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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 오환, 선비족의 머리형식에 대하여
현전하는 고대 중국의 역사서에 따르면 동호는 전국시대(戰國時代) 이래 고조선과 더불어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한 중요한 세력 가운데 하나이다. 동호는 전국시대에 연(燕)나라와 대립하다가 군사적으로 패배하여 일시 약화되기도 하였으나 곧 세력을 회복하여 흉노와 세력을 다투었으나 서기전 3세기 말에 흉노(匈奴)에게 멸망당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동호에 대한 약간의 기록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지만 동호인들의 머리 형식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호의 후계세력이라고 알려져 있는 오환(烏丸)과 선비(鮮卑)에 대해서는 그 머리 형식을 추정할만한 비교적 충분한 사료 및 고고학적 자료가 알려져 있다. <<후한서(後漢書)>> <오환선비열전(烏丸鮮卑列傳)>에 따르면 오환 사람들은 모두 곤두(삭발)를 하고 여성은 혼인할 때에 머리카락을 길러 나누어 상투를 만든다고 한다.
<오환선비열전>은 선비가 오환과 그 습속이 서로 같다고 설명하였지만 머리 형식은 조금 차이가 있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선비 사람들은 혼인 직전에 곤두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선비 사람들은 혼인을 하면 남녀 모두 곤두를 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동한(東漢) 시기의 유명한 정치가이며 학자이기도 했던 응소(應劭) 또한 <<풍속통(風俗通)>>에서 선비가 모두 곤두를 한다고 서술하였다.
선비 사람들이 혼인할 때에 곤두를 한다고 하면 혼인 이전, 곧 미혼 시기에는 곤두를 하지 않았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대체로 선비 사람들은 혼인 전에는 머리 형식이 비교적 자유로웠으나 혼인 후에는 남녀 모두 곤두를 한 것으로 추측된다. 결국 오환과 선비의 머리 형식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남녀 모두 곤두를 하는 풍습이 있었으며 오환, 선비 모두 혼인한 성인 남성은 곤두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여성이 곤두를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여성에게도 곤두의 풍습이 있었다는 점이 특히 눈길을 끈다.
내몽고자치구(內蒙古自治区) 화림격이(和林格尔) 신점자(新店子)에서 발견된 동한 시기의 벽화무덤은 오환, 선비의 머리 형식과 관련하여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무덤의 주인은 그 마지막 관직이 호오환교위(護烏丸校尉)라고 하는데 이는 오환, 선비족과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는 최고군정장관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하여 벽화무덤에서 볼 수 있는 동한 사람들과 구별되는 머리 형식을 이들이 오환, 선비족임을 추정할 수 있다.1)
벽화에서는 오환, 선비로 추정되는 이들에게서 머리를 완전히 밀어서 머리카락이 전혀 없거나 머리의 주변은 모두 밀어버리되 머리 꼭대기 한 가운데의 남은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어세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선비의 곤발 형식에 대해서는 오환의 것과 함께 선비의 후계 세력이라고 전하는 거란의 머리 모양을 통해 추측할 수 있다. 거란은 여러 벽화 무덤을 남겼는데 이를 통해 거란 사람들의 머리 형식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2) 이들 벽화를 모면 거란 사람들은 꼭대기의 머리를 밀고 주변머리를 길러 늘어뜨리는 형식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점자 벽화에서 보이는 두 형식이 모두 곤발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모호하다. 거란의 머리 형식으로 미루어보면 가운데 머리카락 대부분을 삭발하는 것이 전형적인 곤발이 아닌가 생각된다.
거란 사람들도 주변머리는 남겨 늘어뜨리기도 하고 거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여진 사람들의 곤발에서 중앙 머리 대부분의 머리카락을 삭발하되 남은 주위 머리카락을 길러 귀 옆에서 둥글게 만든 모습을 볼 수도 있지만3) 거란의 머리 형식에서 머리 꼭대기의 머리카락을 기른 것은 보기 어렵다고 한다.
머리 꼭대기에서 세운 머리는 변발(땋은머리)로 보이기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이것이 변발과 관련이 있다면4) 흉노의 영향일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 선비는 흉노의 영향 아래에 있다가 흉노가 남북으로 갈라지고 북흉노가 세력을 잃자 뷱흉노의 남은 땅과 무리를 차지하였고 2세기 중엽에는 선비족 단석괴가 부여에서 오손에 이르는 1만 수천리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고 한다.
이때 흉노의 남은 무리들이 선비를 자칭하였다고 하므로 실질적으로 선비와 흉노를 구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신점자 무덤 주인의 활동시기는 대체로 2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므로 선비의 세력 확장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흉노의 변발 풍습이 선비에게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여러 문헌사료를 볼 때 오환, 선비의 대체적인 형태는 머리 가운데를 삭발하는 곤발이었다고 생각된다.
