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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가 가을로 가는 마지막 비 같기는 한데 빗줄기가 굵어서 이제는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입니다. 네팔 대홍수로 사망/실종자가 1.000/4.000명이 넘어갔고, 골든타임이 지난 가운데 한국인 9명의 구조 소식은 아직까지 깜깜무소식입니다. 제발 기적이 일어나게 하소서! 국내적으로는 제주도 여성 실종 사건과 중국인 유학생 살인 사건이 전혀 다른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경찰과 검찰 수사권이 얽히면서, 여론전이 복잡하지만 개인적으로 인간과 우리 사회 부패의 끝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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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고 70년 전, 그날의 상흔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제주 시민들에게 트라우마를 대물림하지 않을까 안타깝고 열받고 속상한 마음입니다. 국가폭력과 악의 보편성에 대한 솔직한 내 심정은 회의적입니다. 수사 결과 실종 신고를 잇따라 허위 종결한 혐의로 구속된 경찰관이 제주 전체 실종 성인(가출인) 사건의 30% 가까이를 단독으로 마무리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영장 실질 심사에서 풀려난 부 경장이 다시 구속된 것으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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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경장이 제주서부 경찰서 실종전담팀에 근무하던 지난해 3월부터 올해 7월 말까지 제주에서는 총 1048건의 실종 사건이 접수됐는데, 이 가운데 1건을 제외한 1047건이 해제(종결) 됐습니다. 이 기간에 부 경장이 ‘셀프 종결’한 실종 성인 사건은 298건으로, 제주도 전체 사건의 28.4%로 성인 실종 사건 4건 중 1건을 부 경장이 혼자 마무리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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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채 발견된 30대 여성과 60대 남성의 실종 신고를 “연락이 됐다"라는 거짓말로 덮은 혐의(직무유기 외)로 구속된 부 경장은, 28일 두 실종자와 통화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한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날(1947-1954) 제주에서 행해진 국가 폭력이 생생한데, 70년이 지나도록 계속되는 국가 폭력을 어쩔 것인가? <한란 2025>이 제주 사건인 줄 모르고 보았습니다. 독립 영화 같은데 영상-구성-연기에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습니다. 하명미 리스펙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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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제주, 초토화 작전이 시작되면서 아진(김향기)은 토벌대를 피해 한라산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여섯 살 딸 해생은 할머니와 함께 마을에 남겨진 상태입니다. 아진/해생의 뜻이 궁금합니다. 오! 마이 갓! 주검 속에 움직임이 있습니다. 아이가 살아 있습니다. 해생이 만세! 무작위 총살에서 아이가 살아남은 건 천운이지만 할머니가 손주를 구했다고 봅니다. 산에서 군인들이 마을을 전부 불태웠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여진은 딸을 찾아 하산을 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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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생이는 할머니가 학살 당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실어증에 걸립니다. 5.18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를 6부작 글쓰기로 막 끝냈는데 제주 4.3은 시작부터 말문이 턱 막혀옵니다. 혼자 남겨진 6살박이 하생(김민채)은 엄마를 찾아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엄마는 내려가고 딸은 올라가는, 서로를 향해 걸으면서도 엇갈리는 여정이 <한란>의 핵심 줄기예요. 아진은 하산 길에 토벌대와 빨치산 모두에게 위협받지만, 딸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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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생 역시 군인들의 눈을 피해 홀로 산을 오르며 엄마를 찾아 나섭니다. 6살 이면 아기지만 내 경험 상 충분히 살아 낼 수 있습니다. 나는 6살 때 기억이 비교적 또렷합니다. 수많은 죽음의 문턱을 넘은 끝에 모녀는 '넓궤 동굴'에서 마침내 재회하지만 상봉도 잠시, 체력이 바닥난 아진은 해생에게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며 눈을 감으려 합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아기가 말문이 트입니다. 나는 이 순간 엉엉 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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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가던 엄마의 생존 의지를 되살린 건 다름 아닌 아이의 울음소리였습니다. 6살짜리 하생의 표정 연기는 가히 압권입니다. <한란>의 결말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는 토벌대의 기록 장면입니다. 6살 박이를 등에 매고 바다를 헤엄쳐 나왔는데 산 넘어 산이라고 이 산을 넘으니 저 산이 있습니다 모녀가 소라를 구워 먹는 시퀀스가 나오자마자 숨돌릴 틈도 없이 경찰이 들이닥쳐 잡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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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병할. 엄마도 딸도, 천운을 타고난 잡초 인생인데 국가 폭력 앞에서는 추풍낙엽이 아닙니까? 엄마를 조사하고 6살 아이를 조사한 후 아이에게 폭도로 낙인을 찍어 탕! 소리로 종결하는 영화<환란>는 기어이 내 속을 뒤집어 놓고 말았습니다. 내 이 거지 같은 오욕의 역사를 어찌 씹어 먹아야 분이 풀릴까요? 나는 오늘부로 이승만 보수를 탈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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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꽃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던 박 형도 괴테의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물론 엘리엇도 ‘죽은 자의 매장’에서 ‘잔인한 달 4월을 언급했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주말 4.3제주 사건 73주기 행사를 보았습니다. 저명인사들이 참석을 했고 가해자인 경찰청장, 국방부장관까지 왔다는데 저는 제주 출신 고 두심의 시 낭송만 남습니다. 