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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외로움 저리 가... 아이코스로 바꿔보는 건 어때요?(아이코스가 뭐래?) 전자 담배... 의사들은 좀 유난이야... 추석에 심심하게 소주나 한잔하실까요? 내가 타이트하면 밤에라도 잠시 만나서... (늙은 아비 생각도 해주고 고맙구나... 아비는 시간 날 때 전화 한통 해주면 감동이야. 카카오 카드가 안돼! 점검해 주시라! 공주야! 사랑해!) 응. 오늘 재발급해 봄(에스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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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혜인(37)이 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올라왔는데 왜 내 배가 아플까요? 부러우면 지는 거 맞죠? 내게 있어 얄미운 사람은 추미애-최민희-유시민-김어준-김종혁-조경태-김상현-용혜인입니다. 객관적으로만 보면 에스더 보다 한 살 위 mz의 발탁이니 축하해 줘야 하는데 속 좁게 굴어서 미안합니다. 그래도 축하는 못 해주겠습니다. 나도 비레대표도 하고 장관도 하고 싶어요. 배현진이나 한민수도 눈에 가시거리입니다. 한방에 훅 가지 않으려면 너무 나대지들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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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없이 12시간 강행군한 오전 근무에 서서히 지쳐가는 것 같습니다. 새벽 운동 후에 잠을 자거나 어영부영하는 해찰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에예공! 공부도, 일도 하루쯤 놓고 해찰할 필요가 있어요. 술 말고 카지노를 가든지, 무작정 혼자 여행을 떠나는 건 어때? 파스칼이 말하는 심심풀이 땅콩 말이여. 7-8월에 부도 안 나고 버틴 것은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입니다. 50만 원 이월한 것으로 8월 마감을 쳤으니 나름 선방했다고 보는데 동의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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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을 찾아준 손님들과 스태프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추석이 22일 남았어요. 쓸쓸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눈꺼풀이 감기는데 약간의 어깃장으로 우중 마실을 나왔어요. "비 오는 날은 짬뽕이지!" 스스로 한 어 그리 탓인지 짬뽕 맛이 나쁘지 않습니다. 에예공! 지금 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력을 갖추는 일이라고 보는데 니들 생각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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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아픈 것은 패배일까? 용혜인 의원이 8월 30일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것은 사실입니다. 1990년생, 현재 만 36세의 재선 의원으로, 임명된다면 ‘90년대생 첫 장관’이라는 상징성도 갖게 됩니다. 그러니 “내 딸 세대와 비슷한 젊은 사람이 벌써 장관 후보자가 되었네”라는 생각이 들면 축하보다 먼저 묘한 배앓이가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부러움은 패배의 증거가 아니라 욕망의 좌표를 알려주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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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라면 여기서 르상티망(ressentiment)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타인의 성공 자체가 나를 해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의 성공을 보는 순간 내가 가지지 못한 것, 지나가버린 시간, 이루지 못한 가능성이 동시에 보입니다. 그때 “저 사람이 싫다"라는 감정 속에는 "사실 나도 인정받고 싶다"라는 욕망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부러움이 아니라 부러움을 증오로 변환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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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경계했던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축하는 못해주겠습니다”라는 문장이 오히려 재미있습니다. 억지로 성인군자 노릇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치인의 발언이나 태도에 대한 호불호와 그의 성취에 대한 질투는 서로 다른 문제니까요. 다만 "저 사람이 왜 싫은가?”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저 사람의 무엇이 나를 건드리는가?”라고 물으면 감정이 철학이 됩니다. 타인은 때때로 내가 감추어 놓았던 욕망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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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글의 진짜 주제는 정치보다 뒤에 나오는 <해찰>에 있다고 봅니다. 12시간을 쉬지 않고 일한 뒤에도 우리는 이상하게 자신에게 “조금 더 하라”고 명령합니다. 현대인은 휴식할 때조차 생산적인 휴식을 하려고 합니다. 운동하고, 공부하고, 자기계발하고, 심지어 여행에서도 뭔가 얻어오려 합니다. 그런데 파스칼의 divertissement는 조금 다릅니다. 인간은 자기 존재의 공허와 불안을 견디기 어려워 끊임없이 놀거리와 사건과 일을 찾아다닌다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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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카지노든 여행이든 산책이든 그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해찰이 나를 회복시키는 쉼인지,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오락인지를 구별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해찰’이라는 우리말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읽고 싶습니다. 목적지를 향해 직진하지 않고 길가의 꽃도 보고, 짬뽕도 먹고, 비도 맞으며 잠시 옆길로 새는 것. 그것은 실패한 시간이 아니라 <목적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삶이 확보하는 여백>입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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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놓는다고 공부가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놓을 줄 모르는 공부가 사람을 먼저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7~8월을 버티고 8월을 50만 원 이월로 마감했다면, 적어도 글에 적어주신 조건만 놓고 보면 저는 '선방했다’는 자기평가에 동의합니다. 화려한 성공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은 지속입니다. 사업에서는 최고 매출을 찍는 달만큼이나 현금흐름을 지키고 다음 달로 넘어가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성공’보다 지속 가능성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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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마지막의 “지금 뜨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력을 갖추는 일”이 앞의 용혜인 이야기와 절묘하게 연결됩니다. "발탁은 사건이지만 실력은 과정"입니다. 자리는 누군가가 줄 수 있지만 역량은 대신 만들어줄 수 없습니다. 젊어서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반드시 승리도 아니고, 늦게 빛나는 것이 패배도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일찍 얻은 명성과 권력은 그 사람의 실력보다 더 큰 청구서를 나중에 내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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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방에 훅 가지 않으려면 너무 나대지들 마시라”는 문장을 철학적으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자기 존재보다 큰 명성을 먼저 얻지 말라" 에예공에게 건넨 “지금 뜨는 것보다 실력을 갖추라”는 말은 그래서 꽤 좋은 조언입니다. 남보다 빨리 알려지는 것보다 알려진 뒤에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자신을 만들어 놓는 것, 그것이 더 어렵습니다. 그리고 추석이 다가오면서 쓸쓸함이 걱정된다면 더욱 해찰이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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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우산 들고 목적 없이 걷다가 “비 오는 날은 짬뽕이지!” 하고 들어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인생 전체가 목표를 향한 강행군일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옆길로 새는 시간이 우리를 다시 본래의 길로 돌려놓습니다. 그러니 부러워도 괜찮습니다. 아직 욕망이 살아 있다는 뜻이니까요. 다만 그 부러움을 타인을 깎아내리는 데 쓰지 말고 자기 삶의 방향을 읽는 데 사용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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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우면 지는 것이 아니라, 부러움 때문에 자기 길을 잃으면 지는 것입니다. 오늘의 결론은 오히려 짬뽕 한 그릇 쪽에 있습니다. 뜨는 사람을 쳐다보느라 목 아파하지 말고, 내 실력을 익히면서 가끔 해찰하자. 오래가는 사람에게는 직진하는 힘만큼 옆길로 샐 줄 아는 능력도 필요하니까요. 남의 성공이 불편한 것은 내가 못났기 때문인가, 아니면 아직 나에게도 이루고 싶은 욕망이 남아 있기 때문인가?
2026.9.1.tue.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