남성의 경우 많은 고대 문명에서 머리카락은 지도력, 힘, 개인의 강인함 등 긍정적인 능력을 의미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생각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중심으로 그 주변 지역에 널리 퍼져 있었는데 유대인 전승 속에 남아있는 삼손의 이야기는 이러한 생각을 대표하는 이야기이다. 삼손은 괴력의 소유자로서 그의 괴력은 머리카락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머리카락은 육신을 대신할 제물로서 신의 제단에 바쳐질 만큼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게르만 귀족들에게는 긴 머리가 일반 사람들과 자신들을 구분하는 표식이었으며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거 왕조에서 긴 머리는 왕권의 상징이었다고 한다.5)
긴 머리카락은 남성에게뿐 아니라 여성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관념으로서 여성의 머리카락은 여성의 중요한 성적인 매력의 하나로서 여겨지고 있다.
서기 2세기 로마 시대 유명한 작가였던 아풀레이우스(Lucius Apuleius)는 그의 『황금당나귀(Metamorphoses)』라는 작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모발은 인체의 가장 중요하고 현저한 특징이다. 모발의 자연적 광택과 두상과의 관계는 화려한 색채의 의복과 인체와의 관계와 같다는 건전한 논리적 원칙에 따라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실상은 모발 쪽이 의복보다 훨씬 더하다.
……
만약에 절세미녀의 머리를 깎아 그 얼굴에서 모발을 앗아간다면 여자가 본래 하늘로부터 내려온 여신이거나 또는 베누스 여신처럼 바다의 거품에서 태어난 여신이거나 하나도 달갑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여자가 <우아>의 여신들과 <사랑>의 신을 모조리 거느리고, 희귀한 향유를 바르고 계피와 같이 향긋하고 허리에 유명한 사랑의 띠를 매고 있는 베누스 여신이라도 나는 달갑지 않을 것이다. 사실 여자가 대머리라면 불카누스신과 같은 애처가도 정이 뚝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6)
따라서 여성에게조차 곤두의 풍습이 있었던 오환과 선비의 풍습은 인류에 역사에 있어서도 비교적 독특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환과 선비가 활동하던 당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도 이와 같은 곤두는 흔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오환과 선비는 서쪽으로는 흉노와 접하고 있었고 동쪽으로는 고조선, 고구려 등과 접하고 있었다.
오환과 선비의 서쪽에서 광활한 영역을 차지하였던 흉노의 머리 형식은 변발(辮髮: 땋은 머리), 추발(椎髮: 상투 머리), 피발(被髮: 풀어헤친 머리) 등이었다고 한다. 흉노 이전에 유라시아 초원 지대에서 활약했던 스키타이 사람들도 남성은 피발, 단발(斷髮), 추계(椎髻: 상투머리), 여성은 단발, 피발 등으로 흉노와 비슷하였고 후대의 돌궐(突厥) 또한 피발, 단발 등을 하였다고 한다.7)
만주 및 한반도에 자리했던 고대 한민족은 머리를 길러 다양한 형태의 상투 머리를 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것은 위만(魏滿)이 고조선으로 망명할 때에 송곳과 같은 상투를 하였다는 등의 기록과 고구려(高句麗)의 고분 벽화 등을 여러 유적 및 유물을 통하여 추측할 수 있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는 머리를 짧게 삭발한 이들도 보이는데 극히 일부분이며 삭발한 이들은 승려와 같은 특수한 신분을 가진 이들로 보인다. 신채호는 고구려에 선인군(仙人軍)이라는 종교적 무사집단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고려사(高麗史)>> <최영전>,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 등을 인용하여 이들이 삭발을 한 것처럼 묘사하였으나8) 종교적 무사집단이 있었다는 구체적인 근거가 부족하고 설사 그와 같은 무사집단이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고구려에서 삭발이 일반적인 머리 형식이었다고 할 수 없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조선의 유민이 세웠다고 하는 신라에서는 귀족들이 불교 전도 초기에 불교 승려에 대하여 ‘어린 아이의 머리 모양’을 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이를 비난하였다고 한다.9) 이것은 신라인들의 눈에 불교 승려의 삭발 머리가 갓난아기의 머리 모양과 비슷하게 보였으며 당시 신라 사람들에게 성인의 삭발 머리가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오환과 선비가 존재하던 시기 그 주위에 있었던 흉노나 고조선 등 주변 지역과 비교해 볼 때에도 오환, 선비의 곤발 풍습은 매우 특이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이 문화가 주변 지역과 구별되는 전통에서 비롯된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오환, 선비의 곤발 풍습을 동호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는데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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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에 이어서
고조선과 관련하여 동호 관련 자료를 정리하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이 완성되면 올릴 예정입니다.
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네요.
1) 李逸友, 「略论和林格尔东汉墓壁画中的乌丸和鲜卑」, 『考古与文物』1980-2.
2) 国家文物局 主編, 「河北宣化新发现 兩处辽金壁画墓」, 『1998 中国重要考古发现』, 文物出版社(北京), 2000; 国家文物局 主編, 「內蒙古扎魯特旗辽墓」, 『1999 中国重要考古发现』, 文物出版社(北京), 2001.