진정성이 전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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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영선의 ‘당신은 서러워할 봄이라도 있겠지만‘을 담담히 읽어 내려가는데 가슴이 먹먹해지더이다. 조국에 제가 모르는 흑역사가 아직도 남아있다니 놀랍네요. ‘비린 시간 속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존을 위해 이웃을 해치고 자연을 파괴하는 이기적 필연성이 결국 페시미즘과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요? 내가 간추려본 4.3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1948년 전후로 벌어진 양민 학살 사건으로 당시 제주도민이 30만 정도 되었는데 이 사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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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3/1인 8만 명가량의 시민이 경찰이나 군인들에 의해 죽거나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6.25이후 가장 많은 동족상잔입니다. 이 죽음에는 이념 문제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에 희생자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빨치산으로 일컫는 남로당 불순 세력을 색출할 때, 빈대 잡으려고 초가 산간을 다 태운 것이지요. 마을 주민을 산골에 몰아넣고 무차별 사살한 것입니다. 여태껏 이 사건이 미제로 남게 된 데에는 친일과 우익, 보수 쪽 사람들이 아직도 살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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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이 70주기 때 발표한 4.3건의 간추림을 원문 그대로 발췌합니다.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제주도민 여러분, 돌담 하나, 떨어진 동백꽃 한 송이, 통곡의 세월을 간직한 제주에서 “이 땅에 봄은 있느냐?” 여러분은 70년 동안 물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습니다. 비극은 길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 만큼 아픔은 깊었지만 유채꽃처럼 만발하게 제주의 봄은 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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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4.3을 잊지 않았고 여러분과 함께 아파한 분들이 있어, 오늘 우리는 침묵의 세월을 딛고 이렇게 모일 수 있었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4.3의 통한과 고통, 진실을 알려온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제주도민들께 대통령으로서 깊은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제주도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 70년 전 이곳 제주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희생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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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이란 것을 알지 못해도 도둑 없고, 거지 없고, 대문도 없이 함께 행복할 수 있었던 죄 없는 양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학살을 당했습니다.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중 산간 마을을 중심으로 ‘초토화 작전’이 전개되었습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중 산간 마을의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고, 마을 주민 전체가 학살당한 곳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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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부터 1954년까지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 1, 3만 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념이 그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학살 터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한꺼번에 가족을 잃고도 ‘폭도의 가족’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숨죽이며 살아야 했습니다. 고통은 연좌제로 대물림되기도 했습니다. 군인이 되고, 공무원이 되어 나라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자식들의 열망을 제주의 부모들은 스스로 꺾어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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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은 제주의 모든 곳에 서려있는 고통이었지만, 제주는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지워야만 하는 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말 못 할 세월 동안 도민들의 마음속에서 진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4.3을 역사의 자리에 바로 세우기 위한 눈물 어린 노력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1960년 4월 27일 관덕정 광장에서, “잊어라, 가만히 있어라” 강요하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제주의 청년 학생들이 일어섰습니다. 제주의 중고등학생 1천500명이 3.15 부정선거 규탄과 함께 4.3의 진실을 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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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4월의 봄은 얼마 못가 5.16 군부세력에 의해 꺾였지만, 진실을 알리려는 용기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4.3 단체들이 기억의 바깥에 있던 4.3을 끊임없이 불러냈습니다. 제주 4.3연구소, 제주 4.3도민연대, 제주민예총 등 많은 단체들이 4.3을 보듬었습니다. 