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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될만큼 광활은 빠르게 지나갑니다.
수료식이 있는 주를 제외하고는
마지막 주라니요...
오늘은 짝꿍활동이 두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있는 날입니다.
사전에서 '짝꿍'의 의미를 찾아보니
'단짝인 짝을 재미스럽게 일컫는 말'
이라고 나옵니다.
광활선생님은 단순한 단짝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제가 맡게 된 짝꿍 아이들의 수가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조금 많으나
오늘 짝꿍활동만큼은 아이들에게 잊지못할
사람이자 추억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선택과 집중을 해야하고
광활의 비전을 간과할 수 없는
활동이지만,
이러한 개인적인 의미 때문인지
오늘은 더욱더 아이들과의 관계에 마음이 쓰입니다.
다행히 오늘 짝꿍활동의 가장 큰 관건인
참가여부가 확실해졌습니다.
의철이, 태현이, 백연이, 대균이가
저번주부터 허락을 받아서
동참 가능합니다.
대신, 의찬이는 나이도 어리고해서
어머니가 걱정된다고 하셔서
아무래도 오늘은 같이 하기 힘들 것 같네요.
의찬이는 짝꿍 선정 때부터
마음상한 일들(짝꿍이 안 되었던)이 많았었는데
오늘도 울면 어쩌나 마음이 무겁습니다.
숙소에서 요리해먹고
눈으로 라면 끓여먹기
태현이와 대균이가 점심때 즈음해서
도서관에 모였습니다.
점심을 무얼 먹을지 고민하다가
대충 볶음밥, 토스트 정도로 결정이 납니다.
아이들에게 저번 주부터 선생님들 숙소로 와서
밥을 먹을 것임을 예고했었고
그 활동도 짝꿍활동의 일환이라 알렸습니다.
숙소에는 은영이와 성혜누나가 있습니다.
짝궁활동을 같이 할 아이들이 오기 전에
점심을 먹으려는 찰나,
다행히 우리와 시간이 맞습니다.
대균이와 저는 은영 선생님이 만든 볶음밥을,
태현이는 5장 정도 남은 식빵과 계란, 설탕으로
맛있는 토스트를 만듭니다.
식빵에 계란을 묻히고 맛있게 구워냅니다.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태현이라
찍는 것을 허락받고 찍습니다.
태현이는 평소 여자 선생님들을
따르지는 않는 편인데
오늘은 자신이 직접 만든 토스트를
시키지 않았는데도
은영 선생님과 성혜 선생님께 먼저 갖다드립니다.
곧이어 백연이도 의찬이, 의철이도
숙소로 왔습니다.
아이들과 직접 굽는 연탄불 군고구마,
백연이와 의철이는 제가 한 번만 시범을 보이자
'청출어람'입니다.
남자방에서 과자를 먹다가 고구마를 챙겨 나섭니다.
아이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논의하다가
옛날 도서관 뒤 공터에서
눈으로 라면을 끓여먹기로 합니다.
필요한 것은 버너, 냄비, 라면.
(이 자리를 빌어 아이들과 이런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거들어주신 백연이,승규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라면은 각자 하나씩 사기로 합니다.
라면은 태현이네 가게에 가서 사기로 합니다.
태현이네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냄비와 버너를 여쭤보니 걱정이 되셨는지
들어와서 끓여먹으라 하십니다.
아이들과 활동하는 취지를 잘 말씀드렸습니다.
다행히 허락 해주십니다.
그런데 버너와 냄비는 빌려주시기 힘들답니다.
참, 태현이 할머니 덕분에 공짜 라면도 얻습니다.
백연이 라면이랑 태현이 라면은 공짜로 주십니다.
아이들과 구워갔던 고구마 중에
태현이가 고른 가장 큰 고구마를 할머니께 드립니다.
할머님의 미소가 참 인자하십니다.
그렇다면 냄비와 버너는 어디서 빌릴까요,
도와주실 만반의 준비가 된
백연이, 승규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백연이가 전화를 드려 여쭙자 흔쾌히 허락하십니다.
모두 신나는 발걸음으로 눈장난을 하며
백연이네로 향합니다.
창처럼 긴 고드름을 따서 안겨주기도 하고
칼처럼 날카로운 고드름으로 칼싸움을 하면서 갑니다.
백연이 어머니가 냄비와 버너, 나무 젓가락까지
특유의 따스한 미소로 같이 건네주십니다.
이 호의만으로도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백연이 어머니께도 고구마를 드립니다.
백연이 어머니 미소가 함박웃음으로 바뀌네요.
작은 물건들 사이로 정이 오갑니다.
정이 정을 부르고 소통을 더욱 유의미하게 만듭니다.
아이들과 함께 도착한
옛날 어린이 도서관 뒤편 공터.
약수터도 있네요.
요리담당은 백연이, 오늘의 회계는 대균이,
태현이는 기록담당, 깔끔이는 의찬이,
의철이는 기타 도우미.
