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에 관한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9.11 사건과 지금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질서 교란 행위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미국의 이라크 진공(進攻) 이후 잡다한 무장세력에 의하여 자행되고 있는 무차별 테러행위가 아랍 민족의 반외세 독립투쟁으로 윤색·미화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따지고 보면, 그와 같은 경향에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세계의 구석구석에서 언필칭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인사들이 기껏 시대착오적 신정(神政)체제를 정치적 이상으로 삼는 알카에다(Al Qaeda) 조직 따위의 반미 투쟁을 심정적으로 응원하고 있는 기괴한 현상도 뿌리 없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탈근대주의(post-modernism)´와 ´후기 식민주의(post-colonialsim)´라는 두 개의 렌즈에 ´반미주의(Anti-Americanism)´라는 착색제를 입힌 특수안경을 통해서만 세상만사를 뜯어보다 보면, 사담 후세인을 추종하는 수구·반동적(reactionary) 기득권 세력의 절망적인 발버둥에도 진보라는 이름을 선사해주고 싶은 충동이 들 수 있다. 사실 그런 실수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수많은 사상가들의 전철을 밟는 일이기도 하다.
탈(脫)근대와 전(前)근대의 암묵적 결탁이라고나 표현할 이런 괴상망측한 현상에 대하여 캐나다 오타와(Ottawa) 칼튼 대학교(Carleton University)의 정치학·정치철학 교수인 월러 뉴웰(Waller R. Newell)은 사상사적 맥락의 탐구를 거친, 흥미롭고도 설득력 있는 분석 결과를 내어놓고 있다.
뉴웰 교수의 글은 공산권의 붕괴 이후 이론적 빈곤에 겨운 좌익세력들이 어째서 테러리즘 같은 무정부적 허무주의로 기울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그들이 인류에 대한 범죄를 일삼는 폭력집단들과 심정적으로 연대감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그 배경을 요령 있게 설명하고 있다. <독립신문>은 2001년 11월 26일자 위클리 스탠더드(Weekly Standard)에 실렸던 뉴웰의 글을 완역(完譯)·전재(全載)한다.
포스트모던 지하드(Jihad)
오사마 빈 라덴이 좌파로부터 배운 것
그동안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의 이슬람 근본주의에 관하여 쓴 글은 많았으나, 유럽 마르크스주의적 포스트모더니즘이 빈 라덴의 사고에 끼친 영향에 대한 글은 많지 않다. 사실 알 카에다(al Qaeda)가 그들의 테러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한 이데올로기는 왜곡된 이슬람 신앙만큼이나 서구 사상의 해로운 경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1960년대 제3세계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낳은 지적 숙성과정을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인물은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이다. 그는 여러 세대의 유럽 좌파들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을 창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치의 유명한 지지자이기도 하였다.
하이데거는 "근대성(modernity)"에서 비롯된, 소외를 일으키는 개인주의와 대비하여 "민족(peoples)"의 우월성을 옹호하였다. 서구 자본주의라는 굴레와 입헌 민주주의라는 "한담(idle chatter)"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민족"은 폭력적이고 혁명적인 "결의"에 찬 행동으로 원초적 운명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나치에게서 이러한 진정한 독일 민족의 혈연적 전통으로의 회귀를 찾아내었다. 역설적이게도 나치는 근대성이라는 감옥을 부수고 먼 과거의 순수성을 되찾기 위해서 가장 발달된 과학기술을 채택했다.
그리고 그들은 근대적 현재를 넘어 더 나아가―따라서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가 들어맞는다―민족을 개인적 자유와 시장 경제를 수반하는 근대성을 거슬러 중세의 공동체적 엄격함이라는 상상 속으로 다시 던져 넣기 위하여 공포와 폭력이라는 방법을 채택했다.