3) 金容文, 「中央아시아의 修髮樣式과 頭衣」, 『韓國服飾』 12, 1994, 75-77쪽.
4) 李逸友는 위 글에서 이를 변발로 보고 있다.
5) 다니엘라 마이어 ‧ 클라우스 마이어 지음, 김희상 옮김, 『털 수염과 머리카락을 중심으로 본 체모의 문화사』, 작가정신(서울), 2004, 192~199쪽; 패트릭 기어리 지음, 이종경 옮김, 『메로빙거 세계 한 뿌리에서 나온 프랑스와 독일』, 지식의풍경(서울), 2002, 117쪽.
6) 아풀레이우스 외, 李佳炯 譯, 『황금의 나귀 外』, 韓國出版社(서울), 1982, 30~31쪽.
7) 金容文, 「中央아시아의 修髮樣式과 頭衣」, 『韓國服飾』 12, 1994, 61~65쪽.
8) 申采浩, 『조선 상고사 Ⅰ』, 일신서적출판사(서울), 1990, 31~35쪽.
9) 『三國史記』卷第4 「新羅本紀」 第4 法興王 15年. “今見僧徒 童頭異服 議論奇詭 而非常道.”
첫댓글 으헉..스킨헤드 유목민 쨔응 'ㅁ'
음... 근데 과연 저 자료로 오환, 선비의 여자들이 곤두를 했다고 볼수 있을지는 약간.. 원문이 명확하게 뭔지를 모르겠네요. 남자들의 경우를 전체적으로 일반화 시키는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꽤 자주 보이는 기록형태 아닌가 싶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오환의 경우는 "여성은 혼인할 때에 머리카락을 길러 나누어 상투를 만든다고 한다" 라는 기록이 있지만 이걸 곤두로 볼수 있을지..머리를 양쪽으로 나누어 위로 튼다는 표현으로도 볼수 있을꺼 같고.. 게다가 선비는 여성에 대한 별도의 기록 자체가 안 보이네요.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새로운 자료가 제시되기 전에는 여자들까지 곤발을 했다고 확정하긴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보통 머리카락에 대한 언급은 여성들에게는 잘 해당되지 않았던 경우가 꽤 있죠. 청의 변발이나 우리나라의 단발령도 남성을 대상으로 행해진 것이지 여성은 아니니.. 하지만 포고령 자체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삼았죠. 어쨌든 여성의 머리스타일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장발 형태가 일반적이고, 개개인적인, 혹은 상류문화적인 특정형태가 아니라면 여기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데, 여성들까지 일괄적으로 곤두를 했다면 역사적으로도 아주 드문 일이고, 아마 기록에 별도의 언급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성성의 강조와는 아주 상반되는 경우이니.. 뭐, 원문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곤두를 했다' 이렇다면야 확실하겠습니다만..
위에서 "여성은 혼인할 때에"라는 특정 시기가 중요한 부분인데요, 오환은 원문이 "以髡頭爲輕便 婦人至嫁時乃養髮..."이고 앞에서는 일반적인 곤두 이야기를 하고 위에서 부인은 혼인할 때에 이르러서야 머리를 기른다... 그 머리를 길러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꾸민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환의 미혼여성은 곤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비는 습속이 모두 오환과 동일하다고 언급하고 나서 "唯婚姻先髡頭"라고 해서 남녀의 언급없이 오직 혼인 전에는 곤두를 한다라고 되어 있어서 미혼 남녀는 곤두를 하지 않다가 혼인을 하면 곤두를 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이 일반적인 해석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오환과 선비가 습속이 같다고 하면서 남성은 오환은 모든 남성이 곤두, 선비는 혼인한 남성이 곤두, 여성은 오환은 미혼 여성은 곤두 혼인후 양발이라고 해서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위에서도 말했지만 선비의 경우는 미혼시에는 머리를 모두 기르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곤두나 양발이 모두 가능했던 것인지 불확실합니다. 하지만 선비는 내용이 너무 소략해서 여성도 해당하는지 의문스럽지만 오환의 경우는 부인이 혼인할때에 이르러서야 머리를 기른다고 했기 때문에 미혼 여성에게도 곤발의 풍습이 있었던 것은 비교적 명확하다고 생각되며 일반적으로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환 미혼 여성에게는 확실히 곤두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선비는 성인 여성의 경우 곤두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여성의 머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과 동떨어지므로 의문이 있을 수 있으나 여성에게는 곤두가 전혀 없었다는 자료가 전혀 없으니까요. 딱 어울리는 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고환을 제거하는 이가 보다 남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종족도 있고 인간의 습속 가운데는 통념과 맞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까 대략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여성에게 정말 곤두가 있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은 있지만 기록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일부" 여성에게 곤두의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서술한 것입니다. 저도 나름대로 고민한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