깨끗한 곳의 눈만 퍼와서 냄비에 가득 담습니다.
눈이라 그런지 녹는데 시간이 꽤 걸립니다.
물도 쉽사리 끓진 않네요.
그렇게 물이 끓을 동안
약수터 계단에 만들어진 자연 썰매장에서
2008년 철암 동계올림픽 경기를 펼칩니다.
1번 선수 정의철, 2번 선수 송백연,
3번 선수 안대균, 4번 선수 정의찬~~!
심판 및 깍두기 선수 이주상 선생님~
버너를 담아온 코팅된 종이봉투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서 신나게 탑니다.
다리를 쭉- 펴고 자세를 눕히니
날아가는 듯 하네요.
그동안 태현이는 가스 버너불을 가지고
과학실험(?)을 합니다.
휴지도 살짝 태워보고
나뭇가지도 주워와 태워봅니다.
의찬이도 재밌어보이는지 동참하네요.
오랜 시간이 흘러 결국 물에서 김이 나네요.
면들을 투입합니다.
면이 익길 기다리는 동안은
싸온 군고구마를 먹습니다.
호호~불면서 먹으니
뽀얀 눈 속의 노오란 고구마가 꿀이네요, 꿀~
어느덧 라면이 다 익고
4가지 라면이 섞인
짬뽕(이라면 저라면 섞은)라면이 완성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머리를 냄비에서 떼지않고
후룩쩝쩝, 얌냠 잘 먹습니다.
백연이는 국물이 너무 뜨겁다며
약수터 물 떠먹는 숟갈에 눈을 퍼서
라면에 넣은 뒤 국물을 적당히 식혀 먹네요.
기발한 아이디어입니다.
물론, 조금 뒤에 국물 대비 눈의 양이 너무 많아
냉라면이 되어버렸지만요.^^
라면을 6개 가져갔는데
4개만 끓여먹어 2개가 남습니다.
"이 남은 것을 누굴 드릴까?"
오늘 라면을 끓여먹는데 가장 큰 도움을 주신
백연이네 어머니를 드리자는 의견이 우세합니다.
냄비와 버너를 눈으로 쓱삭쓱삭 씻고
돌아가는 길에 갖다드릴 때, 라면을 드립니다.
이제 해는 뉘엿뉘엿 너머가고
날도 덩달아 어둑어둑해집니다.
찜질방을 가야할 시간이 다가오네요.
의찬이에게 어머니가 걱정하시는 이유 때문에
찜질방을 같이 갈 수 없음을 똑똑히 설명하자
서러운지 무척 울어댑니다.
선택과 집중이 또 생각났습니다.
그와 동시에 아이들의 부모님이 바라는 것에 대해
충실하는 것 또한 기존의 것들을 존중하고
원래의 일상으로 돌려주고자 한다는 의미로
제게 와닿았습니다.
의찬이에게는 거부당했다는 기분으로,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분명 힘들게 와닿겠지만
그렇다고 아이의 욕구와 만족을 위해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광활의 '자연성'에 대한 비전에 맞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대균이 어머니가 찜질방을 같이 갈 아이들의
저녁을 사주시기로 했기에 상철암에 있는
대균이 어머니 가게인
문구점 '바오밥나무' 로 갑니다.
그러나 시간이 애매합니다.
8시 전에 들어가야 찜질방이 조금이나마 저렴한데
이대로 저녁을 먹고 출발한다면
8시 이전에 들어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대균이가 시간에 대한
설명을 드리자, 대균이 어머니께서
아이들과 저녁, 간식을 사먹으라고
저녁을 못 사주는 대신 2만원을 주십니다.
깊은 감사를 표현하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뜻하지 않은 복이 또 옵니다.
대균이 아버지가 원래 다른 사정이 있어
찜질방까지 가는 것을 데려다주시지 못할 것이라 했었는데,
도로 사정이 안 좋아 불안해보였는지 태워주시겠답니다.
날도 춥고 버스편도 복잡해서
고민했었는데 복이 굴러왔습니다.
화전 쪽 동사무소에 근무하신다는
대균이 아버지와 사회복지에 대한 이야기,
공무원 일에 대한 이야기, 태백 눈에 관한 이야기
등을 하며 차를 탔습니다.
눈이 많이 와서 길이 미끄럽고
대중교통 배차도 불규칙한데다
날씨까지 평소보다 추워서 걱정했었는데
참 안락하게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대균이 아버지께 정말 깊이 감사드립니다.
태백에 오랫동안 계셨으니
겨우내 태백에 있는동안 있을 태백눈축제 등
여쭤볼 것이 있으면 전화드려서 꼭 여쭈어보아야 겠습니다.
아이들과 찜질방에 도착했습니다!
씻으러 들어가기 전에 각자의 가정에
아이들과 제가 통화를 합니다.
