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세는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될 것 같구나.”
스승님의 칭찬에 날아갈 듯 기쁜 그녀였지만, 이내 시작된 스승님의 지적은 단순히 기쁨에 그치지 않고 좀 더 개선된 방안으로 나아갈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녀는 이제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했다.
“남들보다 활을 확연히 잘 쏜다고 하여 절대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선 아니 된다. 슬픈 일이 생기건, 기쁜 일이 생기건 간에 모든 것을 내려놓는듯한 마음으로 활을 들어야 할 것이야. 곧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격은 절대로 빗나가지 않는다.”
...
뉴스에서 어느덧 국회의원 살인사건을 보도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설화는 술집으로 가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로봇은 딸깍 거리는 기계음을 내며 그녀의 자리에 소주를 놓았다. 뉴스에 나타난 자신의 모습은 두건으로 가려져 있기에 제대로 식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완벽한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몸에 걸어놓은 활과 화살들이 꽂혀 있는 화살 통이 술집 사람들의 이목을 잡기엔 충분했지만 그녀로선 별 수 없었다. 언제 그녀에게 적이 나타나 공격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활과 그녀의 몸은 절대로 떨어져선 안 되었다.
어느덧 가을의 입사귀가 무르익어 가고 겨울의 태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선했던 가을바람이 오늘따라 쌀쌀하기만 하다.
술은 금세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술을 더 주문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국회의원들의 주머니에서 현금을 찾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국회의원들은 현금을 들고 있지 않는다. 결국 오늘은 술을 한 병밖에 마시지 못한 그녀다.
소주 한 병에 남아있던 마지막 한 모금이 그녀의 목구멍을 타고 흘러내린다.
“캬아!”
아쉽지만 그녀는 이쯤에서 계산을 하고 나와야 할 터였다. 술집에서 술만 먹고 가는 그녀를 본 주인은 그녀를 못마땅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설화는 술집 주인에게 주변에 노숙할 자리를 알고 있으면 알려달라고 공손히 부탁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냉정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이내 쌀쌀해진 늦가을의 바람을 뚫고 거리를 방황하며 오늘 밤을 지 샐 곳을 찾기 시작했다. 인천의 바닷바람은 차디찼다.
시간은 어느새 저녁 8시를 향해 갔다. 아무래도 그녀로선 예상치 못한 난제였다. 국회의원 테러에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한 탓일 것이다. 몸이 슬슬 떨리기 시작하며 바람을 피할 곳을 좀 더 분주히 찾기 시작했다.
진우는 병원을 싫어하는 남자였다. 병원에서 환자의 치료를 목적으로 병원비를 뜯어내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는 오늘도 몸이 채 완치가 되기 전에 병원에서 급히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염병할. 날씨는 또 왜 이리 쌀쌀한 거야!”
불어터진 입술은 아직 치료되지 않았다. 혼잣말은 힙 겹기 그지없었다. 이내 그는 셔틀을 호출했다. 셔틀을 이용하면 인천시청 주변에 위치한 그의 집까지 빠른 속도로 날아갈 수 있었다.
셔틀을 부른 그는 길거리 벤치에 설치된 음료수 자판기에 돈을 결제한다.
풉-!
차가운 음료였다. 표시된 버튼은 분명 HOT이라는 단어가 쓰였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간에 이놈의 나라는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제길. 몸까지 떨리네.”
그는 벤치 구석에 앉아 최대한 바람을 피하며 낮에 있었던 온갖 잡념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바다 한 가운데서 찬란하게 빛나던 활을 건져낸다.(분명히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수산시장에 도착해서 확인하자 찬란했던 빛은 사라지고 웬 골동품 같은 활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져 있었다. 고물상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니 3천원을 달랜다. 화가 난다. 고물상을 나가자 웬 여인이 활을 달라고 한다. 3백 만 원을 요구 한다. 그녀는 수락한다. 그녀는 이내 장기매매업소의 위치를 물어본다. 바로 여기서 의심이 가기 시작한다!
