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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
어둑어둑 해진 저녁.
아까 뱃터리를 빼기 전에는 5시 30분 경이였는데 벌써 7시가 다 되어간다.
빈이는 한 시간을 넘게 바이크를 타고 싸돌아 다닌 것이다.
만약, 사헌이가 성이네들과 헤어지고 바로 이 집으로 왔다면 역시 한 시간 넘게 기다린 것.
무슨 할 말이 있어서 한 시간이나 기다린 건지...
"뭐야, 넌."
"민사헌입니다."
".............꺼져."
"할 말은 하고 가야 겠습니다."
"난 들을 말 없는데."
"전 있습니다."
"벽한테 하든 땅한테 하든 하늘한테 하든 혼자 해. 난 들어갈거니까."
"........유치하게 놀지 마십시요."
훽 돌아 들어갈려는 빈이의 발이 멈춘 건 당연한 일이다.
은근한, 아니 과히 직접적으로 도발을 하는 사헌의 말투에 빈이는 식힌 열이 또다시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할 말이 뭐야."
"옛날 얘기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됬거든."
"옛날에 한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
됬다고 하는 빈이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제가 알기로는 형이 2명이고 누나가 한 명, 동생이 3명입니다."
"야..."
"형 2명은 나이 차가 많이 나서 놀아주질 않았다네요. 누나도 형들이랑 놀기 바빴대요. 동생3명 중 2명은 쌍둥이라서 지들끼리
잘 놀고, 나머지 동생은 막둥이라서 부모님이 잘 데리고 나갔나봐요."
"야...."
"그 많은 형제들 속에서도 언제나 외톨이 같았대요."
"........."
"다른 형제들 중 너무나 좋아하는 누나가 자신과 놀아주지 않자 너무나 외로웠대요."
"....."
"어느덧 세월은 흘러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습니다. 쌍둥이들은 2학년이고 막둥이는 1학년. 누나는 검정고시로 일찌감치
대학도 졸업하고 형사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여전히 그는 외로웠대요. 누나가 자신을 봐주지 않아서."
"......닥치지 못해..."
"그래서 생각한게 동생들이랑 맨날 사고치면서 경찰서 들락날락거리는 거래요. 그러면 누나가 자신을 봐주지 않을까."
"민사헌..."
"그러면 누나가 매일같이 나를 봐주겠지. 그러면 누나가 나를 돌아봐주겠지."
"......"
"그러나 누나는 동생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꼴이 우습게 된다면서 막 화를 냈습니다."
"......"
"누나는 동생이 짜증나 죽겠대요. 동생이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주지 않으니까 화가나 죽겠대요."
"너 진짜... "
빈이가 꽉 쥐고 있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자 사헌이는 입을 다문다.
"......동생이 중요해요, 일이 중요해요."
"야."
"......핏줄이에요, 직업이에요."
"야...!"
"내 말은 여기까지. 긴 이야기 들어줘서 감사합니다."
사헌이는 빈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손을 훼훼 내저으며 고개를 꾸벅 숙인다.
의외의 행동에 빈이가 황당해 할 때 사헌이는 그 긴다리로 성큼성큼 마당을 빠져나간다.
" ..........민사헌. 난 분명히 말했는데, 남의 충고는 안 들어."
"......에, 은 빈 누.나. 저도 분명히 말하겠는데, 이건 충고가 아니고 경고입니다."
.... 사헌이는 성이가 말한 차가운 이미지가 아니였다.
빈이한테 말을 하는 것을 보아 여자를 싫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정말로 차가운 사람이고, 정말로 여자를 싫어한다면
민사헌이라는 사람은 그것을 무릅쓰고 빈이에게 말을 한 것이다.
옛날 얘기라고 칭한 성이의 얘기를.
조금만이라도 성이를 이해해달라고.
"........재수없어.."
빈이는 보이지 않는 사헌이의 뒷담을 까면서 현관문을 연다.
딸칵-
"...다녀왔습니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간다.
..........풍경이 가관이다.
"....어머, 아가씨, 오셨어요?"
부엌 쪽에서 한 중년의 여자가 나오면서 반갑게 소리친다.
오래전부터 이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뭡니까, 이거..."
"아.. 한 시간 전 쯤 들어오셨는데 오시자마자 앨범을 꺼내 보시더니 그냥 주무시네요..?"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자고 있는 성이.
사방에는 두꺼운 앨범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앨범인지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로 사진보다는 글이 많다.
"이 자식이... 지금 시위하는 거야, 뭐야.."
못마땅하게 중얼거리면서 앨범을 하나 주워든다.
『 누나가 자고 있는 사진. 오늘도 형들이랑 놀기 바빴는지 성이한테는 인사도 안 했다.』
『 누나 몰래 찍은 사진. 성이랑 놀아주지 않는다. 공부할때 몰래 찍었다. 성이랑 조금만 놀아주지.』
『 누나 방이다. 오늘은 형들이랑 나갔다. 성이한테는 아무 말도 없었다. 밤 될 때까지는 안 들어온단다. 너무한다.』
온통 이런 식이다.
삐뚤한 글씨로 작은 사진 옆에다가 그날의 설명을 줄줄이 써놓았다.
가끔 가다가 동생들 사진 몇 장.
10권에 가까운 앨범들이 거의다 몰래 찍은 빈이의 사진으로 가득 찬 성이의 앨범.
...퍼억-!!!
빈이는 인상을 파악 찌푸리더니 드러누워 자고 있는 성이의 옆구리를 걷어찬다.
"으아아아아악-!!!!!!"
