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던 날에
한 해가 저무는 마지막 날 아침은 포근한 날씨에 약간의 구름이 끼었다.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낼 계획이었는데 지기로부터 ‘노량’ 영화 관람 제의가 있어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자연 학교 등교 시각에 집을 나서 아파트단지 바깥 보도에서 동행할 문우의 차편을 기다렸다. 메타스퀘어 가로수 높은 가지 꼭대기는 지난봄 까치가 둥지를 틀어 새끼를 친 흔적이 보였다.
교외 영화관으로 나갈 이웃 아파트 지기의 차편을 기다리다 ‘옐니뇨라고’라는 시조를 한 수 남겼다. 해가 바뀐 어느 날 아침 지인들에게 보낼 셈이다. “해수온 높아지는 옐리뇨 주기 들어 / 강수는 잦아지고 겨울이 따뜻해져 / 서민이 살아가기는 그전보다 나을까 // 날씨가 변수였나 작년은 과수 흉작 / 사과는 금사과요 감조차 귀해져서 / 노점상 과일 트럭도 빈 상자로 다닌다”
정한 시간 함께 가는 지기 차편으로 원이대로를 따라 팔용동으로 나가 다른 문우를 한 분 더 만나 서마산에서 국도를 달려 신당고개 너머 가야로 갔다. 시내 영화관과 같을 동시 개봉작인데 교외 소읍 작은 영화관은 관람료가 절반 정도 낮아 셋은 가끔 찾은 편이다. ‘서울의 봄’은 지난번 관람했고 이번은 ‘노량’으로 ‘한산’과 ‘명량’에 이은 임진왜란 해전사에서 영웅 운명 완결편이다.
가야 읍내에 닿은 일행은 작은 영화관 표를 예매해 두고 이웃한 장터로 나갔다. 예전 철길이었던 장터에는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군청 소재지 가야는 읍내로 관통하던 경전선 철길이 복선화가 되면서 외곽으로 이설하고 폐선은 공원으로 꾸며졌다. 닷새마다 돌아오는 오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0일과 5일이 가야장인데 31일까지 있는 큰 달은 30일이 아닌 31일에 장터가 열렸다.
길게 이어진 폐선 공원엔 장사꾼들이 천막을 치고 좌대에 상품을 펼치기 시작했다. 과일과 채소가 주를 이루고 동태와 갈치와 같은 생선을 파는 노점도 보였다. 한겨울이지만 꽃 화분이나 공구를 펼친 잡화들도 나왔다. 우리는 장터를 둘러보다 갓 구워낸 호떡을 사 먹으면서 주인 내외와 몇 마디 나눠봤다. 중년 부부는 다른 날이면 의령과 남지장터로 가 호떡과 어묵을 판다고 했다.
작은 영화관으로 와 관람석에 앉으니 오전임에도 좌석은 거의 채워졌다. ‘명랑’은 이미 언론에 비친 평대로 영웅을 갈구하는 시대의 애국심이 반영된 흥행몰이를 하는 듯했다. 영화는 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죽음과 이순신이 꾼 뒤숭숭한 악몽으로 시작되었다. 다소 지루한 초반부를 지나자 조명 연합군과 퇴각하는 왜군이 노량에서 펼쳐진 7년간 끌었던 전쟁의 피날네였다.
성웅이 참모와 전략을 의논하려 펼친 지도에 드러난 노량은 남해의 이락사가 위치한 관음포와 이웃 창선도가 뚜렷해 눈여겨봤다. 노량에서는 왜군의 퇴각과 함께 이순신이 전사하고 조선 수군 손실도 컸던 노량해전이다. 우리는 이보다 앞선 정유재란 발발 초기 거제 칠천도에 있었던 뼈아픈 패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순신은 이 이후 백의종군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2시간이 넘겨 걸려 상영된 영화관을 나와 추어탕집을 찾아 점심을 들었다. 식당 바깥에서 아까 못다 둘러본 오일장 장터로 갔더니 시장을 보러 나온 장꾼들로 제법 복잡했다. 동행했던 지기 둘은 사과와 생선을 샀지만 나는 구경만 했다. 나는 며칠 뒤 진해에 경화장이 서면 거기서 메밀묵과 생선을 사려고 벼르는 중이다. 근동에서 재래장터 생선은 경화장이 선도가 좋아 보여서였다.
운전대를 잡은 지기는 귀로에 산인 입곡으로 들어 군립공원 저수지 둘레길을 걸었다. 산기슭에는 나목이 된 활엽수가 빼곡한 수변 공원에는 휴일을 맞아 산책 나온 이들이 간간이 보였다. 상류에 오염원이 없는 꽤 넓은 저수지를 채운 맑은 물을 바라보니 청정함과 상쾌함이 더했다. 해넘이 저녁놀을 바라보는 바다나 산마루가 아니어도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23.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