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비슬산 (琵瑟山) 자락에서 열린 문학 세미나를 마치고
다음 날 비슬산 군립공원, 자연휴양림으로 가기위해 전기차에 올랐다.
울창한 녹음속으로 계곡을 끼고 천천히 움직이는 전기차 오른쪽으로는
이름모를 야생화와 산수국이 숨어있듯 길섶 사이사이에 피어있다.
매년 4월이면 비슬산 참꽃 축제가 열리고
10월에는 단풍과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고 하지 !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줄지어 있는 바위모양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비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전기차에서 내려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달성군의 모습을 보며
대견사와 대견봉으로 가는 호젓한 길을 걸어 들어간다.
비슬산 안개속에 흐릿하니 낙동강 강우레이터 관측소와 조화봉이 보이고
천년의 세월동안 비슬산의 정기를 품고 있는 대견사 앞에서
심호흡을 하고 맑은 샘물을 뜨며 발 아래 달성군 마을들을 바라본다.
이튿날 아침 !
식당 테라스에서 맑고 시원한 7월의 공기를 마신다.
함께 지낸 룸메이트들과 아침식사를 ~~
충북지부 송회장님과 ~
오랫만에 다시 뵙게되어서 반갑습니다 !
비슬산을 향해 출발 ~~
7월 무더위인데도 전기차에서 차가운 바람을 쏘인데다가
이곳 비슬산 정상에 오니 쌀쌀하니 추웠다.
7월인데 겨울같이 추우네요
비슬산을 내려가는 전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현풍 비슬산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걸려
구지면사무소를 지나 도동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넘으니
언덕 아래로 작은 마을이 보이고 도동서원의 모습도 보인다.
도동서원은 한훤당 (寒喧堂) 김굉필(金宏弼, 1454년 ~ 1504년)을 기리는 서원으로
1568년 현풍현 비슬산 기슭에 세워져 쌍계서원(雙溪書院)이라 했으나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려 1607년 성리학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는 의미로
도동서원(道東書院)이라고 했다,
병산서원, 도산서원, 옥산서원, 소수서원과 더불어 5대 서원으로 꼽히며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서원으로 평가된다.
서원 앞에는 400여년 수령의 거대한 은행나무가 서 있고,
아름드리 나무 뒤로 도동서원이 조성되어 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400년 수령의 은행나무이다.
돌거북의 험상궂은 표정이 도동서원을 지키겠다는 듯 당당해 보인다.
문화 해설사가 도동서원에 대해 설명을 해 주고 있다.
김굉필은 18세 때 '한훤당'에서 김종직(金宗直, 1431∼1492)에게
소학(小學)을 배우면서 조선 성리학의 맥을 잇게 된다.
26세 때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하다가 연산군 시대의 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일파로 지목되어 유배되었다가 복권과 유배를 거듭하다가
귀양지 순천에서 50세의 나이로 사약을 받고 일생을 마감했다.
도동서원의 정문인 이층 누각의 수월루(水月樓)이다.
수월루는 처음 지을 당시에는 없었던 건물이나 후에 건축하였다.
지은 지 얼마 안되어 불타버려 오랫동안 터만 남았다가 1973년 복원되었다.
수월루 안쪽은 사방이 담장으로 막힌 좁고 가파른 공간이다.
환주문(喚主門)
‘주인을 부르는 문’이라는 뜻의 환주문은
그 주인은 내 마음의 주인일 수도 있겠고
문 안에 있는 주인일 수도 있으리라고 한다.
갓 쓴 유생이라면 반드시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설 수 있는 작은 문으로
겸손과 낮은 자세로 마음을 가다듬고 들어가기 위함이 아닐까.
환주문의 안쪽 기숙사인 동재·서재로 이루어진 강학공간이다.
환주문의 안쪽으로 들어와 있는 강당인 중정당(中正堂)이다.
높직한 기단 위에 있는 양쪽 아래로 기숙사인
동재 거인재(居仁齋)와·서재인 거의재(居義齋)가 내려다 보인다.
일곱 단으로 쌓은 디딤돌 계단 위에 세워진 중정당은
실제 크기보다 웅장해 보이지만 대청마루와 작은 온돌방으로 되어있다.
1605년 완공되었으며 서원을 감싸는 담장과 더불어 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어 있다.
낙동강가에 있는 사문진 나룻터로 간다.
사문진 나룻터는 한국에
처음으로 피아노가 들어왔던 나루터라고 한다.
4년전 문학미디어 세미나 때 대구 청라언덕 90개의 계단을 올라가
청라언덕에 얽혀있는 이야기와 선교사들의 희생과 봉사의 삶,
선교사의 주택 2층에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에 대해서 들었다.
1900년 초, 당시 미국에서 배를 타고 와 사문진 나룻터에 내렸을 때
대구 청라언덕까지 어떻게 운반을 하였을까 ?
그때 커다란 가마를 만들어 여러명이 메고 걸어서 운반을 하여 갖고 왔으며
피아노의 소리를 들은 주민들은 처음으로 피아노 소리를 듣고
귀신이 들어있다고 도망을 하였다고 한다.
이 피아노를 꼭 보고 싶었는데 그날은 문이 잠겨 있어서 돌아섰었지 ~
사문진 나룻터는 '화원유원지' '송해 유원지'라고도 부른다.
과거 나룻배를 띄우고 영남의 물류를 싣고 날랐던 시절,
길손들의 음식인 국밥과 부추전, 막걸리 같은 음식을 파는 주막들이다
낙동강가에 있는 사문진 나룻터는 '화원유원지' '송해 유원지라고도 부른다.
피아노 건반 모양의 계단길을 통해
낙동강 줄기를 따라 걷는 길이 연결되어 있다.
이제 각각 서울과 충북, 대구로 나뉘어 집으로 돌아간다.
생전 처음보는 문우들과 4명씩 조가되어 유스호스텔 한방에서 묵게되어
낯설고 조금 불편하기도 했었는데
문학이라는 따스한 매개체와 문학미디어를 친정으로 둔
공통분모를 가졌기 때문인지 곧 친숙해지며 잠도 잘 잤다.
가방을 들었다 놓았다 망설이다가 나섰던 대구의 여름 세미나에서
비어있는 마음에 무언가 채워진 것 같고
조금씩 무기력해 지고 있던 글쓰기에 활력 산소가 공급되어진 것 같기도 하다.
첫댓글 사진을 많이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당시 주최 측이 되어 정신이 없어서 사진도 많이 못 남겼습니다. 많은 양의 사진을 보관해두었다가 새로 올려주심에 감사드려요.
충북 지회 잘 다녀와서 마음 놓았는데 내년에 치러야 할 2025년 대구 세미나 행사가 벌써 걱정됩니다.
장소는 어디가 가장 좋을까? 또 어디서 어디까지 해야 할지 문우님들 실망스럽지 않게 해야 할 텐데.... 많이 생각하고 노력 해 보겠습니다
대구는 세미나 참석으로 보게 되었는데
근대 문화의 흔적들과 인물들, 선교사들의 헌신의 자취를 보게 되었지요
내년 대구 세미나 행사 기다리겠습니다 ~~
몇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사진으로
다시 보니 그때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오래전 추억을 기억나게 해 주신
박영자 경인지회 회장님 감사합니다 .!!
세미나 사진을 보며 저도 기억이 새로웠습니다
그때 참석했던 분들 중 모습이 안보이는 분들도 많이 있는데
이은혜씨 등 행사 때 계속 뵐수있어서 반갑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