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디지털이 아니다. 문제는 사람이다. 우파도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외칠 만큼, 젊은 세대를 마음안에서 느끼질 못한다. 이따위 수량적 접근은 근본적으로 한심한 것이며 쓸모 없는 것이다.-
1. 행동하는 보수...... 홍효민선생과 생택쥐페리라도 젊은 층이 많이 연구할 기회가 있었다면, 이 단어가 이러한 오늘같은 이미지를 갖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중권이 숭고와 시물라크르에 대해서 쓴 책이 대학생들이 좋아한다. 그것은 대학가 학생운동에서 사회과학 집단의 파워를 믿는 것이다. 뭔, 대학생들이 칸트의 판단력비판을 리오타르식의 꺾어읽기를 좋아했거나, 구조주의 언어학을 통해보는 사회관점의 보드리아르의 시각을 좋아했을까? 진중권이 조선조 선비 끝자락을 짚은 것은 전혀 아니다. 그는 최대한 상스러워지려고 노력했고, 그 상스러워짐과 어울리는 현학성을 동시에 인정 받았다.
나는 행동하는 보수 논리를 읽다보면, 이거 알튀세 식의 계급혁명사관 논리에서의 반인간주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그렇게 휴머니즘을 모르나? 황장엽 선생이 분명히 마르크스주의를 버리자고 해도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적인 결정론이면서도, 이념적으로 우파 범주에 들 수 밖에 없음은 휴머니즘 취향이 강해서일 것이다. 나 또한 휴머니즘 취향이 강하고 계급혁명 시각을 적개시한다. 나에게도 약간의 마르크스주의적 결정론이 분명히 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광의의 차원에서 마르크스주의 계보일 뿐이며, 혁명논리를 버리면 전부를 버린거와 사실은 마찬가지이다. 어쨌거나,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이념에서 요새 뜨는 들뢰즈의 전편일 알튀세의 반인간주의를 읽다보면, 조갑제 편집장님의 '상무정신'논리와 사실 매우 거리가 가깝다는 것을 느낀다. 알튀세는 레비스트로스 적인 구조주의와 과학철학과 생물학을 끼어서 과학주의를 내세우고, 조갑제 편집장님은 하늘과 내가 나뉘는(한국유학은 하늘과 땅이 섞이는 전통)식의 입장에서 도구주의적 이성관을 선택하는 과학주의를 내세운다. 알튀세가 휴머니즘을 부르주아 타령하듯이, 조갑제 편집장님은 인간주의를 연구하는 인문학을 조선조 선비타령으로 맹공격한다. 황장엽 선생의 가치관은 국제적 수준에서도 마르크스주의 계보에서 우파로 나타나는 사람으로 통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적 가치를 이토록 소홀히 여기는 우파가 전세계적인 평균적 감각인가 의문시된다. 행동하는 보수논리가 전성기였던 시대에, 사실은 그 시대에 문화 목록을 보면 어디나 휴머니즘논리로 가득찼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 각박하고 쫓기는 풍토 속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서, 포근한 무엇을 찾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행동하는 보수 논리 시대에 생텍쥐페리와 홍효민문학이 있었다. 지금의 70대들의 20대 때도 그렇게 포근한 것과 행동하는 보수 논리가 겹쳐있었건만, 지금은 조금이라도 포근한 것에 대중들이 안주하는 상황을 비실용적인 양 다 제끼는 상황이다.
2. 우파정당과 우파정치의 청년층 확보 타령. 아직도 유교적 권위주의로 너무 뻣뻣하다. 이래서 된다고 믿는가? 바보 아닐까?
전자 제품 아프터 서비스 직원의 정년은, 중년티가 몸에 베는 40대 중반. 나는 우파정치가 청년층 확보를 하기 위해서 40대 중반 이후가, 과장 안하고 공개 석상에서 청년층을 향해서 입을 콱 다무는 사회가 되어야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한나라당에서 우파정체성의 젊은 층이 없으니, 노년층의 엉터리 연구가 계속 나온다. 그리고도 제동이 되지 않는다. 상무정신의
문제는 우파 정당 내에 40대 중반 미만에 '원희룡같은'이들 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어쨌든 과장 안하고 젊은 가정에 머리 희끗한 노인이 찾아가면 부담되듯이, 젊은층이 우파에 오길 바라면서 60대가 앞서는 것은 대단히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60대를 고래장 하자는 말이 아니다. 정말, 어떠한 지식체계와 코드 밑그림을 주어주고서는, 빠질 순간에서 빠지라는 말이다. 좌파의 문화지식 연구에서 노인네 좌파가 다 찾아가면서 체크한 바 없음은, 보고 배워야 한다. 60대가 젊은층 모이는 데 가서 계몽조로 몇마디 하려고 하는 한, 젊은층이 모이겠는가? 정말, 체험적 접근의 연구가 아닌 계량적 접근의 보고서를 그럴듯하다고 보는 것인가?
