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난 다른 아이들과는 좀 남다른 면이 있었는데,그중에서도어려서 부터 죽음에 관한 생각들을 해왔다는 것이다.
난 그때 죽음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몰랐고, 죽는 사람들을 본 적 또한 없었다.
그런데 수학여행을 가는 버스 속에서 단짝친구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이유 없는 눈물을 보였다.
도대체 무엇이 날 울게 만들었던 것일까? 지금의 나의 생각으로는 어린나이에 죽음이라는 것이 미지의 세계이고, 또한 내가 경험하지 않았던 것, 왠지 모르게 모든 것이 끝나고, 없어져 버리는 것 같아 눈물을 흘리고 두려워 하였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해보면 지금의 나또한 죽음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다.
그렇다. 바로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가보지 않은 낮선 곳이기에 두려운 존재로서 전해지고 있는 것이며, 죽음을 당하면, 또는 죽는다면 자신의 마음속에 아니면 기억 속에 좋고, 행복하고, 했던 소중한 추억들과, 자신이 하고 싶어 했던 그 어떤 것, 그리고 지금가지도 자신이 해왔던 재미있거나 관심 있어 했던 일들. 이 모두를 잃게 될 것이라 생각되기에
죽음이라는 두 글자는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을뿐더러 두려움의 대상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을 보라. 서로서로 오래 살려고 10년 아니, 1시간만이라도 더 오래살고싶어서 오래살기위한 건강에 좋은 모든 것들을 다하려고 하고, 우리사회 또한 이런 것들을 이용해서 장사나 하려는 문제들이 상당히 많다. 그 와중에서 우리가 하는 행동을 자세히 보면,그옛날 우리나라를 위해서, 또는 각자의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친 각국의 위인들을 보면서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박수를 보낸다. 분명 그 사람들은 그렇게 오래 살지도, 오래살기를 바랬던 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자신보다 나라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던 그 사람들. 우리는 다시금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한 가지 커다란 뜻을 이루기위해서 자기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그분들과,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오직 오래 살겠다는 일념 하에 생명연장을 꿈꾸고 있는 지금의 우리모습……. 어쩌면 죽음이라는 것은 당연히 두려운 것이고, 그 두려움에 맞서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은 영웅과 위인들이 우리에겐 하나의 용기 있는 사람으로 보여서 "위대하다", 또는 "대단하다" 라는 표현을 쓰는 것 같다. 그렇게 따져보면 우리는 용기 없는 사람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겠다.
과연 그렇다면 그냥 오래살기만 하는 것이 좋은 것일까?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인 하나의 표현을 예로들 자면, 어떤 한 사람이 100년을 살고 또 100년을 병원침대에서 보냈다고 하면, 분명 이 사람은 200년을 산 것이다. 하지만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침대에서 보낸 100년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앞에서 말했던것과같이 죽음이 두려운 이유 중에 하나가 자신의 소중했던 기억을 잊기 싫어서,
라고 했다. 과연 병원에서 보낸 100년이 소중한 기억이 될 수가 있을까? 단지 오래살기만 한다고 해서 좋은 생애를 살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아무 의미 없이 오래만 산다는 생각은 불필요하다고 난 생각한다.
그래서 난 짧은 일생을 살았어도, 여러 사람에게 죽어서도 기억되는 위인들이 정말 자랑스럽고, 나또한 의미 없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할 것이다.
만약내가 하늘의 뜻이 있어서 영생을 영위할수 있게된다면 당연히 후세에 기억되는 사람이 될수 있도록 아니 영원히 살수있으니까 영원히 국가에 공헌하겠다. 우리 나라와 이 세계를 위해서. . .
첫댓글 [2]죽음이 왜 두려운지에 대한 이유가 부족합니다. 국가에 공헌 하겠다는 포부에 정말 가슴이 뜨거워 지는군요.
[2]예시로 나온 두 인물과의 연계가 아쉽습니다
[2] 질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조금 부족해 보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2] 맨 마지막 구절이 인상적이네요. 자신의 생각이 다른 부분에서도 더 표현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3] 모두들 사춘기 때에는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된답니다. 그러면서 자의식을 성숙시켜 나가는 거죠. 짧지 않게 아주 길고 행복한 삶을 살으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