포스트모던 혁명이라는 이러한 몽상은 하이데거에서 전후(戰後) 프랑스 좌파로 곧장 이어졌는데, 특히 스탈린주의와 중국의 문화 혁명을 열렬히 옹호한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의 저작들이 그러하다. 사르트르의 영향을 받은 알제리 작가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은 "지상의 저주받은 자들(1961)"에서 포스트모던 혁명의 제3세계적 변형을 구체화하였다. 이는 다시 중동의 급진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현대화를 추진하던 국왕(shah)을 쫓아내고 아야톨라 호메이니(Ayatollah Khomeini)를 권좌에 앉힌 1979년의 이란 시아파 혁명 지도자들 중 많은 이들이 파농 류의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했었다. 통상 시아파 혁명의 지적 아버지라고 취급되는 알리 샤리아트(Ali Shari´at)는 소르본느에서 교육받은 이란의 종교 사회학자였는데, 그는 "지상의 저주받은 자들"과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페르시아어로 번역했다. 이란 혁명은 이슬람 근본주의와 유럽식 제3세계 사회주의의 종합판(synthesis)이다.
이러한 혁명가들의 포스트모던 좌익사상에서는 "민족"이 혁명의 주체로서 마르크스의 무산자 계급(proletariat)을 대체한다. 하이데거와 파농을 신봉한 지도자들, 가령 중국 홍위병의 이론가였던 린뱌오(林彪, Lin Piao)나 크메르 루주의 창시자가 되기 이전에 프랑스에서 좌파 철학을 공부했던 폴 포트 등은 혁명을 비(非)서구 민족들에게 식민주의 압제자들과 미국식 물질주의, 이기심, 비도덕성이 앗아간 존엄성을 되돌려주는 치료행위로서, 정당화하였다. 정화의 폭력이 민족에게서 자기중심적 성향과 쾌락주의를 일소시키고 민족을 자기희생에 기반한 원초적 공동체로 되돌린다는 것이었다.
오사마 빈 라덴의 1996년 "대미 항전 선언"에 극명하게 표현된 알 카에다 이데올로기의 많은 요소들이 바로 위와 같은 혼합에서 비롯되었다. 오늘날 아랍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빈 라덴은 안락한 삶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압제자 미국과 맞서 싸운, 제3세계 혁명의 초기 우상 체 게바라(Che Guevara)에 비견되고 있다. 카이로의 저널리스트 이산드르 엘람사니(Issandr Elamsani)에 따르면 아랍의 좌파 지식인들은 여전히 1960년대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있다. 그는 "그들이 모두 소르본느 출신의 늙은 마르크스주의자들로서, 모든 사물을 후기식민주의(postcolonialism)의 프리즘을 통해 바라본다"고 말하고 있다.
하이데거가 근대성의 타락이 일소된, 막연(漠然)하고 중세적인 혈연적 공동체주의로 독일 민족을 되돌리고 싶어한 것처럼, 그리고 폴 포트가 캄보디아를 원년 (Year Zero)으로 되돌리고 싶어 한 것처럼, 오사마는 그가 보고 있는 세계를 초기 이슬람이라는 상상적 순수함의 상태로 되돌릴 것을 꿈꾼다. 그리고 파농이 혁명은 결코 협상이나 평화적 개혁으로 그 목적을 이룰 수 없다고 주장한 것처럼, 오사마도 테러를 어떠한 구체적 목적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정당한, 치료 행위로 간주한다. 살해하려는 자발성이 한 사람의 순수성을 보증하는 것이다.
이슬람 테러의 지적 근원에 대해 뉴욕 타임즈에 글을 쓰고 있는 저널리스트 로버트 워스(Robert Worth)에 의하면 빈 라덴은 이슬람 신학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부유한 한량이었던 그는 마르크스주의 혁명에 대한 요구와 순수 이슬람 국가에 대한 요구를 혼합했, 1960년대의 아랍 급진 지식인들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지식인들 수많은 이들이 아랍 정권들을 공격하다가 투옥되고 처형되었다. 가령, 이슬람 근본주의의 발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이드 쿠틉(Sayyid Qutb)은 1965년 이집트에서 처형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상은 살아남았다. 쿠틉의 지적 후계자들 중에는, 다가올 이슬람 혁명을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에 비유했던 화티 야칸(Fathi Yakan), 1989년 차량 폭탄에 사망한 팔레스타인 행동주의자 압둘라 아잠(Abdullah Azzam), 사우디 정부가 걸핏하면 투옥하였던 사우디의 근본주의자 사파르 알 하왈리(Safar Al-Hawali) 등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순수 이슬람 국가를 꿈꾸었을 때 유럽의 혁명 이데올로기 또한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화티 야칸은 "프랑스 혁명의 기초는 루소, 볼테르, 몽테스키외가 놓았으며, 공산주의 혁명은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계획을 현실화시켰다... 이 점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통용된다"라고 썼다.