요란한 비명을 지르면서 벌떡 일어나 잠이 덜 깬 눈으로 빈이를 쳐다보는 성이.
"누..누님..."
"야, 배고파."
"엥?"
"귀먹었어? 배고프다고. 밥 내놔."
"......누님.. 화 푼 거야?? 풀린거야?? 그런거야??"
"시끄러. 또라이한테는 한마디라도 더 하는게 아까워. 그리고 앨범 치워. 멍청한 스토커야."
"....하하, 누님 너무하네.."
"한대 더 차줄까?"
"죄송합니다!!!"
성이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우렁차게 외친다.
그러다가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인다.
"......... 은 성."
"ㄴ...네?!!"
"......... 좋겠다. 누나한테 건방진 경고나 하는 좋은 친구 둬서."
"에..엥??"
" 뭐? 밥 내놓으라고."
"아니.. 방금 분명히 경고라고... 좋은 친구라고.. 하지 않았나...?"
"잠 덜 깼냐?"
툴툴거리는 빈이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는 성이.
그러더니 눈부시게 예쁜,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Chu-♡
"야!!!!"
빈이가 방심한 사이에 빈이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고는 2층으로 뛰어 올라간다.
빈이는 성이의 뒤꽁무니에다 대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지만
잠시 후 들려오는 건 거칠게 닫히는 성이의 방문 소리.
빈이는 어이없다는 듯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2층을 바라보다가....
"밥 내놓으란 소리 안 들려, 이 자식아?!!!!"
*
벌컥~
이른 아침.. 6시라는 시각에 갈색 문이 벌컥 하고 열린다.
"........"
"굿모닝, 마이 시스ㅌ......끄어어어억-!!!!!! 누님 머리 어쨌어?!!!!!!!!!!"
괴상한 소리를 내는 성이. 내용도 목소리만큼 이상하다.
다짜고짜 새벽 6시에 처들어와서 머리를 어쨌냐니...
그러나 성이로부터 약간 고개를 돌리면 그 이유를 즉각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침부터 뭔 일이야..."
잠이 덜 깬 빈이가 보인다.
윗단추 2개가 풀려져 있어 그 사이로 보이는 하얀 속살 때문에 굉장히 섹시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런 하얀 살 위에 흐트러져 있어야 할 긴 생머리가 없다.
새까만 긴 생머리 대신 목 언저리에서 찰랑거리고 있는 짧은 검은색 머리밖에...
"누...누님, 머리!!!!! 머리 왜 잘랐어?!!!!!!"
"....오늘부터 학교 가는 거 아니냐...."
"누님 머리를 왜 잘랐냐구우?!!!!!!!!"
"....남장하라고 했던 것 같아서.... 아닌가...."
잠이 덜 깨서 비몽사몽 한 마당에 성이한테 중얼거린다.
성이의 호들갑에 아직 파자마 차림인 민이와, 강이, 령이도 급히 들어온다.
"무슨 일ㅇ...... 오마이갓뜨!!!!!!!!!!!!!!!!!!!!"
그리하여 은씨집안의 아침은 3사람이 동시에 외친 오마이갓뜨 가 모닝콜 역할을 했다는 전설이....
*
"누님... 누님.... 제발.... 머리를 왜 잘랐냐고..."
대문을 나오면서까지 성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 아름다운 머리를 왜 잘랐느냐, 그 긴 머리를 아깝게 왜 잘랐느냐..
4명의 동생이 사방에서 징징거려대니까 빈이는 미칠 지경이다.
"거참... 닥치지 못해... "
"누님... 흐어어어엉...."
남장하라고 한 만큼 그 명령에 충실히 따르고 있는 빈이.
환상고의 치렁치렁한 남자 교복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자꾸 누님 누님 소리 하지마. 머리에 총 구멍 뚫릴 줄 알아."
"형님.... 형님..... 어째서 그 머리를....."
"...확 이걸 죽일수도 없고...."
끼익-
자꾸 눈물콧물 다 짜내며 징징거리는 성이의 머리를 꾹꾹 눌러대고 있을 때 대문 밖에서 바이크 급정거 소리가 들린다.
"..........어, 헌아!!!!!!!"
"....머리 잘랐네요..?"
입에 토스트 하나 물고 있는 사헌이가 보인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설명을 더 보태자면 집에서, 방에서 혼자 가위 들고 싹둑... 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고마워요, 사쿠라미캉 님
사헌이의 보디가드를해야하는데..남장한것을 들킨건가요??? 단번에 알아보니..ㅎㅎ
들..켰다기보다는 있는그대로 봤다고 하는것이.. ㅎ 확실히 소개만 형으로 했지, 그때는 머리도 길었고~ 어쨌든 감사합니다, 뎡귤뎡귤a 님~
담편이영
하하, 처음 뵙겠습니다, 아름다상 님!! 댓글이 짧아서 쿨하시네요~
너무재밌어요~!담편원츄원츄 ㅎㅎ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은율] 님!! 저번에 댓글 고마웠습니다, 이번 댓글도 무지 고맙구요. 감사합니다~
꺄~~ 넘 재미있어요~~~ㅎㅎ 사헌이가 은빈이한테 충고도 하구~~ㅎㅎ
와, 여우야쪼아 님, 안녕하세요!! 이런, 충고가 아니라 경고 입니다. ㅋ
재밌다유후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지혜 님!! 댓글써주셔서 감사하구요 열심히 쓰겠습니다
잼있더요 ㅎ_ㅎ....~정말로>_<
댓글감사요, 진수짱15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