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 튀밥집 / 복효근
공설시장 튀밥집에 갔었지
봄날이었고 텃밭에 묻고 남은
마른 옥수수 씨앗을 들고 갔지
주인 여자가 동그란 대포 입구에 옥수수를 부으면
시꺼먼 기계는 바비큐를 하듯 빙글빙글 돌며 달구어지지
이윽고 불을 빼고
쇠막대기로 돌려서 포문을 열어젖히면
펑, 대포 소리 울리지
구한말 구식 무기 같은 튀밥 기계 안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옥수수는
단단한 대포알이 되거나
산탄 총알이 되어야 했어
인근 사방은 초토가 되고 사람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야 할지도 몰라
포문에선 불이 터져 나오고
섬광을 뿜으며 탄환들이 쏟아져 나올지도 몰라
나도 모르게 귀를 막는데
알면서 속아주는 연인의 까꿍처럼
뭉게구름 속에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함박눈
송이째 떼로 흩날리는 벚꽃 벚꽃
옥수수꽃이 이렇게 생겼었나
폭죽처럼 터지는 꽃 무더기
꽃 피는 소리가 이렇게 천둥 같았나
어쩌면 우린 와락 손을 잡게 될지도 몰라
갑자기 품에 뛰어들지도 몰라
우린 덜 뜨거웠던 거야
사랑이 마른 옥수수 같은 날엔
때아닌 튀밥집 문전에서 서성거려도 좋겠다
[출처] 복효근 시인 10|작성자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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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시┃
꽃 피는 튀밥집 / 복효근
빗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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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8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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