쿠틉의 글 "길 위의 이정표"(1964)의 영향력은, 1981년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Anwar Sadat)의 암살을 미국의 이집트 지배를 종식하고 순수한 이슬람 질서를 도입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정당화하려 했던 단체인 이슬람 지하드(Islamic Jihad)의 선언에서도 발견된다. 1990년대에 이슬람 지하드는 알 카에다와 합쳐졌고, 오사마의 "대미 항전 선언" 또한 이슬람 지하드의 선언서 "방기(放棄)된 의무"에서 영향받았음이 명백하다.
그렇다면 오사마 류의 폭력주의의 산실은 학생 시위와 급진적 토론 집회(teach-in)의 와중에 사르트르, 파농, 그리고 "민족의 운명"을 옹호하던 포스트모던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영향력이 절정에 달했던 1968년의 파리라고 할 수 있다.
클레어 스털링(Claire Sterling)의 "테러 네트워크(The Terror Network)"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까지, "언급할 가치가 있는 사실상 모든 테러리스트와 게릴라 세력들이 파리에 대표부를 두고 있었고… 특히 팔레스타인인들이 그 곳에서 대거 활동하였다." 이 시기가 야세르 아라파트의 테러리스트 조직 알 파타(Al Fatah)의 전성기였으며, 알 파타의 1968년 팜플릿 "혁명과 폭력"은 " ´지상의 저주받은 자들´의 선택적 요약판"이라고 불리고 있다.
알 파타가 때때로 계급 투쟁이라는 레닌의 구식 용어를 사용한 반면, 이를 계승한 급진 단체들은 이슬람주의와 제3세계 사회주의의 혼합을 완성했다. 그들의 팸플릿은 하이데거와 파농을 엄격한 이슬람 사회 질서와 혼합하고 있다. 시아파 테러 단체 헤즈볼라(Hezbollah)는 "레바논의 짓밟힌 자들과 세상에 보내는 공개서한"(1985)에서, 자신들이 "오직 신만을 두려워하는 민족"이며, "미국과 그 협력자들, 신성한 이슬람 영토를 강탈한 시온주의 무리들로부터 가하여지는 굴욕"을 참아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폭력 투쟁의 목적은 "우리의 백성들에게 그들의 운명을 결정한 기회를 주고자 함이다." 그러나 그 운명은 반드시 규정된 순서를 밟아야 한다. "우리는 이슬람 통치에 대한 헌신을 감추지 않는다… 이슬람 통치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정의와 존엄을 보장해주며, 우리 나라에 침투하고자 하는 새로운 제국주의적 시도를 차단하여 줄 유일한 방도이다… 이러한 이슬람적 저항은… 신의 도움과 함께 온 세상의 모든 이슬람교도로부터 전적인 지지를 받아야 할 것이다.”
1980년대의 이러한 혁명에의 요구는 지난 주에 오사마 빈 라덴이 입에 올렸을 수도 있다. 수십 년 전의 급진주의자들과 오사마 사이의 주요한 이론적 차이를 살펴보면 후자에게 미친 포스트모더니스트 사회주의의 영향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쿠틉과 다른 초기 이슬람주의자들이 주로 내부로 눈을 돌려 이슬람 국가의 혁명에 집중했다면, 오사마는 투쟁을 근본적으로 외부로 돌려 미국의 헤게모니에 대항한다. 초기 혁명가들에게는 그들의 오염된 정부를 쓰러뜨리는 것이 정화된 이슬람 국가를 위한 주요 방책이었던 반면에 오사마의 주요 목표는 미국을 무릎 꿇리는 것이다.
