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겨울다워졌다. 이번 가을 서점을 찾는 사람의 수가 늘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 덕분이리라. 대부분은 수상 작가의 책을 원하지만, 다른 책을 들춰보고 구매하기도 하므로 서점 입장에선 반기지 않을 수 없다. 오래도록 이 분위기가 이어지면 좋겠다.
한편 겨울이 무르익고 발길 역시 뜸해지면 서점은 다시 또 고요해질 테지. 서점의 시간이 저물고 대신 독자의 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밤이 길어지면 모두들 자신만의 따뜻한 공간에서 심심해지리라. 그리하여 심심(深深)한 시간을 맞이하리라. 그럴 적에 문득 곁에 책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마침내 펼쳐볼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서점지기를 흐뭇하게 만든다. 책 읽기란 대화와 닮아, 주거니 받거니가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캐치볼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던지고 네가 받는, 다시 네가 던지는 공을 내가 받는 일의 즐거움은 한번 경험하고 나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도서 구입 열기가 읽기 경험의 발단이 될 터다. 이즈음 서점을 방문한 이들에게 보다 친절한 태도를 갖게 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한 번만 읽어주세요’ 하는 속내가 은연중에 배어나는 것이다.
마침 내겐 중요한 원고가 있다. 출간을 앞둔 한 시집에 실릴 발문이다. 막중한 부담에 쓰기가 어렵고 진행이 더뎌 괴롭지만, 내 편에서 던진 공을 누군가 기꺼이 받아줄 거라는 믿음이 나를 기껍게 한다. 곧 내가 받을 차례가 오겠지. 의미 있는 일이다. 즐거운 일이다.