“그래! 분명히 동정으로 포장한 비합리적인 거래방식이었어! 그 여자한테 낚인 거라니!”
살아생전 무수히 많은 물고기들을 낚아온 그였지만 사람에게 낚이는 것엔 그도 별 수 없었다. 그는 이내 활을 공짜로 건네준 것에 대해 후회하기 시작했다.
“어휴! 무슨 놈의 장사꾼이 남 사정을 봐! 어휴! 내가 바보지! 내가 바보야!”
진우는 열불나기 시작했다. 이번엔 COOL로 표시된 음료 자판기에 돈을 결제한 후, 음료를 단번에 삼킨다.
풉-!
순간 그의 혓바닥에 붙어있는 수많은 세포 들이 죽음의 고통을 호소하며 그에게 항의했다. 목구멍은 이미 2도 화상을 입었고, 속이 타는 것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식도를 타고 넘어간 것 같았다.
“이런 X발! 도대체 이 나라는 왜 되는 일이 없어!!”
자판기 옆엔 나름대로 애로사항을 적는 홀로그램화면이 예비 되어있긴 하나, 문제는 홀로그램 화면은 지시사항을 듣지 못하고 같은 글귀인 ‘애로사항을 말씀해 주십쇼.’라는 단어만 반복적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이내 체념했다.
마침 셔틀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그가 서있는 벤치 앞으로 착륙했다.
그는 조종석에 들어가 조타를 잡아 이내 수동으로 조종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목구멍은 타오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방향을 설정해 주십쇼.”
“어차피 내가 조종할건데 무슨 놈의 방향이야. 얼어 죽을.”
“인지하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십쇼.”
“.......”
벌써 저녁 9시가 다 되어가는 늦은 밤하늘에 갑작스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창밖으로 내리는 올해 첫눈이 그렇게 낭만적일 수 없었다.
“염병하겠네. 내일 고기잡이는 끝났다.”
“인지하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십쇼.”
그렇게 한참을 조종한 그는 이내 자신의 집에 거의 다다랐다. 셔틀을 집 주변 주차센터에 안전하게 착륙 시킨 뒤, 추운 날씨를 피해 어서 집으로 들어가야 할 판이었다.
“어휴! 추워! 무슨 놈의 날씨가 어떻게 하루도 정상적이질 않냐 그래!”
그의 혼잣말은 떨어지는 눈 속에 파묻혀 버렸다. 그는 얇은 겉옷을 싸매고 빠르게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저 멀리에 사람이 하나 보인다. 그것도 떨어지는 눈을 그 자리에 맞아가며 앉아있었다! 참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어휴 보아하니 여자거지인 것 같은데....... 예쁘면 우리 집으로 들여보내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추위를 피하는 것이 우선이다.’
빠르게 그녀를 지나가려던 찰나. 어디서 많이 보던 물건이 스쳐지나간다.
“활?”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말하게 된 진우는 자책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저기.......”
장사치는 모든 상황에서 손익을 따져야하는 존재. 하지만 지금 그의 행동은 손익을 따지는 것과는 하등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었다. 그는 이내 두건을 천천히 올려 그녀의 정체를 확인했다. 낮에 본 그 여자였다. 그는 급히 여자를 깨우기 시작했다.
“저기요! 저기요! 일어나세요!”
안 되겠다. 그녀는 일어날 생각을 안했다. 혹시나 ‘그녀를 집으로 옮겨 추위를 피하게 해주는 은혜를 베풀었다가 나중에 확인해 보니 시체였다.’는 끔찍한 발상을 다행히도 그는 하지 못했다. 그는 웬일로 자신의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 일을 행했다. 그는 그녀를 등에 업고 집으로 향해 걸어갔다.
“가볍긴 더럽게 가볍네.”
한참을 걸었을까. 집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다시 한 번 확인 한 후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간다.

첫댓글 재밋어요
감사합니다.ㅎㅎ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