬운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즉 깨지기 쉽고 부패하기 쉬우며 낡아지기 쉬운 존재가 인간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사용된 단어는 '인자'라는 단어ㅑ입니다. 이에 해당하는 원어는 '벤 아담'으로 '흙의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인간이 흙으로 지음 받았음을 나타냅니다. 여러분, 흙이 얼마나 하찮은 것입니까? 우리 중에 흙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더욱이 여기에 사용된 '아담'이라는 말에는 먼지나 티끌의 의미도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흙 또는 먼지에 불과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하찮은 존재에 불과한 인간을 귀하게 여기셔서 존귀와 영화로 관을 씌워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시인이 그처럼 감격하여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찮은 존재에 불과한 인간이 하나님께서 존귀와 영화로 관을 씌우셨다고 해서 교만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인간이 교만하게 되는 것은 자기에게 무슨 내설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아무리 잘나도 흙먼지에 불고한 존재입니다. 어떻게 교만할 수 있겠습니까? 교만한 자가 있다면 그는 인간의 본질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본질을 안다면 교만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존귀하게 되어도 다윗처럼 ‘인간이 무엇이관대’ 그렇게 존귀하게 하시느냐고 찬양할 수밖에 없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다 그와 같은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각자 기도드리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