유럽의 포스트모던 좌익사상과 이슬람 급진주의의 관계는 상호 소통적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이 유럽 좌파의 유산을 사용한 것만큼이나, 유럽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들이 갈구해온, 미국 헤게모니에 저항하는 혁명을 거의 성취한 것처럼 보인 이슬람 테러분자들에게서 용기를 얻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선도하는 두 명의 화신, 미셸 푸코와 자크 데리다를 보자.
푸코는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a)의 특파원으로 이란 회교 혁명과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집권을 목도했다. 알제리 혁명에 대해 열광하여 떠벌렸던 사르트르처럼 푸코 역시 매혹되어 호메이니를 "일종의 신비한 성자(聖者)"라고 불렀다. 이 프랑스인은 "이슬람 정부"가, 서구 급진주의자들에게 자본주의 헤게모니에 맞서 싸울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정치적 영성(靈性. spirituality)"의 새로운 형식이라며 환영했다.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은 푸코는, 구체적인 정치적 목표를 가지지 않고 혁명을 위한 동기로서의 구체적인 경제적 고통에 하등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포스트모던 사회주의자이다. 그에게는 혁명의 매력이 미학적이며 관음증적이며, "폭력, 강렬함, 두드러지는 열정"으로 특징지어진다. 파농, 헤즈볼라, 그리고 오사마에 이르는 다른 혁명론자들에게 그러하듯이 푸코에게도 폭력의 목적은 가난을 구제하거나 국경을 재조정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은 그 자체로 목적인 것이다. 푸코는 폭력을 "절대적 희생에 대한 갈망, 기호(嗜好), 능력, 그리고 가능성"으로 칭송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미국인들은 "코카 콜라를 사랑"하는 반면 자신들은 죽음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오사마의 추종자들과 똑같다.
반면 데리다는 소련의 몰락에 대한 대응으로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갈망했다. 예전의 인터내셔널이 경제적 피압박자들로 구성된 반면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문화적으로 소외된 자들, "빼앗기고 주변화된 자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를 맞서 싸우고자 일치 단결한 학생, 페미니스트, 환경론자, 동성연애자, 원주민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두 말할 나위 없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 역시 이러한 무리들에 낄 만한 후보이다.
그러므로 최근의 좌파 베스트셀러 "제국(Empire)"에서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와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는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부르주아의 현대판으로 묘사한다. 그에 대항하는 것이 데리다의 "새로운 인터내셔널"이다. 하트와 네그리는 이슬람 테러리즘을 "새로운 제국주의적 질서"에 대항하는 "포스트모던 혁명"의 선봉이라고 본다. 왜냐고? 그것이 "유럽-미국 헤게모니의 도구로서의 근대성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제국"은 현재 미국 포스트모더니스트들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책의 공저자가 현재 수감되어 있는 실제 테러리스트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미국 학계 점령을 주도했던 대학인 듀크(Duke)대학의 문학교수라는 점은 이 책의 내용과 섬뜩할 정도로 잘 들어맞는다. 이들 전문가들의 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과거의 고전들을 "해체(deconstruct)"하고 저자의 의도나 해석의 진실·거짓 여부에 관계없이 그 위에 자의적 의미를 덮어씌우는, 한갓 말장난으로 전락한다. 이는 미국의 교양 교육에 해악을 미쳤다.
하지만 바깥세상에서의 치명적 포스트모더니즘과 달리 이러한 폐해가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하이데거나 그의 좌익 추종자들의 후계자로서, 테러분자들은 텍스트를 해체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9월 11일 목도된 것과 같은 행위를 통해 서구를 해체하고 싶어한다.
테러분자들과 입만 살아있는 서구 무정부주의자들의 공통점은 사려(prudence), 공정성, 이성과 같은 필수적 덕목들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도덕적 가르침에 제약되지 아니하는, 급진적 의지(radical will)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이다.
테러분자들은 이러한 신념을 행동으로 옮겨 폭력적이고 혁명적인 결단에 찬 행위를 통해 전통을 파괴하고자 한다. 바로 그 때문에 알 카에다는, 비(非)전투원을 의도적으로 살상하는 것을 금하는 정통 이슬람 교의를 무시하고, 무자비한 징벌로 유지되는 집단주의적 이상향들의 최신판인 신세계를 창조하겠다는 명분 아래 죄없는 자들을 학살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