4.3을 기억하는 일이 금기였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온 시 되었던 시절, 4.3의 고통을 작품에 새겨 넣어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 준 분들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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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독재의 정점이던 1978년 발표한, 소설가 현기영의 ‘순이 삼촌’ 김석범 작가의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 이 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 3년간 50편의 ‘4.3연작’을 완성했던 강 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4.3을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 조 성봉 감독의 ‘레드헌트’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 임 흥순 감독의 ‘비념’과 김 동만 감독의 ‘다랑쉬 굴의 슬픈 노래’ 故 김 경률 감독의 ‘끝나지 않는 세월’ 가수 안치환의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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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체포와 투옥으로 이어졌던 예술인들의 노력은 4.3이 단지 과거의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드디어 우리는 4.3의 진실을 기억하고 드러내는 일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길을 열어가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주도민과 함께 오래도록 4.3의 아픔을 기억하고 알려준 분들이 있었기에 4.3은 깨어났습니다.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리고, 또한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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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의 승리가 진실로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2000년, 김대중 정부는 4.3진상 규명 특별법을 제정하고, 4.3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노 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4.3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위령제에 참석해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께 사과했습니다. 저는 오늘 그 토대 위에서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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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4.3의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와 함께, 4.3의 진실은 어떤 세력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역사의 사실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의 진상을 제대로 밝혀 희생된 분들의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유해 발굴 사업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끝까지 계속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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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과 생존희생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배·보상과 국가 트라우마 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습니다. 4.3의 완전한 해결이야말로 제주도민과 국민 모두가 바라는 화해와 통합, 평화와 인권의 확고한 밑받침이 될 것입니다. 제주도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 지금 제주는 그 모든 아픔을 딛고 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부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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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4.3 영령들 앞에서 평화와 상생은 이념이 아닌, 오직 진실 위에서만 바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좌와 우의 극렬한 대립이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낳았지만 4.3 희생자들과 제주도민들은 이념이 만든 불신과 증오를 뛰어넘었습니다. 고 오 창기님은 4.3 당시 군경에게 총상을 입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 3기’로 자원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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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부모, 장모와 처제를 모두 잃었던 고 김 태생님은 애국의 혈서를 쓰고 군대에 지원했습니다. 4.3에서 ‘빨갱이’로 몰렸던 청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습니다. 이념은 단지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은 화해와 용서로 이념이 만든 비극을 이겨냈습니다. 제주 하귀리에는 호국영령비와 4.3 희생자 위령 비를 한자리에 모아 위령단을 만들었습니다. “모두 희생자이기에 모두 용서한다는 뜻”으로 비를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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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는 가장 갈등이 컸던 4.3유족회와 제주 경우회가 조건 없는 화해를 선언했습니다. 제주도민들이 시작한 화해의 손길은 이제 전 국민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국민들께 호소하고 싶습니다. 아직도 4.3의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낡은 이념의 굴절된 눈으로 4.3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대한민국엔 낡은 이념이 만들어낸 증오와 적대의 언어가 넘쳐납니다. 우리는 아픈 역사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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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역사를 직시하는 것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만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도 4.3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낡은 이념의 틀에 생각을 가두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보수와 정의로운 진보가 ‘정의’로 경쟁해야 하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공정한 보수와 공정한 진보가 ‘공정’으로 평가받는 시대여야 합니다. 