잘 도착했음을 말씀드리고
내일 다시 전화드릴 것을 말씀드리며
조금이라도 편한 마음으로 아이들의 부모님이
아이들의 외박을 받아들일 수 있게 거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몸을 씻고 저녁을 먹고
찜질을 하러 갑니다.
태현이, 의철이는 잠시 컴퓨터를 하고 싶어해서
되도록 자제했으면 하는 바람을 권유했으나
그 쪽으로 마음이 많이 기운 것 같습니다.
우선은 비용상 오래 못할 것이므로 내버려둡니다.
찜질방에 왔으니 찜질을 제대로 해야한다는
대균이와 70도가 넘는 소금방에 들어갑니다.
"선생님 우리 5분만 더 버텨요."
하던 5분이 20분이 됩니다.
땀이 주륵주륵, 정말 비오듯 쏟아집니다.
마지막 1분을 둘이서 몸을 배배꼬면서 참습니다.
20분이 지나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이런 저와 대균이 모습이 재밌어보였는지
백연이도 같이 하잡니다.
시~원한 식혜를 하나 사들고
70도 짜리 소금방에 20분을 재도전합니다.
아까보다 훨씬 힘듭니다.
그러나 마음이 맞는 아이들과
평소엔 5분도 잘 안 있는 찜질방을
30분이 훌쩍 넘게 같이 있으니
정말 재미납니다.
서로 땀을 닦아주고 식혜도 먹으라고 건넵니다.
저, 대균이, 백연이가 찜질복이 흠뻑 젖을 정도로
재미나게 찜질하고 오자
태현이, 의철이가 그제서야 해보겠답니다.
이미 셋은 땀을 많이 흘려서 어쩔 수 없이 몸이 식기 전에
먼저 씻으러갑니다.
샤워를 해서 땀을 씻어내고
냉탕, 온탕을 번갈아 들어가면서 즐깁니다.
백연이랑은 서로 등, 배, 가슴, 어깨를
비누칠해줍니다.
"선생님, 이 시간에 찜질하고 이렇게 깨끗하게
씻는 것도 처음이에요. 좋다"
"백연이한테 추억이 되겠네, 샘도 개운해서 좋다"
비누칠한 등에다 서로 이름도 써주고
간지러워하는 곳에 이름을 일부러 크게 쓰곤합니다.
뒤이어 온 태현이에게도 비누칠을 하며
같이 몸을 헹구어냅니다.
씻고 나서도 이러한 기회가 흔치 않을 거란 생각인지
아이들은 온탕, 냉탕을 번갈아 가며 몸을 놀립니다.
안 하던 찜질을 간만에 제대로 해서인지
몸이 노곤하지만 아이들의 즐거워 하는 모습에
저도 몇 번씩이고 동참해서 물놀이를 합니다.
밤 늦게 들어간 욕탕이라 거의 다 새로 물을 갈아서
물도 깨끗, 따뜻합니다.
뜨거운 물에서 숨 오래참기 대회,
물에서 한바퀴 회전하기, 냉탕 물 차는 것 오래 버티기 등을 같이 합니다.
아이들과 탕에서 시원하게 놀고 난 후
온 몸에 닭살이 돋도록
시~원한 팥빙수를 같이 먹습니다.
아이들이 광활 선생님들과
밥을 먹고 비누칠해서 씻고, 차 타고
어울리고 부대끼며 맞이하는 기억이
시간이 지나 아이가 삶을 살아가면서
힘든 순간이나 고비 때
돌이켜보아 든든한 힘이 되고
밑받침이 되는 따뜻하고 가슴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길 바랍니다.
4명이라는 다소 짝꿍하기 힘들 수 있는 많은 숫자도
아이들의 성숙한 행동과 태도 덕분에
제가 지금 짝꿍활동 선생님으로서
그 역할이 얼마나 진심으로 성심성의껏 대해야할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합니다.
또한 아이의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짝꿍활동을 통해
인사드리고 여쭙고 의논하고
부탁드리고 작은 것 하나 해주시는 것도 깊이 감사드리는
걸언을 할 수 있어
부모님과 어르신들을 세워드릴 수 있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추억만들기,
다시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포근합니다.^_^
첫댓글 백연이 머리수건 멋있다. 대균이 폭탄 머리 예쁘다.
눈을 녹여서 라면을 끓였군요. ^^* 광활팀이 무얼 부탁하길 간절히 바라시던 백연이 어머니, 버너를 빌려줄 수 있어서 얼마나 신나셨을까.
주상이가 다섯명과 짝궁활동을 잘 해주어 고마워요. 광활 선생님 수가 적으니 한 두명씩 짝궁을 하면, 짝궁선생님 없는 아이들이 서운합니다. 주상이가 잘하는 모습 보니 모둠짝궁활동에 자신감이 생깁니다. 후배들과 주상이 기록을 읽고 적용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