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눈망울에 대하여 / 복효근
그냥 통을 받치고 젖을 짜려 하면
별 소득이 없으므로
낙타 주인은 새끼 낙타에게 먼저 젖을 빨게 하다가
새끼 낙타를 떼어내고 마저 젖을 짠다
젖이 돌지 않다가도
새끼가 다가가면 유선에 젖이 돌기 때문이다
젖을 짜는 동안
새끼 낙타를 곁에 세워두는 것도 그 때문이다
새끼를 내려다보는,
어미를 올려다보는
여린 초식동물의 눈망울은 왜 그리 흥그렁 젖어있는지
그저 풀이 자라서 이 사막에 낙타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안쓰러이 울음 우는 어미 낙타가 있어
새끼 낙타의 젖은 눈망울이 있어
자갈과 모래뿐인 사막에 젖이 돌고 그나마 풀이 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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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어미 낙타의 젖은 눈망울이라고 읽었다.
어미 낙타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주 간판이나 글씨를 오독하는
일이 생긴다. 노안이 준 착시현상이다. 이 시를 읽으며
어미 낙타를 줄곧 생각하였다. 낙타, 하고 부르니 저만치
방울소리 내고 낙타가 터벅터벅 걸어왔다. 작은 거실에
모래폭풍이 불어닥쳤다. 고개 숙인 낙타 뒤에 낙타들. 사막을
다니느라 힘들었을 지친 발과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라고 했다.
긴 눈썹에 감춰진 검은 눈망울이 젖어들었다. 물을 먹였다.
모래폭풍 날리는 사막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따금 방울이
딸랑거리고 새끼를 두고 온 이야기를 할 땐 어미 낙타가
울었다. 낙타가 내 품 안에서 잔다. 어린 낙타는 쭈뼛거리며
제 어미를 부르고 있다. 아직 사막을 모르는 새끼의 눈,
바닥에 사막의 냄새를 찾고 있다. 사막을 찾는 새끼는 어미가
그리운 것이다. 낙타를 언제 봤던가. 낙타의 크고 검고, 순한
눈망울을 생각한다. 무거운 등짐 지고 사막을 타박타박
걸어가는 초식동물 낙타의 이미지, 목에 방울소리가 들린다.
소와 닮은 사막의 유목민이다. 낙타가 걸어가고 있다.
등짐 지고 길고 먼 사막을. 뒤를 돌아보는 한 마리 낙타
어디선가 보았다. 낯익은 당신이거나 나다. 생활의 사막에서
가파른 폭풍의 언덕을 오르는 무수한 당신과 나를 보고
말았다. 이 시는 모성을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진 않다.
새끼를 내려다보는,
어미를 올려다보는
여린 초식동물의 눈망울은 왜 그리 흥그렁 젖어있는지
짧게 문장 지을 뿐이다. 그러나 이 시는 모성을 말하기 위해
쓰였다. 흥그렁 젖은 눈망울이 그렇다. 올려다보는 눈과
내려다보는 눈망울이 만나는 허공의 한 지점. 찌르르, 흐르는
유선은 새끼를 향한 애절한 갈망을 읽을 수 있다. 모성 깃든
어미만의 표현이다. 젖을 먹일 수 없는 어미의 안타까움과
젖을 먹을 수 없는 새끼는 애달프다. 젖이 흐르는 방향은
새끼에게로만 향하고 있는데…. 복효근 시인의 시들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언어는 화려하지 않고 찾아온 독자를
빈손으로 보내지 않는다. 진솔한 언어에 덤을 얹었다.
손에 온기 가득 준다. 순한 연잎의 마음처럼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하고 슬픔의 산 높이에서 찬란히 꽃피기를
원한다. 내 마음이 그대 발에 꼭 맞는 신발 같은 거였으면
좋겠다-고, 발 냄새마저도 따스히 보듬고 내가 먼저 낡아서
헌신, 부디 헌신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대신 매 맞고
뉘우친 마음의 자리 푸른 매 자국이 싱싱하다- 고백한다.
그의 시에 자갈과 모래뿐인 사막에 젖이 돌고 풀이 무성히
자라는 이유다. 연한 바람 불어오는 그리운 초원을 보았다.
/ 이가을 시인
[출처] 복효근 시인 10|작성자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