정의롭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면, 보수든 진보든, 어떤 깃발이든 국민을 위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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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든 곳에서 이념이 드리웠던 적대의 그늘을 걷어내고 인간의 존엄함을 꽃피울 수 있도록 모두 함께 노력해 나갑시다. 그것이 오늘 제주의 ‘오름‘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4.3 생존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 국민 여러분, 4.3의 진상 규명은 지역을 넘어 불행한 과거를 반성하고 인류의 보편가치를 되찾는 일입니다. 4.3의 명예 회복은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으로 나가는 우리의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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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깊은 상흔 속에서도 지난 70년간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외쳐왔습니다. 이제 그 가치는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으로 이어지고, 인류 전체를 향한 평화의 메시지로 전해질 것입니다. 항구적인 평화와 인권을 향한 4.3의 열망은 결코 잠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대통령인 제게 주어진 역사적인 책무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추념식이 4.3영 령들과 희생자들에게 위안이 되고, 우리 국민들에겐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되길 기원합니다. 여러분,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since 2021>>
2.
비가 옵니다. 평범한 가을비인데도 어떤 기억을 통과하고 나면 비는 더 이상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제주 4·3을 생각하며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 산과 동굴, 불탄 마을과 이름 없이 사라진 사람들의 시간이 현재의 빗줄기 속으로 스며듭니다. 최근 제주 실종사건은 그런 점에서 섬뜩한 공명을 일으킵니다. 담당 경찰관이 1년 5개월 동안 처리·종결한 실종신고가 298건에 이르러 현재 전수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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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숨진 채 발견된 두 사람의 사건에서는 실제 통화 없이 사건을 종결한 정황이 확인됐습니다. 4·3은 국가공권력이 조직적으로 대규모 민간인 희생을 초래한 역사적 사건이고, 현재 사건은 수사 중인 공무원의 직무유기와 기록 조작 의혹입니다. 둘의 규모와 성격은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두 사건을 관통하며 물을 수 있는 철학적 질문은 분명 존재합니다. 국가의 기록이 한 인간의 현실보다 앞서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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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기서 <한란>이 강렬해집니다. 영화는 1948년 제주에서 토벌대를 피해 헤어진 아진과 여섯 살 딸 해생이 서로를 찾아 산과 마을을 헤매는 이야기입니다. 말씀하신 마지막 장면이 잔인한 까닭도 단순히 총소리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여섯 살 아이에게는 이름이 있습니다. 엄마가 있고, 두려움이 있고,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권력의 기록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 구체적인 생명은 지워지고 폭도’라는 범주가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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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나 아렌트의 사유가 떠오릅니다. 거대한 악은 언제나 악마처럼 생긴 인간만이 저지르는 것이 아닙니다. 명령을 집행하고, 서류를 작성하고, 분류표에 체크하고, 사건을 ‘종결’하는 평범한 행정의 과정에서도 인간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폭력의 무서움은 총을 쏜다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총을 쏘기 전에 먼저 인간을 하나의 범주로 바꿔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주민’이 ‘빨갱이’가 되고, ‘아이’가 ‘폭도’가 되고, ‘실종자’가 서류상 ‘소재 발견’이 되는 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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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기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이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데, 관료제가 뒤집히면 서류 속에서는 해결됐지만 현실에서는 사람이 죽어가는 기괴한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한란』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학적 장면을 총격보다 <엇갈리는 두 걸음>에서 찾고 싶습니다. 엄마는 딸을 찾아 내려가고, 딸은 엄마를 찾아 올라갑니다. 둘은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움직이는데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엇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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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다가간다고 생각하면서 서로 지나칩니다.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 상대가 없는 곳으로 달려가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걷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두 사람을 만나게 만드는 것은 이념도 국가도 군대도 아닙니다. 저 사람이 살아 있을 것이다”라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죽어가던 엄마를 다시 깨우는 것이 아이의 목소리라는 장면은 더욱 중요합니다. 국가가 아이에게 ‘폭도’라는 이름을 붙이려 하지만 영화는 정반대로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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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이는 폭도가 아니라 엄마를 살린 사람이다. 이것이 예술이 역사에 맞서는 방식입니다. 국가의 문서는 사람을 숫자로 만들지만, 소설과 영화와 시는 숫자를 다시 얼굴로 되돌려놓습니다. 