뭔가, 우파적 이념을 연구해서 출세를 할 수 있다는 식이거나, 전망이 있다는 이미지를 비춰서, 적극적으로 우파적 정체성을 믿는 이들을 기르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파 세대에도 당당하게 지명도 있는 스타성을 만들어볼만한 지식체계를 갖도록 하지 못하는 한, 유교적 권위주의 배경으로 구세대 고고학적 코드를 이해해줄 젊은이들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시대에 다시 살기가 어려워져서, 학업을 그만두는 이들이 있다해도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리오타르가 꺾어 읽는 가치가 뭔지 몰라도, 언론에써 빵빵하게 띄우고 뭔지 모르는 철학어구 많이 쓰는 진중권이를 사랑할 것이다. 이것이 이 시대의 과장 안한 진짜 트렌드이다.
3. 우파는 더 이상 변증법적으로 수술당하면 안돼!!!!
공산당 이념이 지식정보를 꼴통 수준으로 꼴통의 평준화를 만들고서, 철학 해석의 독점권을 공산당이 움켜쥐는 것이다. 여기에서, 상무정신 우파들이 얼마나 좌파들의 시스템 확충에 열렬히 쌍수를 들어서 강화를 했던가? 지식정보시대에 지식정보시대에 후진의 노인들의 컴퓨터 겨우 사용수준에 고착된 상무정신을 외치며, 젊은층에 인문학가치가 씨가 마르도록 강화할수록, 좌파는 원더풀 하고 박수를 칠 것이다.
송두율이 탈냉전에 상생의 어법을 썼다. 송두율과 김윤식교수는 대한민국을 변증법적으로 수술시켰다. 변증법이 얼마나 거짓말을 진짜로 하느냐? 예전에 분신이 자주 일어났을 90년대 초반에, 변증법을 조롱하던 똥깐 버전의 농담이 기억난다.
송두율의 속임수가 깊지가 않다. 그런데도, 포용력이 있는 부드러움을 대중들은 좋아한다. 상무정신타령이 대학가 인문학의 우파차원을 전멸시켰다. 송두율이 개자식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자신에게 학문적으로 구체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기에, 대중들은 반신반의 하는 마음이 분명히 있다. 부드럽게 성찰적으로 여러번 검증되도록 고쳐서 비판해주는 차원보다는, 성토대회식의 비판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기성세대 우파들은 자기 안에 있는 진리의식에 너무 힘을 줘서, 다수의 생각하는 현실적 방식을 너무 등한시하고 있다.
여기 저기 자생적으로 일어나는 성찰적이며 분석적 우파 세력을 전멸 시켜 버리고, 낡은 패러다임의 어법을 쓰는 기성세대로의 통일 상황으로 했던 바탕은 알겠으나,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변증법을 중심으로 부드럽게 얼버무리는 어법의 현학성에 속지 말라는 바탕은, 젊은 세대 대학가 인문학을 상무정신 타령으로 씨를 말리고서, 50년대식 사르트르 시대 지식인 논리의 구세대 어법으로 통일된 목소리로 설득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지식정보시대의 전쟁 개념은 많이 유연해졌다고 안다. 우파가 좌파에 허물어진 것은 결국 상무정신타령의 대학가 우파 인문학 말살 프로그램에 원인이 있다. 지식정보시대에 우파와 좌파의 문화전쟁 개념을 중심으로 한다면, 문화전쟁 개념을 6.25사변 식으로 덮어씌우게 된다면 6.25사변 때 박정희 대통령이 느끼던 이승만대통령 배역은 누가 해당될 것인가?
-한나라당의 '디지탈 정치'타령은 문화전쟁 분야에서 우파의 부패로 봐야 된다. 이 정도 논리로 우파를 수술하려 하면, 송두율의 대한민국을 변증법적으로 수술시키기를 막을 수 없다.
님의 글자 한자한자 님의 글 행간 하나 놓치지 않고 다 읽었습니다.아까 보다는 흥분이 많이 절제돼 있군요.님이 말씀하신 "부드럽게얼버부리는 어법의 현학성" 이 말이 님 글에 정답인거 같군요.님이 말씀하신 변증법적으로 대한민국을 수술 시킨다는 말씀은 전혀 아닌거 같아요.변증법이 통하던 시대는 빨갱이라면 무조건
악마와 동일시 하던 시대는 지났으니까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근데 글을 쓸때 중요한것은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누군가의 가슴에 어필할수 있는 방법을 찿아야 하지 않나 이런생각이 드네요.99.9%가 모르는 외국사람들 명칭 인용해바야 동네 아저씨 인터뷰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올수있으니까요.글 자주 올리세요..
첫댓글 휴~우
님의 글자 한자한자 님의 글 행간 하나 놓치지 않고 다 읽었습니다.아까 보다는 흥분이 많이 절제돼 있군요.님이 말씀하신 "부드럽게얼버부리는 어법의 현학성" 이 말이 님 글에 정답인거 같군요.님이 말씀하신 변증법적으로 대한민국을 수술 시킨다는 말씀은 전혀 아닌거 같아요.변증법이 통하던 시대는 빨갱이라면 무조건
악마와 동일시 하던 시대는 지났으니까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근데 글을 쓸때 중요한것은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누군가의 가슴에 어필할수 있는 방법을 찿아야 하지 않나 이런생각이 드네요.99.9%가 모르는 외국사람들 명칭 인용해바야 동네 아저씨 인터뷰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올수있으니까요.글 자주 올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