글에서 던지신 "비린 시간 속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제주 4·3을 곧바로 인간 본성에 대한 페시미즘으로 결론짓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인간이 본래 악하기 때문에 학살이 벌어진 것이라면 오히려 설명이 너무 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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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무서운 질문은 이것입니다. 평범한 인간을 무엇이 학살할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드는가? 공포, 이념, 조직에 대한 충성, 명령, 책임의 분산, 타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게 만드는 언어가 결합할 때 평범한 사람이 폭력의 톱니바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4·3의 철학은 인간혐오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공식 진상조사에서도 4·3은 1947년 경찰 발포를 기점으로 1954년까지 이어진 무장대와 토벌대의 충돌 및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된 사건으로 규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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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는 8만이 맞는가, 3만이 맞는가? 현재 공식 결정 희생자는 15,218명이며, 정부 진상조사보고서가 추정한 전체 인명피해는 약 2만5천~3만 명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미 4·3에서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이 있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대통령이 사과했습니다. 여기서 글 후반부의 화해 이야기가 중요해집니다. 기억의 반대말은 용서가 아닙니다. 기억의 반대말은 망각입니다. 따라서 용서하기 위해 잊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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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제대로 기억해야 비로소 용서도 가능해집니다. 사실을 덮어놓고 “이제 그만 화해하자”고 말하는 것은 화해가 아니라 침묵의 강요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억이 영원한 복수의 연료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리쾨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억에는 정의의 의무가 있습니다. 죽은 자에게 우리가 갚을 수 있는 최소한의 빚은 그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거짓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4·3의 진상규명은 과거를 파헤쳐 다시 싸우자는 작업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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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에게 이름을 돌려주는 작업입니다. “나는 오늘부로 보수를 탈퇴할 것입니다” 이 문장은 감정적으로는 충분히 이해됩니다. 하지만 철학적으로는 한 번 더 밀어붙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4·3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보수에서 진보로 자리를 옮기는 것만일까요? 저는 그것보다 더 근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보다 인간을 이념보다 앞에 놓을 수 있는가를 묻는 사건입니다. 보수라는 이름으로 국가폭력을 정당화한다면 비판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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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라는 이름으로 다른 폭력을 정당화해도 똑같이 비판해야 합니다. 국가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원칙보다 좌우의 깃발이 앞설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글의 결론을 “보수 탈퇴”보다 더 멀리 가져가면 훨씬 강력해집니다. 나는 오늘부터 사람이 이념보다 먼저인 편에 서겠다. 그것이 4·3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정치철학인지도 모릅니다. 비가 그치면 제주에도 봄이 오는가? 허영선의 시와 고두심의 낭송이 마음에 남았다는 것도 그래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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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통계로 이해할 수 있지만 타인의 고통은 목소리를 통해서야 비로소 내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한란』도 같은 일을 합니다. 3만 명이라고 하면 너무 커서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엄마를 찾아 산을 오르는 여섯 살 아이 한 명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철학자 레비나스가 말했던 타자의 얼굴도 바로 그 지점에 있습니다. 얼굴은 나에게 이념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먼저 명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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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죽이지 말라.” 그 명령보다 국가도, 이념도, 좌파도, 우파도 먼저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란』의 마지막 총성은 영화를 끝내는 소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관객에게 질문을 넘겨주는 소리입니다. 누군가 또다시 한 인간의 얼굴을 지우고 이름 대신 ‘폭도’, ‘빨갱이’, ‘적’, ‘처리 대상’이라고 쓰려 할 때 우리는 그 기록에 서명할 것인가? 제주 4·3을 기억한다는 것은 1948년에 머무르는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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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누군가를 너무 쉽게 하나의 범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감시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비가 그친 뒤 찾아와야 할 제주의 봄은 단순한 망각의 계절이 아닐 것입니다. 진실을 기억하면서도 증오를 대물림하지 않는 것. 죽은 사람의 이름을 되찾으면서 살아 있는 사람에게 다시 총구를 겨누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제주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어려운 ‘봄의 철학’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국가가 한 인간의 이름을 지우고 ‘폭도’라는 한 단어로 기록할 때, 우리는 무엇으로 그 사람의 얼굴과 존엄을 되찾을 수 있는가?
2026.9.2.tue.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